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숨(breath)(14)
"퇴원을 시키겠다구요?"
교수는 아연실색했다.
옆에서 듣던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술 2일째 퇴원이라니?
아직 송이는 흉관을 통해 배액되는 흉수량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흉관을 뽑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도저히 퇴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송이 어머니는 작정한 듯 우리에게 말했다.
"수술 전에 분명 일찍 퇴원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어차피 수술도 문제없이 잘 끝났다면서요?"
송이 어머니가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누가 봐도 명확했다.
학업 때문이다.
내신 공부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송이를 학교로 복귀시키려 하는 것이다.
"보호자분, 퇴원은 아직 한참 이릅니다."
"선생님이 3~4일이면 된다고 했잖아요. 내일이면 3일째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요?"
교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분명 회복은 잘되고 있는 건 맞습니다만…… 아직은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합니다. 흉관에서 나오는 배액량이 적어지는 것도 관찰해야 되고, 피검사 수치도 안정적으로 되는지……."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하다는 건데요?"
송이 엄마가 말을 자른다.
교수는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을 해도 송이 어머니를 막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리라.
잠시 후.
교수는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내일 검사 결과 보고 결정합시다.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난 뒤.
교수는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냉정하게 병실을 나섰다.
뚜벅, 뚜벅―
옆에 함께 있던 나와 간호사들도 다음 환자를 보러 따라갔다.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탈곡기 교수님의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물러났기 때문이다.
"괜찮을까요? 벌써 퇴원을 고려해도……."
간호사의 말에 교수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은 뒤 말했다.
"어차피 저렇게 고집부리는 보호자는 못 말려요. 싫다는 사람들한테 입원 좀 해 달라고 엎드려 빌 일 있어요?"
역시 탈곡기 교수도 성격이 불같다.
보호자와 싸우면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그냥 쿨하게 보내 주자는 주의였다.
"아까 보호자 눈빛 봤어요? 어제 부부싸움할 때 우리 안사람이 딱 저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더라고. 저런 상대한테는 말이 안 통합니다."
교수는 한숨을 쉰 뒤 말한다.
"뭐, 그렇다고 무작정 퇴원시킬 수는 없고…… 내일 배액량 200 이하로 떨어지고, 피검사 해서 큰 문제 없으면 퇴원 조치할 겁니다."
"예, 교수님."
간호사들이 대답했다.
나는 그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불안하지?
기분이 싸하다.
* * *
"하여간 나만 나쁜 년이지?"
한편.
송이 엄마는 병실에서 씩씩대고 있었다.
남편과의 통화 때문이었다.
송이를 일찍 퇴원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의 반응이 미지근했다.
이런 상황에서 늘 그랬듯, 남편은 우유부단한 답변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여보, 그냥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괜히 전문가들이 아니잖아.>
전화기 너머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이 인간이?
남편은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라더니!
송이 엄마는 버럭 화를 냈다.
"하여간 자식교육 신경 쓰는 건 나밖에 없지?"
<그게 아니라…….>
"됐어! 당신 말 들었으면 애초에 우리 송이 특목고도 못 보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끊엇!"
꾸욱!
송이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 온다.
이 험난한 자식교육의 전쟁터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송이 엄마는 핸드백을 뒤져 두통약을 찾았다.
"엄마."
그때, 베드에 누워 있던 송이가 입을 열었다.
"나 그냥 며칠 더 입원하면 안 돼?"
"응?"
송이 엄마는 놀랐다.
웬일이지?
딸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어쩌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처음일지도 모른다.
교복 하나 맞출 때도 브랜드까지 엄마 말을 고분고분 따르던 송이가 아니었던가.
그놈의 탄산소년인지 뭔지 하는 아이돌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송이는 그동안 엄마가 내리는 결정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다.
"왜. 너 아파?"
"아니. 되게 아프지는 않은데…… 그래도 의사 선생님들 말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송이가 조심스레 말한다.
송이 엄마는 그 말에 잠시 흔들렸지만, 이윽고 다시 평소의 말투로 돌아왔다.
"어휴, 의사들은 원래 다 저렇게 얘기하는 거야! 저 사람들은 입원 하루라도 더 시키면 돈 버는 사람들이잖아."
그러자 송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지금 여기 병원에 누워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믿니? 귀한 학원 수업 땡땡이 놓고 콘서트나 가는 애를."
"콘서트 얘기가 또 왜 나와."
울컥.
송이는 짜증을 냈다.
엄마와의 대화는 늘 이렇게 된다.
마치 단단한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왜. 엄마가 야속해? 너 지금은 엄마를 원망할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고마워하게 될 거야."
"……."
송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적어도 지금의 송이에게,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숨 막혀.’
꾸욱―
송이는 환자복의 옷깃을 쥐었다.
분명 수술한 폐는 나아지고 있다는데…….
왜 자꾸만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 * *
POD(수술 후) 3일 차.
송이는 흉부 엑스레이 검사와 자세한 피검사를 받았다.
지난 하루 동안의 흉관을 통한 배액량도 딱 200의 숫자가 기록되었으며, 피검사에서는 백혈구 수치가 경미하게 높아져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 밤 약간의 미열이 있었지만, 한상기 교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오늘 흉관 뽑고 퇴원해서 빠르게 외래에서 팔로업(follow―up, 재방문)하는 것으로 하지."
송이에 대한 퇴원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침 회진에서 퇴원 결정이 이루어지고, 나는 흉관을 제거하기 위해 송이에게 향했다.
"선생님."
"응?"
"죄송해요. 우리 엄마 성격 이상해서 많이 힘드셨죠?"
나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한다.
송이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잔뜩 깃들어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괜찮아. 어머니께서 그만큼 송이를 신경 많이 쓰고 계신가 봐."
"그래도 우리 엄마 이해해 주세요. 저 중간고사 망쳤거든요. 기말까지 망치면 진짜 답 없어서……."
송이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도 역시 수험생 시절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송이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로부터의 압박도 있지만, 분명 본인의 촉박함도 있을 것이다.
대신 나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래도 정해진 날짜에 꼭 병원 다시 한번 와야 돼. 알겠지?"
"네, 당연하죠."
이게 최선이다.
결국 의사는 병원에 있는 환자밖에 돌봐 줄 수 없으니까.
그때 송이가 분위기를 바꾸듯 활기차게 말했다.
"아, 맞다. 저 친구들한테 자랑했어요!"
"뭘?"
"선생님이 제 주치의라고요. 저번에 찍은 인증샷까지 보여 줬더니 완전 부럽다고 난리예요."
"친구들이 날 알아?"
"당연하죠. 선생님이 인터넷에서 얼마나 유명한데요!"
송이는 한동안 신나게 수다를 늘어놓았다.
마지막 대화라고 생각해서인지, 평소보다 말이 길어졌다.
나는 웃으며 송이의 말을 들어준 뒤 흉관 제거를 시작했다.
"자, 이제 뽑자. 이렇게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내가 숨을 참으라고 하면, 숨 크게 들이쉬고 읍― 하고 참아야 해."
"얼마나 참아야 돼요?"
"5초. 속으로 숫자 5까지 세고, 절대 숨을 들이마시면 안 된다. 알았지?"
"네."
송이는 내가 말한 대로 자세를 취했다.
곧 간호사들의 손에 의해 환자복이 들려지고 송이의 흉부가 노출되었다.
나는 흉관이 들어가 있는 자리를 덮고 있던 거즈를 떼어 내고 소독을 했다.
그러고는 블레이드(blade, 칼날)을 들었다.
투욱―
흉관을 고정하고 있던 실의 일부를 잘라 내었다.
그리고 송이에게 말했다.
"자. 숨 참고!"
"흡!"
쑤욱―
나는 관을 뽑았다.
그러자 송이의 입에서 깜짝 놀란 듯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됐어. 숨 쉬어도 돼."
"후아, 깜짝이야……."
"놀랐어?"
"으…… 이제 숨 맘대로 쉬어도 돼요?"
흉관은 뽑혔지만, 들어가 있던 자리를 봉합하는 과정이 남았다.
이 마무리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공기가 흉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 이제 한 번만 더 숨 참자."
"읍―"
송이가 다시 숨을 참는 동안 나는 흉관이 뽑힌 자리에 남아 있는 실로 타이(tie, 매듭만들기)를 시행했다.
샤샥―
송이가 힘들어하지 않게, 그동안의 연습을 통해 늘어난 타이 실력으로 순식간에 타이를 마무리했다.
"자, 이제 진짜 끝! 많이 아팠어?"
"잠깐 아팠는데…… 그래도 뽑으니까 좀 시원하기도 해요."
나는 드레싱으로 흉관뽑기를 마무리했다.
이미 송이의 몸에는 수술할 때 절개했던 자국들이 꿰매어진 채 남아 있다.
어린애 몸에 그런 자국들이 남은 것을 보니 새삼 안쓰러웠다.
"그동안 흉관 달고 다니느라 고생했어."
내가 말하자 송이는 옷을 내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배시시 웃었다.
"이제 다 끝난 거예요?"
"흉관 뽑았으니까 엑스레이 한 번 더 찍어야 돼."
혹시 흉관을 뽑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까 봐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럼 잘 가고."
"잉…… 왜 끝인 것처럼 얘기해요. 다음 주에 오면 선생님 다시 볼 수 있는 거 아녜요?"
"나는 다시 안 보는 게 너한테 좋은 거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를 다시 본다는 소리는, 병동에 다시 입원을 한다는 소리니까.
송이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동안 진짜 고마웠어요 선생님!"
"그래."
"짜이찌엔!"
이번엔 알아들었다.
나는 그렇게 송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딸각―
나는 스테이션에서 전자의무기록을 열어 송이에 대한 마지막 줄을 추가했다.
<흉관 제거 후 X―ray 확인하였으며,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퇴원 조치함>
* * *
저녁이 되었다.
송이가 없더라도 나는 여전히 바빴다.
내가 신경 써야 할 스무 명의 환자들이 더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밀려오는 일을 처리한 뒤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생각이 났다.
송이는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내 걱정 어린 노파심에 마동섭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 교수님이 성격이 불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책임한 분은 아니거든."
마동섭의 설명이 이어졌다.
비록 보호자의 등쌀에 못 이겨 일찍 퇴원을 시켰지만…….
큰 무리가 없는 선에서 결정을 하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검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 환자들보다 빠르게 외래에 재방문하라는 안전장치까지 달아 두었다.
"다음 주 초에 외래에서 보기로 했다며? 그 정도면 빨리 부른 거야. 그때까지 별 이상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
내가 너무 민감한 거겠지?
별일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파앗―
마치 누군가 암막 커튼을 치는 것처럼 주위가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