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91화 (91/241)

#91 숨(breath)(22)

김뱀 vs 송유주.

양쪽 다 자존심 때문에 쉽게 물러나지는 않는 분위기다.

"그럼 인턴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볼까?"

졸지에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두고 기 싸움이 벌어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부담스럽게 왜들 이래?

잠시 후.

양송이 환자는 기관지 내시경 받을 준비를 하고 누워 있었다.

미다졸람(midazolam, 수면 유도약)이 들어가고, 미리 준비가 되었던 덕분에 시술은 빨리 시작될 수 있었다.

"시작한다."

스윽―

김뱀이 기다란 기관지 내시경을 들고 송이의 입으로 넣기 시작했다.

김뱀이 검정색 뱀을 조종하고 있는 모습이랄까?

그때 송유주가 말한다.

"잘해라. 조금이라도 버벅대면 손 바꿔서 내가 해 버릴 테니까."

송유주의 말에 김뱀이 반격한다.

"보채지 마. 성격 더럽게 급한 거는 누가 흉부외과 아니랄까 봐."

"내과 애들 좀생이같이 쪼는 꼴을 내가 얼마나 봤을 거 같냐."

"뭐 인마?"

김뱀이 욱해서 송유주를 쏘아본다.

"말하는 싸가지 하곤…… 브롱코(bronchoscopy, 기관지 내시경)는 내가 너보다 더 해 봤으니까 나대지 마라."

실제로 기관지 내시경은 원래 호흡기 내과의사의 주 종목이다.

스윽―

김뱀이 조종하는 기관지 내시경은 기도를 지나 우상엽의 수술 부위로 들어갔다.

김뱀이 말한 대로, 그의 솜씨는 꽤 능숙했다.

"수술 부위에는 문제가 없네."

꿀꺽.

긴장감이 흐른다.

다음은 우중엽이다.

김뱀은 말없이 기관지 내시경을 조종하는 데 집중했다.

곧 모니터 화면에 우중엽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김뱀의 표정이 굳었다.

"돌았군."

그 말대로였다.

화면을 지켜보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기관지 깊숙이 들여다보자, 우중엽으로 향하는 기관지가 꼬여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와, 진짜 돌아 뿟네?"

여봉철이 이런 환자를 처음 봤는지, 내시경 모니터를 보며 놀란 목소리로 외친다.

"아직 360도 완전히 돌아 버린 건 아니야."

송유주는 나지막이 말한다.

보통 360도 토젼이 되어 폐가 괴사(necrosis, 썩음)되기 시작하면 괴사된 폐엽 전체를 잘라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생님, 그럼 만약 수술하면 폐를 살릴 수 있는 건가요?"

나는 다급히 물었다.

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유주는 이미 콜폰을 꺼내 전화를 걸고 있었다.

"교수님. 유주입니다."

송유주가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전화를 끊고 말한다.

"교수님한테 바로 노티 했다. 응급 수술 빨리 잡으면 우중엽 살릴 수 있을 거야."

다행이다!

송유주의 말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나저나 네가 건방지다고 업신여기던 인턴 말이 맞았네. 어떡하냐?"

송유주는 김뱀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그러자 김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눈으로 확인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말도 안 돼. 토젼이 흔하게 보이는 증상도 아닌데, 뭔 초심자의 행운이 두 번이나……."

부들부들.

김뱀이 억울한 듯 중얼거린다.

그러자 송유주가 말한다.

"야, 김뱀."

"……."

"우리 과 인턴이 내과 3년 차보다 낫네?"

처음 본다.

송유주 선생의 저런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왠지 모를 의기양양함이 느껴진다.

즐거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날 밤, 곧바로 양송이 환자의 응급 수술이 시행되었다.

* * *

3번 수술방.

양송이 환자의 수술이 진행 중이다.

폐는 아직 썩기 전으로, 염증 반응이 진행되고 있었다.

90°이상 돌아 있는 우중엽 폐를 원상 복귀시켰다.

한상기 교수는 말했다.

"환자 운이 좋네, 더 늦게 왔으면 360도 돌아 버려서 폐가 썩어 버렸을 거야. 그러면 우중엽도 잘라 버려야 했을 텐데, 다행이네."

수술장 안의 다른 사람들도 안도의 눈빛이다.

아직 18살밖에 되지 않은 고등학생 환자다.

오른쪽 폐를 절반 이상 잘라 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한상기 교수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환자…… 외래는 왜 안 왔대?"

"아마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 중간에 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환자 수술 설명은 내가 직접 설명할게."

"네, 교수님."

앞에 보조를 하고 있던 송유주가 대답한다.

그리고 잠시 후.

수술실 입구 옆의 작은 방.

한상기 교수와 송이 어머니가 마주 앉아 있다.

수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반쯤 푼 상태로 강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한상기 교수.

반면에 송이 어머니는 풀이 죽어있다.

"다행히, 일찍 발견되고 빨리 수술을 해서 우중엽을 살렸습니다."

교수의 말에, 보호자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물론 경과를 지켜보다 염증 상태가 호전이 안 되면 다시 잘라 내야 하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은 우중엽은 살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송이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송이 어머니."

그때, 한상기 교수가 작심한 듯 입을 연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게 아이의 학업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요."

"……."

"무슨 사정으로 외래에 제시간에 오지 않은 것인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병원에서 제시한 지침을 따라 주셔야 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교수는 말을 아꼈다.

원래대로라면 더 강하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얼굴이 하얘진 송이 엄마를 눈앞에서 보니 거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그 누구보다도 자책감에 휩싸여 있는 것은 송이 엄마일 테니까.

그렇게 무사히 수술을 마친 양송이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 * *

6월의 마지막 날.

양송이 환자는 중환자실 치료를 마치고 병동으로 이동되었다.

송이 엄마가 병동 침대에 앉아, 죽을 먹고 있는 송이와 마주 보고 있다.

"몸은 좀 괜찮아?"

"으응."

"퇴원하고 나서도 며칠 동안은 푹 쉬어야 된대. 그러니까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한다.

며칠 동안 송이 엄마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한숨을 푹 쉬더니 초췌한 눈길로 말한다.

"……그동안 엄마가 미안했어. 네 나이 때 놀고 싶은 건 당연한데 너무 몰아세웠나 봐."

그러자 송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엄마 입장에서 나 이해하기 어려운 거 알아. 아이돌 좋아하면서 따라다니는 게……."

"왜 몰라? 그 맘 알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 가수라면 질색하면서."

"엄마도 한때 그랬으니까."

"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송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엄마는 민망한 듯 주저하며 이야기한다.

"사실은……."

오래전.

엄마는 아이돌 1세대 팬이었다고 한다.

소위 ‘빠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격하되던 집단.

하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운 청춘을 보냈던 ‘팬덤 문화’의 개척자들.

송이 엄마도 그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아이돌 팬이었다고?"

"왜. 웃겨? 엄마한테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어. 심지어 팬클럽 부회장이었어."

심지어 부회장?

송이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게 바로 유전이라는 건가?

그동안은 차마 민망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냥 엄마는 후회돼서 그래. 한참 공부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서…… 정작 성인이 되었을 때, 엄마가 이루고 싶었던 일은 제대로 도전도 못 해 본 거 같아서."

송이는 눈을 깜빡였다.

신기했다.

엄마가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알았어…… 나도 입시 하는 동안은 팬질 자제할게. 지금은 대학 입시가 제일 중요하니까."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처음으로 엄마와 의견 조율에 성공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치솟았다.

"근데, 엄마는 누구 팬이었는데?"

"노이성."

노이성?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송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헐, 대박. 설마 TNT 노이성? 그 요즘 다이어트 예능에 나와서 운동하는 아저씨?"

"응."

"우엑…… 배 나오고 머리숱 없고 완전 못생겼던데. 그런 사람을 도대체 왜 좋아했어?"

빠직―

송이의 막말에, 엄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그래도 젊을 땐 잘생겼었어."

"에이. 거짓말."

"얘, 네가 좋아하는 반진호인지 뭔지 하는 애는 나이 안 들 것 같니?"

발끈하며 엄마가 말하자, 송이는 혀를 내민다.

"우리 오빠는 안 늙거든요."

"웃기셔. 세월은 아무도 못 막아. 게다가 엄마가 검색해 보니까 그 친구 성 기능에도 벌써 문제가 있다더만."

"아, 아니라고!"

이번에는 송이가 발끈할 차례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시끌벅적하게 다투었다.

그러다 문득 송이는 생각했다.

엄마랑 대화를 나누는 게 이렇게 편한 적이 있었던가?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투는 와중에도 슬며시 웃음이 맴돌았다.

수능까지 앞으로 세 달.

고된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와 지금처럼 대화하면서 지낼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숨이 트이는 기분일 것 같았다.

* * *

6월의 마지막 날.

송유주와 마동섭은 병원 앞 먹자골목의 냉면집에 앉아 있었다.

"이번 달에 그래도 모탈리티(mortality, 사망 사건) 없이 끝났다?"

"그러게."

"축배라도 들어야 되는 거 아니냐?"

"한 잔 따라 봐."

"브라보."

"지화자."

짠―

두 사람은 물 잔을 부딪쳤다.

술을 마시는 건 아니지만, 기분만 내기로 했다.

이럴 때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이다.

송유주는 심드렁한 듯하면서 마동섭의 장단을 은근히 잘 맞춰 주는 친구였다.

"근데 토젼 환자는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그나마 운 좋게 병원 공연 보러 와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마동섭이 다행이라는 듯 말한다.

한편, 송유주는 문득 작은 의문을 느꼈다.

"그 환자 말인데."

"응?"

"……아니다."

송유주는 고개를 젓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좀 희한하긴 해.’

바로 며칠 전.

신선한은 자신에게 찾아와 토젼에 대해 물었다.

혹시 그런 환자가 찾아올지도 모르니 알고 싶다고 했었지.

그리고, 곧바로 토젼 환자가 실제로 발생한 것이다.

우연인가?

그야 그렇겠지.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인턴이 감이 좋거나, 운이 좋거나.’

송유주는 그렇게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그 환자의 일을 지워 버렸다.

안 그래도 앞으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다음 달도 렁(Lung, 폐식도 파트)?"

"응, 나는 렁. 너는 컨제니탈(Congenital, 소아심장 파트)이던가?"

"그치. 다음 달에 수술 많이 잡혀 있다고 하던데, 걱정되네."

인턴들이 순환을 하듯이, 레지던트들도 몇 개월 단위로 순환 배치를 겪는다.

이번 달은 폐식도, 다음 달은 심장…….

이런 식으로, 흉부외과 안에서도 스케줄이 있다.

그때 마동섭이 갑자기 물었다.

"참. 그래서 인턴 점수는 어떻게 했어?"

"왜. 궁금해?"

"궁금하지. 깐깐하기로 소문난 우리 송유주 선생님이 과연 누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셨을지."

마동섭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우리 송유주 선생님의 픽은? 류명인이야, 신선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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