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79화 (79/241)

#79 숨(breath)(10)

송이가 말한 부탁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사진 한 번만 찍게 해 주세요."

"사진은 왜?"

"SNS에 인증샷 올리게요!"

송이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아마 허락해 주겠지?

하지만 의외로 선한은 단호히 거절을 했다.

"안 돼요."

"왜요?"

"사람들이 얼굴 알아보는 거 싫어요."

"아 선생님. 한 번 만요."

"안 돼요."

"선생님 동영상 벌써 조회수 200만 넘었잖아요. 이제 와서 제가 사진 하나 올린다고 뭐가 달라져요?"

송이는 매달리다시피 하며 말했다.

하지만 선한을 설득하지 못했다.

곧 입이 삐죽 튀어나온다.

"치, 사진 한 방 찍는 게 뭐가 어때서…… 당장 내일 수술하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 소원 하나 안 들어주고……."

송이는 계속 미련이 남는 듯 꿍얼꿍얼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병실로 돌아가자.

그런데 그때.

피식 웃는 선한의 손이 다가온다.

"알았어. 폰 이리 줘 봐요."

찰칵!

선한은 스마트폰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송이와 나란히 얼굴을 붙이고 셀카를 찍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송이는 돌처럼 바짝 굳어 버린 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됐어요?"

"……네!"

"일찍 자요. 아픈 데 있으면 얘기하고."

선한은 폰을 돌려주고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우 씨 깜짝이야……."

송이는 잠시 멈추었던 숨을 내쉬면서 선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콩닥콩닥.

잠깐 설렜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건 반칙 아닌가?

그리고 조금 전에 찍은 인증샷을 SNS에 올리려 했다.

하지만…….

곧 화면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아 뭐야. 나 왜 오징어임?"

망했다.

콘서트 다녀와서 씻지도 못하고 병원생활을 했더니 몰골이 엉망이었다.

게다가 울어서 눈까지 부어 있다.

내가 이런 얼굴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니!

하지만 삭제하기는 아까워서, 폰 한구석에 고이 저장만 해 놓기로 했다.

아무튼 신선한 선생님과의 대화 덕분인지는 몰라도, 한층 불안감이 덜어진 것 같다.

송이는 병실로 돌아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오전 8시.

송이는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송되었다.

난생처음 받아 보는 수술이라 긴장이 된다.

머리 전체를 덮는 얇은 빵모자처럼 생긴 수술 모자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우리 딸, 너무 긴장하지 마. 수술 잘될 거야."

송이의 옆에는 아빠가 서 있다.

출장을 갔다가 아침 일찍 돌아와 송이를 돌봐 주고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엄마는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 오고 있어."

"왜 같이 안 오고?"

"너네 엄마 예민한 거 알잖아. 신경 많이 쓰이면 두통 때문에 꼼짝도 못 해. 오늘 아침에도 끙끙 앓다가 약 먹고 좀 전에 출발했대."

아빠가 한숨을 푹 쉰다.

송이는 생각했다.

나 때문인가?

내가 거짓말도 하고, 고3 주제에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가 화병이 난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술하는 날 딸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왜 자기가 아파서 딸 얼굴도 못 보러 온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난다.

송이는 쌀쌀맞은 말투로 말했다.

"아빠, 나 이제 들어갈게."

"잠깐 기다렸다가 엄마 얼굴 보고 들어가지. 지금 오고 있다는데."

"됐어."

송이가 퉁명스레 대답한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 때문인지, 괜히 아빠 얼굴까지 보기 싫다.

곧 이송원이 휠체어를 움직인다.

지잉―

수술 대기실의 문이 열린다.

등 뒤에서 아빠가 뭐라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힘내, 우리 딸, 뭐 그런 얘기들.

송이는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앞만 향했다.

와글와글―

수술방 입구 로비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환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 베드에 누운 채 온 사람, 보호자에게 안겨 있는 애기들도 보인다.

응애응애―

아기의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수술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와.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로비도 엄청나게 바쁜 곳이구나…….’

생각 외로 어수선한 시장 바닥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스피커에서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감미롭고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다.

송이는 바짝 얼어 있다.

그런 송이의 눈에 수술실로 들어가는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는 것이 보인다.

잠깐 잠깐 열리는 수술실로 향하는 문안에는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는 벽들이 보였다.

‘저기가 수술이 진행되는 곳인가……?’

호기심 많은 송이는 눈앞에 펼쳐지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다.

"양송이 환자분이죠?"

송이에게 말을 건 사람은 마취과 의사였다.

옆에 함께 다가온 하늘색 수술복을 입은 간호사는 휠체어에 ‘2’라고 써져 있는 번호판을 하나 건다.

2번 방에 들어가게 될 거라는 신호인가 보다.

"환자분, 오늘 수술을 담당하게 될 마취과 의사 안자용입니다. 입 한 번만 벌려 보실까요?"

안자용?

마취과 의사 이름이 안자용이면 어떡해요?

저 안 자면 어쩌려구요?

송이가 그렇게 생각하다 혼자 빵 터졌다.

속으로 웃음을 꾹 참고 부들거렸다.

‘크크크…… 이 병원에는 나처럼 이름 이상한 선생님들밖에 없나 봐. 수술 끝나면 SNS에 올려야겠다.’

그런 송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취과 의사는 송이의 치아를 확인하고, 마취 도중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으, 긴장돼 죽겠다.’

그렇게 수술장 입구 공간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양송이는 수술장으로 이동되었다.

지잉―

2번 방 수술실이 열리고, 양송이가 타고 있는 휠체어가 2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양송이는 수술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하늘색 벽으로 둘러싸인 이 수술방이라는 공간이 너무 신기하다.

‘……근데 추워!’

오들오들.

가장 먼저 느낀 건 수술실 안으로 들어오자 추웠다는 것이다.

무슨 냉장고인 줄 알았다.

수술을 앞두고 있어, 한 겹으로 된 원피스 형태의 옷만 입고 있었던 송이였기에 그 추위는 강하게 느껴졌다.

"자, 환자분 휠체어 내리셔서, 여기 발판 밟고 침대 위로 올라가 볼까요?"

휠체어를 끌고 왔던 간호사가 송이에게 말한다.

송이는 발판을 밟고 올라, 수술실 침대에 눕는다.

수술방 침대는 푹신했지만 차가웠고, 좁았다.

팔을 벌릴 수도 없었고, 수술 긴장감 때문인지 온도가 추워서인지 몸이 떨렸다.

바들바들―

그런 송이를 본 간호사들이 따뜻한 담요를 덮어 준다.

"춥죠? 원래 수술실 안의 온도가 낮아요. 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간호사의 말에 송이는 긴장감을 조금 내려 두고 심호흡을 했다.

곧 송이의 몸에 무언가가 부착되고, 입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어졌다.

"자 심호흡 크게 하고. 이제 곧 잠들 거예요."

선생님의 말을 따라 심호흡을 크게 하는 송이.

곧 정신이 몽롱해진다.

마치 잔잔한 파도가 머릿속으로 밀려와, 의식을 모래 알갱이처럼 쓸어 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마취하는 선생님 이름이…… 뭐라 그랬더라……?’

안 자용…….

자용…….

…….

몇 초도 되지 않아, 송이는 잠이 든다.

그렇게 송이의 우상엽 절제 수술은 시작되었다.

* * *

양송이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간 뒤.

나는 바쁜 오전 일과를 보내고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수술은 잘되겠지?’

<우상엽 절제술>.

사실 그리 위험한 수술은 아니다.

우리 몸의 폐는 양쪽이 서로 다르게 생겼다.

왼쪽 폐 : 상엽 / 하엽

오른쪽 폐 : 상엽 / 중엽 / 하엽

양송이 환자는 이 중 오른쪽 상엽을 잘라 내게 되는 것이다.

‘하긴, 걱정할 필요 없겠지. 이런 수술은 하루에도 10건 가까이 흉부외과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평소보다 신경이 쓰였다.

‘이럴 때 팍하고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무소식이 오히려 희소식인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봤던 미래는 죄다 어두운 미래뿐이었잖아?

누군가 다치거나 죽거나 의료사고가 터지는 등등…….

그렇게 생각하면, 미래예지는 발생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딱 한 번.

예외적인 순간이 있었다.

또 다른 형태로 보였던 미래.

마치 슬라이드를 보는 듯했던 그 장면.

수술 과정을 나에게 미리 한 번 보여 주는 듯했던 그 순간.

‘분명 메스를 손에 들고 나서 생긴 일이었어.’

혹시 그 현상을 다시 체험해 볼 수 있을까?

실험해 보자.

남들 모르게, 비밀리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의료기구를 정리 중인 간호사에게 살며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선생님."

"어머나 선한 쌤. 무슨 일이에요?"

나이가 지긋한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반갑게 말한다.

지난 보름 동안 친해진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첫날 나를 못 미더워하던 말투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이제 어느 정도는 주치의로서 간호사들에게도 존중받고 있는 것 같다.

"혹시 체스트 튜브(chest tube, 흉관) 세트 하나 구할 수 있을까요?"

내 말에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시술도구요? 있기는 한데…… 갑자기 왜요? 흉관 넣을 환자라도 있어요?"

"그건 아니구요. 기구 쓰는 연습을 좀 하려구요."

"오오. 인턴 선생님이 기구 쓰는 연습을요?"

간호사 선생님이 대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살짝 부끄러운 듯 말을 이어갔다.

"네. 시간이 날 때 수술도구에 익숙해지고 싶어서요. 다른 선생님이 아까 쓰던 기구여도 상관없습니다."

"마침 아까 안경식 선생님이 쓰시고 난 후에 소독 안 보낸 도구가 있기는 한데……."

간호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서랍을 열며 말했다.

"에이, 그냥 새거 드릴게요!"

"그래도 되나요?"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신선한 선생님이 연습하신다는데요, 뭐. 인턴 쌤이 이렇게 열정적인 건 처음 봤어요, 호호호."

간호사는 기구를 나에게 건네며 당부했다.

"대신, 꼭 잊지 말고 반납해 주셔야 돼요!"

가위 하나, 포셉 하나도 모두 병동 자산이기 때문에 없어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저번 달에도 어떤 인턴 쌤이 가위를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져가는 바람에, 어휴…… 그거 하나 없어져서 하루 종일 쓰레기통 뒤졌단 말이에요."

본인 담당 환자에게 쓰인 기구가 하나라도 없어지는 날에는, 병동의 쓰레기통은 물론 병원 전체를 뒤져서라도 기구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간호사는 신신당부하면서 빌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네. 걱정 마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건네받은 도구들을 들고 처치실로 향했다.

* * *

찰칵―

나는 처치실의 문을 닫았다.

지금 이 시각에는 병동에 급한 환자들이 없고,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대부분 수술방에 있다.

즉, 당분간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그렇게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한 뒤, 나는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체스트 튜브 세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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