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여름 바다의 기연(11)
응급실의 문이 열린다.
곧 커다란 실루엣 둘이 걸어온다.
건장하고 키가 큰 20대 남자 두 명이었다.
‘운동선수들인가?’
겉보기에는 그런 느낌이다.
마치 구리를 주조해서 만든 것처럼, 햇빛에 그을려 건강하게 번들거리는 피부가 눈에 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그게…… 이 친구가 운동시합 중에 가슴을 좀 다쳤습니다. 그 뒤로 계속 아파하는 것 같아서요."
환자의 옆에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환자는 손사래를 쳤다.
"아, 응급실 올 정도는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냥 가슴이 조금 아픈 정도라니까……. 남자가 무슨 이런 걸로 119에 응급실이야~?"
그렇게 말하는데 숨소리가 약간 거칠다.
나는 환자를 베드로 안내했다.
그리고 보호자에게 물었다.
"친구분이 가슴을 어떻게 다쳤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그게……."
보호자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곡담시 배 전국 족구대회>
곡담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대회라고 한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족구선수들이 곡담해수욕장에 모여 하루 종일 경기를 펼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고 한다.
"저희 팀이 딱 결승까지 올라갔는데, 마지막 순간에 제가 너무 흥분해 버렸지 뭡니까."
동점 상황.
마지막 공격 찬스가 왔다.
뜨거운 땡볕 아래, 상대의 발을 맞고 튕겨져 올라온 공이 하늘을 날았다.
그 순간, 남자는 생각했다.
찬스다!
남자는 뛰어올랐다.
해변을 향해 오는 파도를 배경으로, 뛰어오른 남자의 발끝에 태양빛이 반사된다.
그리고 그는 멋지게 공중회전을 돌며 세팍타크로 킥을 날렸다.
그런데…….
퍼억!
그의 발이 친구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결국 경기는 패배로 마무리되었고, 남은 것은 부상뿐이었다.
"이 미친놈아, 공을 차야지 나를 차면 어떡해…… 무슨 자동차에 치인 줄 알았잖아."
"미안해."
"미안하면 다야?"
"근데 그때 진짜 햇빛 때문에 공이랑 니 젖꼭지랑 헷갈렸다니까."
"아 미친, 자꾸 웃기지 말라고. 웃을 때마다 아파 죽어, 인마."
끅끅…….
환자가 웃음을 참으며 얼굴을 찌푸린다.
웃는 건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옆에서 듣던 나는 생각에 잠겼다.
‘자동차 사고인 줄 알았다고? 대체 얼마나 세게 맞았길래?’
그렇게 생각하며 반바지를 입은 보호자의 허벅지를 보니, 아팠을 만도 하다.
운동선수답게 다리 근육이 엄청나게 두껍다.
저 다리로 공중회전 킥을 맞았다고 생각하면, 아마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환자분. 통증은 언제부터 시작된 거죠? 0점부터 10점까지 통증 점수를 주면 몇 점일 것 같아요?"
나는 환자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라면 7점.
살면서 가장 아팠던 통증이 10점이다.
그러자 환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글쎄요. 6점 정도인 것 같은데요……."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몇 시간 전.
경기가 끝난 직후에는 아픈 줄도 몰랐다고 한다.
준우승 트로피 수여식도 참석했고, 뒤풀이도 했다.
오늘 경기에서 패한 아쉬움을 담아 동료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점점 가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가만히 참고 있었지만 호흡도 조금씩 가빠졌다.
결국 걱정하던 친구가 응급실을 가자고 부추겨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자식아, 똑바로 설명 안 해? 아까 나랑 얘기할 때는 더 아프다고 했었잖아!"
결국 옆에 있던 보호자가 나서서 나에게 부연설명을 했다.
"아까 크게 웃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어요. 보시다시피 숨도 좀 찬 거 같고……. 머리도 좀 띵한 것 같다고 했어요."
보호자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단순 타박상(blunt trauma)에 의한 흉통. 뼈에 금이 갔을 수도 있겠는데…….’
또다시 스무고개 시작이다.
기저질환 없는 20대 젊은 환자.
현재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은 모두 정상.
몇 가지 조건으로 환자를 진단해야 한다.
‘젊은 운동선수가 심장 질환이 생길 가능성은 굉장히 적어. 외상에 의한 통증일 확률이 가장 높은데…… 일단 흉통에 대한 기본적인 검사는 모두 해 보자.’
나는 생각을 빠르게 마친 뒤 말했다.
"일단 엑스레이 사진부터 한 번 찍어 보실게요."
흉부 X―ray.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 할 검사다.
곧 환자는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가 스테이션의 모니터에 떴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갈비뼈 골절.
그리고 골절과 함께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약간의 출혈도 보였다.
‘인내심이 대단하네, 이렇게 뼈가 부러졌는데 몇 시간을 버텼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나의 눈이 커졌다.
마우스를 붙잡고 있던 손을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깐. 지금 뼈가 부러진 게 문제가 아니잖아?’
더 중요한 건 폐다.
환자의 왼쪽 폐가 주먹만 하게 짜부라져 있는 모습이었다.
기흉이다!
그것도 아주 큰.
나는 그동안 흉부 엑스레이를 보는 실력은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두 달 전, 송유주 선생 밑에서 흉부외과 인턴을 돌던 경험이 착실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단순한 기흉이 아니야!’
나는 엑스레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상보다 심각하다.
숨 쉴 때 공기가 왔다 갔다 하는 길인 기관(trachea)이 오른쪽으로 밀려 있었다.
왼쪽 폐에서 공기가 계속 새어 나오다 보니, 가슴에 있는 심장과 기관이 오른쪽으로 밀려 나간 것이다.
일명, 메디아스티널 시프팅(mediastinal shifting, 종격동 편위).
바로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의 대표적인 흉부 영상 소견이었다.
긴장성 기흉은 일반 기흉과 달리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다.’
나는 환자의 바이탈을 재차 확인해 보았다.
혈압 130/70.
심박수 90,
호흡수 18회.
모두 정상이었다.
젊은 환자이기 때문일까?
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비해, 몸이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지금 바이탈이 정상이라고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어!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해.’
타악―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시가 급하다.
나는 다른 환자의 차트를 작성 중이던 김기훈 과장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성상현 환자 엑스레이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왜. 어떻길래?"
"텐션 뉴모로 보입니다."
"뭐? 텐션?"
과장이 화들짝 놀란다.
그러더니 엑스레이를 확인하고 눈이 커진다.
그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 한눈에 파악한 모양이다.
"뭐야. 이 환자 헤모―뉴모쏘락스(hemo―pneumo thorax, 혈기흉)네? 좀 심한데? 바이탈 괜찮아?"
"네, 아직까지는 정상입니다. 통증만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 말에 과장은 반색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잘됐네. 흉부외과 환자잖아? 바이탈 아직 멀쩡하니까 빨리 곡담종합병원으로 보내!"
빠른 전원.
그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곡담종합병원까지는 30분.
하지만,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긴장성 기흉은 언제든 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까지 진행할 수 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김기훈 과장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기흉량도 많고, 가는 도중에 바이탈이 악화될 가능성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흉관이라도 넣고 보내면 안 될까요?"
"뭐? 흉관?"
내 말을 듣자마자, 과장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지금 여기에서 흉관을 누가 넣는다는 소리야. 우리 병원에 흉부외과 없는 거 몰라?"
그의 말은 사실이다.
이곳 곡담제일병원에는 흉부외과가 없다.
그렇기에 애초에 흉부외과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이곳으로 실려 오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 가슴 통증의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119에서 여기로 데리고 온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만한 환자가 아니었잖아. 아직 바이탈 괜찮을 때 빨리 다른 병원으로 보내!"
"하지만 30분이면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언제 악화될지 모르는데……."
"하아, 신 선생."
까닥까닥.
과장은 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더니 환자와 보호자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전원시켜."
"하지만 환자 상태가……."
"지금 그걸 누가 몰라? 환자 상태 안 좋은 거 모르냐고."
김기훈 과장.
그는 소위 말하는 무사안일주의자였다.
자신감이 넘치고 특이한 성격의 장풍 선생과 달리, 그는 평소에도 병원에서 조용하게 묻혀 지내는 편이었다.
그는 조곤조곤한 말로 나를 타일렀다.
"원래 이런 어려운 케이스일수록 흉부외과 전문의가 해결해야 되는 거야. 만약 우리 쪽에서 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
"자네야 한 달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면 그만이지만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덤터기 쓰는 거야. 응급실 망하는 꼴 보고 싶어?"
응급실이 망한다.
그 표현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엄청나게 컸다.
당장 저번 달에 옆 동네 응급실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듣지 않았던가?
과장의 스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프로토콜대로 흉부외과 술기 필요한 환자를 30분 거리로 전원시키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지금 바이탈도 아직 멀쩡하고."
"……."
"만에 하나 이송 중에 환자가 잘못된다 하더라도 우리 책임 아니야. 원칙대로 한 거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고."
툭툭.
그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사라지기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자네 혼자 다 책임질 자신이 있으면 튜브를 꽂든 뭐든 해 보든가. 난 분명 얘기했다, 바이탈 멀쩡할 때 빨리 전원 보내라고."
김기훈 과장은 그렇게 말한 뒤 처치실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혼자 남게 된 나는 망설여졌다.
‘어떻게 하지?’
나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쉬운 길.
어려운 길.
물론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과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지금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 보내는 것이, 그다지 비윤리적인 행동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쉬운 길을 택하면 환자의 리스크는 그만큼 커진다.
어쩌면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때, 근욱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속삭인다.
"야, 너 지금 또라이 같은 생각 하고 있지?"
"응?"
"너 눈빛이 딱 강남역 때 그 눈빛인데?"
근욱이는 나를 말리듯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야, 네 말대로 급한 환자면 트랜스퍼(transfer, 전원) 빨리 보내야지. 무슨 짓을 하려고? 너 체스트 튜브 고작 한 번 넣어 본 거 아니야? 여기 곡담이야! 여기서 네가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면 안 되지!"
그래.
이렇게 몇 초 고민하는 순간도 아깝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 지금은 빠른 전원이 답이야. 대신 이송하는 동안 내가 구급차에 타게 해 달라고 말하자. 과장님도 그 정도는 허락해 주겠지.’
나는 환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환자분, 지금 바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 준비하실게요."
"다른 병원이요?"
"예."
그러자 옆에 있던 보호자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아니, 그냥 여기서 치료받으면 안 돼요? 여기도 곡담에서 꽤 큰 병원이잖아요."
"저희가 흉부외과 선생님이 없어서……."
나는 보호자의 물음에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환자가 말했다.
"저, 그런데 선생님. 조금 전부터 숨이 이상하게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은데……, 헉, 헉."
그때.
띠잉― 띠잉―
알림이 울렸다.
갑자기 환자의 심박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