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24화 (124/241)

#124 심장이 뛴다(8)

맙소사.

나는 귀를 의심했다.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지금 이 자리에서 개흉이라니…….’

개흉(open thoracotomy).

가슴을 칼로 찢어서 연다는 것이다.

이런 의료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은 세상에서 단 한 곳뿐이다.

바로 <흉부외과 수술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평생 구경조차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개흉 수술이다.

‘그런데 그걸 응급실에서 해 버린다고?’

허풍인가?

역시 그렇겠지.

평소처럼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중일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응급실에 모여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서, 선생님. 여기서 가슴을 연다구요?"

간호사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농담이겠지?

어서 헛소리였다고 말해!

그렇게 바라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풍 선생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평소에 이럴 때를 대비해서 EDT 세팅 연습도 했잖습니까."

그러자 중년 간호사들도 사색이 된다.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곡담 응급실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어도, 환자의 가슴을 열어 본 적은 없었던 모양이다.

"드랩(drape, 포) 펼 준비하고, 쏘라코토미(thoracotomy, 개흉) 세트 가져와요! 석션이랑 보비 준비하고!"

"아, 알았어요!"

타다다―

몇 있지도 않은 응급 구조사와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여러 준비물들이 환자 옆으로 옮겨진다.

지금 여기, 응급실의 모든 의료진들의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다들 정신없이 각자의 준비를 하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다.

"풍 선생님, 괜찮겠어요?"

"진짜로 하시려구요?"

"솔직히 흉부 수술 해 보신 지도 오래됐잖아요!"

"만약 이러다 큰 문제라도 생기면 우리 응급실도 옆 병원처럼 망한다구욧!"

"아, 걱정 말고 준비들이나 똑바로 하세요!"

언성이 높아진다.

그 덕분에 응급실은 한층 더 시장 바닥처럼 정신없는 상태가 된다.

이 와중에 환자의 혈압은 70을 넘지 못한다.

다시 강심제(epinephrine)가 투입된다.

‘가만, 그런데…….’

방금 간호사들에게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풍 선생이 흉부수술을 해 본 지 오래됐다고?

‘그 말은 즉, 원래는 풍 선생님이 TS 써전(TS surgeon, 흉부외과의)였다는 뜻인가?’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거지?

아니 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 TS 써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만약 그렇다면…… 이 환자를 살릴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생겼다는 뜻이야!’

현재 상황은 절망적이다.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출혈이 계속되고 있으니까.

그런데, 개흉을 하면 방법이 생긴다.

몸 바깥에서만 깔짝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심장으로 돌격할 수 있다.

즉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내가 나서며 물었다.

그러자 풍 선생이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내가 시키는 것만 잘 따라오면 되니까 다들 걱정하지 마! 수백 번이나 해 본 EDT다."

수백 번?

저건 확실히 거짓말이다.

하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이 사람을 믿고 따라가면 환자를 살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좋아, 믿어 보자!’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건 기회다.

환자에게도, 나에게도.

"거기, 나머지 인턴 셋!"

풍 선생은 나를 제외한 인턴 동기들인 소담, 근욱, 연서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너희들은 밖에서 다른 환자들 맡아라. 이 환자만이 응급 환자가 아니니까."

"예!"

"너희가 나머지 환자들을 책임져줘야 맘 놓고 이 환자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풍 선생은 문득 생각난 듯 빠르게 덧붙였다.

"만약 이 환자 가족들이 찾아오면, 이쪽 근처로는 얼씬도 못 하게 해라."

꿀꺽.

세 명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만약 가족들이 보게 되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풍 선생의 말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넌 나랑 환자 포지션 잡고 소독한다."

"예!"

나는 풍 선생의 말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였다.

빠르게 환자의 자세를 잡고, 소독이 시작되었다.

콸콸콸―

풍 선생은 포비돈(povidone, 외상용 소독약) 병을 따더니 환자의 가슴에 통째로 부어 버린다.

곧 환자의 왼쪽 가슴이 갈색으로 물든다.

이렇게 터프한 소독은 처음 본다.

그만큼 시간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곧 풍 선생의 입이 빠르게 열렸다.

"신선한, 제1조수로 내 맞은편으로 들어와. 제2조수는 박 응구사가 들어오고."

"?!"

나는 깜짝 놀랐다.

제1조수?

게다가 처음으로 본명으로 부르기까지.

잠시 놀라 멈칫하고 있는 나에게 풍 선생은 수술복을 입으며 다시 한번 소리 지른다.

"뭐 해, 환자 죽는 거 멀뚱멀뚱 지켜볼래? 얼른 가우닝(gowning, 가운착용) 하고 들어와!"

"……예, 알겠습니다!"

나는 꿈에서 깬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신 차리자!

지금 얼타면 안 돼!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환자는 강심제(epinephrine) 투여에 대한 반응이 떨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수액과 약물 투여만으로는 혈압 유지가 힘든 상황.

그러니 한시도 망설일 수 없었다.

‘이렇게 갑자기 몇 단계를 점프하게 되다니…….’

제1조수(surgical first assistant).

내가 몇 년 뒤에나 해 볼 수 있는 역할이었다.

수술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여야 비로소 설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인턴인 내가?

이건 마치…….

야구장에서 벤치 청소를 하던 놈이, 갑자기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다.

그것도 9회 말, 절체절명의 상황에 말이다.

‘하지만 풍 선생님의 판단이 맞아. 지금은 내가 이 역할을 해내는 수밖에 없어!’

두근, 두근.

가슴이 세차게 뛴다.

걸음마를 익히자마자 낭떠러지에 떠밀리게 된 아기 사자가 이런 기분일까 싶다.

그때 간호사가 내게 가운을 건네준다.

"선생님, 여기 가운이요!"

"예."

스륵―

나는 푸른빛의 가운에 몸을 집어넣었다.

곧, 간호사가 등 뒤에서 내 가운의 매듭을 지어 준다.

그사이, 나는 수술용 장갑을 펼쳐 손에 빠르게 착용했다.

이제 나의 상반신은 에이셉틱(aseptic, 무균)한 상태가 되었다.

필드에서 수술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집중하자, 신선한!’

지금부터 내 손은 수술용 손이다.

평소처럼 아무 곳이나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가령, 무의식적으로 내 얼굴을 만져도 컨타미네이션(contamination, 오염)이 되므로 바로 아웃이다.

당연히 허리 밑으로 손을 내려도 안 된다.

등 뒤도 안 된다.

수술에 참가하는 의사들이 양손을 항상 상반신 앞쪽으로 곧게 들고 있는 이유다.

‘내 위치는…….’

타닥―

나는 빠르게 풍 선생님의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집도의 | 환 | 제1조수

간호사 | 자 | 제2조수

보통 이렇게 배치가 이루어진다.

물론 그때그때 상황마다 달라지지만, 기본은 이렇다.

내가 맞은편에 자리를 잡자 풍 선생이 외쳤다.

"다들 지금부터 집중해!"

짜악, 짜악!

풍 선생은 손뼉을 쳤다.

예의 ‘기 모으기’.

그런데 이번에는 장난기가 쏙 빠진 버전이다.

고조되는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마스크 아래 콧잔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메스!"

풍 선생이 간호사로부터 메스(mes, 수술용 칼)를 건네받고는 나에게 물었다.

"신선한. 수술방 경험 있어?"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달, 신경외과에서 수술방 인턴을 했었다.

물론 그때는 간단한 업무만을 수행했었다.

지금처럼 중대한 임무를 맡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라는 것만 해라. 알겠냐?"

"알겠습니다."

평소의 풍 선생님과는 말투가 다르다.

진지함을 넘어선 살기가 느껴진다.

<환자가 죽는 것은 내가 죽는 것과 같다, 방해하면 살려 두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잠깐. 그런데…….’

난 수술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수술복 가우닝을 한 풍 선생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기억났다! 그동안 내가 이 사람을 어디서 봤나 했더니…….’

10여 년 전.

백의신 다큐멘터리.

내가 어릴 적에 몇 번이나 닳도록 돌려 보았던 영상.

그 속에서 분명 풍 선생을 본 적이 있었다.

닥터 장풍.

그는 분명 백의신 수술팀에 속해 있던 흉부외과 의사였다.

물론 그때는 장발도 아니었고 수염도 기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마스크와 수술모자로 얼굴을 덮고 나니 비로소 기억이 난다.

‘백의신 밑에서 일했던 사람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환자에게는 천운이나 다름없다.

풍 선생이 백의신과 함께 일했다는 것?

그 말은 곧―

그가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의 실력자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한 흉부외과 의사가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닌 백의신의 제자…… 그렇다면 이 수술을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

삐삐삐―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환자의 심장이 멈춘다.

풍 선생의 메스가 환자의 가슴을 막 가르려던 그때였다.

"다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입니다!"

"리듬 V. fib으로 체크됩니다!"

"제세동 패드 붙여 놨어?!"

풍 선생의 말에, 간호사가 황급히 드랩 아래로 들어가 환자의 몸에 패드를 붙인다.

하나는 우측 쇄골 아래.

하나는 좌측 등 뒤.

"200J 차지, 다들 떨어져!"

삐이이이―

덜커덩!

환자의 몸에 전류가 흐르며 몸이 거칠게 튀어 오른다.

곧, 모니터에 환자의 심장 리듬이 다시 정상 파형으로 보인다.

일단은 그렇게 심장을 살려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벌써 어레스트가 두 번째.

이제부터는 조금도 지체할 여유는 없었다.

"에피네프린(epinephrine, 강심제) 주고! 방금 도착한 RBC(적혈구) 가져와서 인퓨전 펌프(infusion pump, 주입 펌프)로 밀어 넣어! 결국 볼륨 문제야!"

곧, 풍 선생의 메스를 든 손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야! 한 손에 석션 들고, 한 손으로 포셉 잡고 나랑 반대로 땡겨! 너 말이야 신선한!"

풍 선생의 말이 한층 더 빨라졌다.

"김 간호사, 내 머리에 헤드라이트 씌워 주고!"

전쟁이 시작된다.

수술복을 입게 된 순간부터, 소독되어 있는 환자의 가슴은 전쟁터다.

이를 외과의사들은 <필드(field)>라고 부른다.

외부와 격리된 공간.

그 공간에서, 우리는 풍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세차고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우욱―

풍 선생이 메스를 그었다.

환자의 왼쪽 가슴을 30cm쯤 되게 갈라 버린다.

거침없는 손놀림!

사람의 몸을 한두 번 갈라 본 솜씨가 아니었다.

곧 피가 흘러나와 베드를 적시고, 절개 부위 사이로 선홍색 근육이 크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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