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92화 (92/241)

#92 숨(breath)(23)

"별걸 다 궁금해하네."

송유주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인턴 평가?

별 의미 없다.

그래 봤자 고작 한 달 동안 스쳐 지나가는 인턴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혹시 알아? 그 두 명 중에 흉부외과 올 놈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타악―

그때 때마침 두 사람의 음식이 테이블 위로 도착한다.

물냉면은 마동섭에게로, 비빔냉면은 송유주에게로 옮겨진다.

"그래. 이 물냉과 비냉처럼 각자의 매력이 있는 녀석들이었지."

인턴 신선한.

인턴 류명인.

객관적으로 보아도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괜히 농담 삼아 인턴 ‘투톱’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솔직히 둘 다 인턴 주제에 퍼포먼스가 너무 좋았잖아? 성실한 것도 그렇고."

먼저 류명인.

과 수석 출신답게 명석한 두뇌, 재빠른 일 처리.

가끔 4차원 같은 성격을 보이기는 하지만,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치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신선한.

나이가 세 살이 더 많아서 그런지 류명인에 비해 멘탈리티가 강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선한이는 좀 특이하지 않냐? 뭐라 말로 정확히 표현은 못 하겠는데, 아무튼 좀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던데."

송유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의 대답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네 성격상 쉽게 최고점을 주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혹시 마음에 든 사람이 있어서 일부러 점수 낮게 준 건 아니겠지?"

마동섭이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간혹 그런 경우도 있다.

일부러 마음에 드는 인턴에게 낙제점을 주는 경우.

경쟁률이 낮은 흉부외과에 끌고 오기 위한 일종의 계략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과 갈 생각 하지 마라!’

‘흉부외과로 와라!’

‘같이 죽자!’

……일종의 그런 메시지인 셈이다.

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주 네가 그런 짓을 할 타입은 아니지."

"안 했을 거 같아?"

"응?"

송유주의 말에 마동섭은 눈을 크게 떴다.

"인턴 점수를 일부러 낮게 줬다고? 흉부외과 오게 만들려고?"

"비밀."

"뭐?"

"안 알려 줌."

송유주는 그렇게 애기하면서 다시 냉면에 집중했다.

마동섭은 피식 웃었다.

동기로서 수년 동안 가까이에서 보아 온 사이지만, 송유주의 성격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연말 돼 보면 알겠지. 둘 다 올해의 인턴을 노릴 만한 친구들인데, 과연 누가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네."

마동섭은 물냉면 국물을 들이켰다.

후루룩―

크으.

달콤쌉싸름하면서도 감칠맛이 느껴지는 육수가 시원하게 입 안을 감쌌다.

"그나저나 냉면이 맛있는 걸 보니까 여름이 오긴 한가 보다."

마동섭의 말대로였다.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7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세 역전(1)

여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땀.

그래, 땀이다.

지금 나는 땀을 흘리고 있다.

7월의 첫날 일요일.

오프(off, 비번) 듀티로 신경외과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오전에 다시 한번 인계를 받고, 잠시 짬을 내서 근욱이와 병원 지하 헬스장에 왔다.

탁탁탁―

러닝머신이 돌아간다.

나는 무념무상으로 발을 움직였다.

<다시 여기 바닷가~>

여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음악이 헬스장에 흐르고 있다.

"앞으로 1킬로미터 더!"

옆에서 함께 달리던 근욱이가 외쳤다.

근욱몬과 페이스를 맞추려니 힘들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달렸다.

그러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어때? 오랜만에 운동하니까 살맛 나지?"

"죽을 맛이다."

헉헉.

나는 헬스장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헐떡였다.

그러자 근욱이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동안은 TS(흉부외과)라서 봐줬었지만 앞으로는 안 봐준다. 다시 운동 빡세게 시작이야."

"좀 봐줘라. 이번 달 NS(신경외과)도 만만치 않겠더라."

"어허, 핑계 대기 시작하면 운동은 언제 할래. 관짝 들어가면서 할래?"

하긴 그 말이 맞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평생 운동을 못 하겠지.

오히려 바쁠수록 체력을 키워야 한다.

앞으로 험난한 외과의사 생활을 버텨 내려면 더더욱.

"자,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야? 웜업 끝났으면 이제 웨이트 해야지!"

근욱이는 나를 재촉했다.

괴물 같은 놈!

나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헬스장의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 다들 여기 있었네요?"

누군가 했더니 연서다.

산뜻하게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있어서 하얗고 가느다란 목선이 도드라진다.

……벌써 몇 개월째지만, 볼 때마다 좀 적응이 안 된다.

병원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외모라고 해야 하나?

헬스장에 있는 후줄근한 기본 운동복을 입고 있는데, 그마저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어허. 불경하다! 신성한 헬스장에 화장을 하고 오다니!"

근욱이가 연서를 보자마자 꼰대 같은 말투로 시비를 건다.

그러자 연서가 장단을 맞추며 대꾸한다.

"참 나, 소녀가 무슨 화장을 했다고 그러시옵니까? 쌩얼이옵니다."

"쌩얼이라기엔 입술 색이 블링블링한데 어찌 된 일인고?"

"립은 화장이 아니옵니다."

연서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더니 무언가를 설치한다.

저번 달부터 가지고 다니던 브이로그용 카메라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꾸어, 방송용 목소리로 녹화를 시작했다.

"네! 오늘은 저희 병원 헬스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연서는 오늘도 브이로그를 찍고 있다.

최근에 구독자수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긴 연서 정도의 외모라면 주목을 받는 건 시간문제였겠지.

그때, 연서의 뒤를 이어 헬스장 입구에서 조그마한 키의 누군가가 등장했다.

"흐아암."

졸린 눈을 한 소담이다.

연국대병원 마크가 새겨진 운동복이 헐렁해 보인다.

하품을 하다가, 나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쫄래쫄래 다가와 말한다.

"앗, 선한이다. 안녕."

"소담이가 웬일로 운동하러 왔네?"

"연서한테 끌려왔어."

"나도 근욱이한테 끌려왔다."

그렇게 말하며 우리는 피식 웃었다.

그때 근욱이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어휴, 햄스터 팔 마른 거 봐. 안쓰럽다 안쓰러워. 내가 운동 좀 빡세게 시켜 줄까?"

"싫어. 저리 가 근육 바보야."

소담이가 눈을 흘겼다.

두 사람은 은근히 티격대며 친했다.

아니, 그보다는 근욱이가 친화력이 좋다고 해야 하나?

소심하고 폐쇄적인 성격의 소담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덕분에 이렇게 4명이 모이면 분위기가 좋았다.

"아, 여러분! 마침 헬스장에 강남역 인턴 2인조가 있네요! 다들 누군지 아시죠?"

그때 브이로그를 찍던 연서가 카메라를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제 채널 홍보 한 번씩만 해 주면 안 돼요?"

그렇게 소곤거리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까지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거절하기도 뭐하다.

"연서 채널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근욱이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에라이, 건조한 놈! 그걸로 홍보가 되겠냐? 시골 마을 이장님이 농수산물 홍보를 해도 그것보다는 낫겠다."

"그럼 네가 해 봐."

"잘 봐라."

근욱이는 갑자기 커다란 덤벨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오더니, 번갈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흐아압~ 왼손으로 구독! 오른손으로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푸하핫!"

뜬금없는 차력쇼에 연서가 폭소를 터트렸다.

아이고 정신없다.

하여간 저 두 사람이 만나면 텐션이 끝도 없이 올라간다.

* * *

7월 2일 월요일.

본격적으로 새로운 스케줄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 6시 반, 암병원 지하 식당은 한산했다.

사실 인턴들은 아침 식사를 잘 챙기지 못한다.

너무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네 명은 각자의 이유로 식당으로 모였다.

[연서] : 아침 일찍 한산한 병원 분위기가 좋아서.

[소담] : 식당 밥이 맛있어서.

[나] : 아침을 먹어야 머리가 돌아가서.

[근욱] : 하루 세끼 챙겨 먹어야 근손실이 안 온다!

……그렇게 제각각의 이유로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되었고, 이렇게 네 명은 어느새 아침 고정멤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멤버들의 공통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다 8월 파견이잖아요? 다들 휴가 떠날 준비는 됐어요?"

이건 바로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파견근무가 겹친다.

즉 한 달 뒤, 8월에 소담이와 연서도 우리와 함께 지방으로 파견을 가게 된 것이다.

"어허.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거잖아!"

"그래도 한 병원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하긴 그래. 벌써부터 기대된다. 흐흐흐."

"제가 그 지역 맛집 미리 다 찾아 놨거든요? 맵으로 만들어 놨는데 이따가 공유드릴게요!"

엄청난 열정이다.

연서랑 근욱이는 비글 두 마리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로 정보를 공유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벌써부터 신나지 마. 일단 이번 7월부터 무사히 넘겨야 8월도 마음 편하게 맞을 수 있지."

"맞아요."

또다시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는 때인 만큼, 각자의 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근욱 오빠 이번 달 산부인과라고 했던가요?"

"응, 나 이번 달 OBGY(산부인과). 연서는 이번에 소아과 혈종(혈액종양) 병동이었지? 거기는 어때?"

"소아 혈종은―"

그렇게 한참 서로의 과에 대한 정보들이 오간다.

"선한 오빠는 어디라 그랬죠?"

"NS."

신경외과(Neurosurgery).

흉부외과가 TS라고 불리는 것처럼, 신경외과는 줄여서 NS라고 불린다.

주로 다루는 장기는 브레인(Brain, 뇌)과 스파인(Spine, 척추).

자칫 이름이 비슷한 신경과와 헷갈릴 수 있지만…….

내과와 외과가 전혀 다른 분야인 것처럼, <신경과>와 <신경외과>는 전혀 다르다.

가령 같은 뇌졸중을 다루더라도, 신경과가 약을 쓰는 반면, 신경외과는 머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직접 수술적 치료를 시행한다.

"올, 드디어 수술방 도는 거예요?"

"응, 맞아."

"너무 좋아하지 마요. 중원 오빠 3월에 NS 돌다가 탈모 온 거 기억나죠?"

나는 연서의 말에 픽 웃었다.

그리고 옆에서 밥을 우물거리며 가만히 듣고 있던 소담이에게 물었다.

"소담이는 이번 달에 어디였더라?"

"나 영상의학과."

"아."

"기억 안 나? 선한이 네가 스케줄 바꿔 줬었잖아."

소담이가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네.

예전에 스토브리그가 열릴 때 내 스케줄과 교환해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야~ 좋겠다. 영상의학과가 그렇게 꿀이라면서? 칼퇴하고 QOL(Quality of life, 삶의 질) 챙길 수 있다던데?"

근욱이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그때 연서가 젓가락을 좌우로 까닥거리며 말했다.

"에이, 무슨 말씀. 올해는 그렇지도 않대요."

"왜?"

"일이 편하면 뭐 해요? 사람이 문제지. 그쪽에 이상한 펠로우 선생님 한 명 있어서……."

"아, 그 사람?"

그 사람?

연서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역대급 인성 파탄자라고 인턴들 사이에서 난리잖아요. 듣기로는 성추행까지 했다는데."

뭐, 성추행?

이야기를 듣던 우리 셋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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