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10화 (110/241)

#110 여름 바다의 기연(13)

"클램프 주세요."

클램프(clamp, 겸자).

말 그대로 일종의 집게다.

상황이 급박한 것에 비해, 선한이 요구한 것은 너무나도 소박한 도구였다.

그때, 김기훈 과장이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아니, 지금 환자 심박수가 120까지 올라갔는데 뭐 하는 거야! 제대로 들어간 거 맞아?! 혹시 너무 깊게 넣어서 어디 건드리거나 한 거 아니……."

움찔.

과장은 문득 말을 멈추었다.

선한은 마스크 위의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잠깐만 믿고 맡겨 달라>고.

그러자 풍 선생이 그를 만류하듯 말했다.

"일단 지켜보시죠."

"아니, 지금 지켜보고 있을 만한 상황이……."

김기훈 과장은 화가 났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환자 앞이라서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다.

다만, 본인의 오더를 따르지 않은 신선한을 혼내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 네 멋대로 판단해서 어디 잘하나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선한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클램프 여기 있습니다!"

곧바로, 응급 구조사가 트레이에 있던 클램프를 선한의 손에 건네었다.

그러자, 선한은 흉관과 체스트 바틀을 연결하는 관을 클램프로 잠가 버렸다.

이렇게 되면 튜브를 연결하지 않은 것과 같게 된다.

즉, 가슴 속의 공기가 더 이상 빠져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니, 기껏 관을 넣어 놓고 다시 걸어 잠그는 건 뭐 하는 짓이야?! 석션(suction) 걸어서 공기를 빨리 빼내야……."

김기훈 과장이 다시 끼어들려 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심박수 조금씩 떨어지면서 정상치로 가는 것 같습니다!"

지켜보던 응구사가 외친다.

환자 역시 괴롭게 기침하던 모습에서, 지금은 훨씬 안정된 모습을 하고 있다.

예상외로 간단하고 쉬운 해결에,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 선생님, 문제없는 거죠……?"

호흡이 안정적으로 되자, 성상현 환자가 슬쩍 눈을 들어 신선한을 쳐다보며 물어본다.

갑자기 주위가 시끌시끌하게 난리가 났으니 불안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러자 선한은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심호흡 천천히 하면서 지켜볼게요. 기흉이 너무 심하게 왔었기 때문에,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속도 조절을 좀 할 거예요."

선한은 그렇게 말한 뒤 응급 구조사에게 말했다.

"포터블 엑스레이(portable X―ray) 불러 주세요."

선한이 침착하게 지시했다.

이후 엑스레이에서는 흉관이 문제없이 들어간 것이 확인되었다.

선한은 환자의 상태를 보며 흉관의 개폐 여부를 조절했다.

한편, 풍 선생은 이 모든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 * *

따갑다.

뭐가 따갑냐고?

나를 지켜보는 김기훈 과장님의 눈빛이다.

주위에 환자가 없는 처치실에서, 나는 따로 불려 나가 혼나고 있었다.

"내 허락도 없이 흉관을 넣어? 그것도 전원 보내라고 했던 환자를?!"

예상했던 추궁이다.

대충 어떻게 대답할지도 생각해둔 차였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산소요구량이 갑자기 증가하고, 혈압이 기존에 130대에서 80대까지 갑자기 떨어졌습니다."

"뭐?"

"그래서 처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과장의 화가 다소 누그러졌다.

텐션 환자의 바이탈이 흔들렸다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는 것은 명확했으니까.

"그래서 과장님께서 아까 흉관을 넣어도 된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 시술을 진행했습니다."

내 말에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진짜 흉관을 넣어 버리면 어떡해……!"

그때 풍 선생이 처치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자자, 건방진 인턴은 제가 혼낼 테니까 김 선생님은 이만 퇴근하시죠."

"그…… 그럴까요?"

"오늘 와이프분 생일이라면서요? 늦으면 빵집 문 닫아서 케이크도 못 삽니다."

"아차, 그랬지."

"오늘 같은 날 집에 케이크도 못 사 가면 일 년 내내 시달립니다! 어서 서두르세요!"

팍, 팍.

풍 선생은 등을 떠밀었다.

김기훈 선생은 거의 반강제로 처치실을 나가면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저, 저 녀석 인턴 주제에 완전 겁대가리 없는 놈입니다. 풍 선생님이 제대로 혼 좀 내 주세요!"

"예, 예."

풍 선생은 그렇게 김기훈 과장을 내쫓다시피 하며 바깥으로 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다시 처치실로 돌아와 나와 마주하였다.

그러고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였다.

"하이고. 하여튼 김 선생님도 완전 새가슴이야. 인턴이 그까이 거 흉관 좀 집어넣었다고 뭐 그리 대수라고!"

풍 선생은 역시 나의 판단을 마음에 들어 한 듯했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뜬다.

내 얼굴을 보더니 팔짱을 끼며 말한다.

"뭘 봐, 인마. 내가 너만 한 인턴일 때는 말이야, 응급실에서 흉관 넣고 그냥 바로 수술방까지 끌고 가고 그랬어."

그렇게 말하더니, 허풍이 점점 심해진다.

"교수님 늦는다 싶으면 수술까지 내가 그냥 해 버리고 그랬다고."

"그건 좀……."

뻥이 너무 심하다.

인턴이 무슨 수술이야?

아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풍 선생은 껄껄 웃더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나저나 아까 쭉 보다가 궁금한 게 있었는데. 중간에 클램프를 달라고 했었지?"

"예."

"제대로 알고 조치한 거냐? 아니면 그냥 일단 문제가 생길까 봐 틀어막고 본 건가?"

그렇게 묻는 풍 선생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폐부종이 걱정되었습니다."

폐부종.

쉽게 말하자면, 폐가 물기로 젖어 버리는 것이다.

폐는 기본적으로 말라 있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 폐가 젖어 버린다면?

제 기능을 못 하게 된다.

환자가 호흡에 곤란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오, 그 상황에서 폐부종을 미리 떠올리고 조치했단 말이야?"

풍 선생이 감탄한다.

나는 어떻게 이걸 금방 떠올릴 수 있었냐고?

그야 좋은 선생에게 배웠으니까.

2개월 전.

송유주 선생은 내가 흉관을 넣은 양송이 환자에 대해 주의할 점을 가르쳐 주었다.

<기흉이 일어나면 폐가 짜부라지니까 이걸 펴 줘야 해. 그런데 이게 너무 빠르게 펴져도 문제야.>

<예? 빠르게 펴져도 문제라고요?>

<안 배웠어?>

송유주는 싸늘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모를 수도 있지 거참.

인턴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닙니까?

어쨌거나 송유주는 나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폐가 너무 빠르게 펴지면 간혹 체액이 폐포에 찰 수 있어. 공기주머니들이 물주머니가 되어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송유주는 좋은 선생이었다.

무언가를 가르쳐 줄 때는 설명이 직관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렇게 되면 호흡에 문제가 생기겠네요.>

<그래.>

송유주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걸 재팽창 폐부종(re―expansion pulmonary edema)이라고 부른다.

3일 이상 폐가 짜부라진 상태로 있거나, 폐가 너무 빨리 펴지게 되면 발생할 수 있다.

엑스레이에서 폐는 하얗게 변해 버리고, 환자는 물같이 묽은 가래를 뱉게 된다.

이때, 저산소증이 초래되면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드물게 일어나긴 하지만, 20%는 죽는다는 보고도 있다. 조심해라.>

송유주 전매특허.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한다.

그 뒤로, 나는 만에 하나 송이가 그런 증상을 겪지 않도록 자세하게 공부를 했다.

그때 폐부종이 생기지 않게 폐를 확장시키는 방법도 눈여겨보았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빨리 펴져서 문제라고?

그럼 천천히 펴면 되지!

<고무관을 겸자로 잠근다.>

단순한 처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음압(suction)을 통해 폐를 펴지 않고, 일단 흉관을 클램프 한 후 천천히 폐가 펴지도록 했습니다."

풍 선생은 내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배웠네."

"그럼 저한테 수처(suture, 봉합)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아직 안 돼. 나의 내공을 전수받으려면 아직 멀었다. 더 강해져서 오도록."

풍 선생은 그렇게 무림고수 같은 대사를 하며 껄껄 웃었다.

"아무튼 환자는 30분 정도 지켜보고 곡담종합병원으로 보내!"

"예, 알겠습니다."

잠시 후 나는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이번에도 내 능력이 도움이 됐네.’

만약 내가 능력을 통해 미래를 보지 않았다면?

분명 침착하게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당황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겠지.

자칫하면 환자는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도 삽관)을 시행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까지 갔을 수도 있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근욱이가 갑자기 옆으로 와서 헤드록을 건다.

"얌마. 그렇게 네 맘대로 하니까 속 시원하냐?"

"응."

내 태평한 대답에 근욱이가 이를 간다.

"으이그, 하여간 네 옆에 있으면 제명에 못 살겠다. 좀 평범하게 살면 안 되겠냐?"

그러게.

처음에는 나도 평범한 인턴생활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지는 몰라도 자꾸 나한테 미래를 보여 준다.

골탕 먹이는 것 같기도 하고, 도움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끊임없이 나를 시험의 장에 오르게 하는 것이다.

* * *

며칠 후.

우리의 곡담 응급실 인턴생활도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응급실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좋은 아침임다."

"어, 연서야. 어제는 별일 없었…… 잠깐. 저게 다 뭐야?"

아침 교대 시간.

근욱이와 나는 인계를 받다 말고 놀랐다.

스테이션에 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다 어디서 온 거야?

소담이가 귤을 볼 한가득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저번에 장풍 선생님한테 이마 수처받은 환자 있었다면서?"

"응."

"그 환자가 어제저녁에 가져다줬어. 흉터 안 지게 잘 꿰매 줘서 고맙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좀 많다.

인삼 사탕 다음은 귤 지옥인가.

응급실 인원들이 한 달 내내 먹어야 겨우 없앨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여름에 웬 귤을 이렇게 많이 구하셨대?"

"환자 아빠가 귤 농사짓는 분이었나 봐."

그렇게 우리가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야간 당직이었던 풍 선생이 당직실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어젯밤에 생각했지. 저 귤을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우리는 이미 장풍 선생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의 8할은 헛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특유의 격식 없는 성격 때문에, 나이를 뛰어넘어 친근하게 지내고 있기도 했다.

"어디 보자…… 이 정도가 적당하겠구만."

풍 선생은 귤 하나를 집어 들더니 껍질을 까기 시작한다.

대략 네 조각 정도로 찢더니 나에게 내민다.

"자."

"잘 먹겠습니다."

"누가 먹으래 인마?"

풍 선생은 나에게 면박을 준 뒤 말했다.

"너, 나한테 수처 배우고 싶다고 했지?"

"예."

"그럼 이 귤껍질을 수처(suture, 봉합)해서 원상 복구 시켜 봐."

"예?"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잘못 들었나 했다.

나보고 과일 껍질을 꿰매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