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25화 (125/241)
  • #125 심장이 뛴다(9)

    쩌억―

    풍 선생은 왼쪽 가슴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지켜보는 사람들을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과감한 절개였다.

    여태까지 내가 본 모든 인시젼(incision, 절개) 중에서 제일 컸다.

    "보비!"

    찰그랑―

    풍 선생이 메스를 내려놓고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보비(Bovie).

    전기소작기.

    쉽게 말해 전기칼이다.

    전류로 지혈을 하면서 동시에 신체 조직을 깨끗하게 잘라 낼 수 있다.

    풍 선생은 보비를 들고 가슴을 가르기 시작했다.

    "……."

    치이익―

    살이 타는 냄새가 난다.

    슈우우―

    나는 정신없이 흘러내리는 피를 석션으로 흡수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풍 선생의 보비가 가는 길을 보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좋아. 잘하고 있어."

    풍 선생은 짧게 내 어시스트를 평했다.

    그러고는 가위를 들고 흉부 근육을 자르기 시작한다.

    석둑, 석둑―

    적갈색의 근육이 갈라지며 시뻘건 피가 흐른다.

    그렇게 환자의 몸을 거칠게 가르며, 풍 선생이 나지막이 말했다.

    "10%다."

    "?"

    "응급실에서 외상 때문에 심낭압전을 일으킨 환자가 살아서 나갈 확률."

    그의 말이 이어졌다.

    "10%에 도전해 보자. 네 말대로, 이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계속 났을 거야. 지금 우리가 살리지 못하면 이 환자는 죽는다."

    "……예."

    지이익―

    풍 선생은 보비로 흉막을 열었다.

    곧 좁은 갈비뼈 사이로 가슴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핏덩이로 덮여 있기에, 아직 뭐가 뭔지 분간이 잘되지 않았다.

    풍 선생이 다음 스텝을 외쳤다.

    "피노키토!"

    피노키토 리트랙터(Finochietto retractor).

    갈비뼈 사이를 벌릴 때 사용하는 기구다.

    생긴 것만 봐서는 공업용 기구처럼 생겼다.

    풍 선생은 피토키토를 갈비뼈 사이에 걸고 벌렸다.

    그동안 환자의 혈압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혈압 60입니다!"

    "잠깐 기다려 봐."

    쑤욱―

    풍 선생은 갈비뼈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심장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풍 선생의 쥐어짜는 손놀림에 맞추어, 모니터에 측정되는 혈압이 100까지 기록된다.

    ‘이게 오픈 마사지(open cardiac massage)구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심장을 직접 손으로 쥐어짜는 것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그때, 풍 선생이 소리쳤다.

    "신선한, 뭐 해?! 피노키토 안 벌리고!"

    "예!"

    나는 정신을 차렸다.

    한 손으로 피노키토의 손잡이를 시계 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곧, 금속 바 두 개가 위아래로 벌어지며 갈비뼈 사이를 넓힌다.

    뚝, 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움찔하고 놀랐다.

    이래도 괜찮은가?

    "괜찮아, 립(rib, 갈비뼈) 몇 개 부러지는 게 대수냐. 죽고 살고가 걸려 있는데!"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손잡이를 두 바퀴 정도 돌려, 공간을 더 벌려 버린다.

    우두둑―

    나는 내 손에 전해지는 힘에 놀랐다.

    ‘……이 사람 악력이 이렇게 셌나?’

    풍 선생도 필사적이다.

    마치 본인이 죽기 직전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악―

    곧 환자의 몸이 열렸다.

    잠시 후, 그가 흉강 안을 살펴보더니 혀를 찼다.

    "망할…… 칼질 한 방에 폐랑 심장을 세트로 조져 놨어."

    풍 선생의 말대로다.

    상황은 심각하다.

    폐 좌엽이 칼에 찔려 크게 찢어져 있었다.

    "선생님, 폐가……."

    "일단 폐는 나중에 보자. 심장이 먼저니까."

    "예."

    풍 선생은 일단 폐의 찢어진 부위에 거즈를 몇 개 덮어놓았다.

    그의 손이 심장을 잠시 떠나자, 혈압은 여지없이 다시 60대로 떨어졌다.

    스윽―

    풍 선생은 폐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출혈이 굳어 있는 헤마토마(hematoma, 혈종)가 관찰되었다.

    500cc 우유팩 정도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일단 이것부터 걷어 내자."

    풍 선생은 조심스레 혈종을 걷어 내었다.

    꾸덕지게 굳은 시뻘건 덩어리들이 환자의 몸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때.

    심장이 보였다.

    ‘……이게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이구나.’

    심장이 뛴다.

    내 눈앞에서.

    심장은 얇은 분홍색 심낭막으로 덮여 있었고, 그 심낭막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다.

    주먹 하나보다는 크고, 두 개보다는 작다.

    원래 심장이 뛰는 속도는 분당 60에서 100회.

    그런데 지금은 더 빠르다.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현저히 약해져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출혈이야!’

    왈칵, 왈칵―

    찢어진 심장 근육.

    그 근육이 수축할 때마다 피를 내뿜고 있다.

    일종의 아이러니랄까.

    살기 위해 뛰고 있지만, 그럴수록 온몸의 피가 바닥나고 있다.

    "보여? 열상이 두 개야."

    풍 선생의 말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두 개?

    이상하다.

    분명 심장까지 도달한 외상은 하나뿐이었을 텐데…….

    ‘잠깐. 충분히 가능하지.’

    곧 내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조금 전, 사건이 발생한 현장.

    환자의 상처는 격렬한 몸싸움과 함께 일어났다.

    <죽어, 이 새끼야!>

    <어엇……!>

    푸욱―

    칼날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환자는 몸부림을 치며 저항한다.

    그 와중에 칼날은 환자의 몸 안을 사정없이 휘젓는다.

    그러고는, 심장에 두 개의 날카로운 상처를 내고 빠져나간다.

    "선생님, 그러면 상처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뜻……."

    "일단 심낭막을 열어 보자."

    속단은 금물.

    아직 무엇도 확실치 않다.

    자세한 건, 심장을 감싸고 있는 심낭막을 열어 봐야 안다.

    "신선한. 포셉(forcep)으로 심낭 한쪽 잡아!"

    "예."

    나는 포셉을 쥐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얇은 심낭막을 들어 올렸다.

    서걱―

    풍 선생이 심낭막을 자른다.

    곧 베일에 싸여 있던 심장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나는 피를 석션으로 흡수하면서 시야를 계속 밝혔다.

    그때, 풍 선생의 눈이 커졌다.

    "다행히 코로나리(coronary, 관상동맥)는 안 다쳤어."

    "……!"

    불행 중 다행이랄까?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을 쉽게 설명하자면…….

    Q. 우리 몸은 누가 먹여 살리지?

    = A. 심장

    Q. 그러면 심장은 누가 먹여 살릴까?

    = A. 관상동맥

    심장은 근육으로 구성된 장기다. 그 근육도 일하려면 당연히 산소의 공급이 필요한 법.

    그렇기에 관상동맥이 상하면 큰일이 난다.

    지금은 다행히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잘 꿰매고 나면 살 수도 있겠어."

    "정말입니까?"

    "너도 눈이 있으니까 보면 알잖아."

    "……."

    "왜. 막상 눈으로 보니 뭐가 뭔 줄 하나도 모르겠어?"

    "……예."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교과서와 실전은 달랐다.

    필드는 온통 피범벅.

    그리고 심장은 예상외로 노란색 지방으로 둘러싸여 있어, 관상동맥이 어디인지 분간도 안 간다.

    게다가 환자가 좌측으로 누워 있는 상황.

    평소에 보던 해부학책과는 그림이 달랐다.

    "일단 심장 상처 지혈하고 있어 봐. 빨리 꿰매기만 하면 이 환자 살릴 수 있다!"

    풍 선생이 수처(suture, 봉합)를 준비하며 말한다.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내가 알아서 그의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나는 거즈로 심장의 출혈 부위를 막고 손가락을 얹어 지혈했다.

    그러자,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툭 둑

    툭 둑

    툭 둑…….

    처음 만져 본 심장은, 미끈하고 뜨거웠다.

    심방 한 번.

    심실 한 번.

    규칙적인 리듬.

    그리고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의 뜨거움도 느껴진다.

    그런데 그때.

    변화가 생겼다.

    툭 둑

    부르르―

    심장이 멈췄다.

    나는 다급히 외쳤다.

    "선생님, 어레스트입니다!"

    삐삐삐―

    내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기계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세 번째 어레스트.

    맥박 그래프가 힘없이 바닥으로 누워 버린다.

    풍 선생이 필드 바깥을 향해 크게 외친다.

    "RBC(적혈구) 추가 주문해서 수혈 진행해!"

    간호사는 황급히 혈액 관리실에 전화를 한다.

    "다시 에피(epi, 강심제) 한 번 더 줘! 볼륨 들어가는 거 끊기지 않게 계속 주고!"

    "RBC 벌써 8개째예요!"

    "병원에 있는 피를 다 가지고 와서라도 계속 밀어 넣어. 시간만 벌어 주면 살릴 수 있어, 이 환자!"

    덥석!

    풍 선생은 한 손으로 심장을 움켜쥔다.

    그리고 부드럽게 마사지하면서 간호사에게 프롤린(prolene) 봉합사를 주문한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야, 신선한!"

    "예!"

    "잘 들어라. 아까 심장에 상처 봤지?"

    상처는 총 두 개다.

    우심실에 3cm.

    좌심실에 4cm.

    그의 말이 빠르게 이어진다.

    "하나에 15초만 나한테 시간을 주면 꿰맬 수 있다. 그동안 네가 손으로 심장을 쥐어짜, 내 수처랑 호흡을 맞춰서!"

    심장 마사지!

    지금 그걸 나보고 하라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손으로 하는 CPR이라고 생각하면서 부드럽게 쥐어짜면 돼!"

    "예, 하겠습니다!"

    나는 배턴터치를 하듯 심장을 이어받았다.

    먼저, 원추형으로 생긴 심장의 좌심실 쪽을 손으로 감쌌다.

    그리고 원추의 끝에서부터 밑바닥으로 향하는 느낌으로 부드럽게 쥐어짜기 시작했다.

    ‘……심장을 손에 잡으면 이런 느낌이구나.’

    성인 남성의 심장의 무게는 약 300그램.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두꺼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생각보다 단단했다.

    꿀럭, 꿀럭…….

    나는 심장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심장은 아까부터 자력으로 뛰기를 포기했다.

    그래도 계속 주물러야 한다.

    안 그러면 환자가 죽는다.

    "좋아. 잘하고 있어."

    그동안 풍 선생은 수처를 시작한다.

    슥, 삭―

    풍 선생의 니들홀더가 환자의 심장 위에서 빠르게 움직인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심장은 내가 주무르고 있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는 상태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정확히 수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처의 모양은 불규칙한 성상(stellate)이어서 결코 일자로 편하게 뻗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풍 선생의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대단하다…….’

    다시 한번 느꼈다.

    풍 선생의 수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건 마치, 흔들리는 풍랑 위에서 균형을 잡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서퍼를 보는 것 같았다.

    "이거 잡아."

    "예."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른 한 손으로 실을 잡고 풍 선생의 수처를 도왔다.

    그리고 잠시 후.

    "다 됐다. 컷!"

    탁!

    커팅을 마지막으로 모든 수처가 끝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1분?

    아니다. 1분도 채 안 되었을 것 같다.

    그만큼 풍 선생의 수처는 빠르고 과감했다.

    "혈압 잘 나오고 있어?"

    "시스톨릭(Systolic pressure, 수축기 혈압) 90 나옵니다."

    "혈액은 계속 들어가고 있고?"

    "아까부터 계속 넣고 있긴 한데……."

    상처는 꿰맸다.

    피도 넣고 있다.

    그런데 심장이 뛰지 않는다.

    마스크 위로 비친 풍 선생의 눈빛이 처음으로 초조해졌다.

    ‘안 뛴다.’

    너무 늦어 버린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심장 마사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제발.

    제발 돌아와라.

    너만 다시 뛰어 주면 된다!

    그때.

    내 손에서 감각이 느껴졌다.

    툭,

    툭 둑

    툭 둑…….

    "……선생님, 다시 심장박동 돌아옵니다!"

    그것은 기적 같은 감각이었다.

    비록 그 힘은 약했지만, 심장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계속 뛰고 싶다고.

    뛸 수 있다고.

    살고 싶다고.

    심장은, 그렇게 말하며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