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여름 바다의 기연(12)
띠잉, 띠잉―
"야, 상현아. 왜 그래?!"
"헉, 헉……."
환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입술도 조금씩 파랗게 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던 산소수치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츄레이션(saturation, 산소포화도) 떨어져요! 일단 산소 올릴게요!"
지켜보던 응급 구조사가 외쳤다.
곧 환자의 입에 산소마스크가 씌워진다.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응급 구조사의 표정이 다급해진다.
나는 고개를 돌려, 스테이션과 응급실을 둘러보았다.
김기훈 과장은 잠시 화장실에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응급 구조사는 내 입만 바라보고 있다.
내 판단에 환자의 운명이 달렸다.
나는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판단했다.
‘상황이 달라졌어.’
바이탈 사인이 정상적이었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몸 안에 공기가 가득 차서 심장 같은 중요한 장기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의 몸속 장기가 공기에 압박받기 시작했다면, 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초 단위로 진행될 수도 있다.
‘일단 바이탈이 흔들리기 시작한 이상, 빠른 처치가 정답이야. 지금 체스트 튜브를 넣지 않으면 환자는 이송 중에 사망할 수도 있어!’
나는 마음속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지금 여기서 체스트 튜브(chest tube, 흉관) 넣겠습니다! 바로 준비 가능하시겠어요?"
"예? 누가요? 여기서? 선생님이요?"
"네, 제가요!"
내 말에, 응급 구조사는 눈을 크게 뜨고 살짝 머뭇거린다.
나는 재차 외쳤다.
"지금 텐션 걸리고 있는거 같아요. 이송시키는 동안 못 버틸지도 몰라요!"
내 말에 응급 구조사는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할게요!"
응급실이 바빠진다.
금세 흉관삽관을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다.
"환자 옷 벗겨 주세요."
나는 가우닝(gowning, 시술용 무균 수술복 착용)에 앞서 적절한 환자의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삼각형의 세이프티 트라이앵글(safety triangle, 시술에 안전한 삼각지대)을 생각해 정확한 시술 위치를 생각해 두었다.
‘좋아. 여기로 집어넣으면 되겠다.’
나는 손을 세정한 뒤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곧, 흉관삽입 세트가 올려져 있는 트레이가 내 옆에 도착했다.
"리도카인(lidocaine)이랑 18Fr. 체스트 튜브 오픈해 주세요."
나는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며 말했다.
한편, 근욱이는 강남역 사건 때처럼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다.
"신선한 이 또라이야, 너 왜 그러냐 진짜……."
근욱이가 수술복을 착용하는 나를 보며 아연실색한다.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다.
"선생님, 혈압도 88/60이에요!"
그 찰나, 산소공급에도 환자의 혈압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환자는 금방 더 위험한 상황까지 갈 것 같다.
"체스트 튜브 인서션(insertion, 삽입) 시작할게요."
나는 메스를 조립했다.
그리고 마동섭에게 배운 대로 흉관삽입 절차를 시작했다.
‘침착하게 하자. 모든 과정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조립된 메스를 환자의 피부에 가져 대려는 순간.
파앗―
시간이 0.1배속으로 느려지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슬라이드 쇼처럼 낯선 화면들이 내 눈앞에 지나간다.
‘잠깐. 이건…… 예전에 한 번 겪어 봤던 현상인데?’
시술 과정을 미리 한 번 빠르게 체험할 수 있는 현상.
<꿈>과는 다르다.
지금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시술의 상황만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꿈>과는 다른 현상이기에 내 멋대로 <비전>이라고 이름 붙이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게 다시 시작된 것이다.
‘무언가 힌트를 주려는 건가?’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절개하고.
몸 안에 길을 만들고.
흉관을 넣고.
그 흉관을 고정하는 모든 과정들이 지나갔다.
회복된 혈압과 산소수치가 모니터에 보이고 있다.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그 순간.
흉관을 넣고 체스트 바틀(chest bottle)과 석션(suction)을 연결하고 나서부터,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이 보인다.
"크헉―"
갑자기 가슴을 움켜지며 환자의 얼굴이 빨갛게 변한다.
그러고는 환자가 묽은 가래를 뱉기 시작한다.
다음 화면에서 산소수치는 73까지 떨어지고, 알람이 울리면서 모니터가 반짝인다.
‘뭐야, 왜 저래? 가래가 물처럼 묽게 보이는 건 이상하잖아!’ <인투베이션 해야겠어!>
누군가 급히 외치는 듯한 혼잡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비전에서 벗어났다.
파앗―
모든 영상들이 사라졌다.
나는 메스를 들고 있는 자세 그대로였다.
내가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자, 응급 구조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잠시만요."
짤그랑―
나는 메스를 다시 트레이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방금 보인 미래에서, 환자는 흉관삽관 후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분명 흉관은 잘 들어갔는데,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게 된다. 대체 원인이 뭐지?’
이건 경고 사인이다.
막 건너려던 다리에 커다란 붉은 색 간판이 세워진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앞은 위험하니 주의하십시오, 라고 말이다.
<왜. 겁나?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당황스럽지? 그러게 그냥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 그랬어?>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그래? 물론 네가 시간을 낭비한 탓에 환자는 더 위험해지겠지만 말이야.>
또, 그런 목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갑자기 마음이 흔들린다.
그때.
백의신이 자서전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의사에게 가장 큰 미덕은 침착이다.>
그래.
이럴 때는 더욱 침착해져야 한다.
환자의 목숨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봤으니까, 잠깐만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혈압도 아직은 80대는 유지하고 있으니 생각할 시간은 있어.’
나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하나하나.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머릿속으로 체크했다.
그때.
번뜩하고.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열쇠 구멍에 딱 맞는 열쇠가 철컥하고 끼워지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알 것 같네."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시 시작할게요."
나는 다시 자신감을 가지고 흉관삽관을 시작했다.
어디 한번 해 보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나는 반드시 이 시술을 성공시키고 환자를 무사히 살려 낼 테니까.
* * *
한편, 곡담제일병원 앞 사거리.
부르릉―
장풍 선생은 바이크를 타고 병원에 출근하고 있다.
그는 응급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옷을 갈아입고 평소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며 응급실로 들어온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그렇게 응급실 안으로 들어오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어수선해?"
왠지 평소보다 분위기가 바쁜 것 같이 느껴졌다.
무슨 급한 환자라도 있는 건가?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보려 하지만 스테이션에는 마침 아무도 없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어떤 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번 볼까."
딸깍, 딸깍.
장풍 과장은 차트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환자 파악을 쭉 하던 도중 눈이 커졌다.
성상현 환자의 X―ray를 보고 놀란 것이다.
풍 선생의 눈매가 모처럼 진지해졌다.
그때, 화장실을 갔다가 응급실로 돌아오는 길이던 김기훈 과장과 마주쳤다.
"김 선생님! 여기 이 환자 말입니다."
"아, 그 텐션 환자요?"
"이 환자는 흉관을 넣든지, 아니면 니들 어스피레이션(needle aspiration, 바늘 흡인)이라도 하고 보내야겠는데요?"
그러자 기훈 과장이 말했다.
"안 그래도 아까 빨리 곡담종합병원 보내라고 했는데. 아직 차트가 안 빠졌어요?"
"안 빠졌습니다."
"아니, 뭐 하는 거야? 보내라고 한 지가 몇 분째인데."
과장의 눈썹이 곤두섰다.
곧 그들의 시선이 응급실 베드 쪽을 향했다.
그때,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근욱이를 발견했다.
"야, 덩치."
"예?"
"텐션 뉴모 환자 있던데, 어떻게 됐어? 트랜스퍼 보냈어?"
"저, 그게…… 지금 체스트 튜브 인서션 중입니다."
"뭐?"
과장 둘의 눈이 커졌다.
그럴 만도 하다.
인턴이 독단적으로 시술을 행하고 있다고 하니 경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간단한 시술이 아니다.
흉관삽관?
흉부외과 의사가 시행하는 술기 아니던가.
고급 술기인 만큼, 다양한 환자의 경험이 필요한 법.
인턴이 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다.
물론 환자의 상태가 급변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김기훈 과장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아니, 이 자식이……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 뭐야?!"
김기훈 과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반면, 장풍 과장은 침착하게 되물었다.
"7번 베드인가?"
"예."
베드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타닥―
풍 선생은 7번 베드 쪽으로 뛰어간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스윽―
7번 베드의 커튼을 살며시 열어서 쳐다보자, 신선한이 흉관삽관을 하고 있다.
신선한은 시술에 집중하느라 뒤에서 누군가가 지켜보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 선생, 지금 대체……!"
"쉿."
풍 선생은 자신의 등 뒤에서 막 소리를 치려는 과장을 향해 말했다.
"시술 중입니다. 조용히."
그렇게 말한 뒤, 모니터를 바라보고 안정화되고 있는 환자의 바이탈 사인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선한의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놈 봐라.’
장풍은 신선한을 흥미로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어느새 신선한은 흉관삽관을 거의 마무리하고 흉관과 체스트 바틀(chest bottle)을 연결하고 있었다.
‘제법 침착하네. 아직 인턴이라 경험도 많지 않을 텐데, 손에 머뭇거리는 기색이 하나도 없어.’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지금 이 상황이 딱 그랬다.
신선한을 지켜보는 장풍의 눈빛이 흥미롭게 빛났다.
그런데 그때.
흉관삽관 후 안정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환자가 갑자기 통증을 호소한다.
"선생님…… 왼쪽 가슴이 갑자기 더 아픈데요……!"
삐삐삐―
갑자기 알람이 울린다.
환자가 식은땀을 흘리고 너무나 힘들어한다.
옆에서 보조를 서던 응급 구조사가 다급히 외친다.
"선생님, BP(혈압)는 110/70, Heart rate(심박수)는 120이에요!"
후르르―
연결해 놓은 체스트 바틀에는 공기 방울이 올라오고 있었다.
환자는 급기야 기침을 심하게 하기 시작했고, 얼굴은 붉어졌다.
기침을 할 때마다 바틀에 공기는 더욱 세차게 올라오고 있었다.
‘저런, 저건 그냥 두면 안 되는데!’
풍 선생은 본인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선한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황하지도 않아?’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바로 다음 행동을 취하려 한다.
풍 선생의 눈빛이 잠시 선한을 관찰했다.
자, 어떻게 할 생각이지?
대책이라도 있나?
곧 그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선한이 응급 구조사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