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심장이 뛴다(4)
나는 환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녕하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
"늘 맞던 걸로."
"네?"
나는 당황했다.
무슨 레스토랑이야?
<늘 먹던 걸로>는 들어 봤는데.
중년 여인은 그 뒤로 아무런 말도 없다.
그러자 스테이션에서 과장이 나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야, 인턴아."
"예."
"그냥 하트만(Hartman solution, 수액)에 멀티비타(Multi―vita, 비타민 제제) 믹스해서 처방해 드려."
"아직 환자분이 증상도 말씀 안 하셨는데……."
"딱히 증상 없어. 그냥 주기적으로 와서 수액만 맞고 가시는 분이야."
"굳이 응급실까지 와서요?"
"응. 힐링이 된대."
힐링?
응급실 힐링이라니, 듣도 보도 못했다.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말한다.
"마사지받으러 마사지 숍 가시는 것처럼, 응급실에서 한두 시간 수액 맞으면서 누워서 쉬다 가시는 거예요."
나는 환자의 차트를 열어 봤다.
환자의 기록은 응급실 차트만 수십 건 있었다.
혹시 모르니 환자에게 질문을 던져 증상을 꼼꼼히 체크해 보았다.
하지만, 과장의 말대로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면 수액에 비타민 제제 섞어서 처방해 드릴게요."
"그래, 그걸로."
촤악―
여성분은 커튼을 치고 응급실에 누웠다.
연국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국대병원은 응급실 베드가 항상 모자라서, 통증이 심한 환자들이 눕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말 넓고 환자는 다양하구나.’
또 경험이 늘었다.
다양한 환자들.
곡담에서 일하며, 나는 점점 여러 타입의 환자를 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론 그중에서는 당황스러운 환자들도 있었다.
내가 새벽에 맞이하게 된 마지막 환자가 그랬다.
"서, 선생님. 도와주세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30대 초반의 남자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복통인가?
배 아래쪽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다.
"배가 아프세요?"
"아뇨."
"그럼 어디가?"
"그…… 안 가라앉아요."
"예?"
"약을 먹어서 섰는데, 몇 시간째 안 가라앉아요."
나는 바로 알아듣고 탄식했다.
발기지속증.
가끔 이런 경우도 발생한다고 들었다.
"으으…… 거기가 너무 오랫동안 서 있어서 피 안통하고 터질 것 같아요. 어떡하죠 선생님?"
난감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업무용 폰을 들고, 바로 비뇨기과에 컨택했다.
"선생님, 응급실 인턴 신선한입니다. 32세 남자 환자……."
나는 비뇨기과에 노티를 한 뒤, 환자에게 다가가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곧 비뇨기과 선생님이 와서 봐주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근욱이와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환자는 처음이네. 약을 먹었는데 발기가 3시간째 가라앉지를 않았대."
"3시간?"
근욱이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엄지를 척 올린다.
"약 효과 확실하구만."
농담할 때냐?
나는 녀석을 쥐어박았다.
"비뇨기과 연락했어?"
"비뇨기과 선생님 내려오는데 시간 좀 걸릴 수도 있다는데."
"그동안 우리끼리 좀 찾아보자."
"그럴까?"
타닥, 타닥―
우리는 컴퓨터로 서칭을 시작했다.
발기지속증(priapism).
4시간 이상 발기가 지속되는 증상을 이야기했다.
‘우리 환자는 아직 3시간이니까, 아직 진단 기준에는 안 들어가긴 하지만…….’
발생하는 기전은 이렇다.
혈액이 성기에 너무 많이 들어와서 붓게 되면, 혈액이 빠져나가는 혈관이 좁아진다.
이러면 기존에 들어왔던 혈액들이 눌러앉게 되어, 새로운 혈액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야, 선한아 이것 봐. 너무 무섭다. 25살 남자 케이스인데 결국 고…… 고자가 됐대……."
근욱이가 끔찍하다는 얼굴로 무언가를 찾더니 나에게 보여 준다.
모골이 송연하군.
남자라면 누구나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그때, 다행히 비뇨기과 선생님이 응급실에 도착했다.
동그란 안경을 쓴 선생님은 환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환자분. 이런 경우 처음인가요?"
"예."
"혹시 평소에도 한 번 서면 원래대로 잘 안 돌아왔다든가……."
"아니. 그렇게 팔팔했으면 제가 약을 먹었겠습니까 선생님?"
환자가 울컥하며 말한다.
표정에 억울함이 묻어나는군.
비뇨기과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했다.
"그럼 겸상적혈구증은 아니겠고."
"겸…… 뭐라구요?"
겸상적혈구증(Sickle cell anemia).
적혈구가 괴상한 모양으로 생성되는 질환인데, 이 괴상한 모양의 적혈구들이 성기의 정맥을 막아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코포랄 어스피레이션(corporal aspiration)을 좀 해야겠는데?"
"뭐, 뭐요?"
환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하지만, 근욱이와 나는 알아듣고 탄식했다.
어스피레이션.
쉽게 말해 바늘로 찔러 뭔갈 빼낸다는 뜻이다.
어디서?
그렇다, 피가 모여 있는 그곳에서.
"환자분, 성기의 피를 좀 뽑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피를 어떻게 빼요?"
"주삿바늘로요."
"주삿바늘로 찌른다구요?"
"예. 환자분 지금 4시간 가깝게 지속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어요.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평생 성불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허억……."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환자가 공포에 질렸다.
"제가 고자가 될 수도 있다 그 말입니까?"
"예."
"안 돼, 고자라니!"
환자가 절규한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아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 잠깐만요. 선생님. 가라앉았는데요?"
뭐야?
황당하군.
성불구라는 말에 놀라서 그런가?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와 근욱이는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 뭐야. 괜히 왔네."
결국 환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응급실에서 나가 원무창구로 향했다.
32세, 발기지속 환자.
내가 곡담에서 맞이한 마지막 환자였다.
* * *
아침 동이 트고, 교대시간이 다가왔다.
연서와 소담이도 마지막 근무를 위해 출근을 했다.
나는 인수인계를 하며 연서와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막날인데 뭐 할 거예요?"
"일단 한숨 자고 근욱이랑 수산시장 좀 가려고."
"시장? 뭐 살 거 있어요?"
"과메기."
"과메기?"
"응. 작은누나가 사 오래. 집에 배송 한 박스 보내려고."
"푸핫, 왜 하필 과메기?"
"나도 몰라."
연서와는 그날 이후 부쩍 더 친근해진 느낌이다.
그때 옆에서 슥 하고 풍 선생이 나타났다.
"신성한 응급실에서 누가……."
"연애질 아닙니다."
"뭐야. 너네 사귀는 사이 아니었어?"
"아닌데요."
"에이, 시시해."
풍 선생은 쩝 하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과제."
"예."
나는 밤사이 남는 시간에 꿰맸던 귤껍질을 내밀었다.
"오오, 이제 얇은 실로도 귤 꿰매기를 마스터했군!"
풍 선생은 흡족한 표정이다.
반면 나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거진 3주.
풍 선생이 내게 시킨 것은 귤껍질 꿰매기밖에 없었다.
덕분에 응급실에 쌓여 있던 귤은 내가 다 처리해 버렸다.
"선생님. 한 달 내내 귤만 꿰매게 시키시고…… 이게 수련 끝입니까? 더 없나요?"
나는 반쯤 포기한 채로, 반쯤은 기대하며 물었다.
한 달 사이, 인턴인 내가 이렇게 격 없이 말을 걸 정도로 풍 선생과 친해진 것은 좋았다.
귤을 꿰매는 것도 수처(suture, 봉합)에 익숙해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나는 배고프다.
더 배우고 싶다!
좀 더!
내 불타는 눈빛을 보더니 풍 선생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야 인마, 누가 안 가르쳐 준대? 이제 마지막 수업이다."
"마지막 수업이요?"
"어이 거기 아이돌. 귤 하나를 던져 봐라."
타악.
풍 선생은 연서가 던진 귤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서랍에서 수처 도구를 꺼내며 말했다.
"마지막 레슨. 내 실력을 보여 주마."
"……!"
"네가 했던 수처와, 내가 했던 수처를 직접 눈으로 비교해 보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꿀꺽.
나는 침을 삼키고 풍 선생의 손을 바라보았다.
과연 달인의 솜씨는 어떠할까?
"허잇차!"
짜악!
풍 선생은 양손에 기를 모은다.
그러더니 수처 도구를 잡고 귤껍질을 꿰매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빛냈다.
‘이건 기회야. 풍 선생님의 손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아 가야지!’
나는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풍 선생은 엉망진창으로 찢어진 귤껍질을 집어 던졌다.
"아, 못 해 먹겠네. 뭐가 이렇게 흐물거려?"
"……."
"야, 네가 더 잘한다."
그게 뭐야!
나는 허탈함에 어깨를 늘어트렸다.
풍 선생은 껄껄 웃으며 일어서더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야~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 거였구나? 그동안 고생했다. 앞으로 꼭 훌륭한 의사가 되렴!"
젠장.
사기당했다.
그것도 아주 거하게.
내 시간 돌려줘, 이 허풍쟁이야!
* * *
마지막 오프 날.
우리는 저녁 5시쯤 눈을 떠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해안도시답게 수산시장은 규모가 컸다.
돔형 지붕이 일자로 크게 뻗어 있고, 균일한 규모의 판매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몇몇 사장님들이 우리를 보며 호객을 했다.
"일루 오셔, 싸게 해 줄게!"
"뭐 찾으러 오셨어?"
"여기요, 여기!"
사방이 부산스럽다.
그래, 이 맛이 시장이지.
나는 느긋한 걸음으로 근욱이와 함께 수산시장을 걸었다.
"고향 온 것 같네."
"고향?"
"나 횟집 아들이잖아."
"아아."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고향에 온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냄새.
나한텐 그게 생선 냄새다.
어릴 때부터 시장 바닥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정겹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선한이 너랑 다니면 눈탱이 맞을 일은 없겠네. 마지막 날이니까 여기서 회 한 사발에 소주 한잔하자!"
"소주?"
"그래. 그동안 우리 큰일은 없었잖아. 무사, 무탈하게 한 달 마친 거니까 자축해야지!"
"그렇네."
근욱이 말이 맞다.
곡담 응급실 생활.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려운 일은 없었다.
바쁘긴 했지만, 초를 다툴 정도로 심각한 환자는 별로 없었다.
원래 하지마비 환자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그건 내가 가능성을 틀어막았고.
"사실 첫날부터 다이내믹해서 걱정했었는데 말야."
"택시 아저씨?"
"응. 와, 난 진짜 조폭인 줄 알았잖아. 그 사람 눈빛이 진짜 장난 아니긴 했어. 푸하하."
근욱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멈칫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택시 아저씨…….
택시 아저씨라.
나는 속으로 떠오른 단어를 곱씹었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택시 아저씨라.
왜 신경이 쓰일까?
갑자기 거슬린다.
마치 가스 불을 끄지 않고 밖으로 나온 듯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기분 몇 번 느껴 본 적이 있…… 잠깐.’
어어?
이상하다.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주변 소음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다.
‘설마, 갑자기 미래가 보이는 건가?’
하필 마지막 날에?
근무도 끝났다고!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시야가 팟 하고 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