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여름 바다의 기연(3)
부아앙!
택시가 도로를 질주한다.
댄스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택시 아저씨는 조수석에 앉은 근욱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서울 양반 몸 좋으시네. 운동 좀 하셨나 배요?"
"예. 조금……."
"이야. 팔뚝이 대갈통만 하네!"
아저씨는 운전을 하다 말고 한 손으로 근욱이의 팔뚝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고개를 뒤로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본다.
"아니 근데 뒷좌석에 앉아 계신 아가씨는 연예인 아닙니까? 연예인 맞지요? 너무 예뻐서 아까 담배 피우다 말고 눈깔 튀어나올 뻔했네."
그러자 연서가 얼굴이 파래져서 앞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기사님. 앞에 신호 좀……!"
"하하하. 걱정일랑 관두쇼. 이 직업 20년째입니다. 곡담 시내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지요."
그렇게 말하며 핸들을 닭목 잡아 돌리듯 돌린다.
홰액!
우리의 몸이 동시에 한쪽으로 쏠린다.
택시는 급격한 코너링을 하면서 좌회전 신호 막차를 탄다.
"그나저나 이 동네 오셨으면 물회는 한번 먹고 가야죠. 제가 아는 가게가 있는데 물회가 아주 죽여…… 아니 씨부랄 깜짝이야!"
빠아앙!
끼이이이익!
갑자기 우리가 탄 택시는 진한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미끄러졌다.
쿠웅!
그와 동시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우리도 이마를 박았다.
"아야야……."
정신이 혼미하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곡담 롤러코스터인가?
다행히 접촉 사고는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살펴보니, 맞은편에서 우회전으로 진입하던 차와 부딪힐 뻔했던 모양이다.
"야 이 새끼야!"
지이잉―
택시 아저씨는 조수석의 창문을 내리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맞은편 승용차에서도 고성이 돌아왔다.
"뭐요!"
"운전 똑바로 해!"
"댁이나 눈깔 똑바로 뜨고 댕기쇼!"
"뭐? 너 몇 살이야 이 새끼야!"
"너보다 어려, 이 새끼야!"
와, 참신하다.
나이 공격을 저렇게 되받아칠 수도 있구나.
곧 택시 아저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한다.
"손님들 잠깐만 계쇼. 내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혼쭐을 내 줘야지."
그렇게 말하며 운전석의 문을 덜컥 열고 내린다.
으응?
지금 여기 도로 한복판인데?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택시기사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야, 나와."
"뭐야. 해 보자 이거요?"
덜컥―
곧 맞은편 승용차에서도 민머리에 나시 티를 입은 남자가 문을 열고 내린다.
그런데…… 저 사람도 몸에 문신이 있다.
얼핏 보더라도 몸통을 화려하게 가로지르는 문신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이번에는 용 문신이다.
환장하겠네.
"아저씨, 그냥 가던 길 가쇼."
"너 아까 뭐라고 했냐?"
"아, 험한 꼴 보기 싫으면 가던 길 쭉 가시라고."
호랑이 문신 VS 용 문신.
자존심 강한 두 아저씨의 대결이 시작된다.
저런 걸 용호상박이라고 하던가?
한낮의 도로 한복판에서 이글대는 눈빛으로 기 싸움을 펼친다.
우리는 그 사이에 끼어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택시 안에서 숨죽여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야, 저러다가 뭔 일 나는 거 아냐?"
"무서워……."
"내가 말했지? 곡담 무서운 동네라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말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금방이라도 치고받을 것 같은데……."
"어, 친다!"
퍼억!
선제공격은 택시 아저씨 쪽이었다.
돌연 손바닥을 펼쳐 상대의 뒤통수를 냅다 벼락처럼 후려갈긴다.
마치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가 발톱을 휘두르는 듯한 매서운 일격!
무림고수 못지않은 일격필살의 장법에, 나시 티 남자의 상체가 푹 하고 꺾인다.
"어른 보면 공경할 줄 알아라, 어린놈의 새끼야."
그때, 나시 티의 몸이 움직였다.
우리는 놀란 눈으로 나시 티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저건…….
플라잉 니 킥?
마치 바다에서 한 마리의 용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나시 티의 무릎이 허공을 날았다.
"어억!"
퍼억!
그의 무릎은 택시 아저씨의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올백으로 넘긴 아저씨의 머리카락이 순간적으로 흩날릴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기습적인 공격을 받은 택시 아저씨는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아저씨. 나이 잡수셨으면 신사답게 행동하쇼."
퉤.
그렇게 나시 티는 침을 뱉고 사라졌다.
이것이 곡담의 위엄인가?
첫날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 끝난 거요?"
"비키쇼!"
"싸움 끝났으면 길 막지 말고 좀 이동합시다!"
빠아앙!
뒤쪽에서 경적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치 이 정도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한 반응이다.
곡담 사람들의 전반적인 성격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반응이 없다.
택시 아저씨는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우리 넷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야, 택시 아저씨 안 일어나는데?"
"죽었나?"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멍충아!"
"아까 니 킥에 머리를 좀 세게 맞은 것 같긴 했는데……."
"잠깐만요. 제가 보고 올게요."
가장 바깥쪽에 앉아 있던 연서가 잽싸게 내려서 아저씨를 살피더니 외쳤다.
"LOC(loss of consciousness, 의식 소실)예요!"
뭐라고?
우리는 기겁하며 동시에 택시에서 튀어나왔다.
열정의 도시 곡담.
첫날부터 일진이 심상치가 않다.
연서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택시기사 아저씨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만에 하나, 환자의 심장이 멈춰 버린 건 아닌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나도 뒤따라 내려서 택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맥박은?"
"맥박은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심박수는 70―80 정도 될 거 같은데, 헤드 트라우마(head trauma, 머리 외상)니까……."
"일단은 먼저 ABC!"
나는 연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응급실에서 배운 기본 중 기본.
A ― airway (기도 확보)
B ― breath (숨 쉬는 것 확인)
C ― circulation (맥박 등의 혈액 순환 확인)
ABC는 모든 외상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확인 절차다.
‘기도부터 확보하자.’
나는 양손으로 환자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엄지를 입술에 넣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도록 했다.
일명, Jaw―thrust maneuver.
의식 소실 상황에서 환자의 혀가 말려 들어가 기도(airway)를 막지 않도록 턱을 당겨 기도를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축구 경기장에서 헤딩 경합 중에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잠시 잃는 선수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때에도 가장 먼저 행해져야 할 것은 바로 이렇게 기도를 확보하는 일이다.
"호흡은 문제없지?"
"그러네요."
다행히 택시기사 아저씨는 숨을 잘 쉬고 있었고, ABC 확인을 금세 끝낼 수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웅성대며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호흡이 멀쩡하다고 방심하면 안 돼. 분명 무릎으로 머리를 심하게 타격당했어.’
그냥 가벼운 동네 싸움 아니냐고?
이런 걸로 충분히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다.
짧은 찰나지만 내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갔다.
‘의식 소실(loss of consciousness)을 동반한 외상성 뇌 손상(traumatic brain injury).’
물론 단순한 뇌진탕으로 끝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머릿속에 혈종이 차오르며 심각한 신경학적 후유증을 만들 수도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런 환자들을 많이 봤으니까.’
지난달 신경외과 인턴을 하면서, 뇌의 혈종으로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받은 수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출혈로 생긴 혈종(hematoma)이 뇌 실질(brain parenchyma)을 누르면서 망가뜨리기 전에, 구멍을 만들어 감압하는 수술이었고 모두 초응급 수술이었다.
‘뇌 손상 환자들은 치료가 늦어지면 안 돼!’
그때 소담이가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켜고 다가왔다.
"퓨필 리플렉스(pupil, 동공반사)를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동공반사(pupil reflex).
우리 인간의 눈의 동공 크기는 빛의 밝기에 의해 조절된다.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여 망막에 도달하는 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한 것인데, 이 과정은 뇌에서 관리한다.
브레인(brain, 뇌)이 손상을 받아 문제가 생기면 양쪽의 동공반사가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뇌 손상의 여부를 알 수 있는 간단하고 빠른 검사로 동공반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퓨필 리플렉스는 양쪽 다 프롬프트(prompt), 사이즈도 정상처럼 보이는데……."
소담이가 불빛을 환자의 양쪽 눈에 비추며 말했다.
나는 아저씨를 흔들어 불러 보았다.
"아저씨, 정신 차려 보세요!"
아저씨는 반응이 없었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서, 브레인 CT 찍어 봐야 될 것 같아!"
브레인 CT는 빠를수록 좋다.
119 구급차가 오는 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가 이 아저씨를 직접 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면허 있는 사람?"
"여기 의사면허 없는 사람이 어딨어."
"멍충아, 운전면허 말야!"
소담이와 근욱이가 투닥댔다.
공교롭게도 둘 다 운전면허가 없었다.
연서의 얼굴이 하얘졌다.
"저 운전면허 있기는 한데…… 핸들 잡아 본 지 백만 년 됐어요! 아빠 차 운전하다가 사고 낸 이후로는 운전해 본 적 없어요."
"내가 할게!"
나는 운전대를 잡기로 마음먹고 나섰다.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래도 네 명 중에서 가장 최근에 운전대를 잡아 본 사람이 나니까.
‘의사국가고시 끝나자마자 면허를 따 놓은 게 진짜 다행이네.’
나는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앞으로 15분 거리에 우리가 가려던 곡담제일병원이 있다.
"일단 아저씨를 차로 옮기자!"
근욱이가 아저씨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나는 발 쪽을 잡고 아저씨를 차 뒷좌석에 실으려 움직였다.
그때, 택시기사 아저씨가 눈을 갑자기 번쩍 떴다.
"뭐다냐. 인생무상, 해가 뜨면 까치가 우는 것 아니겠어?"
약간은 사리분별력이 떨어져 보이는 듯한 말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큰형님, 저도 곧 뒤따라가려는 모양입니다. 더러운 청룡파 놈들……."
"손발 다 움직이실 수 있겠어요? 이거 느껴지시죠?"
양쪽 팔다리를 꼬집으며 감각이 대칭적으로 잘 느껴지는지를 체크했다.
"뭐야. 왜 내 택시 운전대를 뺏어 가는 거야? 이거 놔, 이 자식들아!"
다행히 아저씨는 사지의 감각과 운동신경에 이상 소견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의식을 잠시라도 잃었던 환자이기에 그냥 운전을 하게 둘 수는 없었다.
"아저씨 지금 쓰러지셨다 일어나신 거예요. 병원 가서 몇 가지 검사 좀 해 봐야 돼요."
운전석으로 돌아가려는 아저씨를 근욱이가 붙잡고 뒷좌석에 앉혔다.
"얼른 타!"
부앙―
자리가 뒤바뀐 채, 내비게이션을 따라 우리 택시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신선한, 27세.
살면서 택시 운전대를 잡아 볼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다들 꽉 잡아. 바로 병원으로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