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숨(breath)(8)
"혹시, 저 많이 안 좋은 거예요? 수술해야 되는 건 아니죠?"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는 어린 환자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좀 더 확실히 알기 위해서 검사하는 거예요. CT에서 큰 문제 없어서 금방 퇴원하면 좋겠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송이의 얼굴이 그나마 조금 안심되는 듯하다.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입 한쪽을 가리더니 나를 향해 속삭인다.
‘죄송해요. 우리 엄마 진짜 성격 이상하죠?’
그렇게 입 모양과 손짓으로만 말하고 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한참 후, 지친 상태로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벽면의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CT 동의서 받는 데 45분이나 걸리다니…….’
역대급 기록이다.
검사 동의서 한 장 받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처음이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지만…….
어쩐지, 앞으로의 치료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 * *
병원 1층.
송이는 CT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 내려오기 전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검사를 받으려니 걱정이 된다.
‘선생님 말대로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송이를 찾는 방사선 기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양송이 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송이는 고개를 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CT 촬영을 하는 양송이.
마치 우주선처럼 생긴 기계를 마주한다.
저 안에 들어가야 되는 거야?
왠지 무섭다.
SF 영화에 나오는 기계 같아서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소지품은 바구니에 넣으시고, 여기 누워 보시구요. 양팔 이렇게 올리고, 숨 들이쉬고 참으라고 할 때 참으면 돼요."
끄덕끄덕.
양송이는 의사의 말을 곧잘 따른다.
곧 CT 기계에 눕자, 동그란 기계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송이의 몸이 움직인다.
위이이잉―
<숨 들이쉬세요.>
<숨 참으세요.>
스피커에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막상 검사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다.
대신, 여러 가지 상념이 든다.
동그란 기계 속에 혼자 멍하니 누워 있자니, 잊고 있던 걱정거리들이 떠오른다.
‘기말고사는 어떡하지?’
당장 다다음 주가 시험이다.
엄마 말대로, 성적이 뒤처지면 어떡하지…….
중간고사를 망쳐 버린 송이에게 기말고사는 특히 중요했다.
그런데 시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친구들이 노트를 빌려준다 해도, 수업을 못 듣는다는 것은 큰일이다.
‘휴우…….’
너무 걱정 말자.
금방 퇴원할 수 있겠지.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 주기도 했으니까!
분명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나을 거야!
송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 *
송이가 CT를 찍은 후.
그 결과를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나였다.
나는 스테이션의 모니터에서 결과를 조회한 뒤 놀랐다.
"잠깐…… 이게 뭐야?"
나는 재차 화면을 확인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CT 사진의 명도를 조절해 보았다.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니다.
몇 번을 들여다보아도 이상하다.
"류명인. 잠깐 이리 와 봐."
"왜요?"
나는 마침 옆을 지나가던 류명인을 붙잡았다.
녀석은 뾰로통한 표정이다.
표정이 왜 저래?
설마 내가 흉관을 먼저 넣었다고 삐진 건가.
아직도 나에 대한 질투심이 가시질 않았는지, 온몸으로 자신의 삐짐을 표현하고 있었다.
"엑스레이 보여 주면서 자랑하려구요? 체스트 튜브 저보다 일찍 넣었다고 유세 부리려는 거 아니죠?"
"그런 거 아니야. 이리 좀 와 보라니까."
나는 어린애처럼 툴툴대는 류명인을 모니터 앞으로 끌고 왔다.
"네가 볼 땐 이게 뭐 같아?"
나는 손가락으로 CT 사진의 한쪽을 가리켰다.
CT 사진은 여러 겹의 흑백 화면으로 되어 있다.
CT를 보는 방법?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흰 부분’ = 무언가 차 있다.
‘검은 부분’ = 비어 있다.
이런 뜻이다.
그렇다면 폐는?
회색이다.
조직 반, 공기 반이니까.
수많은 작은 폐포들이 공기를 품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회색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시꺼멓다.
즉 공기만 커다랗게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두 덩어리의 회색 영토 안에, 마치 반갑지 않은 손님들 몇몇이 안방에 자리를 깔고 앉은 것처럼 보인다.
"방금 CT 찍고 올라온 환자 사진인데, 평범한 기흉이 아닌 것 같지 않아?"
내가 재차 묻자, 그제서야 류명인은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더니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와, 이름 한번 특이하네. 사람 이름이 양송이예요?"
명인아…….
우리가 남들 이름 특이하다고 할 입장은 아니란다.
아무튼, 이름을 보지 말고 사진을 보라고!
"어차피 기흉이면 그냥 며칠 있다가 폐에서 공기 새는 거 멈추면 집에 보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볼 것도 없을 것 같……."
"헛소리 그만하고 좀 더 자세히 봐 봐."
"아니 형 헛소리라뇨. 저번에 싸다구 때릴 때부터 저한테 말이 넘 심한 거 아녜요?"
"네가 인턴 중에서 영상을 제일 잘 보잖아."
나는 일부러 칭찬을 슬쩍 끼워 넣었다.
저번부터 느낀 건데, 이놈은 무진장 다루기 쉬운 캐릭터다.
그냥 칭찬만 해 주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류명인의 광대가 승천하면서 표정이 바뀐다.
"흠흠…… 뭐 바쁘지만 한번 볼까요? 제가 또 영상 보는 데 일가견이 있으니까."
단순한 녀석.
아메바냐?
류명인은 곧 내 옆에 앉아 마우스 스크롤을 넘긴다.
그렇게 화면을 넘기던 류명인이 눈썹을 찌푸린다.
"형 말대로, 단순한 기흉이 아닌 것 같은데요?"
"네가 봐도 그렇지?"
"학생 때 이런 거 배운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녀석의 표정이 그제서야 조금 진지해진다.
우리는 한동안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뭐 하냐, 너네?"
"송유주 선생님."
"돌덩이 두 개 맞댄다고 정답이 나와?"
순식간에 돌덩이 1, 2 취급을 받고 말았다.
"제일 위험한 게 너희들끼리 사이좋게 오답 내놓는 거야. 저번에야 운이 좋았다지만, 앞으로는 너희끼리 상의하지 말고 곧바로 나한테 얘기해."
"예."
송유주는 우리에게 면박을 주며 스테이션 의자에 앉았다.
딸각, 딸각―
송유주는 CT를 확인한다.
입술에 물고 있는 사탕의 막대가 위아래로 까딱거린다.
그렇게 무표정으로 모니터를 살피던 송유주.
잠시 후, 그녀의 움직임이 멈추며 눈썹이 약간 치켜 올라간다.
무언가 알아챈 건가?
"씨씨에이엠(CCAM)이네. 이 나이에 발견되는 경우는 흔치 않을 텐데."
아…….
CCAM!
우리는 그제서야 기억할 수 있었다.
.
‘Congenital Cystic Adenomatoid Malformation’의 약자이다.
한글로 풀어 쓰면 <선천성 낭포성 유선종 폐기형>이다.
너무 긴 이름 탓에 CCAM이라고 불리는 질환.
정상적으로 자라나야 할 폐에서 비정상적인 조직이 증식하는 병이다.
보통 태어나기 전이나 신생아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드물게 성인이 되어서 진단되는 경우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 발견되는 경우도 드문데, 첫 증상이 기흉으로 나타났다고? 진짜 특이한 케이스네."
송유주의 눈빛이 흥미로운 기색을 띤다.
나는 옆에서 물었다.
"그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가요?"
"수술해야지."
송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 기형은 방치하면 위험하다.
기흉이 재발하거나, 다른 호흡기 감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심지어 암으로 자랄 수도 있다!
"아마 교수님이 수술하자고 하실 거야. 회진 때 플랜 정해지면 나한테도 이야기해 주고."
"넵."
우리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걱정된다.
난데없이 수술이라니.
과연 송이 어머니가 이 사실을 곱게 받아들일까?
성격상 수술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에이, 설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사들이 하는 말인데, 듣겠지?
* * *
"안 돼욧!"
회진시간.
보호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자 교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말했다.
"보호자분, 양송이 학생은 수술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폐의 일부분을 잘라 내는 것.
그것이 탈곡기 교수님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송이 어머니는 팔짱을 끼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니까요."
"……?"
안 된다니?
교수는 눈을 깜박였다.
보아하니 수술비가 걱정될 만한 집안 사정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자꾸 수술을 반대하는 걸까?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는 가운데, 송이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선생님. 우리 애가 고3이에요. 고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꼭 지금 수술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런 이유였다.
고3인 송이가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송이 어머니에게, 병원에서의 시간은 단지 ‘낭비되는 시간’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보호자분, 저희 연국대병원 흉부외과는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저희 말을 믿고 따라 주세요."
탈곡기 교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송이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더욱 완고하게 교수에게 쏘아붙인다.
"선생님. 요새는 엄마들도 정보력이 얼마나 좋은 줄 아시죠."
"……예?"
"제가 알아보니까 기흉은 반드시 수술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하던데요?"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제가 잘 아는 강남의 유명한 의사가 그랬어요."
"어떤 의사인데요?"
"정신과 의사요."
"……."
빠직.
한상기 교수의 이마에 핏줄이 솟는다.
아마 평소 성격대로였다면, 벌써 폭발했을 것이다.
우리는 옆에서 도화선에 불이 붙기 직전인 폭탄을 보는 기분으로 조마조마하게 듣고만 있었다.
"……단순한 기흉이 아닙니다. 지금 의심하고 있는 질환은 <선천성 낭포성 유선종 폐기형>이라는 질환이에요. 잘라 내서 조직검사를 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요."
교수가 간신히 인내심을 되찾고 말한다.
"선천성 낭…… 뭐라구요?"
"쉽게 말해서, 신생아 때 폐가 자라나다가 이상한 부분이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교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만약 수술 안 하고 그냥 두면, 또 기흉이 발생하거나, 심한 호흡기 감염증이 생길 수도 있어요."
교수의 나긋나긋한 설명에, 송이 어머니는 한발 물러나서 새로운 제안을 한다.
"선생님. 그러면 2주 후에 기말고사 시험이 있는데, 그거 끝나고 수술 날짜를 잡아 보면 어떨까요?"
어쨌든 기말고사 전에 공부할 시간을 뺏길 수 없다는 뉘앙스다.
그러자 슬슬 한상기 교수님의 말투에도 짜증이 묻어난다.
"이미 발견된 이상 수술은 빠를수록 좋아요. 게다가 지금 당장 퇴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그냥 저희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세요."
갈등이 팽팽하다.
교수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건 송이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다.
"고3 기말고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잖아요."
"아니 어머니, 시험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니ㄲ……!"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터지나?
터지는 건가?
탈곡기의 명성을 알고 있는 나는 조마조마했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사이에 침묵이 감돈다.
그렇게 불편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 보호자 어머니."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