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86화 (86/241)

#86 숨(breath)(17)

뜨끔.

나는 송유주 선생의 말에 정곡을 찔렸다.

너무 대놓고 티 나게 물었나?

"아…… 기왕 배우는 김에 제대로 알아 두고 싶어서요. 나중에 그런 환자를 실제로 봐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둘러댔다.

"그래?"

송유주 선생도 대충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 사람…….

촉이 날카롭다.

앞으로 송유주 선생님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할 때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불필요한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토젼(torsion, 꼬임)이 되면 일단 열이 나지. 그리고 엑스레이로 바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봐도 돼."

송유주 선생의 말에 안경식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내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빠른 치료?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송이는 병원에 늦게 오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뭐, 만약 운이 나빠서 늦게 치료된다면 셉시스(sepsis, 패혈증)로 죽을 수도 있지."

뭐? 죽는다고?

송유주 선생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말에 충격을 받았다.

<패혈증>.

쉽게 말해 전신 감염이다.

우리 몸속의 피를 타고 감염이 전신에 퍼져, 여기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몸의 장기(organ)가 망가져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것을 말한다.

환자를 빠른 시간 내에 사망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질환이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돼!’

나는 머릿속으로 달력을 그려 보았다.

송이의 기말고사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일주일이었다.

그 시간 안에, 송이를 반드시 병원에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 * *

다음 날.

나는 송이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외래 날짜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휴, 알겠다구요.>

"꼭 날짜 지켜 주셔야 합니다."

<이보세요, 선생님.>

송이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진다.

<우리 송이 몸 상태는 엄마인 내가 가장 잘 알아요. 만약 송이가 아프다고 하면 제가 어련히 알아서 병원에 데려다줄까요?>

그렇게 말하는 송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귀찮게 굴지 말라는 뉘앙스가 가득했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패턴의 반응이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송이가 아픈 걸 참고, 어머니께 통증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송이가 왜요?>

왜냐니?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

할 말은 많지만 나는 잠시 아낀 뒤 말했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이유로 며칠이나 퇴원을 일찍 시키셨잖아요. 그만큼 송이가 느낄 부담감이 클 테니, 웬만한 고통은 꾹 참고 시험공부에 열중할 거예요."

<…….>

"그러니 어머니께서 송이의 상태를 잘 살펴 주시고, 검사 날짜도 챙겨 주세요."

<어휴, 알겠다니까요.>

"꼭 그렇게 해 주세요."

나는 한 번 더 신신당부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데 통화가 끊기기 직전, 송이 어머니의 투덜대는 말이 작게 들려왔다.

<어휴 참, 나이도 어린 의사가 거머리처럼 왜 저래? 시험 끝나면 어련히 알아서 보낼까…….>

뭐? 시험 끝나고?

그건 안 돼!

나는 다시 수화기를 붙잡았다.

"여보세……."

뚜뚜―

전화가 끊겼다.

아니나 다를까, 송이 엄마는 비협조적이었다.

‘골치 아프네.’

여태까지 내가 미래를 보았던 환자들은, 적어도 모두 병원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적당한 때 엑스레이 한 장만 찍으면 바로 알 수 있는 문제인데…….

바로 그 엑스레이 한 장 찍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역시 이번 과제도 쉽지 않군.’

세상의 어떤 명의(名醫)라도 병원 바깥의 환자를 살릴 수는 없다.

그러니 송이를 병원에 오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강제로 끌고 올 수도 없고.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월요일이 되었다.

나는 EMR(전자의무기록)의 [외래환자] 탭을 반복해서 클릭해 보고 있었다.

어느덧 오후 5시.

진료 예약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송이의 외래차트에는 아직 추가된 내용이 없다.

즉, 오늘 진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시 안 오네."

결국 송이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져 보았지만 허사였다.

나는 한상기 교수님 외래에 같이 들어가 있던 PA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송이 외래 안 왔죠?"

"누구요?"

"저번 주에 우상엽 폐 절제 수술 받은 양송이 환자요."

"아, 병원에서 계속 공부만 하던 그 귀여운 고등학생? 글쎄요…… 못 봤는데."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록을 찾아본다.

"오늘 예약 취소했고, 예약을 1주일 뒤로 미뤘네요. 다음 주 수요일로."

다음 주 수요일.

딱 기말고사 끝나는 날로 외래를 바꾸었다.

전화를 끊을 때 아주머니가 했던 그 말대로다.

망할!

나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결국 예정된 미래가 진행되고 있다.

환자 엑스레이 한 번 찍게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건 무슨 탑 안에 갇힌 공주 구하기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며 스테이션 모니터 앞에서 입술을 뜯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선한이 형, 무슨 고민 있어요?"

류명인이었다.

녀석은 내 썩은 표정을 보더니 히죽 웃고는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제가 맞춰 볼까요? 연애 문제구나."

"아니야."

"에이, 맞구만 뭘."

내가 넌 줄 아냐?

나는 녀석을 무시하려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녀석은 헛다리를 짚는 주제에 정곡을 찔렀다는 듯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지 말고 저한테 딱 말해 봐요. 연애 분석이랑 컨설팅은 제가 또 전문이에요."

네가?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셔.

나는 더 뻘소리를 듣기 전에 녀석의 말을 끊었다.

"송이 때문에 그래."

"송이 환자요?"

"응."

"참 나. 퇴원한 환자를 왜 걱정해요? 지금 맡고 있는 환자 보는 것도 버거워 죽겠구만."

류명인이 툴툴댄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당장 나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퇴원한 환자 생각할 시간에 저부터 좀 챙겨줘요."

"내가 널 왜 챙겨?"

"잘생긴 얼굴이 하루하루 말라가는 게 안쓰럽지도 않아요? 볼 쏙 들어간 것 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류명인이 붕어입 모양을 만든다.

됐다.

너랑 무슨 얘길 하겠냐?

애초에 이 녀석과 상담을 하려 했던 내 잘못이지.

‘기말고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송이의 폐는 검게 썩어 가겠지…… 송이가 제 발로 병원에 오게 만드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며 인턴 숙소로 걸어가는 길.

9층 흉부외과 병동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보였다.

[제11회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YGUH 여름 자선음악회]

초여름 저녁, 병원에서 펼쳐지는 작은 공연장에 찾아오세요.

―6월 27일 수요일

―본관 1층 로비

―특별 MC : 조세오

―출연 : 시립교향악단 외 다수

자선음악회?

연국대병원은 이런 것도 하는구나.

병원 로비에서 하는 작은 음악회로, 나름 연례행사인 듯하다.

연예인도 오네.

그렇게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지나치려 하는데, 날짜가 눈에 띈다.

잠깐…… 27일?

‘이걸 미끼로 송이를 불러 볼까?’ 과연 올까?

그럴 리 없지.

만약 게스트로 탄산소년이라도 온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 * *

잠시 후 인턴 숙소가 있는 지하 3층.

나는 우연히 만난 소담이와 연서에게 외래에 오지 않은 송이가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연서가 말했다.

"송이에게 직접 연락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직접 연락?

물론 해봤다.

응급실 기록에 송이의 전화번호도 있으니까.

병원 측에 연락을 부탁해 보았지만, 나중에 오겠다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소담이가 불쑥 입을 연다.

"아마 안 먹힐 거야."

우리는 소담이를 쳐다보았다.

"여태까지 선한이 네가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기본적으로 엄마 말 잘 듣는 애인 것 같은데…… 엄마가 허락 안 하면 절대 병원에 안 올걸?"

소담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압박을 받으며 자라왔다.

어쩌면 송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소담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제 발로 외래 한번 찾아오는 게 힘들까?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콘서트까지 갔었던 애인데."

"그건 탄산소년이니까."

"아."

팬심은 예외라 이건가.

"그런데 이번 환자는 유독 걱정되나 보네요? 선한 오빠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 보면."

연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는 내게 특별한 환자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으로 칼을 댄 환자니까.

게다가, 17세.

아직 어린애다.

앞길이 창창한 꿈 많은 고등학생.

그런 송이의 폐가 썩을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해결법도 간단하다!

그냥 병원에 데려와서 검사 한 번만 빨리 받게 하면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돕고 싶다.

"뭐 아무튼 그렇게까지 병원으로 데려오고 싶다면, 방법은 두 가지 정도 있겠네요."

"두 가지?"

"선한 오빠가 학교로 쳐들어가서 강제로 납치하든가…… 아니면 병원에서 탄산소년이 떡― 하니 그 환자만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든가."

연서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둘 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전자는 범죄고, 후자는 더 말이 안 된다.

그렇게 인턴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숙소로 들어가려는 나의 옷깃을 소담이가 붙잡았다.

"선한아."

"응?"

"방금 말한 환자, 그렇게까지 걱정될 만한 상황이야?"

그렇게 말하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이번 주에 꼭 검사를 받아야 하는 환자야."

"퇴원하기 전에 그렇게 안 좋았어?"

"퇴원 시점에는 문제가 없었지. 그런데 일주일 늦게 외래에 오면 큰일 날 것 같아."

"확실한 근거는 없는 거고?"

"응. 그냥 감이랄까."

"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합리하지만,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마지막으로 찍은 송이의 폐 사진은 멀쩡했으니까.

송이의 폐가 뒤틀린다는 것은 미래예지 능력을 가진 나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애매하게 ‘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나왔다, <감>! 선한 오빠 3월에 내과 때도 똑같은 얘기 했던 거 알아요?"

연서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미래예지를 했을 때도 비슷한 말로 둘러댔던 것 같다.

"하여간 선한 오빠는 걱정이 많아. 나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요~!"

연서는 하품을 하며 숙소로 먼저 들어갔다.

그런데 소담이는 내 말을 진지한 표정으로 곱씹더니 말했다.

"아무튼 이번 주에는 환자를 꼭 병원에 데려오고 싶다는 거지?"

"응."

"그럼 선한이 네 감을 한번 믿어 보지 뭐. 내가 연락 한번 해 볼게."

"환자한테?"

"아니. 반진호한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돌에게 연락을 한다고?

생각지도 못한 해법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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