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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37화 (137/241)

#137 어나더 레벨(9)

드르륵―

천사연은 의자를 빼서 스테이션에 앉는다.

그리고 내가 조금 전 보았던 차트를 열어 놓고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PCI를 받은 환자가 수술을 받으면 뭘 가장 주의해야 할 것 같아요?"

이 말투는……?

마치 시험문제를 내는 것 같다.

나는 금방 그녀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인턴 평가에 반영하려는 거구나.’

<인턴 평가>.

매달 레지던트들의 인턴 평가는 여러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진다.

용모, 복장.

대인 관계.

근무 자세.

지식을 습득하려는 열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회진과 처방, 의무기록 등을 포함한 임상 능력 등등…….

전부 합하면 열 가지가 넘는다.

즉, 이런 질문 또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말해 봐요."

번뜩!

천사연이 눈을 부릅뜨며 웃는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사람 눈이 어떻게 저렇게 크게 떠지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관상동맥에 스텐트를 넣었던 환자라, 수술 후 acute MI(급성 심근경색)라든지 revascularization(스텐트가 막혀서 다시 하는 시술)의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차분한 대답에 천사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스텐트(stent).

몸속 혈관에 넣는 작은 관이다.

이렇게 혈관에 인위적으로 이물질을 넣어 놓으면, 우리 몸에서는 혈전이 더 생기기 쉽다.

그래서 환자는 평소에 피를 묽게 만드는 약으로 혈전 생성을 억제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약을 수술을 앞두고 잠시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분이 수술을 앞두고 약을 끊었을 테니, 쓰롬부스(thrombus, 혈전)가 만들어지는 걸 억제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이 끝났다.

과연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혹시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를 거는 건 아닐지…….

"맞아요. 기본적인 건 알고 있네."

천사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이 반반이다.

반은 트집을 잡지 못해 불만족스러운 듯.

그리고 나머지 반은 내 대답에 만족한 듯하다.

"그럼 어떻게……."

"어쩔 수 없어요."

"예?"

"위험도가 높긴 하지만, 그래도 감수하고 갈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캔서(cancer, 암) 없애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순환기 내과 컨설트(consult, 협진)도 봤고."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천사연의 대답이었다.

물론 약을 잠깐이라도 끊게 되면 혈전의 위험이 높아진다.

수술 끝나고 다시 약을 먹기 시작하기로 하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듯이 약을 끊은 채 수술하는 것이다.

만약 그 며칠 사이에 혈전이 생겨 버리면?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살아남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인턴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에요. 교수님이 어련히 신경 안 쓰셨을까 봐요? 진작에 다 디스커션 된 거라고요."

천사연의 말이 맞다.

내가 염려하는 것을 교수와 레지던트들이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을 테니까.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환자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답을 내린 것이다.

"인턴은 수술방에서 시키는 일만 잘하면 돼요. 시키는 일이나 잘해요. 오케이?"

"예."

"……뭐, 그래도 차트도 안 보고 수술방 들어오는 인턴들보단 낫네요."

또각, 또각.

천사연은 그렇게 칭찬 아닌 칭찬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자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미선 누나가 슬그머니 말했다.

"이제 숨 쉬어도 돼?"

"네."

"참 나, 자기가 교수야 뭐야? 레지던트 3년 차라고 분위기 오지게 잡아요, 팥쥐 같은 게."

미선 누나가 작은 목소리로 꿍얼댔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방금 천사연에게 들었던 말을 생각했다.

<인턴이 신경 쓸 일 아니다>.

물론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수술방에서 하는 일은 <당기고 잡고> 등등, 단순한 것들로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관련된 내용은 미리 잘 체크해 둬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수도, 영민한 서당 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 *

다음 날.

정순례 환자의 난소암 수술이 진행되었다.

저벅, 저벅―

나는 수술방 준비를 한 뒤 환자 대기실로 향했다.

환자분은 <15>라고 수술방 번호가 적혀 있는 휠체어에 앉은 채, 가만히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제 그 젊은 선생님이신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목소리만으로 나를 알아본 모양이다.

나는 환자를 북돋기 위해 활기차게 물었다.

"어머니, 뭐 보고 계셨어요?"

"그냥 기다리기 지루해서, 저기 나오는 화면만 보고 있었어요."

나는 환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대기실 한쪽에 걸린 벽걸이 TV.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 소리 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호수공원이 비쳐지고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경치가 하도 예뻐서요. 저기는 어디래요?"

"동유럽에 있는 크로아티아래요."

"아아……."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인 플리트비체.

영화 아바타의 배경 모티브가 되었던 곳인 만큼, 마치 요정이 튀어나올 것처럼 아름다운 숲이었다.

"세상에는 참 멋진 곳도 많아요. 그쵸?"

정순례 환자는 연신 감탄하며 TV 화면을 쳐다보다가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사실은 우리 딸이랑 아들이 올겨울에 해외여행 보내 준다고 했거든요."

"어디로 가실 계획이었어요?"

"아유 몰라요, 유럽 어디래요. 저는 됐다고 하는데도 것 참…… 자기들 앞가림하기도 바쁠 텐데, 무슨 엄마 여행을 보내 준다고."

정순례 환자는 수줍게 웃었다.

이건 어머니들 특유의 자식 자랑인 모양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좋으시겠어요. 자녀분들이 효자들이시네요."

"아유, 뭘요."

"수술하시고, 항암 치료도 잘 받으시면 해외여행도 다녀오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야죠."

환자분은 나와의 대화에 긴장이 조금 풀어진 듯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참 예쁘네…… 천국이 있으면 저런 풍경일까 싶네요."

그때 수술방 안쪽으로부터 간호사 선생님이 걸어왔다.

"선생님, 이제 수술실 들어가실게요."

나는 환자의 카인(car―in) 절차를 진행했다.

환자가 베드 위에 눕자, 간호사의 주도 아래 몇 가지 확인 절차가 진행된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정순례예요."

"오늘 어디 수술받으시는지 아시나요?"

"난소암……."

그리고 환자의 마취가 시작되었다.

"……."

쌔액, 쌔액―

금세 환자는 잠이 들고, 입에는 인공기도관이 삽관되었다.

지잉―

수술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퍼스트 어시스턴트(1st assistant) 천사연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평소처럼 인사를 했다.

천사연이 나를 힐긋 보더니 묻는다.

"오래 걸리는 수술인 거 알죠? 이제 며칠 일해 봤으니까 수술명만 봐도 대충 감 오겠지."

"예."

"졸면 가만 안 둬요."

천사연의 말투는 오늘도 뾰족하다.

그런데 어제의 대화 때문인지, 평소보다는 날카로움이 덜했다.

나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나는 천사연을 도와 수술 준비를 능숙하게 끝내고 개수대로 향했다.

쏴아아―

손을 씻는다.

왜인지 오늘따라 조금 더 긴장이 된다.

물론 수술의 성패는 90퍼센트 이상 교수님의 몫이다.

하지만 1퍼센트라도 내가 보탤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보탤 것이다.

주연은 주연대로, 조연은 조연대로 역할이 있으니까.

"안녕하세요!"

"어, 그래요."

곧 주연인 교수님이 수술실에 입장한다.

핸드폰을 데스크에 올려 두고, 손을 씻으러 가면서 천사연과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사연아, 저번에 말했던 논문. 이번 가을학회에 초록(abstract, 논문 요약본) 제출할 수 있겠니?"

"데이터 조금 비는 부분이 있어서 메꾸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내일모레까지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제출 기한 다가오고 있으니까 서둘러야겠다."

"예, 교수님."

곧, 손을 씻고 들어온 교수는 환자의 오른쪽에 섰다.

파앗―

무영등이 켜진다.

그렇게 정순례 환자의 수술이 시작되었다.

* * *

<난소암>.

부인과 암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암이다.

증상이 특이하지 않아 조기에 발견되기 어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다른 곳까지 전이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난소암의 병기(stage)는 크게 4가지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기―다행히 암이 아직 한쪽 난소에만 있는 경우

2기―암이 골반에 국한된 경우

3기―암이 복강 내에 퍼진 경우

4기―암이 복강 바깥의 다른 장기로 멀리 퍼진 경우

난소암 외에도 대부분의 암이 이렇게 1~4기로 구분된다.

4기는 암이 원래 자라난 곳을 벗어나 멀리까지 퍼져 있을 때를 말한다.

그래서 이런 4기 암 환자들은 수술을 받을 수 없고, 항암/방사선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만약 암이 걸렸는데, 수술을 받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현재 수술을 받게 된 정순례 환자는 3기가 예상되고 있었다.

즉, 암이 복강 내에 국한되어 퍼져 있는 상태.

난소암은 특이하게, 수술 후에야 정확한 병기가 정해지고 예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순례 환자도 구체적인 상황은 배를 열어 봐야만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메스."

스윽―

교수가 메스(mes, 칼)를 사용해서 개복을 시작했다.

배 중앙을 가르는 절개(midline incision)가 시행되고, 칼이 지나가는 자리에 피가 흐른다.

곧, 지방층 아래로 분홍색의 복부 근육들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천사연은 교수의 반대편 복근을 포셉(forcep)으로 잡았고, 교수는 보비(bovie, 전기칼)를 들고 복부의 근육 사이를 가르기 시작했다.

시익―

연기가 오른다.

나는 석션(suction)을 들고 연기가 교수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게 도왔다.

근육 사이를 가르자, 복부의 제일 안쪽 벽인 복막(peritoneum)이 보였다.

이 복막을 보비로 열자, 드디어 환자의 복강 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보자."

교수는 열린 복강 안에서 복수(ascite)를 석션하면서, 복강 안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어드히젼(adhesion, 유착)이 조금 있는 것 같네. 리버(liver, 간)랑 다이아프램(diaphragm, 횡격막)에 보이는 투머(tumor, 종양)는 없는 것 같기는 한데……."

유착.

우리 몸 안에 떨어져 있어야 할 조직들이 끈적이게 붙어 있을 때를 <유착이 있다>라고 말한다.

수술을 위해서는 이렇게 끈적이게 붙어 있는 조직들을 하나하나 분리해야만 한다.

유착을 박리하다 조직/장기가 상처를 입기도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세심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착은 수술을 어렵고 길어지게 만드는 요소다.

‘이 수술, 쉽지 않겠구나.’

인턴인 나도 그렇게 직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교수는 복강 내에 있는 복수(ascite)에 대해 바로 검사를 시행하였다.

혹시 모를 암 전이에 대한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복강 안의 다른 장기들도 차례로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시작할까?"

치이익―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발생하며 기나긴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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