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여름 바다의 기연(8)
응급실 과장이 나를 힐긋 보며 말했다.
"진짜 결석 맞네?"
"예."
"이야…… 용케 한 번에 맞혔네. 보통 인턴들 어리바리해서 헛다리만 짚다가 도와 달라고 오던데."
과장은 내가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프라이머리(primary, 초진)로 환자 좀 봐 봤어? 어디 응급실 알바라도 해 봤던 건가?"
알바라니…….
무서운 소리를 하시네.
만약 그런 걸 하다 걸리면 나는 연국대에서 잘릴 것이다.
"아닙니다. CVA tenderness(늑골척추각 압통)이 저명해서 쉽게 맞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가장 빠른 비뇨기과 외래 잡아 주고, 잘 설명해 드려."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내 말을 듣고 난 환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요로결석이면 그…… 고추에 돌 생기는 거 아니에요? 거기는 안 아픈데?"
아닙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소변과 함께 배출되긴 하지만, 처음부터 성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결석이란……."
나는 찬찬히 설명했다.
소변이 만들어지는 신장(Kidney)에 돌이 생긴다.
소변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돌이 내려오다가, 중간에 어디 한 군데에 걸린다.
그 걸린 곳에서는 소변인 줄 알고 내려보내려, 요관 근육이 오버해서 수축운동을 한다.
그러다가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데, 그 고통은 엄청나다.
그래서 보통 응급실에 죽을 둥 살 둥 실려 오는 복통 환자 중에는 요로결석 환자가 제법 있는 편이다.
환자는 설명을 듣더니 그제서야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해야 돼요?"
"돌을 자연 배출시키거나, 체외에서 부숴서 빼내거나 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아아……."
"자세한 건 비뇨기과 선생님이 상담해 주실 거예요. 일단은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오후에 비뇨기과 외래 방문해 보세요."
그렇게 진료를 마쳤다.
환자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급실 문을 나섰다.
"이상하다…… 장염인 줄 알았는데…… 불닭볶음면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 글쎄, 아니라니까요.
나는 픽 웃었다.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라는 문장이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좋아. 첫 미션 클리어!’
뿌듯했다.
물론 끝이 아니었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응급 환자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근욱이와 나는 그때마다 환자들에게 달려가 초진을 진행했다.
"선생님, 머리가 아파요. 그냥 아프다고요. 빨리 해결해 주세요."
"아이고, 선생님.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어지러워서 눈을 못 뜨겠는데……."
"아까 저녁부터 가슴에서 뭐가 만져져요. 그래서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남자도 유방암에 걸린다면서요? 이거 유방암 맞죠? 제가 좀 여성형 유방이라……."
"선생님……."
정말 다양한 환자가 많다.
열 명의 환자가 있으면, 열 개의 증상이 있다.
우리는 그때마다 스무고개를 하는 기분으로 환자를 진료했다.
그중 압권은 근욱이가 진료하게 된 할머니였다.
"할머니, 어디가 아프세요?"
"아이고, 총각도 내 나이 돼 봐.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할머니가 근욱이에게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증상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셔야 되는데……."
근욱이가 난처한 듯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좀처럼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계속했다.
"그러고 보니 울 엄니도 허구한 날 아프다~ 아프다 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 이해가 되네. 일곱 남매 키우고 농사지으시느라 몸이 남아나질 않으셨지."
그러더니 별안간 눈물을 훔치며 근욱이의 팔을 붙잡았다.
"아이고, 왜 눈물이 나나 몰라."
"……."
근욱이는 병력채취(history taking) 과정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새 총각들은 옛날얘기는 잘 모르지? 내가 피난 때 이야기 해 줄까?"
"피난이요?"
"그래. 그때 내가 여섯 살이었는데 말야, 울 엄니가 나한테 쌀 담아둔 보따리를 손에 쥐여 주면서……."
할머니의 입에서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음씨 착한 근욱이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할머니의 인생사를 들어 주었다.
무려 한 시간이나.
그리고 나중에 과장에게 무진장 혼났다.
"야! 여기가 무슨 인생 상담소인 줄 알아? 무슨 할머니 인생 이야기를 한 시간이나 넘게 들어 주고 앉았어?"
그러자 근욱이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인생사가 너무 구구절절하고 슬퍼서……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된 나머지…… 크흡."
"얼씨구?"
과장은 커다란 덩치에 빨개진 코를 훌쩍이는 근욱이를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야, 저 할머니 매달 인턴 바뀌면 오셔 가지고 이야기보따리 풀어놓는 분이야!"
"아……."
"보건소에서는 본인 얘기 안 들어 주니까 여기 오시는 분이라는 거, 인계 못 받았어? 그러다 결국은 무릎 통증 약 한 달 치 받아 가시는 분이라고."
"다음 인턴한테는 꼭 인계하도록 하겠습니다."
근욱이의 넓은 어깨가 움츠러들어 작아 보였다.
잠시 후, 나는 근욱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응원해 주었다.
"할머니는 분명 좋아하셨을 거야."
"할머니 얘기 하지 마."
"왜?"
"생각만 해도 눈물 날 것 같단 말야. 크흡……."
하여간 마음 약한 녀석.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며, 우리의 곡담 응급실 첫날은 흘러가고 있었다.
* * *
새벽 2시.
응급실은 비로소 한산해졌다.
물론 아직도 몇몇 환자가 베드에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적절한 진단과 치료 계획이 세워진 채 퇴원을 앞둔 환자였다.
즉, 드디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타이밍이다.
"휴우."
우리는 숨을 돌렸다.
첫날은 문제없이 넘겼다.
근욱이가 할머니에게 붙잡혀서 쩔쩔맸던 것 말고는 특별한 해프닝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환자가 너무 많은데?’
이렇게 바쁜 곳이라고 했던가?
문득, 숙소 방문에 <웰컴 투 헬>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붙여진 듯한 메모였다.
근욱이도 마침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상하다. 작년 선배들 말로는 편했다고 했었는데…… 편하기는커녕 환자가 끝도 없이 밀려오는데?"
근욱이가 진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 우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이고. 선생님들 첫날인데 고생 많으셨네. 잠 오지요? 이것 좀 같이 드실랍니까."
성격이 좋아 보이는 응급 구조사가 우리에게 에너지 드링크 박스를 건네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가 드링크를 받아 들자, 응급 구조사는 허허 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응급 구조사.
이들은 의사 및 간호사와 함께 응급실에서 큰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인력이 부족한 응급실에서 다양한 일을 소화할 수 있는 응구사는 필수였다.
"하필이면 이번 달에 오셔서 고생이 많네요. 두 달만 일찍 오셨으면 이렇게까지 환자가 많지는 않았을 텐데."
"두 달이요?"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두 달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났다는 듯한 뉘앙스다.
"모르셨어요? 여기 곡담에서는 한동안 떠들썩했었는데……."
"무슨 말이에요? 뭐가 떠들썩해요?"
근욱이가 물어보자 응구사가 대답했다.
"지난달에 여기 곡담시에 있는 병원 하나가 응급실 문을 닫았어요. 거의 뭐 폐쇄당한 거나 마찬가지죠."
폐쇄를 당했다고?
응급실이 왜?
응구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같은 응구사가 권한을 넘는 진료보조를 계속한다고 시정 경고 먹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문 닫았나 봐요."
"아……."
우리는 탄식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각 의료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하지만 여기 곡담시는 그것이 지켜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유?
당연히 부족한 인력 때문이다.
응구사든, 간호사든, 우리 같은 의사이든…….
각자의 맡은 일 외에도 커버해야 할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제도와 현실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환자들이 이쪽으로 몰리는 거군요."
"당연하지요. 몇 개 없던 응급실 하나가 폐쇄당하니까 어찌 되겠어요? 이쪽 응급실로 죄다 몰리지."
"아하."
"하여간 지방병원 현실도 모르는 인간들이 책상머리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콱 그냥 xxx……."
응급 구조사의 입에서 갑자기 육두문자들이 튀어나온다.
욕설이 찰진 것을 보니 곡담 시민이 맞는 것 같다.
그는 문득 우리를 의식하며 다시 허허하고 웃었다.
"아이고. 요놈의 입이……. 제가 쌤들 앞에서 실례를 범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에이, 아닙니다. 하하."
"하여간 인턴 선생님들이라도 이렇게 와 주시니까 정말 다행이죠. 앞으로 한 달간 궁금한 거 있으면 저희한테 다 물어보세요."
그러자 근욱이가 마침 궁금한 게 있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장풍 선생님은 여기 지역 조폭들을 왜 이렇게 잘 알아요? 혹시 전직 조폭 출신인가요?"
"조폭이요? 푸하하."
응급 구조사는 호쾌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선생님, 순 허풍쟁이입니다."
"예?"
"무슨 말인지는 금방 알게 될 겁니다. 하여간 보면 볼수록 웃기는 양반이에요."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우리는 며칠 동안 근무를 하며 비로소 알아 가게 되었다.
* * *
리얼 월드(Real world).
책상머리가 아닌, 실제적인 의료 상황을 뜻한다.
의사들이 현장의 실제 상황을 강조할 때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다.
여기 곡담시, 리얼 월드의 응급실에는 세 명의 과장님이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은 평범했다.
우리가 연국대에서 흔히 보던 의사 선생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직 유독 한 사람만이 유니크했다.
장풍.
그는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리얼 월드에 걸맞은 야생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의사.
대체 정체가 뭘까?
사투리를 쓰지 않고 서울말을 쓰는 걸 보니, 분명 이 지역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간호사들도, 응급 구조사들도 하나같이 그를 좋아했다.
"풍 선생님 보고 싶네. 나랑 스케줄이 안 겹쳐서 못 본 지 사흘은 된 거 같은데."
"풍 쌤한테 보호자 설명 좀 부탁드려야겠다. 말이 안 통하네."
"풍 선생님 어디 계세요?"
곡담 응급실의 아이콘이랄까?
모두가 위급할 땐 그를 찾았다.
그리고 마치 동네 옆집 아저씨를 대하듯 격식 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멋있게 활약하는 순간은, 난동을 부리는 환자를 제압할 때였다.
예를 들면.
"딸꾹…… 나 여길 왜 데리고 온 거야!"
와장창!
물건이 쏟아진다.
술에 취해 응급실에 실려 와 헛소리를 하며 난동을 부리는 환자가 나타났다.
곡담의 응급실에는 이런 환자가 은근히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간호사들은 별로 당황하지도 않고 풍 선생을 불렀다.
"풍 선생님!"
마치 밤하늘에 박쥐 모양 조명을 띄우는 것처럼 구조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어김없이 풍 선생이 등장한다.
"신성한 응급실에서 누가 또 난동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