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여름 바다의 기연(4)
나는 액셀을 밟았다.
부웅!
곧 택시가 휘청대며 출발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 안에서 경고 알람이 울린다.
띠잉― 띠잉―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소담이가 깜짝 놀랐다.
"선한아.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제대로 운전하고 있는 거 맞아?"
아, 맞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풀었구나.
젠장, 정신없어 죽겠네!
가뜩이나 초보 운전인데 상황이 급박하니 평정심을 잃게 된다.
내가 얼른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자, 뒷좌석에 있던 연서가 미심쩍은 듯 말했다.
"선한 오빠, 운전할 수 있는 거 맞아요?"
"아마도."
"아마도라니……."
다들 긴장한 얼굴로 안전벨트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초보 운전이긴 한데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 없잖아. 일단 소담이는 응급실에 전화 좀 해 줄래?"
"응, 알았어!"
재정비를 한 뒤,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곧 조수석에 앉은 소담이는 곡담제일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 여보세요? 응급실이죠? 저희 LOC(Loss Of Consciousness, 의식 소실) 3분 정도 있었던 환자 있어서 그쪽 응급실로 가고 있어요, 지금 GCS score는 13―14점 정도 될 거 같구요……."
소담이는 응급실 의료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동안 나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곡담의 시내로 진입했다.
한편, 뒷좌석에서는 연서와 근욱이가 계속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이 아저씨 괜찮을까?"
"뭐,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심하게 다친 것 같지 않은데요."
"아니, 그나저나 파견 첫날부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요. 벌써부터 이번 달 환자 운이 심상치 않을 거라는 징조인가?"
나는 운전을 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머리 안에 피가 고이고 있을지도 몰라, 래터랄라이징 사인(lateralizing sign, 편측 징후) 보이는지 계속 체크해 봐."
편측 징후.
뇌에 문제가 생겨서, 사지 중 한쪽이 반대쪽에 비해 감각과 운동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곧 두 사람은 환자의 사지를 눌러 가며 반응을 체크했다.
한편, 이 와중에도 택시기사 아저씨는 횡설수설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있다.
"내가 씨벌, 왕년에 말이야. 청룡파 놈들 대가리를 콱! 몇 개나 찍었는데…… 내가 10년 젊다. 그러면 이겼어…… 팍 씨……."
그러자 연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GCS 점수에서 verbal(대화 항목) 3―4점일 것 같은데요? 헛소리에 이상한 단어만 자꾸 말하셔요."
"이분 말투가 원래 그런 거 아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다행히 사지 감각이랑 움직임은 멀쩡하신 것 같아요."
나는 연서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약간의 혼란스러운(confused) 언어 사용에, 사지 감각은 멀쩡하다?
그렇다면 위험한 정도는 아닐지도 모른다.
의식을 잃었다고 모두 머리에 심각한 외상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방심하기는 이르다.
계속 몽롱한 정신으로 헛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절대 좋은 징후는 아니다.
‘저러다가 갑자기 다시 쓰러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게 내가 환자에게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음성이 울려 퍼졌다.
<5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
우회전?
젠장!
정신이 없어서 차선 변경이 너무 늦어 버렸다.
나는 급하게 우측 방향등을 넣었다.
깜빡― 깜빡―
하지만 나는 곧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게 되었다.
곡담시의 사전에 양보 운전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선한아, 아무도 안 끼워 주는데?"
쓔웅― 쓔웅―
차들이 무심하게 쌩쌩 지나간다.
마치 도로 위에서 단체로 레이싱을 하는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빨라?
누가 성격 급한 곡담 사람들 아니랄까 봐.
그때, 나는 문득 인터넷에서 주워들었던 농담 같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웬만한 베테랑 드라이버들도 애를 먹는다는 곡담의 도로.
나 같은 애송이 초보 운전자가 감히 끼어들기에는 너무나도 거칠었다.
그때 근욱이가 무언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듯했다.
"잠깐 기다려 봐. 나에게 방법이 있어!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건데……."
지잉―
근욱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뒷좌석의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두꺼운 팔뚝을 창밖으로 내밀더니, 두 손으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저기요, 좀 끼워 주세요!"
<대환장 파티>라는 게 이런 걸까?
나는 운전하느라 정신이 없다.
근욱이는 창문을 열고 도로에 열심히 사인을 보내고 있다.
연서는 환자를 케어하는 중이다.
소담이는 전화를 붙들고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환자는 계속 횡설수설 헛소리를 하고 있다.
곡담에 도착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첫날부터 아주 판타스틱하다.
"씨벌, 아까 그놈 데리고 와…… 칼로 확 그냥…… 확 그냥!"
헛소리도 참 무시무시하게 한다.
환자 김일춘.
그는 8월에 내가 파견지에서 만난 첫 번째 환자였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지만 그는 곡담에서의 여정에 마지막까지 진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기도 했다.
* * *
부앙―
얼마나 액셀을 밟았을까.
우리는 곧 병원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곡담제일병원 500m>
‘좋아, 거의 다 왔다.’
곧, 색이 바랜 간판이 눈에 띄었다.
< 곡 담 제 일 병 원 >
얼마나 오래된 병원인지는 모르겠지만, 간판에서부터 병원의 연륜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병원의 역사와 함께한 것만 같은, 멋지게 하늘로 뻗어 자란 소나무가 보였다.
"도착했어!"
끼이익!
나는 병원 응급실 앞에 정차했다.
교통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옆에 앉은 소담이는 멀미가 났는지, 아직도 도어에 달린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다.
"소담아. 괜찮아?"
"으응, 이번 달은 병원에만 있어야겠어…… 무서워 가지고 다시는 차 타고 곡담 시내 못 갈 거 같은데……."
"어쨌든 도착했으니, 환자 데리고 응급실로 들어가자."
곧 근욱이가 환자의 몸을 들다시피 하며 환자의 팔을 끼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잉―
문이 열린다.
전반적으로 회색 톤의 응급실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도착한 응급실의 첫인상은 허름하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리모델링한 연국대 응급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연국대병원에서 대한민국 최고 시설을 보다가 이곳에 오니 적응이 잘 안된다.
웅성웅성―
얼핏 보아도 꽤 많은 환자들이 이미 베드를 채우고 있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대기실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다들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어 시장 바닥이 따로 없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때, 하늘색 반팔 유니폼을 입은 응급 구조사 남자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와 물었다.
"좀 전에 전화로 연락한 환자입니다. 헤드 트라우마(head trauma, 두부 외상) 환자인데요……."
"아, 이쪽으로 오세요."
응급 구조사는 바로 알아듣고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그가 가리키는 곳은 응급실 안이 아니라 대기실의 한쪽 구석이었다.
"지금 순번이 많이 밀려서 베드가 없거든요. 일단 간단한 검사는 이쪽에 앉아서 하실게요."
우리는 택시기사 아저씨를 대기실 소파에 앉혔다.
곧 응급 구조사는 환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자,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기 어떻게 오셨고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겠어요? 지금 두통이 있지는 않으시고요?"
그동안 나는 응급실 안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환자는 많고, 의료진은 적다.
간호사는 몇 명 보이지도 않고, 응급 구조사도 단 2명만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베드에 누워 있는 환자가 저렇게 많은데, 겨우 이 의료진 숫자로 모두 케어한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물론 오늘은 8월의 첫날이니 인턴들의 공백 기간이긴 하다.
그렇다고 쳐도, 간호사와 응급 구조사의 수가 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다.
‘확실히 지방이라 일손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이런 환경이 낯설지는 않다.
내가 예전에 실습했던 병원도 환경이 열악한 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반년 사이에 나도 연국대병원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잠시 후.
응급 구조사는 환자로부터 간단한 병력채취를 한 뒤 우리에게 말했다.
"일단 순번대로 저희 과장님이 봐주실 거예요. 당장 신경학적 징후는 없어 보이시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구사(응급 구조사)분의 말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경험 많은 간호사나 응구사는 실전에서 초짜 의사보다 더 낫다고 들었는데, 이분이 바로 그런 분인가 싶었다.
"보호자 중 한 분만 남고 밖에서 기다리세요."
보호자 한 분?
응구사의 말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저희가 환자를 모시고 오긴 했는데, 보호자가 아니라 8월에 일할 인턴들입니다."
"예? 인턴 선생님들요?"
응급 구조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파안대소를 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이야, 첫날부터 신고식 제대로 치르시네요. 오느라 고생하셨죠?"
"사실 운전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하하, 이 동네가 좀 그렇죠. 여기 어르신들이 성격이 불같아서 운전도 험하고, 이렇게 동네 막싸움도 자주 일어납니다."
그때, 뒤쪽에 앉아 있던 택시 아저씨가 벌떡 일어난다.
그러고는 타격음이 들렸다.
따악!
갑자기 택시 아저씨가 응급 구조사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린 것이다.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움직임이 날쌔다.
"악!"
"뭐 이씨…… 동네 막싸움? 지금 누굴 동네 양아치로 아나. 내가 애들 장난하다가 온 것처럼 보여?"
와락!
어느새 멱살까지 부여잡는 택시 아저씨.
그러자 응급 구조사가 당황하며 이야기한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선생님…… 이 멱살 좀 놓고 얘기하시죠."
지켜보던 우리도 기겁했다.
설마 여기서 또 싸움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문득 예전에 연국대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생각났다.
물론 그때는 소담이의 활약으로 저지하긴 했었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
자칫하면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저씨. 그 손 놓으세요!"
"여기서까지 이러시면 안 되죠!"
나와 근욱이는 택시 아저씨의 손을 떼어 놓으려 막 달려들려 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동작 그만!"
저벅, 저벅.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흰 가운을 입은 사내가 걸어왔다.
남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중년의 얼굴이다.
그가 묵직한 바리톤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신성한 응급실에서 누가 난동질이야? 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