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26화 (126/241)

#126 심장이 뛴다(10)

"신선한. 심장 다시 뛰는 게 느껴져?"

"예!"

"그럼 이제 손 놔 봐!"

풍 선생의 말에, 나는 손을 조심스레 놓았다.

두근, 두근―

내 손바닥 위에서 심장이 뛴다.

이제 내가 쥐어짜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순간이었다.

"혈압 84/60 체크됩니다!"

응급 구조사가 반갑게 말한다.

RBC(적혈구)는 어느새 12개째.

그동안 혈액을 많이도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다.

심장의 출혈을 풍 선생이 막았기 때문이다.

"노르에피(norepinephrine, 강심제) CIV(지속투여), 일단 0.1 mcg/kg/min 에서 차차 줄여 갑시다."

"예."

풍 선생의 지시에, 간호사가 약물 투여를 조절한다.

일단 가장 급한 불은 끈 셈인가?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살린 겁니까?"

"아직 모른다. 멘탈(mental, 뇌활동)이 돌아올지는 확실치 않아."

풍 선생의 말이 맞다.

심정지 세 번.

즉,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못한 시간들이 그만큼 있었다는 뜻이다.

뇌는 한 번 손상되면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심장을 다시 살려 놓아도, 뇌사 상태로 지내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멘탈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네가 빠르게 병원으로 데리고 왔으니까."

풍 선생은 그렇게 말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 렁(lung, 폐)을 꿰매 볼까?"

스윽―

풍 선생은 조심스럽게 폐에 덮어 두었던 거즈를 걷어내었다.

상처 난 좌측 폐가 인공호흡기의 호흡에 맞추어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부풀어 오를 때마다 상처 난 부위에는 피거품이 올라온다.

폐로 공급되는 공기와 피가 섞여 커피를 내릴 때 보이는 그 거품처럼, 자그마한 피거품을 계속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PDS(봉합사) 4―0 줘 봐요."

"예."

스윽, 스윽―

풍 선생은 폐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한 부분씩 꿰매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불쑥 내게 말했다.

"야, 신선한. 내가 지금 하는 거 봤지? 나머지는 네가 해 봐라."

"……!"

"피 나는 데는 잡았으니까, 바이탈은 당분간 스테이블(stable, 안정적) 할 거다. 귤껍질보다 조금 더 어려운 거라 생각하고 해 봐."

폐를 꿰매 보라고?

상상도 못 한 제안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래도 됩니까?"

"그래, 난 아까 심장 꿰매느라 모아 둔 에너지를 다 썼다."

에너지라니?

갑자기 실없는 말씀을…….

나는 황당해하면서도 간호사에게 얼른 손을 내밀었다.

"니들홀더(needle holder) 주세요."

안 그래도 내 손으로 꿰매 보고 싶었다.

의사로서의 욕심이랄까?

아까부터 계속 지켜만 보고 있느라 손이 근질근질했다.

이럴 때 나에게 기회를 준 풍 선생님이 고마웠다.

"너무 쫄지 말고 해 봐. 어디로 들어가야 되고,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는 내가 다 찍어 줄게."

"감사합니다."

나는 풍 선생의 가이드에 따라 봉합을 시작했다.

‘환자 바이탈이 돌아왔다지만, 아직 방심하면 안 돼. 풍 선생님이 하던 그대로 착실히 꿰매자.’

스윽―

사악―

나는 섬세하게 손을 움직였다.

환자의 호흡에 맞춰서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다 반복하고 있는 폐는 낯선 질감이었다.

공기가 들어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물컹물컹하면서도 빳빳한 느낌이 들었다.

‘조직의 형태와 질감에 따라서, 니들(needle, 바늘)이 들어갈 때의 느낌이 모두 다르구나.’

처음 꿰매 보는 조직.

하지만 내 손은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귤껍질 특훈의 성과일까?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반듯한 실습 도구에 연습을 하던 때보다, 지금 내 손은 한층 더 유연해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풍 선생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달 내내 했던 수련이 효과가 있었구나.’

사기꾼? 허풍쟁이?

아니었다.

풍 선생은 역시 고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든든한 신뢰감을 느끼며 수처를 계속했다.

"손 좋네."

풍 선생은 짧게 내 수처를 평했다.

그는 마치 이제 막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아이의 뒤를 받치는 것처럼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것들이 많네.’

이 또한 처음이었다.

환자의 몸 안에 있는 장기를 봉합해 보는 경험.

그것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폐를!

적어도 레지던트 3년 차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 귀중한 경험을, 인턴인 내가 몇 단계나 뛰어넘어 해 보고 있는 것이다.

"환자 혈압 맥박, 모두 정상치까지 회복되었습니다."

마침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응급 구조사의 목소리도 한결 차분해졌다.

곧 환자의 몸 안에 흉관을 거치시켰고, 이제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이제 가슴을 닫아 볼까?"

우리가 봉합해야 하는 근육과 피부층은, 잘린 단면이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

아까는 <죽느냐 사느냐>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 이거 너무 사정없이 째신 거……."

"인마. 열 때는 이렇게 터프하게 열었어도, 닫을 때는 예쁘게 봉합해 주는 게 진정한 일류인 거야!"

환자의 바이탈이 정상치로 돌아오자 풍 선생의 농담 섞인 말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내가 꿰매는 거랑 똑같은 층으로 꿰매면 된다. 알았지?"

"예."

풍 선생은 우리가 꿰매야 할 3개의 층을 각각 포셉으로 잡아서 알려 주었다.

활배근(Latissimus dorsi).

전거근(Serratus anterior).

그리고 피부층 바로 아래의 근막(Fascia)까지.

단면이 말려 들어간 근육 하나하나를 찾아 꿰매 주어야 했다.

‘닫는 것도 쉽지 않구나.’

모두 의대생 시절 해부학을 통해 배운 근육들이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서 보니 뭐가 뭔지 막막하다.

일단 풍 선생을 힐끗힐끗 보면서 따라 하는 수밖에.

"나는 가슴에서부터 출발, 너는 등에서부터 출발.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만나자."

절개 부위의 양측 끝에서 봉합해서, 가운데에서 만나자는 뜻이었다.

스윽, 사악―

나는 손을 움직였다.

곁눈질로 풍 선생을 보며 열심히 따라 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이산가족 상봉은 내 쪽에서 훨씬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졌다.

내 속도가 풍 선생에게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빨리 꿰맬 수 있는 거야?

"자, 다 꿰맸고, 이제 마지막 피부만 남았다."

이 또한 새로운 난관이었다.

왜냐고?

환자의 몸을 가로지르고 있는 커다란 용 문신 때문이다.

지금 그 용은 허리가 뚝 잘려 있다.

자칫 잘못 꿰매면 그림이 괴상해질 것 같다.

"선생님. 이 문신…… 모양 잘 맞춰야겠죠?"

"당연하지."

풍 선생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놀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조심해라. 그 용 문신 잘못 맞추면 다음번에는 네가 환자한테 칼 맞을걸?"

덜덜덜.

무서운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신다.

"자, 이렇게 매듭이 안쪽으로 갈 수 있게 꿰매는 거야."

나는 풍 선생을 따라서 피부봉합을 시작했다.

스윽, 사악―

다행히 그동안의 수련 덕분일까.

용 문신은 거의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컷!"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어. 환자 혈압 유지는 잘되는 것 같고. 멘탈은 아직이지?"

"네. 동공반사는 정상인데, 아직 오베이(obey, 의사 지시에 따라 움직임)는 안 되네요."

"오케이, 기다려 보자고!"

풍 선생이 크게 외치며 가운을 묶은 리본을 푼다.

수술 종료!

다들 안도의 숨을 내뱉는다.

주위는 엉망진창이다.

피 묻은 거즈들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쌓여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환자는 분명 살아 있었다.

‘휴우.’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곧 간호사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거즈들을 치운다.

풍 선생이 피로 물든 장갑을 벗으며 묻는다.

"표정이 왜 그래? 설마 지친 거냐?"

"당연하죠."

"하이고. 인마! 내가 네 나이 때는 수술방에서 20시간 일하고도 축지법 쓰면서 날라댕겼어! 공중제비 돌면서 뛰어다녔다고."

또 허풍이다.

나는 픽 웃으며 가운과 장갑을 벗었다.

이제는 나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았다.

풍 선생은 껄껄 웃더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들어가서 쉬어라."

"아닙니다. 환자 제가 보고 있겠습니다."

"인마,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멘탈 확인되는 것만 보고 가겠습니다."

"그럴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

어제 24시간 근무를 하고, 얼마 자지도 못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바닥에라도 눕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 환자의 회복을 직접 내 눈으로 지켜보아야 속이 편해질 것 같았다.

"정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지켜보든가. 나는 밖에서 다른 환자 보고 있을 테니까, 문제 생기면 바로 나한테 튀어 오고."

"예."

나는 얼른 간호사들을 도와 뒤처리를 했다.

주변이 정리되고 난 후, 나는 소생실 구석에서 의자를 끌고 환자의 옆에 앉았다.

"……."

삑, 삑―

쉬이익, 쉬이익―

환자는 산소호흡기를 낀 채 조용히 잠든 상태다.

새삼 신기했다.

인간의 생명력이라는 게.

그 험한 수술을 견디고, 다시 심장이 이렇게 뛸 수 있다니.

조금 전에 내 손으로 직접 만져 느꼈던 심장박동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어디 보자. 심장리듬은 부정맥 없이 안정적인 것 같고…….’

나는 한 번 더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했다.

물론 아직도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감염.

추가 출혈.

수술 후 폐렴.

신경학적 합병증.

등등…….

산 넘어 산이다.

사람의 몸을 급하게 갈라서 심장과 폐를 꿰맸으니, 이후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꼭 회복하십시오.’

물론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

이름도, 나이도.

하지만 처음으로 심장을 만져 본 환자다.

내 손으로 직접 심장을 주물러 뛰게 만들었다.

그러니, 반드시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15분.

30분.

1시간…….

졸음이 쏟아진다.

나는 환자의 옆에서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흔들었다를 반복했다.

"뭐 해요?"

고개를 돌리자, 피식 웃는 연서가 보인다.

나는 슥 입가를 닦았다.

"잠깐 졸았어."

"들어가서 쉬어요."

"아니야. 환자 깨어나는 것만 보고 가려고."

"오늘 근무일도 아니면서…… 하긴, 누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었지."

그때 연서의 뒤로, 근욱이와 소담이가 들어온다.

근욱이도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응급실에서 손을 거들고 있던 모양이다.

"내가 말했지? 선한이가 가는 곳엔 언제나 환자가 자석에 붙는 것처럼 뒤따른다고!"

"인정."

나는 머쓱히 볼을 긁적였다.

이번만큼은 반박 불가다.

하필 마지막 날에 이런 대사건을 몰고 왔으니까.

게다가, 응급실 개흉?

나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는 다른 환자들도 많고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도 못했네."

"그게……."

나는 수산시장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연서와 소담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번에는 강남역에서 재난 영화 찍더니, 이번에는 곡담 시장에서 액션 영화를 찍으셨네?"

"액션 영화는 맞는데, 주인공은 근욱이었어."

"근욱 오빠요?"

"너희들도 봤어야 돼. 칼 든 남자를 번쩍 들어서 3미터쯤 던져 버리던데? 헐크인 줄 알았어."

"우와."

"대박."

연서와 소담이가 동시에 감탄한다.

그러자 근욱이가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야, 무슨 3미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4미터였냐?"

"내가 무슨 괴물이냐? 너 장풍 선생님이랑 어울리더니 허풍이 옮았나 보네."

나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한 달 동안 허풍이 좀 늘었다.

이게 다 풍 선생님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근욱이 너는 다친 곳 없어?"

"멀쩡하다, 인마."

"몸싸움하다가 칼에 스쳤을 수도 있잖아."

"네 걱정이나 해. 언제까지 여기에서 계속 자리 지킬 거야? 환자가 언제 깨어날 줄 알고?"

근욱이의 말에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수술 종료 후 1시간 반.

이제는 환자가 깨어날 수도 있는 시간인데…….

움찔―

그때, 환자의 손이 움직였다.

나는 퍼뜩 일어났다.

그리고 조심스레 환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환자분. 정신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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