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07화 (107/241)
  • #107 여름 바다의 기연(10)

    ‘……왜 저렇게 잘해?’

    스윽― 사악―

    풍 선생의 손이 움직인다.

    니들홀더(needle holder)와 포셉(forcep)이 함께 움직이며, 정교하게 환자의 상처를 봉합해 나가기 시작했다.

    정확한 간격.

    적절한 깊이.

    바늘이 들어가는 각도.

    손동작 하나하나에 능숙함이 느껴진다.

    장인들의 손놀림이 그러하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와…… 적어도 수처(suture, 봉합) 실력만큼은 허풍이 아니었던 모양이네.’

    감탄이 나온다.

    게다가 속도도 빠르다!

    나는 옆에서 주의 깊게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풍 선생의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담아 두기 위해서였다.

    한편, 그 와중에도 풍 선생의 입은 변함없이 촐랑거리고 있었다.

    "우리 환자분은 정말 복받은 거야. 전국 어느 성형외과를 가도 이렇게는 못 꿰매 주니까."

    "네……."

    "만약 우리나라가 의사 실력대로 진료비를 책정하는 나라였다면, 이건 천만 원짜리 시술이라니까?"

    또 허세를 부린다.

    하지만, 좀 과장되긴 했을지언정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아직 미숙한 인턴인 나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의 솜씨는 단연 톱클래스였다.

    "컷(cut)!"

    "예."

    탁―

    나는 봉합사를 가위로 커팅했다.

    실의 종류와 봉합(suture)의 깊이를 고려하여, 매듭 위로 0.3cm 길이로 자를 수 있도록 집중했다.

    잠시 후, 풍 선생의 수처가 끝났다.

    연국대 응급실에서 보았던 그 어떤 성형외과 선생님들보다 완벽해 보였다.

    "자, 끝났어요."

    "감사합니다……."

    "하나도 안 아팠죠? 하긴, 마취부터 봉합까지 그렇게 완벽했는데 아팠을 리가 없지."

    풍 선생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한다.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다니…….

    환자는 대답 대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얼굴 상처가 어떻게 봉합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불안할 것이다.

    "4―5일 있다가 봉합 풀어야 하니까 동네 성형외과 꼭 찾아가시고. 아니면 여기 응급실 오시면 저희가 해 드릴 수도 있고."

    "예……."

    "내일 동네 성형외과 한 번 가시면,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도대체 어떤 엄청난 의사가 꿰매 줬냐고 하면서. 껄껄껄."

    풍 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호쾌하게 웃은 뒤, 장갑을 벗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야, 똘똘이. 소독 다시 한번 해서 드레싱 마무리해 드려라!"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무리는 내 몫이다.

    아직도 응급실에 풍 선생님을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처치실을 나서자마자 환자가 나를 붙잡고 물었다.

    "선생님. 이거 진짜로 잘 꿰매진 거 맞아요? 너무 잘됐다고만 하시니까 더 불안해서……."

    그야 못 미더울 만도 하다.

    풍 선생이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장해서 말을 했으니까.

    오히려 환자 입장에서는 신뢰가 안 갔던 모양이다.

    나는 환자의 이마를 자세히 살펴본 뒤 말했다.

    "봉합 잘됐어요. 실력 좋으신 선생님께서 꿰매 주셔서 다행이네요."

    <봉합>.

    당연한 말이지만, 실로 꿰맨다고 해서 다 같은 봉합이 아니다.

    당연히 봉합을 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자면…….

    단일결절 봉합(simple interrupted suture).

    매트리스 봉합(mattress suture).

    연속 매몰 봉합(continuous subcuticular suture).

    등등.

    상처를 봉합하는 의사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적절한 수처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가령, 내가 인턴 생활을 하면서 많이 보았던 것 중에 매트리스 봉합이라는 방법이 있다.

    실이 두 번 상처를 통과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조직 사이에 틈새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미용에 신경을 써야 하는 환자의 안면에는 부적절한 방식이다.

    그렇기에 풍 선생은 단일결절 방식으로 흉터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봉합했다.

    게다가 실의 굵기도 매우 얇은 것을 사용했으니, 봉합 자국도 최소화되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흉도 거의 안 남을 것 같네요."

    "정말요?"

    "예. 5일쯤 뒤에 실 제거하고, 피부접착제로 10일 정도 더 붙여야 할 거예요. 그 뒤로는 테이핑 하고, 자외선 신경 써 주시고, 연고 꾸준히 발라 주시고…… 그러면 흉터 최소화할 수 있어요."

    나는 환자가 걱정하지 않도록 상처 관리 스케줄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환자의 얼굴이 비로소 밝아졌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혹시 인터넷에 유명했던 강남역 스타……."

    "아닌데요."

    "이상하다. 잘못 봤나?"

    "네."

    모른 척해야지.

    나는 마무리 드레싱을 했고, 환자는 봉합을 무사히 잘 끝내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명의 환자를 보고 나서 응급실에 잠깐의 여유가 찾아왔다.

    "야, 똘똘이."

    스테이션에서 풍 선생이 나를 불렀다.

    또 어떤 허풍을 부리시려고…….

    본인 잘 꿰맨 거 생색내시려고 하나?

    "수고했다. 사탕 먹을래?"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사탕 봉지를 건넨다.

    인삼 사탕이다.

    아니, 이 맛없는 사탕은 어디서 자꾸 나오는 거야?

    어디 병원 안에 사탕이 열리는 나무라도 있는 건가.

    나는 떨떠름하게 받아 들며 말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맛없는 걸 어떻게 맛있게 먹냐? 그냥 빨리 처리해야 돼서 너희한테 주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스테이션 한구석을 가리킨다.

    커다란 종이 박스가 구석에 놓여 있다.

    처음에는 의료용품이라도 들어 있나 했었는데, 알고 보니 저 커다란 박스가 다 사탕이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사탕 봉지를 까며 부연설명을 한다.

    "가끔 풍 선생님한테 치료받은 환자들이 고맙다고 뭘 저렇게 싸 들고 와요. 특히 수처받고 나면 꼭 저렇게 선물을 싸 오시더라고."

    "명의를 알아보는 거지."

    "어휴, 좀 띄워 드렸다고 또 자기 자랑 시작이시다."

    간호사들이 꺄르르 웃었다.

    ‘장풍 선생님은 정말 기인이시네.’

    보면 볼수록 희한한 사람이다.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수처를 저렇게 잘할 줄이야!

    생긴 건 마초처럼 생겼는데 손이 의외로 섬세하다.

    연국대병원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수처를 어시스트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큰 감명을 받은 적은 없었다.

    ‘배우고 싶다.’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문득 어릴 때 봤던 무협소설 생각이 났다.

    주인공이 우연히 은둔고수를 만나 무공을 배우고 엄청나게 강해지는 이야기!

    어쩌면 이건 운명적인 만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왜."

    "수처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기회에 선생님께 수처를 좀 배우고 싶습니다."

    내 말에,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진지해진다.

    "나에게 수처를 배우고 싶다는 젊은이는 오랜만이군. 각오는 되어있나?"

    각오?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풍 선생은 낮은 목소리로 회상을 시작한다.

    "때는 바야흐로 20년 전…… 나는 스스로의 정신을 수련하기 위해 티베트로 여행을 떠났다. 의사로서의 실력이 정체된 것에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지."

    뭐지?

    갑자기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갑자기 티베트는 뭐고 승려는 뭐란 말인가.

    풍 선생의 진지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때, 때마침 설산에서 우연히 만난 노승려가 나에게 이 손기술을 비밀리에 전수해 주었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며……."

    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입니까?"

    "진짜겠냐? 뻥이지 인마. 무슨 영화도 아니고."

    젠장!

    아니나 다를까.

    또 허풍이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나는 맥이 빠져 어깨를 늘어트렸고, 풍 선생은 껄껄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야 인마. 수처가 무슨 게임 스킬인 줄 알아? 한 번 배운다고 갑자기 팍 실력이 늘어나는 게 아니야!"

    풍 선생의 말이 이어졌다.

    술기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게 된다.

    특히나 수처는 외과적 술기의 기본기 중의 기본기다.

    그렇기에, 의사들 중 외과의들은 평생에 걸쳐 수처 기술을 다듬고 사용하게 된다.

    "난들 처음부터 잘했겠냐? 쌍욕 먹고 싸대기 얻어맞고 정강이 까이고…… 그러다 보면 그냥 어느새 잘하게 되는 거야 인마."

    그러더니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표정이 일그러진다.

    "특히 나한테 모질게 대하는 인간이 있었지. 그 인간한테 참 많이 배우긴 했는데……."

    그러더니 혼자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며 말을 이어 간다.

    "에이, 잠깐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만. 아무튼 간에! 손은 정직하다. 그냥 많이 쓰다 보면 실력이 는다."

    풍 선생의 말이 맞다.

    <손은 정직하다>.

    하루아침에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왠지 고집이 생긴다.

    나는 재차 물었다.

    "그래도 좀 더 빠르게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열심히 배울 자신 있습니다."

    "네가?"

    "네."

    "뭐,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귀찮아."

    "예?"

    "내가 번거롭게시리 너한테 그런 걸 왜 가르쳐 주냐? 네가 알아서 연습해, 인마!"

    그렇게 말하며 풍 선생은 당직실로 향했다.

    ‘역시 쉽게 가르쳐 주시지는 않을 모양이네.’

    오기가 든다.

    이번 달 목표가 생겼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까지, 풍 선생에게 수처를 조금이라도 배워 갈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근욱이가 헐레벌떡 와서 말했다.

    "아까 그분 갔냐?"

    "응?"

    "이마 다쳤던 여자 환자분."

    "응, 좀 전에 응급실에서 나갔어."

    "아이 씨. 완전 내 스타일이었는데…… 번호라도 따려 했는데……."

    나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돌처럼 굳어서 말도 못 걸었을 거면서 번호는 무슨 번호?"

    "아니야. 진짜 용기 내서 말 걸어 보려고 했어."

    "그럼 지금이라도 얼른 뛰쳐나가서 물어보든가."

    "그…… 그럴까?"

    후다닥.

    근욱이는 응급실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근욱이는 시무룩한 발걸음으로 되돌아왔다.

    "물어봤어?"

    "아니."

    "왜?"

    "생각해 보니까, 방금 이마 꿰매서 정신없어 죽겠는데 갑자기 덩치 큰 의사가 번호 달라고 하면 무서울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근욱이의 목소리가 시무룩하다.

    묘하게 서글픈 듯한 말투에 웃음이 나온다.

    저번 미팅 사건 때도 느꼈던 건데, 근욱이는 은근히 여자들 앞에서 허당이다.

    어찌 보면 그만큼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는다. 곡담에서 한 달 지내면서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그래.

    너도 목표가 있구나.

    나는 <수처(suture, 봉합) 배우기>.

    근욱이는 <이성과의 만남>.

    그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가만있자…… 풍 선생님에게 수처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선물이라도 드려야 하나?

    앞으로 20여 일 정도 남았으니, 찬찬히 고민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찾아왔다.

    풍 선생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될 기회가.

    * * *

    며칠 후, 저녁 7시.

    따르르―

    응급실에 비치된 전화가 울린다.

    곧 응급 구조사가 전화를 받았다.

    "예. 체스트 페인이요? 지금 오고 있다구요? 예…… 알겠습니다."

    "에이 씨."

    과장이 짜증을 냈다.

    응급실에서 아까부터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꼭 퇴근 시간만 골라서 이렇게들 아파서 실려 와요. 아까 낮에는 별일 없더만."

    5분 후.

    119에서 알려 주었던 환자가 도착했다.

    그런데,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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