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76화 (76/241)
  • #76 숨(breath)(7)

    인터넷?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최근에는 바빠서 정신이 없긴 했다.

    ‘씻고 자고 일하고’를 무한 반복하는 일상.

    그러다 보니, 세상일에는 아무래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왜. 무슨 일 있어?"

    "너 최근에 네 동영상 다시 본 적 없구나."

    동영상?

    아…….

    강남역 사고 현장에서 찍혔던 그 영상?

    그야 당연히 쳐다도 안 봤다.

    다시 보면 낯 뜨거우니까.

    내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게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더라고.

    "그 영상, 조회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보여 줄까?"

    "어?"

    소담이가 보여 준 화면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분명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조회수가 2만 회를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런데…….

    내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다.

    조회수 230만 회.

    실화냐?

    "왜 이렇게 늘었어?"

    "원래 알고리즘 한번 타면,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거든."

    "아니, 아무리 그래도……."

    "특히 이 장면이 인기가 많아."

    소담이가 동영상을 넘긴다.

    내가 <의사입니다!>라고 외치며 사람들 사이를 홍해를 가르듯 등장하는 장면.

    이 장면이 ‘움짤’이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한다.

    "요새 인터넷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선한이 네 얼굴이 나오더라고."

    "저도 여러 번 봤어요."

    "미치겠네."

    나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부끄러워 죽겠네!

    어째서 사람들은 적당히를 모르는 걸까?

    어쩐지 최근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더니만…….

    이제 됐으니까, 그만 잊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요. 유명해지는 게 싫어요? 나라면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연서가 웃으며 묻는다.

    물론 유명해지는 것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백의신처럼 대단한 외과의사가 되고 난 후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우연히 주어진 유명세는 전혀 달갑지 않다.

    ‘유명해질까 봐 걱정이라니…… 살면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소담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연서 채널 구독자 끌어올리는 방법 생각났어."

    "뭔데요, 언니?"

    "선한이랑 같이 영상 하나 찍어."

    "어, 그러네? 선한 오빠 등장시키면 조회수 잘 나오겠다. 한번 도와줄래요?"

    연서가 눈을 반짝인다.

    어림도 없지.

    나는 빛보다 빠르게 거절했다.

    "안 돼."

    "아, 왜요. 저도 신선한 코인 좀 타 봅시다!"

    "얼른 밥이나 먹어."

    "치이."

    연서는 입술을 삐죽인다.

    나는 마지막 숟가락을 입에 욱여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가 볼게!"

    "뭐야. 벌써 다 먹었어요?"

    "먹은 거야, 마신 거야?"

    연서와 소담이가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침 식사쯤이야 한 입 컷이지.

    이건 흉부외과 인턴을 시작하고 생긴 버릇이다.

    밥 먹다 말고 병동으로 달려가는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교훈이 몸에 새겨진 것이다.

    <먹을 수 있을 때 빨리 먹자>!

    사람이 이렇게 점점 변해 가는가 싶다.

    * * *

    타닥―

    나는 흉부외과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하루의 루틴(routine)을 시작한다.

    환자 리스트업.

    바이탈 체크.

    밤사이의 이벤트 확인.

    그 와중에, 오늘도 류명인이 옆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형. 제가 낸 오더(order, 처방)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이제는 오더를 그냥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배열할지 고민 중이에요."

    "어, 그래."

    나는 펜으로 환자의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이 녀석의 말은 그냥 흘려듣게 되었다.

    배경음악 같달까?

    하루라도 녀석의 뻘소리를 듣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허전한 기분이 들 정도다.

    나는 지난밤 나에게 왔던 콜들을 떠올리며, 간호사들이 밤새 기록한 차트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송이 환자는 밤새 별일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지잉―

    유리문이 열리고, 송유주 선생이 나타난다.

    늘 타이머로 잰 듯 같은 시각에 출근을 하는 모습이다.

    가끔 보면 사람이 아니라 무슨 기계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어제 체스트 튜브(chest tube, 흉관) 넣었다며?"

    송유주 선생이 출근하자마자 대뜸 나에게 묻는다.

    감정이 없는 듯한 목소리.

    독특한 화법.

    대화에도 서론―본론―결론이 있는 법인데, 송유주 선생의 화법에는 본론밖에 없다.

    "예. 어제 마동섭 선생님이 옆에서 봐주셨습니다. 그 뒤로 엑스레이 확인했고……."

    "보자."

    드르륵―

    송유주 선생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의자를 빼서 앉는다.

    이 또한 송유주 선생의 습관이다.

    말이 길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딸깍, 딸깍―

    송유주 선생이 마우스를 움직여 의무기록을 조회하자, 곧 모니터 위에 엑스레이 사진이 펼쳐진다.

    "……."

    왠지 긴장된다.

    숙제 검사 맡는 기분이랄까?

    만약 내가 넣은 흉관이 어설프게 들어갔다면, 엑스레이에서 이상한 모양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다.

    "에이펙스(apex, 폐첨부) 쪽으로 문제없이 들어갔네."

    송유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칭찬은 아니다.

    다만, 담담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했을 뿐.

    그런데도 기뻤다.

    송유주의 성격상, 이 정도 반응이라면 대단히 큰 칭찬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타이(tie, 매듭만들기)는 잘했겠지? 이따 가서 확인한다."

    "예."

    나는 뿌듯한 미소로 대답했다.

    <흉관 삽관>.

    이제 고급 술기 하나를 깨우쳤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몇 단계는 레벨업 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지식들이 비로소 나의 손과 연결되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새로운 능력까지 생긴 것 같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메스를 쥐었을 때―

    환하게 밝아 오던 빛.

    눈앞에 펼쳐진 영상들.

    그건 분명 또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미래를 보여 주는 현상이었다.

    나한테 생긴 이 능력의 끝은 어디일까?

    내가 이 능력으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옆쪽에서 활활 타오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힐끗 돌아보니, 류명인이 충격받은 표정이다.

    "나도 아직 체스트 튜브 넣어 본 적이 없는데…… 나보다 먼저 하다니……."

    부들부들.

    류명인이 분한 듯 중얼거린다.

    자기보다 내가 앞서간 것을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부럽냐?

    유치한 녀석.

    그런 류명인을 무시한 채, 송유주 선생이 말했다.

    "아무튼 밤 동안 폐는 충분히 펴진 것 같으니까 오늘 CT 찍고 와서 보면 되겠네."

    "네."

    "또 특이 사항 있어?"

    특이 사항?

    하나 있기는 한데.

    나는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양송이 환자 어머니께서 조금 성격이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보호자?"

    "네. 응급실에서 딸한테 등짝 스매싱을 하시던데요."

    "……기흉 환자 등짝을 쳤다고?"

    나는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송유주는 혀를 찼다.

    "가끔 그런 보호자들도 있지.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자기 입장이 아니라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

    그 말이 맞다.

    <기흉>이 흔한 증상이긴 하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것은 아니다.

    환자에 따라 다양한 고통과 공포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기흉의 주된 증상은 등과 어깨, 명치 등이 아파 오고 호흡곤란을 겪는 것이다.

    가끔 이를 ‘담이 걸렸다’고 근육통으로 착각해서 방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송이 환자의 경우에는, 한쪽 폐가 거의 짜부라질 지경이 되어 응급실로 실려 왔다.

    아마 고통이 컸을 것이다.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를 충분히 설명드려서 그런 일 다시는 없도록 해."

    "네."

    "때로는 환자보다 보호자와의 대화가 중요할 때가 있거든."

    송유주 선생이 덧붙인 말이 유독 귀에 남았다.

    "그럼 다음 환자는……."

    그렇게 아침 회진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송유주 선생의 말처럼 보호자에게 좀 더 다가가 보기로 하였다.

    보호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도 의사가 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니까.

    하지만,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의료적인 술기만큼, ‘병원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 * *

    "CT 검사요?"

    잠시 후.

    나는 CT 촬영 동의서를 받으러 송이를 찾아갔다.

    송이 어머니는 마치 사악한 의사들로부터 딸을 지키겠다는 듯한 방어적인 자세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요새 뉴스 보니까 그런 거 많이 촬영하면 방사선에 노출 많이 된다고 하던데…… 괜찮아요? 우리 송이 이제 17살인데."

    CT(Computed Tomography)검사.

    커다란 기계를 통해 ‘인체의 단면’을 여러 장 찍는 검사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엑스레이에 비해 좀 더 많은 방사선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 말씀하신 내용이 맞지만, 검사 한 번으로 문제가 생길 수준은 아닙니다."

    나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해 주었다.

    "현재 송이 환자는 CT를 찍어 봐야 기흉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하지만 내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송이 어머니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우리 애 고3인 거 아시죠? 중요한 시험도 앞으로 많이 봐야 되는데 뇌세포 파괴돼서 성적 떨어지는 거 아니냐구요."

    으응?

    뇌세포라니?

    나는 막막한 기분을 느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물론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이 걱정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고3 성적과 연결 지어서 생각하는 송이 어머니의 발상이 놀랍다.

    나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뇌세포와는 상관이 없구요.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은 맞지만, CT를 반복적으로 자주 찍지 않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죠?"

    "예?"

    "선생님, 아직 의사치고는 어려 보이시는데…… 인턴 아니에요? 만약 우리 애한테 이상 생기면 선생님이 책임질 거냐구요."

    ……도돌이표다.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랄까?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연간 수십 회를 연속으로 촬영하지 않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꼭 찍어야 합니다!

    하지만 송이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어 보며 나를 믿지 못했다.

    ‘어떻게 말하는 게 가장 빠를까?’

    나는 고민하다가 최후의 방법으로 말했다.

    "어머니. 검사를 해서 원인을 찾아야만 송이가 빨리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송이 어머니가 마지못해 하는 표정으로 사인을 한다.

    ‘진작 이렇게 말할걸.’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송이 어머니는 사인을 한 후에도 동의서를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었고, 나는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야 했다.

    ‘한참 걸리겠네.’

    가끔 그런 분들이 있다.

    의사 말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환자나 보호자들.

    "저, 선생님."

    그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송이가 조용히 내 옷소매를 당기며 속삭이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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