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여름 바다의 기연(5)
"신성한 응급실에서 누가 난동질이야? 엉?!"
버럭!
엄청난 저음의 목소리다.
마치 바닷가의 뱃고동 소리처럼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응급실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새로 나타난 남자를 쳐다보았다.
중년의 남자다.
대략 40대 후반쯤 되었을까?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
꽤나 공들여 기른 것 같은 터프한 수염.
정돈되지 않은 곱슬머리 장발.
의사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록커 가수나 프로레슬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독특한 외모였다.
<응급의학과 장 풍>
그의 가운에 수놓인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장풍이라니…….
외모부터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는데, 이름마저도 범상치 않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인계장에 적혀 있던 <장풍>이라는 이름이 별명이 아니라 실명이었어?’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인턴들 사이에 공유되던 인계장에 이렇게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장풍 선생님>
: 곡담 응급실의 레전드
: 맹수 조련사
: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리얼 상남자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갑자기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뭐야?"
택시 아저씨가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풍 선생은 흰 가운을 입은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나 의사인 거 보면 몰라? 그러는 댁이야말로 뭐길래 병원에서 큰 소리야!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뭐…… 뭐? 양아치?"
택시 아저씨가 울컥 화를 낸다.
그러더니 위협적으로 팔을 걷어붙인다.
그러자 셔츠 속에 감추어져 있던 무시무시한 호랑이 문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옴마나 세상에."
"아이구 무서워라."
응급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죽인다.
몇몇 나이 든 환자들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피하기도 했다.
그러자 택시 아저씨의 표정이 기세등등해진다.
"뭐, 양아치?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여 줄까? 병원에서 피바람 한번 일으켜 줘?"
택시 아저씨가 사나운 표정으로 말했다.
희번덕거리는 눈빛에는 귀기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풍 선생은 겁먹기는커녕 피식 웃었다.
"아니, 삐쩍 마른 팔은 갑자기 왜 걷어붙이고 난리야. 병원에 문신 자랑하러 오셨나 봐?"
홰액―
풍 선생은 갑자기 손을 뻗는다.
그러더니, 환자의 팔목을 덥석 붙잡고 문신을 들여다본다.
워낙 거침없는 행동이었기에, 택시 아저씨는 저항할 틈도 없이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오~ 호랑이 문신? 돈 좀 쓰셨나 봐. 자랑할 만하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그나저나 왕년에 백호파셨어? 영춘이는 요새 빵에서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그러자 당황한 택시 아저씨가 발끈하며 외친다.
"아니 이 양반이…… 어디서 대부님 이름을 함부로 들먹여. 영춘 형님이 댁 친구야?"
"친구면 어쩔 건데?"
"뭐?"
"백호파 2대 대부 김영춘이. 주문시장 쌍칼 정창동이. 평화동 이쑤시개 이팔석이. 다 나랑 호형호제하는 사이인데."
풍 선생이 몇몇 이름을 댄다.
그러자 택시 아저씨의 안색이 하얘진다.
잘 모르긴 해도, 저쪽 어둠의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이름들인 모양이다.
풍 선생의 말이 이어진다.
"그 양반들 배때기에 칼 맞고 실려 왔을 때 한 땀, 한 땀 꿰매 준 게 바로 나야, 이 사람아."
"……."
"생명의 은인이랍시고 아직도 명절 되면 꼬박꼬박 연락 온다고. 형님 형님 하면서."
풍 선생은 그의 소매를 다소곳이 정리해 주었다.
택시 아저씨는 말문이 막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어느덧 풍 선생이 뿜어내는 당당한 기운에 압도되어 주눅이 들어 버린 듯했다.
"그 양반들 피 질질 흘리는 와중에도 병원에서 소란 피운 줄 알아? 천만에. 오히려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했었지. 그런데 요새 조직원들은 교육이 영 잘못됐는지 예의가 없네?"
"아니 그게……."
"요새 백호파 기강이 예전 같지 않은가 봐?"
"……."
"어허, 이거 안 되겠네. 아랫사람들 관리 좀 확실히 하라고, 윗선에 전화 한 통 넣어 드려?"
"아…… 아닙니다!"
택시 아저씨는 어느덧 차렷 자세가 되었다.
조금 전에 난동을 부리던 사람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지금 우리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이게 곡담 응급실 레전드의 위엄인가?
마치 능수능란한 맹수 조련사를 보는 듯하다.
장풍.
그는 이름만큼이나 기운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많이 보아 왔던 전형적인 엘리트 이미지와는 결이 달랐다.
그는 피식 웃으며 택시 아저씨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아저씨.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치료받고 갑시다. 문화 시민으로서 교양은 지켜야 할 거 아뇨?"
"예…… 예!"
꾸벅―
택시 아저씨는 90도로 고개를 숙인다.
이제 호랑이가 아니라 한 마리 순한 양이 된 것 같다.
잠시 후 풍 선생은 환자를 살펴본 뒤 브레인(brain, 뇌) CT 처방을 냈고, 택시 아저씨는 조용히 CT실로 향했다.
"쯧…… 걷는 거 보니 멀쩡하구만. 왜 그렇게 소란을 피운 거야? 저 환자 누가 데려왔어?"
풍 선생은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에는 우리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너넨 뭐냐?"
"안녕하세요! 이번 달 인턴들입니다!"
"인턴?"
"예!"
근욱이도 덩달아 긴장했는지, 바짝 얼어서 대답했다.
"인턴 주제에 누가 응급실에 너희 맘대로 환자 데리고 오랬냐? 여기가 무슨 동네 쌈박질한 사람들 뒤치다꺼리하는 곳이야? 엉?"
풍 선생이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동기들은 그의 기에 눌려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의식이 뚜렷해 보이지만, 머리 외상 후에 2분 정도 의식을 잃었던 환자입니다."
내 말에, 풍 선생은 내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그래서?"
"외상으로 인한 EDH(epidural hemorrhage, 경막외 출혈)의 경우 간혹 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신경학적 징후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자 풍 선생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오. 루시드 인터벌(lucid interval)은 어디서 들어 봤나 보지?"
루시드 인터벌.
한국어로는 <의식 청명기>.
처음 의식 소실 후, 잠시 정상처럼 보이다가 다시 갑자기 의식이 악화되는 것을 말한다.
뇌 안에서 천천히 출혈이 진행하면서 다시 의식 소실에 빠지게 되는 현상이다.
장풍 선생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인턴 주제에 제법 똘똘하네. 너 이름이 뭐냐?"
윽…….
시선이 부담스럽다.
갑자기 코앞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니 얼굴에 구멍이라도 날 것 같다.
나는 슬쩍 얼굴을 뒤로 빼며 말했다.
"신선한입니다."
"뭐?"
"신 선 한……."
"장난치지 말고 인마. 생선도 아니고 채소도 아니고. 사람 이름이 어떻게 신선한이야?"
뭐야.
자기 이름은 장풍이면서?
누가 누구를 이름으로 놀리나 싶었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간신히 참았다.
"잠깐만. 신선한이라……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이름을 들어 본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풍 선생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주먹으로 손바닥을 짝 치고 말했다.
"야, 기억났다! 너 혹시 뉴스 나왔던 놈이냐? 예전에 강남역 한복판에서……."
아무래도 나에 대한 소문은 곡담까지 널리 퍼져 있던 모양이다.
"……보도블록 위에 환자 옷 벗겨 놓고 주삿바늘로 심장 뚫어 버렸다며. 맞냐?"
아니, 잠깐만.
그렇게 표현하니까 너무 과격하잖아!
그리고 정확히는 심장이 아니라,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낭막이라고!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나는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맞습니다."
그러자 의외의 반응이 이어졌다.
처억.
갑자기 풍 선생이 내 어깨를 짚더니 씨익 미소를 지은 것이다.
"마음에 든다!"
"예?"
"자고로 의사라면 화끈하고 터프한 맛이 있어야지. 간만에 마음에 드는 인턴이 내려왔구만. 좋아, 좋아!"
화끈, 터프?
그게 이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의사의 기준인 건가?
여태까지 연국대에서 보았던 선생님들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정말 여러모로 특이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잉―
그때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중년 여자 간호사 선생님의 째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지금 거기서 뭐 해요? 당장 봐주셔야 되는 환자가 한 트럭 쌓였는데!"
"거, 좀 기다리라고 하세요."
"빨리 좀 오세요. 진료 늦어지면 환자한테 욕먹는 건 저희들이란 말이에욧!"
"아, 귀 따가워 죽겠네!"
"저는 목 아파욧!"
그렇게 서로 목소리를 높인다.
이 또한 낯선 광경이었다.
연국대병원은 보통 의료진들 사이가 좀 더 격식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곳은 뭐랄까…….
흡사 야생 같다.
좋게 말하면 가족적인 분위기인 것 같기도 하고.
"하이고. 귀에 피 나겠네. 금방 갈게요. 가면 되잖습니까!"
풍 선생은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귀를 후비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야. 너희들 내일 아침부터 근무지? 가서 잠이나 좀 자 둬라. 어차피 밤새 쉬지도 못하고 쌔빠지게 일할 텐데."
나는 우리 네 명을 대표하여 그에게 꾸벅 인사했다.
"예, 과장님.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얌마. 나는 내일 비번인데 뭘 내일 다시 봐? 언제 볼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수고하고."
풍 선생은 그렇게 말한 뒤 응급실 안쪽으로 걸어가며 혼잣말을 한다.
"어디 보자. 지금 당장 봐야 될 환자가 7명……? 10분 안에 해결하고 밥 먹으면 되겠구만!"
나는 그의 말에 한 번 더 당황해 버렸다.
7명의 환자를 10분 만에 본다고?
곡담시 환자들은 다들 나이롱 환자들이야? 아니면 이 사람 특유의 허풍인가…….
하여간 독특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병아리들!"
홰액―
그는 응급실 안쪽으로 사라지기 전, 우리에게 무언가를 포물선으로 던졌다.
타악.
근욱이가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앞으로 한 달 정신 빠짝 차리라고 주는 선물이다. 웰컴 투 곡담!"
풍 선생의 말에 우리는 물건을 확인해 보았다.
사탕 봉지였다.
그것도 어르신들 입맛에 맞을 것 같은 인삼 사탕.
봉투 겉면에는 ‘곡담 명물’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인다.
"곡담에 인삼이 있어?"
"나도 몰라."
근욱이와 소담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고, 연서는 깔깔대며 웃었다.
"와, 진짜 성격 특이한 선생님이네요. 앞으로 곡담 생활 재밌어질 듯!"
글쎄다.
과연 재밌기만 할까?
어쨌거나, 적어도 곡담에서의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하게 흘러갈 것은 확실해 보인다.
* * *
잠시 후.
우리는 직원분의 안내를 받고 1층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끼이익―
우리는 목조로 되어 있는 숙소 문을 열었다.
그러자 경첩에서 마치 호러 영화 효과음 같은 소리가 난다.
"우와, 여기 뭐야?"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같이 눈이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