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숨(breath)(12)
‘저게 뭐야?’
나는 눈을 의심했다.
송이의 베드에 태블릿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관절이 달린 장치 끝에 태블릿 PC가 끼워져 있고, 송이의 얼굴 쪽으로 향해 있다.
누운 채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 옆에는 송이 어머니가 감시하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술한 지 6시간 만에 공부를 시킨다고?’
말도 안 된다.
원래는 중환자실에 있어야 할 환자인데!
그렇게 생각해서 병실에 들어가 말리려고 하는 순간.
옆에서 복도를 지나던 간호사가 내 팔을 슬쩍 잡고 속삭인다.
"선생님, 그냥 두세요."
"……?"
"안 그래도 저희가 아까 말려 봤거든요. 수술 끝낸 환자니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괜히 보호자한테 욕만 먹었잖아요."
하아.
탄식이 절로 나온다.
물론 나도 이럴 때를 대비한 방법 정도는 미리 생각해 두었다.
"제가 잘 말해 볼게요."
나는 간호사에게 속삭인 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송이 어머니가 나를 홱 바라보며 묻는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지금 우리 송이 공부해야 되는데."
방해하지 말라는 투다.
나는 누워 있는 송이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괴로워 보인다.
차마 말은 못 하고 있지만, 수술 후 통증에 학업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표정이 말이 아니다.
"송이 환자가 호흡운동을 해야 해서요."
나는 적당한 이유를 대었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다.
폐 절제술을 한 경우, POD(수술 후) 0, 1, 2일 차까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무기폐.’
즉, 호흡을 크게 안 해서 폐가 쭈그러든 상태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적절한 숨쉬기운동으로 폐를 정상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거, 지금 꼭 해야 되는 거예요?"
"예. 지금 해야 합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사실 첫날은 휴식을 취하고 호흡운동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해도 된다.
하지만…….
지금 송이에게는, 잠시라도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 저 편의점 좀 다녀올 테니까 그거 하고 있으면 되겠네."
송이 어머니는 마지못해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송이에게 말한다.
"너 빨리 끝내고 인강 마저 봐. 알았지?"
송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보호자가 병실을 나서자, 그제서야 숨통이 트인 듯 한숨을 푹 내쉰다.
마치 목줄이 졸라져 있다가 풀린 듯한 표정이랄까.
"휴우."
줄곧 느끼는 건데, 송이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와 아닐 때의 표정이 판이하게 다르다.
간호사는 병실 안을 빼꼼 쳐다보고 있다가 나에게 묻는다.
"선한 쌤. 인스피로미터 (inspirometer, 공 흡입기) 가져다드릴까요?"
"예. 부탁합니다."
간호사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기구를 가지러 간다.
나는 송이에게 물었다.
"몸은 좀 어때요?"
"배고파 죽겠어요."
"내일 아침부터는 식사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물은 먹어도 되는 거죠?"
"그럼요."
"헤헤, 살 빠지겠네."
송이의 얼굴에 웃음이 돌아온다.
나도 픽 웃었다.
이 와중에 살 빠진다고 좋단다.
곧 간호사가 호흡기를 들고 오자, 송이가 호기심을 보인다.
"이게 뭐예요?"
"숨 쉬는 연습을 도와주는 기구예요. 첫날이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들이마실 수 있는 만큼 마셔 보면 돼요."
나는 송이를 일으켰다.
송이는 호흡기 입구에 입을 가져다 댄 뒤, 힘겹게 후웁 하고 공기를 들이켰다.
부르르―
호흡기 안에 있는 공들이 위쪽으로 겨우 5cm 정도 떠오른다.
아직은 힘이 약하다.
"콜록."
송이는 이내 숨을 들이켜다 말고, 찡그리며 기침을 한다.
목 안에 무언가 끼어있는 듯한 소리가 난다.
나는 휴지를 뽑아 송이의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곧 피 섞인 가래의 잔여물이 기침과 함께 묻어 나온다.
나는 걱정스레 말했다.
"지금 공부할 만한 컨디션 아닌 것 같은데."
"괜찮아요. 어차피 그렇게 말해 봤자 저희 엄마 말도 안 통하고……."
송이는 코끝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엄마 말대로 기말고사 공부해야죠. 2주도 안 남았는데…… 지금 이 시간에도 다른 애들은 공부하고 있을 거예요."
본인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도 억지로 말릴 수 있는 명분이 없다.
하지만 씁쓸했다.
아무리 고3이라지만, 꼭 이렇게까지 애를 혹사시켜야 하나?
* * *
<혹사? 사돈 남 말 하시네.>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누나가 코웃음을 쳤다.
오랜만에 하는 가족들과의 통화.
선도 누나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대뜸 나를 공격한다.
<야, 너는 고3 때 안 그랬는 줄 알아? 너 공부하는 거 보고 미친 인간인 줄 알았잖아.>
"그랬어?"
<밥 소화시킬 시간도 아깝다고 가위로 국밥 산산조각 내서 책상 앞에서 먹던 거 기억 안 나냐? 하루 4시간씩 자고 길 걷다가 전봇대에 헤딩한 거 기억 안 나냐고.>
그랬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 수험생활이라…….
물론 그 당시에 나도 스스로를 혹사시켰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는 볼멘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래도 환자는 건강 회복이 가장 최우선이란 말이야. 나도 만약 고3 때 수술을 받았으면 하루 이틀은 쉬었을 거라고."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누나의 공격이 이어진다.
<으이구, 하여튼 너는 가만 보면 오지랖이 태평양이여. 남의 집 교육에 감 놔라 배추 놔라 할 생각 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해!>
"배추가 아니고, 배 아니면 대추 둘 중에 하나겠지."
<썅, 대충 알아들어.>
바로 욕설이 날아온다.
작은누나는 입이 참 걸걸하다.
이제 나이도 나이인 만큼 욕은 좀 자제하면 좋을 텐데.
저런 누나에게 반해서 결혼을 한 둘째 매형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왜 전화한 건데?"
<너 연애 안 하냐?>
"엥?"
<나한테 동생 한 번만 소개해 달라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귀찮아 죽겠다. 몇 명 만나 보…….>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생각 없어."
<왜? 네 취향으로 생긴 애도 있는데.>
"됐다니까. 그리고 누나가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아?"
그러자 마침 잘 걸렸다는 듯, 수화기 너머에서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지. 너 고딩 때 내 친구 3년 동안 짝사랑하던 거 기억 안 나냐?>
으아악.
흑역사가 방출된다!
나는 서둘러 말을 끊었다.
"아, 갑자기 몇 년 전 이야기를 왜 해?"
<진짜 너 또라이인 줄 알았잖아. 좋아할 대상이 따로 있지, 어딜 내 베프를…… 그때 그래서 결국 걔가 너한테…….>
뚝.
나는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의 흑역사 방출은 사양한다.
"갑자기 어릴 때 얘기를 하고 난리야."
나는 툴툴댔다.
생각해 보면 청소년기는 참 가혹한 시기였다.
호르몬은 미쳐 날뛰는데, 성인이 되기 위한 관문은 치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10대는 여러모로 복잡한 시기다.
* * *
저녁 7시.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낮 동안 바쁘게 돌아가던 병동도 열기가 조금은 식어 간다.
수술방에서 하루 종일 쥐어짜졌던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녹초가 되어서 병동으로 올라온다.
"다들 수고."
"고생하셨습니다."
퇴근시간.
그나마 레지던트 선생들이 생기를 되찾는 순간이다.
어느 직장인들이나 그렇듯,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만큼은 다들 행복한 표정이다.
물론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송유주라든가.
"환자들 별일 없었어?"
송유주 선생님이 올라오자마자 내게 물었다.
사복 차림이다.
보통 병원 사람들은 유니폼 차림과 평상복 차림이 꽤 달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송유주 선생님은 이미지 차이가 거의 없다.
그냥 처음부터 의사 선생님으로 태어난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퇴근하기 전에 물어볼 거 있으면 얼른 말해."
나는 기다렸다는 듯 메모를 펴고 물어보았다.
"김선식 환자 저지방식이 진행했는데, 드레인(drain) 색깔 다시 우유 색깔로 변했습니다. 무지방식으로 바꿀까요?"
"어."
"안치훈 환자는 레이트(rate) 더 빨라져서 허벤(herben, 부정맥약) 용량 늘리면 되겠죠?"
"어."
나는 하루 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속사포로 물어보았다.
송유주 선생은 한마디 말로 대답한다.
귀찮아서가 아니고, 원래 이 사람은 말투가 이렇다.
용건만 간단히.
정보는 간결하게.
"됐어?"
"넵. 감사합니다."
"간다."
쌔앵―
송유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했다.
이제 남은 시간들은 당직 레지던트들과 인턴들의 시간이다.
스테이션에서 다음 날 처방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류명인이 호다닥 달려온다.
"송유주 선생님 퇴근하셨어요?"
"어, 방금 전에."
"아이 씨…… 드릴 거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우르르르.
색색깔의 막대 사탕들이 테이블 위로 쏟아진다.
또 사탕이야?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야, 그런 건 1절만 해. 보는 내가 다 질린다."
"그…… 그래요?"
"한두 번이어야 먹히지. 너는 머리도 좋은 놈이 왜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안 돌아가냐?"
쿠웅.
녀석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저한테 머리 안 돌아간다고 한 사람은 형이 처음이에요. 어떻게 천재인 나에게 그런 말을……."
나는 피식 웃었다.
은근히 타격감이 찰지다.
요즘 이 녀석을 놀려 먹는 게 내 흉부외과 인턴 생활의 소소한 재미다.
"헛소리 말고 내일 수술 프리옵(pre―op, 수술 전 준비)이나 챙겨. 아까 영상 판독 없는 환자 한 명 있다며?"
"알았어요."
류명인은 투덜대며 모니터 앞에서 영상의학과 당직을 확인해 본다.
"하…… 오늘 하필 영상의학과 당직 추근덕 선생님이네."
추근덕?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숙소 휴게실에서 다른 인턴들 입에서도 자주 언급되던 이름이었다.
워낙 이름이 특이한 탓에 한 번 들어도 잊을 수 없었다.
"추 선생님이 왜?"
"이 사람 전화하면 엄청 까칠하게 받아요. 내가 무슨 죄인이 된 것 같다니까요. 본인 당직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말이죠."
인턴 숙소에서도 추근덕 선생의 뒷담화가 시작하면 모든 인턴들은 너도 나도 욕을 하면서 하나가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인턴들이 찾아가서 판독 부탁할 때도 그렇게 무시를 한다며?"
"그러니까요. 어제도 체스트(chest, 흉부) 엑스레이 판독 좀 받으려고 찾아갔거든요. 그랬더니 저를 벌레 보듯이 보더라구요. 말투도 엿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류명인이 추근덕 선생의 말투를 재현한다.
<야 이 새끼야.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기다리라 말했잖아!>
"후우…… 내가 병원장이 되면 그런 인간들은 다 쳐내 버려야지."
"언제는 송유주 선생님이 널 벌레 보듯이 봐서 매력적이라며?"
내 말에 깜짝 놀란 류명인은 집게손가락을 입에 가져간다.
"쉬잇― 여기 스테이션에서 그런 얘기 하면 어떡해요?!"
나는 피식 웃었다.
비밀이었어?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티를 많이 내는 거 아니냐?
아무튼 영상의학과 추근덕 선생의 악명은 워낙 자자했던지라, 나도 한번 만나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류명인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송이 환자 상태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말한다.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