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22화 (122/241)
  • #122 심장이 뛴다(6)

    그런 말이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고작 몇 초의 시간 때문에 사람의 운명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젠장, 늦었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발 늦었다.

    중간에 어떻게든 막긴 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참사가 일어난 후였다.

    ‘만약 근욱이와 내가 10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그랬다면 칼부림을 완전히 막을 수 있었을까?’

    뒤늦게 그런 생각을 해 봤자 소용없다.

    이미 곡담시장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다.

    "선한아, 이 사람은 내가 제압하고 있을 테니까 칼에 찔린 사람 상태 좀 봐줘!"

    찰그랑―

    근욱이는 택시 아저씨를 몸으로 누른 채 칼을 빼앗아 옆으로 던져 버린다.

    역시 이럴 때는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스럽다.

    나는 바로 옆에 있던 사람에게 외쳤다.

    "거기 사장님, 경찰이랑 구급차 좀 불러 주세요! 그리고 지혈할 수건도 가져다주세요!"

    "어, 어!"

    타닥―

    나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상처를 살폈다.

    환자는 상반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 고통스레 악을 쓰고 있었다.

    ‘좋지 않아.’

    왼쪽 가슴, 젖꼭지 아래.

    상처가 두 군데다.

    두 군데 모두, 칼날의 길이만큼 3 에서 4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칼날이 파고든 곳은 5번, 6번 갈비뼈 위치…….’

    다행히 상처 하나는 근육 깊이에서 멈췄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의 상처는 흉벽을 관통한 것 같다.

    꿀럭, 꿀럭―

    두 군데 모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흉벽을 관통한 곳에서는 더 많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살릴 수 있을까?’

    아직 알 수 없다.

    원래 이 환자는 사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꿈속에서 보았던 상태보다는 조금 낫다.

    무려 열 차례가 넘게 찔리는 대신, 지금은 두 차례에서 어떻게든 막아 냈으니까.

    ‘일단 최선을 다해 보자!’

    꽈악―

    나는 상처를 지혈했다.

    다행히 환자의 맥박은 잘 뛰고 있었다.

    왜앵―

    구급차가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10분 전에 칼에 찔린 자상 환자인데, 깊이가 이미 체스트월(chest wall, 흉벽)을 뚫고 들어가 보입니다. 가슴 안에 피가 얼마나 고여 있을지 몰라요."

    "어…… 혹시 의사십니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고통 때문에 소리를 지르던 환자도 목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의식이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 보인다.

    ‘꿈에서 본 뉴스에서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했어. 지금도 출혈 때문에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거야!’

    그동안 경찰도 도착한다.

    범인을 인계한 뒤, 근욱이가 달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한아, 혹시 이 사람 이미 늦은 거……."

    "아직 아냐."

    나는 환자의 상처를 틀어막은 채 고개를 저었다.

    목과 팔목에서 느껴지는 맥박을 통해서 아직 심장은 뛰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그 맥박은 약하다.

    환자는 지금 생과 사의 경계선에 걸쳐져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자."

    "그래!"

    우리는 지혈을 하면서 환자를 구급차로 옮겼다.

    그리고 좁은 구급차 안에 몸을 구겨 넣었다.

    구급차에 올라타자마자 측정한 혈압은 80/60.

    이미 출혈로 인해서 혈압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구급대원이 외친다.

    "곡담제일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예!"

    드르륵―

    구급차의 문이 닫힌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은 곡담제일병원.

    그리고, 오늘 당직은 풍 선생님이다.

    ‘지금 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풍 선생님뿐이야!’

    왜애앵―

    덜컹, 덜컹!

    구급차가 출발했다.

    그동안 근욱이와 나는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서로 도와가면서 환자의 왼쪽 팔에 정맥 라인을 잡고 수액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저씨, 좀만 버텨 주세요. 금방 병원 도착 할 거예요. 아저씨! 제 말 들리시죠?"

    "으……."

    환자의 입에서 대답인지 알 수 없는 단말마의 단어가 튀어나온다.

    "근욱아, 수액 더!"

    "그래!"

    쫘악―

    근욱이는 수액 백을 쥐어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이송 중에 계속해서 혈압이 더 떨어지고 있었다.

    "선생님들, 혈압 더 떨어지는데요!"

    구급대원이 외친다.

    혈압 70/50.

    환자의 의식은 점차 더 흐려지고,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역시 바깥에서 이렇게 눌러서는 지혈이 거의 안 되고 있는 거야. 가슴 안에서 얼마나 피가 나고 있는 거야, 도대체?’

    우리 몸에는 항상 피가 차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다.

    이 혈액의 볼륨이 유지되지 않으면 생명의 불씨는 꺼져 버리고 만다.

    ‘이럴 땐 지혈이 가장 중요한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확한 출혈 부위도 알 수 없다.

    가슴 안쪽 어딘가라는 것밖에…….

    아무리 밖에서 틀어막아 봤자 근본적으로 출혈을 막을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뭘까?’

    나는 환자의 산소를 체크했다.

    산소포화도 92.

    다행히 환자는 아직까지 얕고 빠르게 자발호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실낱같은 호흡도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그래, 풍 선생님한테 물어보자!’

    나는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어, 똘똘이. 웬일이냐?>

    "선생님, 저 선한입니다. 수산시장에서 구급차 방금 출발했어요. 칼로 두 번을 찔렸는데……."

    <뭐? 누가? 네가 찔렸다고?>

    "아뇨, 30대 남자예요. 왼쪽 가슴에 스탭 운드(stab wound, 찔린 상처) 두 개, 그중 하나는 깊습니다."

    나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풍 선생의 목소리가 모처럼 진지해진다.

    <바이탈이랑 멘탈은?>

    "혈압은 70/50. 의식은 스투퍼에서 세미코마 단계로 넘어가고 있고, 아직 자발호흡은 있습니다."

    사람의 의식은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각성(alert).

    기면(drowsy).

    혼미(stupor).

    반혼수(semicoma).

    혼수(coma).

    지금 환자는 4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즉 반사적인 움직임은 보이지만, 의식은 강한 자극을 주어도 깨울 수 없는 상태다.

    <칼 뽑았냐?>

    풍 선생이 재차 묻는다.

    칼?

    물론 박혀 있었다면 안 뽑고 놔뒀겠지.

    칼이 출혈 부위에 꽂혀 있으면, 과다출혈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흉부 외상에서 칼이든 뭐든 가슴에 박혀 있는 외부물질은 가만히 두고 병원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칼은 뽑힌 상태였습니다. 거즈랑 이것저것 대고 지혈은 하고 있는데……."

    그때, 내 말을 끊으며 구급대원이 외친다.

    "산소수치 떨어집니다!"

    산소포화도 83.

    젠장. 언제 이렇게 떨어졌지?

    산소마스크가 씌워진 환자의 호흡이 더 얕아지는 것이 보인다.

    그때 풍 선생이 말했다.

    <너,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내삽관) 해 본 적 있냐?>

    인투베이션?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흉부외과 인턴 때, 류명인과 한바탕 난리를 친 적이 있었지.

    "아니요. 근데 할 수 있어요!"

    <안 해 봤는데 할 수 있다고?>

    "할게요!"

    <그래. 어서 해라.>

    풍 선생은 이럴 때 말리는 타입이 아니다.

    대신 나에게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마취 없이 쌩으로 하는 인투베이션은 환자 이빨에 네 손가락 잘릴 수도 있다. 조심해라.>

    "네."

    보통 인투베이션은 마취를 한 후에 진행한다.

    그런데, 피치 못할 응급 상황에서는 마취 없이 진행한다.

    이런 경우를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속칭 ‘쌩투베이션’이라고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때, 환자는 의식이 희미하지만 이를 깨물 힘은 남아 있기 마련.

    입 안의 침과 이물질로 시야 확보도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쌩투베이션은 극한 상황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보통 인투베이션보다 힘들다.

    지금, 나는 그 쌩투베이션을 성공시켜야만 한다.

    "여기 인투베이션 할 수 있는 세트 다 준비돼 있죠?"

    나는 구급대원에게 외쳤다.

    "여기 아래쪽에 기도삽관튜브랑 후두경 있습니다!"

    "근욱아, 네가 나 좀 도와줘."

    "알았어!"

    곧 근욱이는 튜브를 준비했고, 나는 장갑을 끼고 후두경을 조립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환자의 목을 젖혔다.

    오른손으로 입을 벌리면서, 왼손에 든 후두경을 밀어 넣으려 하는 순간.

    "으극!"

    콱!

    환자가 내 손을 세차게 물었다.

    장갑이 찢어지면서, 반투명 장갑 아래로 피가 솟아오른다.

    근욱이가 옆에서 깜짝 놀랐다.

    "야, 선한아. 너 손!"

    "……."

    아프다.

    하지만 지금은 멈출 수 없다.

    환자에게 산소공급을 하는 게 우선이니까.

    다행히 환자의 턱에서는 금방 힘이 풀렸다.

    의식 자체가 약한 상태니, 무는 힘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괜찮아?"

    "응. 별거 아냐."

    젠장, 피 난다.

    손가락 잘리는 줄 알았네.

    손을 살펴보니, 이빨 자국을 따라 핏망울이 맺혔다.

    신경 쓰지 않고, 나는 곧 인투베이션을 완료했다.

    장갑을 벗고 거즈로 손의 상처를 누르자, 스피커폰 너머에서 풍 선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물렸냐?>

    "예."

    <잘했다. 원래 의사들은 그러면서 크는 거야. 나는 옛날에 환자한테 물려서 손가락 잘린 적도 있어.>

    "……손가락 다섯 개 다 멀쩡하시던데요?"

    <원래 여섯 개였어, 인마.>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와중에 또 허풍이라니.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은 오히려 그런 허풍마저 반갑다.

    ‘당황하지 말고 평소처럼 침착하게 대처해라.’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동안 근욱이는 청진기를 들어 청진을 했다.

    인투베이션이 잘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잠시 후, 근욱이가 나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산소포화도 98입니다!"

    그때 구급대원이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세츄레이션(saturaiton, 산소포화도) 괜찮고?>

    "네, 괜찮아요. 그런데 혈압은 아직도 그대로예요!"

    아슬아슬 겨우 뛰고 있는 심장.

    차 안에 울리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실시간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풍 선생님의 말들.

    그리고, 근욱이가 쥐어짜는 앰부백(ambu bag) 소리까지.

    여러 소리가 뒤엉켜 혼란스러운 사이, 우리는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 도착했습니다!"

    촤아악―

    곧 구급차는 곡담제일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스트레쳐 카를 끌고 응급실로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응급 구조사들이 우리를 돕는다.

    응급실 안쪽에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연서와 소담이가 달려와 묻는다.

    "선한아!"

    "어떻게 된 거예요?"

    두 사람은 환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란다.

    그야 놀랄 만도 하지.

    첫날 곡담 시내에서 마주쳤던 얼굴을 마지막 날에 응급실에서 보게 되었으니까.

    "사정은 나중에 설명할게. 일단 환자부터 옮기자."

    "알았어요!"

    지금은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때가 아니다.

    그때, 응급실에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왜 이리 늦게 와?"

    "선생님!"

    풍 선생님의 얼굴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말했다.

    "넌 마지막 날까지 환자를 달고 들어오냐?"

    "죄송합니다."

    "환자 심장 아직 뛰고 있어?"

    "예!"

    "그래, 잘했다."

    터억.

    내 어깨를 짚는다.

    지금 이 순간, 백 마디 말보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더욱 의지가 된다.

    "다들 소생실로!"

    풍 선생이 커다란 목소리로 진두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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