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78화 (78/241)

#78 숨(breath)(9)

교수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본다.

‘인턴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표정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들도 놀란 눈치다.

교수님이 회진 중인데, 인턴 주제에 입을 열다니?

아무리 주치의라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도 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만약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증상들이 시험 전날 나타난다면, 시험을 아예 못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송이 어머니에게 작지만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송이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예상대로다.

시험을 못 볼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인 모양이다.

그러자 교수가 다시 입을 연다.

"여기 선생 말대로, 앞으로 기흉 재발 가능성은 충분히 높습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죠."

"그러면 선생님, 수술받고 최대한 빨리 퇴원시켜 주세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으시죠?"

송이 어머니는 마치 선심 써서 한발 양보해 준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만약 수술 후에 경과가 좋으면 3―4일이면 퇴원할 수 있으니까, 회복이 잘되기를 기다려 보죠."

교수의 말에, 그제서야 송이 어머니는 수술에 동의한 듯 딸에게 말한다.

"송이 너, 수술하고 빨리 나을 수 있지?"

"알았어, 엄마…… 노력해 볼게."

그렇게 한상기 교수는 송이 어머니를 겨우 설득하고, 다음 환자를 보러 이동했다.

저벅, 저벅.

복도를 따라 이동하는데, 교수님 머리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고3 엄마들은 다 저런가? 우리 집사람이랑 대화하는 줄 알았네."

교수님은 기가 빨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도 딱 송이만 한 자녀가 있다고 했었지.

수험생들은 본인도, 주변 사람도 스트레스가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을 때, 교수가 날 돌아보며 말한다.

"그래도 젊은 친구가 말을 하니까 그나마 먹히더만. 아주 적절하게 말을 잘했어."

"아닙니다."

갑자기 칭찬을?

나는 머쓱히 대답했다.

회진 중에 교수님과 이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자네가 가장 최근에 입시 공부를 겪었을 것 아닌가? 저 환자도 스트레스 많을 거야. 가서 자주 대화 좀 해 줘."

"네, 학생이랑 보호자분 모두 잘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묘했다.

지금까지 회진을 돌면서 교수가 나를 콕 집어서 무엇인가를 지시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점점 ‘한 달 돌고 잊히는 인턴’이 아닌 ‘인턴 신선한’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 * *

그날 밤.

송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분이 울적하다.

6인실의 천장이 답답하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최근 이틀 사이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콘서트를 가고―

난생처음 구급차를 타 보고―

가슴에 구멍을 뚫고―

엄마한테 혼나고―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다.

폐의 일부분을 잘라 내야 한다나, 뭐라나.

누군가 옆에서 위로해 줬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양송이, 오늘 하루 혼자서 잘 수 있지?"

그렇게 말한 뒤, 엄마는 집으로 갔다.

앞으로 입원 기간 동안 필요한 생필품과 문제집을 가져오겠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각.

송이는 혼자였다.

그렇게 병실에 외롭게 남겨진 송이는 밤 12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서워.’

자신의 폐가 기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송이는 덜컥 겁부터 났다.

그런데, 정작 엄마의 반응은 서운했다.

마치 자신의 건강보다는 시험공부를 못 할까 봐 더 걱정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일 수술이 잘못돼서 죽으면 어떡하지?’

부스럭, 부스럭―

송이는 불안하게 몸을 뒤척였다.

온갖 나쁜 상상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번 시작된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커진다.

마치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덩이가 점점 커지는 것처럼…….

송이의 마음속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눈사태처럼 휘몰아친다.

‘내가 죽고 나면 엄마는 슬퍼할까?’

지금이야 날마다 공부하라고 들들 볶기만 하지만…….

내가 죽고 난다면.

좀 달라질까?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죽고 나서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

학교의 내 빈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게 될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양송이, 17세.

인생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 씨…… 이 와중에 떡볶이 먹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고 싶은 음식 원 없이 많이 먹어 두는 건데.’

훌쩍훌쩍.

송이는 베개 아래로 고이는 눈물을 닦았다.

그때, 옆쪽 베드에서 누군가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학생. 우는 거야?"

옆자리 환자의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봤다.

송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나 보다.

"아니에요, 주무셔야 되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결국 송이는 수액걸이를 이끌고 바깥으로 나왔다.

움직일 때마다 흉관을 넣은 곳이 욱신거렸지만, 병실 안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저벅, 저벅.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소파 몇 개와 TV가 비치되어 있는 휴게실에 혼자 자리를 트고 앉는다.

"휴우."

송이는 자신의 발밑으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죽어서 아무것도 없는 우주 같은 공간에 내 영혼이 떠돌면 어떡하지?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

고요한 휴게실 안에서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하는 송이였다.

"그래도 죽기 전에 탄산소년 콘서트는 가 봐서 다행이다."

훌쩍.

송이는 눈물을 닦고 스마트폰을 켰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기록해야겠다.

찰칵―

송이는 한 손으로 흉관을 들고 사진을 찍은 뒤 SNS에 올리고 글을 적었다.

―수술 하루 전…… 폐를 잘라 내야 한다고 하니까 온갖 생각이 다 들어서 병원에서 혼자 통곡 중 ㅠㅠㅠ 수술 잘 끝나면 진짜 후회 없이 살 거예요 #일상 #상념

곧 12시가 넘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친구들의 반응들이 실시간으로 이어졌다.

―헐?!

―버섯님 수술이라뇨 ㅠㅠㅠ

―폐를 잘라 내다니 ㄷㄷ 꼭 수술 잘되기를 바랄게요!

―공연 다녀오시자마자 이게 웬일이래요 버섯님 ㅠㅠ 얼른 나아서 건강하게 같이 덕질해요!

역시 덕후 친구들밖에 없다.

<탄산소년>의 팬클럽 지인들.

비슷한 또래도 있고, 심지어 서른 살 언니도 있다.

가끔은 학교 친구나 가족들보다, 이들이 더 끈끈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송이는 기분이 조금 나아진 채 몇 개의 멘션에 답장을 했다.

토도독.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괜찮아요 ㅠㅠ 사실 그 와중에 주치의 선생님이 잘생겨서 설레는 중이에요…… ㅋㅋㅋㅋ곧 실시간으로 멘션이 달리기 시작했다.

―앜ㅋㅋㅋ

―아니 이 와중에?

―버섯님 역시 얼빠ㅋㅋㅋ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잘생겼길래요?

송이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답장을 했다.

―연국대병원 입원했는데 그 유명한 강남역 인턴이 제 주치의입니당!

선한의 유명세는 이미 SNS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반응이 제법 뜨거웠다.

―진짜요?

―헐 대박! ㅋㅋ

―실제로 보면 어때요?

―여태까지 본 의사 선생님 중에서 제일 잘생김 ㅋㅋㅋ 얼빠 인생 최대 위기예요. 우리 반진호랑은 다른 느낌으로 잘생김.

토도독.

송이는 생생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송이 학생?"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송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올려 보았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SNS에서 말하고 있던 바로 그 선생님이다.

깜짝이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왜 그래. 어디 아파서 나왔어요?"

선한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묻는다.

송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폰을 주머니 안으로 숨기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안 아파요!"

"그럼 왜?"

"그냥, 잠이 안 와서요."

송이는 얼굴을 슥슥 닦았다.

눈가에 아직도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수술 걱정되는구나."

"넹……."

뭐야.

내 말투 왜 이러냐.

콧소리가 왜 튀어나옴?

스스로의 몹쓸 목소리에 당황하게 되는 양송이였다.

신선한은 잠시 미소를 짓더니 송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수술 때문에 병원 입원한 건 처음이죠?"

"네……."

송이는 무릎을 모으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수술받는다 생각하니까 잠이 안 와요…… 선생님이 만약에 저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글쎄. 의사로서 여기 있다 보면 훨씬 심각한 경우도 많이 보게 되거든요."

"어떤 경우인데요?"

"대장을 잘라서 식도로 써야 되는 환자분이라든가."

"헉……?"

송이는 기겁을 했다.

장을 식도로 쓴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환자도 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는 걸 보니, 의사는 의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식도랑 대동맥이랑 통하는 길이 생겨서 입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는 경우라든가."

"헉. 무슨 공포 영화예요? 무서워요……."

"송이 학생 옆자리 할머니도 폐에 세균이 자라서 폐가 썩어 들어가고 있어요. 송이 학생보다 더 크게 폐를 잘라야 하는 상황이지."

송이의 얼굴이 하얘졌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하게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그 이야기를 들으니, 폐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일부분을 잘라 내야 한다는 본인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그에 비하면 송이 학생의 CCAM이라는 질환은 아주 심각한 병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제라도 발견되어 다행이죠."

"아……. 병 이름도 너무 어렵고, 인터넷에 찾아봐도 잘 안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죽을병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일 송이 학생이 받을 수술도 여기에서 밥 먹듯이 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고, 대부분 문제없이 퇴원하니까."

"정말요?"

"당연하죠."

그렇게 말하는 선한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 처음부터 나 위로해 주려고 하신 거구나.’

송이는 선한의 옆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뭐랄까.

조금 신기한 느낌을 주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묘하게 냉정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선한의 말을 듣자, 송이는 자기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송이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병원에 온 뒤, 누구 하나 자신의 불안한 심정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수도 마찬가지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선한의 친절한 몇 마디에,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풀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훨씬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송이는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근데 선생님, 저 위로해 주시는 김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돼요?"

"부탁?"

"네. 엄청 간단하고 사소한 건데요."

선한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갑자기 웬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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