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23화 (123/241)
  • #123 심장이 뛴다(7)

    김현철. 37세.

    특징 : 용 문신.

    사실 그는 조폭이 아니었다.

    ‘요즘 시대에 조직폭력배가 어딨겠어?’

    청룡파?

    다 거짓말이다.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문신을 몇 개 몸에 새겼을 뿐이다.

    물론 가끔 조폭인 척 허세를 부렸던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진짜 조폭 싸움처럼 칼을 맞게 될 줄이야…… 젠장. 재수 옴 붙었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억울하다.

    이럴 땐 지나간 인생이 주마등처럼 보인다고 하던데…….

    실제로 겪어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여섯 살짜리 딸과 몇 분 전에 나누었던 통화가 귓가에 아른거릴 뿐이었다.

    <아빠, 뭐 해?>

    <돈 버는 중이지.>

    <집에 언제 와?>

    <왜?>

    <나 오늘 스케치북에 아빠 그렸다!>

    <정말?>

    <응. 집에 오면 보여 줄게!>

    <우리 딸 많이 컸네, 벌써 아빠 얼굴도 그릴 줄 알고.>

    <아빠는 대머리라서 그리기 쉬웠어!>

    <아빠 대머리 아닌데.>

    <그럼 뭔데?>

    <……문어 머리.>

    <꺄하하하! 아빠는 문어 머리래요!>

    ‘우리 딸이 그린 그림 보러 가야 되는데…….’

    그는 피를 흘리며 생각했다.

    만약 내가 죽으면 우리 딸은 누가 먹여 살리지?

    옷은 누가 사 주고, 학교는 누가 보내지?

    그런 생각을 하자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아니, 실제로 찢어졌던가?

    모르겠다, 젠장.

    아무튼 아프다.

    ‘길에서 시비 붙었다고 함부로 주먹질하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눈꺼풀을 덮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꿈결처럼 아득하게,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소생실로!"

    드르르―

    병원 천장이 움직인다.

    입 안에는 무언가 두꺼운 것이 목까지 들어와 있다.

    그는 베드에 누운 채, 겨우 떠진 작은 눈꺼풀 사이로 눈앞의 장면들을 보았다.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분주히 달려가는 의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리 옮기고 나면 바로 라인 더 잡아!"

    "예!"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곧 그의 마음속에 한 줄기의 희망이 비추어졌다.

    ‘살고 싶다!’

    살아서…….

    한 번 더, 딸을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야가 흐려졌다.

    조금씩 사라져 가는 의식으로 그는 생각했다.

    ‘선생님들, 살려 주십쇼.’

    제발요.

    착하게 살겠습니다.

    조폭 흉내 내지 않겠습니다.

    안전운전 하겠습니다.

    길에서 시비가 붙어도 절대 사람을 때리지 않겠습니다.

    제발, 저에게 남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 * *

    소생실.

    우리는 환자를 끌고 도착하자마자 스트레처 카를 고정하였다.

    환자의 몸이 베드로 옮겨지자, 곧 풍 선생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바이탈 체크!"

    "비피(BP, 혈압) 60에 40, 맥박수는 92회입니다!"

    환자 옆에 달라붙은 응급 구조사가 소리쳤다.

    "일단 옷부터 벗길게요!"

    찌익, 찌익―

    간호사들이 달라붙어 옷을 가위로 자른다.

    곧 문신이 새겨진 환자의 몸 전체가 노출된다.

    기도삽관 된 튜브에는 인공호흡기가 연결되고, 양팔의 혈관에 수액 라인이 잡힌다.

    "라인 잡았어?"

    "예!"

    "잡혀 있는 라인 전부 풀 드립!"

    풍 선생이 외친다.

    풀 드립(Full drip).

    수액 라인을 모두 개방하라는 뜻이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액을 들이붓기 위함이다.

    곧 팔과 다리의 라인을 통해서 구급차에서보다 2배 이상의 속도로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럴 땐 일단 볼륨부터 때려 부어야 돼."

    볼륨, 즉 몸 안의 수분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출혈로 인한 하이포볼레믹 샥 (Hypovolemic shock, 저혈량성 쇼크)일 거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안 그러면 환자 죽는다!"

    "예!"

    "바로 노르에피(norepinephrine, 강심제) 달고!"

    <저혈량성 쇼크>.

    응급실 사망의 대표적인 원인이다.

    우리 몸에 피가 부족해지면 여러 가지 큰 문제가 일어난다.

    그러니, 일단은 이렇게 수액으로라도 혈류량을 보충해야 하는 것이다.

    "꼬맹이, 펄스(pulse, 맥박) 조금이라도 있을 때 에이라인(A―line, 동맥관) 잡아 놔!"

    "네!"

    소담이가 부리나케 움직인다.

    만약 심장이 멈춰 버리면 맥박을 찾을 수도 없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잠시 후.

    소담이가 환자의 손목에서 얕은 맥박을 느끼고 바늘을 찌른다.

    지난 4월과는 달리, 소담이도 손이 능숙해졌다.

    금세 카테터에 선홍색 피가 차오르고 동맥관이 연결된다.

    "동맥혈 검사하고 오겠습니다!"

    타닥―

    소담이는 채혈된 실린지를 흔들면서 소생실을 나섰다.

    그동안 동맥관을 통해 혈압이 실시간으로 측정된다.

    74/45.

    수액이 들어가면서 수축기 혈압은 70을 겨우 넘어서고 있다.

    정상 혈압인 120/80에 비해 여전히 낮다.

    "비켜 봐, 씨라인(C―line, 중심정맥관) 넣게 허벅지 좀 닦자."

    풍 선생은 포비돈(povidone, 소독약)을 통째로 허벅지에 부어 버린다.

    콸콸―

    양쪽 허벅지는 갈색으로 물들고, 풍 선생은 순식간에 중심정맥관 삽입을 끝낸다.

    그리고 인퓨전 펌프(infusion pump)를 통해 수액을 더 빠른 속도로 짜주기 시작한다.

    그때, 소담이가 검사지를 들고 돌아온다.

    "선생님, 결과 나왔습니다."

    "헤모글로빈(Hb, 혈색소) 수치 몇이야?"

    "7.8입니다!"

    젠장.

    낭패다.

    혈색소 수치가 10 이하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출혈량이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환자의 가슴 안에는 더 많은 출혈이 있다는 얘기다.

    풍 선생의 목소리가 바빠졌다.

    "빨리 피 가지고 오라 그래요!"

    "좀 아까 전화했는데……."

    "한 번 더 해요!"

    "네!"

    풍 선생의 말에 간호사가 혈액은행에 전화를 한다.

    곡담수산시장보다 더 정신없는 현장.

    지금 응급실은 아수라장이다.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연이은 엑스레이 촬영에서도 확인되었다.

    "헤모쏘락스(hemo―thorax)야."

    풍 선생이 엑스레이를 보며 혀를 찼다.

    헤모쏘락스, 혈흉증.

    한마디로 흉강 안에 피가 고여 있다는 뜻이다.

    어찌나 심한지, 엑스레이에서 좌측 흉부가 완전히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일단 몸 안에 고인 피부터 뽑자!"

    "예!"

    나는 옆에서 그를 도왔다.

    풍 선생은 지체 없이 직접 흉관삽관을 시행한다.

    빠르고 능숙하게.

    주르륵―

    가슴을 찢고 흉관을 넣자마자 붉은 피가 밀려 나온다.

    인공호흡기의 호흡에 맞추어 쭉쭉 밀려 나오던 피는 금세 체스트 바틀(chest bottle)을 가득 채운다.

    "다음 바틀로 바꾸겠습니다."

    새로 바꾼 바틀도 금세 절반 이상 피로 가득 찬다.

    흉강 안에 2리터에 가까운 피가 이미 고여 있었다는 뜻이다.

    응급 구조사가 바틀을 교체하는 동안, 풍 선생은 초음파 기계로 심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젠장, 헤마토마(hematoma, 혈종)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구만. 심장까지 칼이 들어오진 않았어야 할 텐데. 풀모나리 아터리(pulmonary artery, 폐동맥)가 터진 건 아니겠지?"

    풍 선생은 혀를 차며 이런저런 가능성에 대해서 내뱉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혈압은 80 언저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탐폰(tampon, 심장압전) 소견도 보이는 것 같고, 심장 뛰는 것에는 문제없는지 보자."

    그때, 초음파를 들여다보던 풍 선생의 눈이 갑자기 커진다.

    "이거 뭐야, 벤트리클(ventricle, 심실) 쪽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심실?

    그렇다는 것은…….

    심장에서 직통으로 피가 빠져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풍 선생의 이야기에 응급실에는 더욱 긴장이 감돌았다.

    주륵, 주륵―

    흉관을 통해서는 계속해서 피가 쭉쭉 밀려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출혈량을 따라가기 위해, 양쪽 팔에 있는 말초혈관과 중심정맥관을 통해 혈액과 수액이 밀려 들어가고 있다.

    "선생님, 이거…… 출혈량이 너무 많은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응급 구조사가 당혹스러운 듯 말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랄까.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물 붓기를 멈추는 순간 환자는 사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곧 풍 선생이 말한다.

    "이 환자는 오픈 하트(Open Heart, 개심술) 할 수 있는 병원으로 보내야 해. 그게 환자를 위해서도 최선이다."

    "그 말씀은……?"

    "전원 준비해!"

    전원.

    즉, 다른 병원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풍 선생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대로 보내도 될까?

    여기서 더 큰 병원까지, 아무리 빨라도 30분은 걸린다.

    "선생님, 그때까지 환자가 버틸 수 있을까요?"

    나는 풍 선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풍 선생이 나를 노려본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때.

    삐삐삐―

    마침내 환자의 심장이 멈춰 버린다.

    첫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가 발생한 것이다.

    "에이라인 누웠습니다. 심장 안 뛰는 것 같아요, 혈압 체크 안 됩니다!"

    응급 구조사가 외친다.

    혈압은 0.

    심전도 리듬은 지저분하게 움직인다.

    풍 선생이 즉시 외쳤다.

    "브이 핍(V.fib, 심실세동)이야. 뭐 해?! 일단 CPR 시작해! 제세동기 가져오고! 에피네프린(epinephrine, 강심제)도!"

    "제가 할게요!"

    풍 선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연서가 환자의 몸 위에 올라가 있었다.

    퍽, 퍽, 퍽―

    가슴 압박을 시작한다.

    일단 어떻게든 심장을 눌러서 각 장기로 피를 공급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렇게 1분 경과.

    연서의 머리카락이 땀으로 헝클어질 무렵.

    풍 선생은 제세동기를 들고 외친다.

    "200J 차지! 다들 비켜!"

    꽝!

    제세동이 이루어진다.

    심장은 다시 정상 리듬으로 조금씩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혈압은 70을 겨우 터치한다.

    언제 다시 어레스트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아무리 볼륨을 채워 줘도, 가슴 안에서 나는 출혈량을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심장은 결국 혈압 저하로 부정맥을 일으키며, 제대로 뛰지 못하고 멈춰 버린 것이다.

    곧 풍 선생의 입이 열렸다.

    "할 수 없다. 지금 다른 병원으로 출발해 봤자 이 환자는 이송도 못 버텨."

    그 말은 즉…….

    포기하자는 뜻일까?

    실제로 더 이상 방법이 없어 보인다.

    "심장 손상과 탐폰을 동반한 자상은 모탈리티(mortality, 사망률) 90프로다."

    풍 선생의 말이 이어졌다.

    모탈리티 90%.

    즉, 환자는 90%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는 미래를 바꾸지 못한 건가?’

    나는 손을 늘어뜨렸다.

    실패라고?

    이렇게 허무하게?

    그런데, 이어지는 풍 선생의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10%에 걸어 보자. 다들 EDT 준비해."

    "EDT요?"

    소생실에 모여 있던 모두의 눈이 커졌다.

    EDT.

    의 약자.

    응급실에서 개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풍 선생의 말은 지금 이곳을 수술방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설마…… 지금 여기에서 환자의 가슴을 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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