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숨(breath)(13)
"무슨 일인데요?"
내 말에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양송이 환자. 오늘 수술 끝나고 병동 올라온 뒤로 시간당 유린이 좀 적은 것 같아서요."
유린(urine, 소변량).
소변이 잘 나온다는 것은 우리 몸이 큰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다.
반대로, 소변이 안 나온다면?
우리 몸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가만히 두면 안 되는 큰 문제가.
"얼마 나왔죠?"
"최근 3시간 동안 20, 10, 20cc예요."
너무 적다.
몸무게(kg) 반 이상의 숫자는 나와야 정상적인 소변량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소변이 계속 안 나오면?
환자는 몸이 붓고, 폐는 수분 충만한 상태가 되면서 제 기능을 잘하지 못하게 된다.
"몸무게가 51kg니까 소변량이 적긴 하네요. 지금 가서 환자 한번 볼게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양송이 환자가 누워 있는 74호실로 향했다.
"송이 학생. 들어갈게요."
촤악―
나는 커튼을 걷고 들어갔다.
"헙."
호다닥!
송이가 무언가를 급히 정리한다.
친구의 노트를 복사한 듯한 여러 장의 프린트들이 어지럽게 침대 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송이는 공부에 집중하는 대신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왜 그렇게 놀라요?"
"아 깜짝이야…… 엄마인 줄 알았네. 공부하다가 방금 뮤비 틀었단 말이에요."
"뮤비?"
그러고 보니 탄산소년이라는 아이돌팬이라고 했었지.
나는 픽 웃었다.
수술한 당일에도 꼬박꼬박 비디오를 챙겨 보는 것을 보니 애정이 대단한 모양이다.
"근데 선생님, 왜요?"
"소변량이 좀 적은 것 같아서 이것저것 확인하는 검사 좀 해 보려고 해요."
내가 말한 검사라는 단어에 반응한 송이가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혹시 또 아픈 거예요? 막 어디 찌르고……."
"이번에는 간단한 거니까 걱정 마요."
그렇게 말하는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검사도구는 <손>이니까.
흉부외과 수술 후 소변량이 줄어든다면, 주로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첫 번째를 확인하러 나는 양송이 환자에게 다가갔다.
"잠깐 손 좀 줘 볼래요?"
나는 양송이 환자의 손을 잡았다.
"뭐가 제일 힘들어요? 수술 부위 아픈 거 말고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송이 환자의 발을 살며시 잡는다.
로우 카디악 아웃풋(low cardiac output)을 감별하기 위해서이다.
즉, 심장이 기능이 떨어진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그 첫 번째 이유.
바로 심장의 문제다.
왜 폐 수술을 받았는데 심장에 문제가 생기냐고?
인체의 신비라고 해야 할까…….
우리 몸의 여러 장기들은 서로 유기적이고 연쇄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 수술을 받음]
→[폐가 힘들어함]
→[폐에 피를 보내야 하는 심장도 힘들어함]
→[심장으로부터 피를 공급받던 콩팥인데, 여기로 심장이 피를 잘 못 보냄]
→[콩팥이 소변 만드는 일을 잘 못함]
→[결국 소변이 잘 안 나옴]
……이런 식으로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폐를 수술하면, 부드러운 빵 같았던 폐의 상태가 일시적으로 조금 퍽퍽한 빵처럼 되어 버린다.
이렇게 퍽퍽해진 빵 같은 폐로 피를 쏴 주어야 하는 심장은 당연히 힘들 수 있다.
‘다행히 손발이 차갑지는 않아.’ 양송이 환자의 손발은 따뜻했다.
심장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혀 한번 내 볼까요?"
두 번째 체크.
환자의 몸에 수분이 부족하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혀나 피부가 말라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잠깐 팔도 좀 올려 볼게요."
스윽―
나는 송이의 겨드랑이를 만져 보았다.
몸의 수분을 파악하기 위한 주된 방법 중 하나다.
기계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는 것만큼, 이렇게 환자를 직접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백의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의사는 그 어떤 직업보다 오감(五感)을 활용해야 하는 직업이다.>
요즘 나는, 환자들의 주치의가 되어 진단을 하면서 그 문장의 의미를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키킥."
내 손이 닿자 환자는 간지럽다는 듯 몸을 움츠리며 웃었다.
간지럽니?
조금만 참으렴.
다 치료를 위한 진단 중 하나니까.
나는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한 뒤 생각했다.
‘몸에 물기가 없어.’
물론 당연한 일이다.
수술 후에는 물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까.
수술 도중 몸에 있는 수분이 공기로 증발하며, 출혈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폐 수술.
수술 후의 폐는 몸에 수분이 넘치는 상태에 약하기 때문에, 수액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더더욱 물기가 부족해지게 된다.
‘통증 조절이 잘되고 있는데도 심박수도 빠른 것 보니 몸에 수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결론을 내린 나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양송이 환자 볼륨이 좀 부족한 것 같네요."
그때 송이가 불쑥 말한다.
"볼륨이요? 저 그렇게 마른 몸은 아닌데……."
응?
무슨 소리야.
나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옆에서 간호사가 빵 하고 웃음을 터트린 뒤 설명했다.
"송이야, 수술하면서 몸의 수분이 많이 빠져나간 것 같아. 몸의 수분이 없을 때, 볼륨이 모자란다고 표현한단다."
우리 몸의 수분량을 볼륨(volume)이라고 의사들은 흔히 부른다.
가령, 몸의 수분이 적은 것 같아서 수액을 줄 때 ‘볼륨을 더 준다’고 표현한다.
이 때문에 송이가 잠시 착각에 빠진 모양이다.
"아 씨…… 난 또……."
송이의 얼굴이 빨개진다.
뭔 생각을 한 거야?
쪼그마한 게.
나는 피식 웃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수액 보충 좀 할게요. 하트만 솔루션 500cc 주세요."
"네."
"그럼 혹시 불편한 거 있으면 얘기해요. 너무 밤늦게까지 뮤비 보지 말고."
"네……."
촤악―
나는 커튼을 닫아 주었다.
이렇게 양송이 환자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은 뒤 스테이션으로 돌아간다.
아, 그 전에 세 번째 체크도 잊지 않았다.
소변량이 줄 수 있는 세 번째 원인.
그건 바로 소변줄이 꼬여 있거나 이물질로 막혀 있는 경우이다.
이런 시답잖은 이유가 왜 톱 쓰리에 들어가냐고?
실제로 환자를 보다 보면, 이런 사소한 이유를 놓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간단한 문제를 모르고 헛다리를 짚으면, 환자 매니지먼트는 한참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하나하나 놓치지 말자.’
내가 맡고 있는 환자는 20명이 넘는다.
하지만, 각 환자들에게는 주치의가 한 명뿐이다.
그렇기에 나의 일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다들 무사히 병원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관리하는 건 내 몫이니까.
* * *
POD(수술 후) 2일 차.
송이는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이제는 코에 산소줄을 떼고, 호흡운동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나와 송이도 이제는 꽤 친해졌다.
"송이야. 들어간다."
촤악―
나는 커튼을 걷었다.
이제는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부터 프린트를 붙잡고 있던 송이가 종이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나에게 말한다.
"라이워쨔츠라몐마?"
"뭔데 갑자기?"
"제2 외국어요. 제가 무슨 말 했게요?"
갑자기 중국어 교실?
뜬금없네.
나는 피식 웃고 말했다.
"좋은 아침."
"땡."
"뭔데 그럼?"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그런 걸 왜 외우고 있어."
"재밌잖아요."
송이는 낄낄 웃더니 말한다.
"솔직히 다른 과목보다 안 중요하긴 한데, 중국어도 열심히 배워 놓으려고요. 나중에 로망 엔터테인먼트 입사하려면……."
"거기가 탄산소년 기획사야?"
"네. 졸업하면 엔터계로 진출해서 탄산소년 오빠들이랑 인연을 맺고 결혼할 예정이에요."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키키킥!"
상상력이 참 풍부한 아이구나.
나도 10대 시절에는 저랬을까 싶다.
"선생님 생각해 봤는데요. 제가 폐를 잘라서 가슴 안에 공간이 생긴 거잖아요. 이 빈 가슴 속에 우리 탄산오빠들에 대한 사랑을 더 채워 넣으라는 하늘의 뜻 아니었을……."
"응, 아니야. 옆으로 눕기나 해."
"치."
나는 송이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내 할 일을 시작했다.
바이탈 체크는 기본.
흉관을 삽입한 곳에 흉수가 새지는 않는지, 감염의 징후는 없는지 확인하고, 드레싱을 꼼꼼하게 해 준다.
그리고 호흡운동을 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행히도 송이는 내 말을 꼬박꼬박 잘 따라 주는 환자였다.
<자꾸 흔들면 콜라처럼 터질지도 몰라~>
한편, 진료를 받는 동안 옆에 치워 놓은 이어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힐긋 보니, 핸드폰 화면에 어김없이 탄산소년이 춤을 추고 있다.
송이는 공부를 하면서도 며칠째 같은 동영상을 틀어 놓고 있다.
저렇게 무한 반복 재생을 하는 걸 보니, 아이돌 뮤직비디오가 조회수 1억이 넘는 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탄산소년이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송이의 열변이 이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비디오는 마치 영양제처럼 정기 섭취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나도 송이를 보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아이돌 팬들의 세계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왜 똑같은 부분만 계속 보는 거야?"
"최애거든요."
"반진호가 네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구나."
"와, 선생님도 반진호 아시는구나!"
송이가 눈을 빛내며 반갑게 외쳤다.
물론 알지.
그리고 그 환자가 얼마 전에 우리 병원 응급실에 다녀갔다는 것도 알지.
소담이가 반진호의 성기에 소변줄을 넣다가 차마 말 못 할 사건을 겪었다는 것도…….
‘이런 이야기는 동심 파괴겠지.’
물론 나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진기처럼 뒷담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여기저기 퍼뜨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날 응급실에서 일어난 일을 여태까지 병원 바깥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니죠?"
"뭐?"
"반진호가 연국대병원 왔다가 의료사고로…… 그…… 성불구자 됐다는 루머요."
"……."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소문이 그런 식으로 퍼졌단 말이야?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두세 다리만 건너도 과장되기 마련이다.
연예인들도 온갖 이상한 루머에 시달리느라 참 피곤하겠구나 싶었다.
"아니야."
"그쵸? 헛소문이죠?"
"자세한 건 얘기해 줄 수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소송 걸리고 난리 났게? 그리고 우리 병원 비뇨기과 선생님들이 그런 실수를 할 만한 분들은 아니란다."
나는 그렇게 반진호의 명예를 방어해 주었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같은 남자로서 최소한의 연대의식이라고 해야 하나…….
창창한 나이에 그런 오해를 사면 안 되니까.
그러자 송이가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휴, 다행이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우리 반진호 오빠가 그럴 리가 없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그렇게 좋을까?
팬심이라는 건 잘 이해 못 하겠다.
* * *
그날 오후.
교수님과의 회진시간.
송이 어머니는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애, 이제 퇴원할게요."
……잘못 들었나?
참고로 오늘은 수술 2일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