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88화 (88/241)
  • #88 숨(breath)(19)

    욱신―

    송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몸이 왜 이러지?

    오랜만에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 걸까?

    호흡도 좀 더 힘들어진 것 같고, 수술받은 가슴 안쪽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뭐…… 인터넷 찾아보니까 수술하고 나면 원래 아프다고 하잖아. 괜찮은 거겠지.’

    송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보다는 공부가 중요하다.

    해열제를 먹자.

    송이는 약을 삼킨 뒤 다시 공부에 집중하려 했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잉―

    [선한] : 송이야, 병원 왜 안 왔니?

    어라?

    이 사람, 설마?

    송이는 반신반의하며 발신자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다.

    낯이 익었다.

    퇴원하고 이제 못 볼 줄 알았는데, 다시 연락을 받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송이] : 헐 선생님???

    [선한] : 그래

    [송이] : 대박 사건 ㄷㄷㄷ 이런 누추한 번호로 귀하신 분이 연락을 하다니

    [선한] : 병원 왜 안 왔냐고 다시 한번 질문이 날아온다.

    무서워!

    왠지 혼날 것 같다.

    평소에 말하는 것만 봐서는 다정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글은 엄청 딱딱하게 쓰시네.

    송이는 몸을 배배 꼬는 파란 고양이 이모티콘과 함께 애교 섞인 답변을 보냈다.

    [송이] : 저 시험 때문에 엄마가 일주일 뒤에 가래서요…… 죄송합니당……

    [선한] : 혼자서라도 와야지

    [송이] : 저 시험 기간에는 엄마가 허락 안 해 주면 아무 데도 못 가요 ㅠㅠ 시험 끝나면 꼭 갈게요 선생님!

    [선한] : 알았어

    휴우.

    송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또 하나의 메시지가 화면 위에 떴다.

    [선한] : 그런데 내일 우리 병원에 반진호 온다

    송이의 얼굴 위에 물음표가 떴다.

    뜬금없이 웬 반진호?

    농담이겠지.

    그런데 이어서 포스터 한 장이 전송된다.

    연국대병원에서 주최하는, 소아암 환우들을 위한 작은 자선행사인 듯했다.

    [선한] : 내일 여기에 반진호 깜짝 출연하고 팬서비스 예정이야

    [송이] : 정말요?

    [선한] : 응.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어

    정말일까?

    에이…… 거짓말이겠지?

    말도 안 돼. 갑자기 병원에서 반진호가 왜 나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선한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선한] : 내일 혹시 너 올 수 있으면 제일 앞자리에서 보게 해 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제일 앞자리?

    송이의 눈이 커졌다.

    그러면 코앞에서 반진호를 볼 수 있다는 소리다.

    그동안 팬사인회 당첨이 안 되어서 반진호를 가까이에서는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송이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설마 진짠가?’

    그렇게 생각하며, 송이는 반진호의 SNS 계정으로 접속했다.

    그러자 마침 오늘 새 글이 올라와 있었다.

    반진호의 셀카 밑에 의미심장한 내용이 짧고 굵게 적혀 있었다.

    <내일 깜짝 이벤트 간다! ㅎㅎ>

    #27_WED #애기들아_기다려

    그 글 하나로, 팬 커뮤니티는 온갖 추측들로 난리였다.

    ―헐 우리 진호 ㅠㅠ

    ―깜짝 이벤트라니 ㄷㄷ

    ―콘서트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열일하네요

    ―그런데 밑에 적힌 태그는 무슨 뜻일까요. ‘애기들아 기다려’?

    ―우리를 애기라고 부른 거 아님?

    ―아무래도 그런 듯

    ―와 반진호 오냐오냐해 줬더니 팬들을 애기 취급하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응앵애―ㅋㅋㅋ

    ―ㅋㅋㅋㅋㅋ

    사람들은 새로운 떡밥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송이는 촉이 왔다.

    ‘애기들’아 기다려?

    소아환자들을 위한 공연이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들어맞는다.

    아무래도 신선한 선생님이 말한 내용들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아, 가고 싶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이면 시험 5일 전이잖아? 안 돼, 안 돼!’

    송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곧 기말고사다.

    아무리 반진호가 좋다 해도 황금 같은 공부 시간을 빼앗길 수는…….

    ‘잠깐. 아니지.’

    송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학원에서 연국대병원까지 택시로 7분 거리다.

    그 정도면 충분히 갈 만한 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이 7시고 학원 특강이 8시부터니까…… 밥 안 먹고 여기 갔다가 학원으로 달리면 되잖아?’

    저녁밥만 포기하면 반진호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송이의 머릿속에 계산이 섰다.

    그때 문이 덜컥 열렸다.

    "우리 딸."

    "응? 엄마."

    "공부 안 하고 핸드폰 하고 있던 거 아니지?"

    "아니야."

    송이의 손에는 어느새 펜이 들려 있었다.

    핸드폰은 이미 송이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있다.

    그동안 수많은 경험을 통해 단련된 반응 속도였다.

    어쨌든 이 계획을 엄마에게 들키는 순간 끝장이다.

    ‘그날을 위해 열공이다!’

    송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학습 의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송이는 교과서와 노트를 들고 결연히 일어섰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 설치된 작은 나무 문을 열었다.

    "엄마, 오늘 밤에 나 방해하지 마."

    스터디 부스.

    송이 엄마가 딸의 방에 설치한 가구다.

    가로세로 1미터 정도의 폐쇄된 공간.

    그 안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책상과 의자가 있다.

    출입문에는 작은 창문이 달려 있어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공부를 위한 감옥처럼 보이기도 하는, 한마디로 작은 독서실이었다.

    "웬일이야, 기껏 비싼 돈 주고 설치해 줬는데 저 안에 답답하다고 싫다더니."

    끼익―

    엄마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송이는 문을 열었다.

    마치 폐관수련을 앞둔 수도승처럼 비장한 표정이었다.

    파바박!

    곧, 스터디 부스 안으로 들어간 송이의 책장이 광속으로 넘어갔다.

    반진호를 볼 수 있다!

    그 일념으로 공부에 박차를 가하는 송이였다.

    ‘우리 딸이 드디어 공부의 맛을 알았구나!’

    한편, 그렇게 생각하며 뭉클한 표정을 짓는 송이 엄마였다.

    * * *

    "그래서 진짜 불렀다구요? 반진……?"

    "쉬잇."

    소담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서의 입을 틀어막았다.

    "진짜 상상 초월이네. 어쩐지 자선공연치고는 카메라가 이상하게 많다 했어."

    연서는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글와글―

    연국대병원 1층 로비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지미집(Jimmy jib, 무인 카메라 크레인)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소박한 자선 공연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호화로운 장비들이었다.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가장 앞쪽에는 휠체어에 앉은 어린이 환자들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보호자 부모님들과 의료진들이 다양하게 섞여서 무대를 구경하고 있다.

    "그런데 왜 홍보를 안 했죠? 그 정도로 대단한 게스트를 섭외해 놓고……."

    "게릴라 콘서트 같은 느낌으로 할 모양인가 봐."

    "아하. 깜짝이벤트?"

    "만약 사전에 공개됐으면 2층 통로까지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을걸?"

    "하긴……."

    동기들끼리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막 행사가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곧 진행을 맡은 조세오 MC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를 능숙하게 휘어잡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개그맨 출신 연예인이라 인지도가 높았다.

    <이야~ 오늘 정말 많이들 오셨네요. 저는 어린이 관객들이 많다고 듣고 왔는데, 여기 앉은 친구들 중에서 절반은 저보다 키가 크네요. 네? 아…… 제가 작은 거라구요?>

    여기저기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 소소하게 웃음이 번졌다.

    <맨 앞자리에 우리 제일 어린 친구한테 물어볼게요. 혹시 아저씨 이름 알아요? 아저씨 이름 맞히면 특별히 조세오 미니앨범 1집 사인 시디를…… 네? 필요 없다구요?>

    와하하―

    다시 웃음이 번진다.

    개그맨답게 재미있는 말투로 진행을 하니,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눈을 떼지 못하며 즐겁게 웃는다.

    "그래서 반진호는 어딨는데요?"

    연서가 소곤거리며 묻는다.

    그때 소담이가 손가락으로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있네."

    "어디, 어디?"

    우리의 시선이 옮겨졌다.

    반진호는 스태프들 근처에 앉아 있었다.

    신기하군.

    모자와 마스크를 썼는데 딱 봐도 연예인 포스가 난다.

    저렇게 가릴 곳을 다 가렸는데도,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어쨌든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야 이런 자리에 유명 아이돌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좋아. 판은 깔려 있고…….’

    미끼는 준비됐다.

    그런데 송이가 늦네.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

    [송이] : 쌤! 반진호 나왔어요?

    [선한] : 아직. 어디야?

    [송이] : 저 지금 거의 다 왔어요! 빵 가게 앞!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마술쇼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처음에 MC인 조세오를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 빠져 있었다.

    하지만 만약 반진호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금방 인산인해가 될 것이다.

    "잠깐 송이 좀 데리고 올게."

    나는 동기들에게 말한 뒤 인파를 헤치고, 송이가 들어올 1번 게이트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그때 회전문을 열고, 송이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뛰어왔어?"

    "네. 우리 오빠 못 볼까 봐……."

    송이는 숨을 헐떡이더니, 멀찍이 앉아 있는 반진호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박…… 진짜다, 헐……."

    매의 눈인가?

    백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반진호를 바로 찾아내다니.

    나는 송이의 덕후력에 새삼 놀랐다.

    "이렇게 멀리서 보고도 알 수 있어? 심지어 다 가렸는데?"

    "네. 목선이랑 어깨 실루엣만 봐도 딱 반진호잖아요. 저는 손목뼈만 보고도 우리 오빠 맞힐 수 있음."

    대단하다.

    반진호 엄마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

    내가 감탄하는 사이, 송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반진호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아 어떡해……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되다니…… 선생님, 만약 저 심장 멈추면 선생님이 심폐소생술 해 주세요."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 송이야.

    난 지금 네 말이 농담으로 안 들린단다.

    그렇게 생각하며 반진호에 정신이 팔려 있는 송이의 옆얼굴을 보는데…….

    "송이야."

    "네?"

    나는 송이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호흡이 빠르고, 숨소리가 약간 거친 듯하다.

    목소리에도 약간의 가래가 끼어 있는 느낌?

    퇴원할 때는 분명 이렇지 않았다.

    뛰어와서 그런 걸까?

    아니다.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에는 기본적인 심호흡이 평소보다 빨라 보인다.

    "너 몸 안 좋지? 언제부터 아팠어?"

    내 추궁하는 듯한 질문에 송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게 엄청 아픈 건 아니고……."

    "잠깐 이리 봐."

    나는 손을 뻗어 송이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몸에서 열감도 느껴진다.

    이마에 맺혀 있는 땀방울이 뛰어와서 맺힌 게 아닌 것 같다.

    ‘타킵니아(tachypnea, 빈호흡)를 동반한 스푸텀(sputum, 가래) 그리고 피버(fever, 열).’

    나는 냉철하게 송이의 상태를 파악했다.

    그러자 송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변명하듯이 말했다.

    "어제저녁부터 쪼오금 이상하긴 했는데, 막 아프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너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면 바로 병원으로 와야지. 수술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사실……."

    송이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때, 우리의 등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야, 양송이!"

    송이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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