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숨(breath)(6)
송이를 다그치던 보호자가 나에게 외친다.
"왜욧!"
와, 무섭다.
눈이 완전 도끼눈이야.
왠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응급실을 통째로 뒤집어 놓으실 것 같다.
그래도 의사로서 할 말은 해야지.
"송이 학생, 지금 몸이 아픈 환자예요."
나는 그렇게 얘기하며 송이의 몸을 가리켰다.
보호자는 씩씩대다가 그제서야 환자복 상의 아래쪽으로 삐져나와 있는 관을 본 모양이다.
"이게 뭔데요?"
"흉관입니다."
"어머. 이거 소변줄 아냐?"
"아뇨, 소변줄이 아니라 흉관……."
"나이도 어린 애한테 왜 소변줄을 달아 놨어요? 그런데 소변줄이 이렇게 두꺼워요?"
아오…….
제발 의사 말 좀 들으세요!
흉관이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보아하니, 한번 흥분하면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타입인 모양이다.
보다 못한 송이가 입을 연다.
"아 씨, 소변줄 아니라고…… 목소리 좀 줄여……."
송이는 훌쩍이는 와중에도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지며 주변 눈치를 살핀다.
너무 시끄러운 탓에, 응급실 곳곳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 감성으로는 부끄러움을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보호자분, 잠시 제가 추가로 설명드릴게요."
결국 마동섭 선생이 나서서, 기흉에 대해 설명했다.
그나마 조폭처럼 생긴 의사가 저음의 목소리로 설명하자, 그나마 아까보다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모양이다.
"우리 딸 폐에 구멍이 뚫렸다구요?"
"네. 수술을 해야 할지 여부는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흥분했던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일까?
송이 어머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딸을 쳐다보고 있다.
그 얼굴 위로 복잡한 심경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나는 그런 보호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어머니, 송이 학생 많이 아파서 구급차 타고 병원에 실려 와서 힘든 시술 받은 거예요. 지금도 많이 아플 거예요."
그제서야, 송이 어머니는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양송이."
"엄마……."
이제 딸에게 뭐라고 말할까?
아픈데 다그쳐서 미안하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상상과는 반대였다.
짜악!
송이 어머니가 딸에게 등짝 스매싱을 후려갈긴다.
환자복을 입은 송이가 비명을 지른다.
"아악!"
"너 아플 시간이 어딨어! 학원 갈 시간에 콘서트장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까 이 사달이 난 거 아냐!"
"어머니!"
우리는 사색이 되어 보호자를 말렸다.
못 말리겠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보호자가 극성 부모라더니…….
그 뒤로도 송이 어머니의 닦달은 한참 동안 이어졌고, 우리는 둘 사이를 말리느라 애를 써야 했다.
‘나도 드디어 이런 걸 겪어 보는구나.’
통제 불가능한 보호자.
의사들이라면 한 번씩 겪게 되는 난관.
초보 의사인 나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 * *
<고3>.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특수 계급이다.
매년 수십만 명에 달하는 수험생들이 경쟁의 길에 오른다.
수능이라는 거국적인 이벤트를 향해 달려가는 거대한 레이스!
치열하고도 험난했던 초―중―고 정규교육 코스의 막판 스퍼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험난한 길 위에서는, 아픈 것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선생님. 우리 딸 고3인 거 아시죠? 학업에 방해되면 안 되니까 치료 스케줄 최대한 빨리 잡아 주세요."
겨우 진정된 보호자의 말에, 마동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 내일 교수님이 보시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실 거예요.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지는 추가 검사를 한 뒤에 확실히 답해 드릴게요."
"수술이요?"
"예, 만에 하나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마동섭은 그렇게 말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다급해진 보호자의 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 애, 다다음 주에 기말고사가 있어요. 선생님도 예전에 입시 하셨을 거 아녜요. 막판 내신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줄 아시죠?"
내신 관리.
오랜만에 들어 보는 단어다.
송이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순간 우리는 고3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전에 퇴원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술도 꼭 지금 받아야 하는 거 아니면, 웬만하면 5개월만 있다가 수능 뒤로 미뤘으면 하는데…… 제 마음 아시죠 선생님? 네?"
마동섭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학부모인 송이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해의 모든 힘은 수능에 쏟아야 하니, 병원에서 낭비할 수 없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아무리 학업이 급하다 할지라도 건강이 최우선이다.
우리로서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구요…… 자세한 건 내일 회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송이 어머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무과에 접수를 하기 위해 응급실을 나서기 전, 송이에게 단단히 일러두듯 말했다.
"너, 빨리 나아야 돼. 알았지!"
아이고 어머님.
그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입니까?
우리는 황당한 눈빛으로 송이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알았어…… 빨리 나으면 되잖아……."
송이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3이면서 몰래 학원을 째고 콘서트를 간 대역죄인이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활달한 성격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기가 팍 죽어 버리네.’
엄마 옆이라 그런가?
아무리 고3이라지만, 좀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송이는 그날 밤에 바로 입원 수속 절차를 밟았다.
"어휴, 극성이다. 극성이야."
응급실에서 나와 흉부외과로 돌아가는 길.
마동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는 송이 어머니가 준 강렬한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국 고3 엄마들은 다 똑같은가? 오랜만에 트라우마 자극되더라. 옛날 우리 엄마 보는 줄 알았어."
마동섭 선생이 기 빨린 표정으로 말한다.
하긴, 대한민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니까.
아마, 의대생이 되기 위해 수험생활을 거친 대부분의 의사들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기흉 환자 등짝을 때린 건 너무했어요."
"좀 심했지."
마동섭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덧붙인다.
"그런데 나는 사실 보호자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비싼 돈 들여서 공부시키는데, 자식이 저렇게 말 안 들으면 화날 만도 하지."
"그런가요?"
"너도 입시 겪어 봤으니까 알 거 아냐? 입시 철 되면 부모님들 엄청 민감해지는 거."
"저희 집은 안 그랬거든요."
"응?"
"오히려 공부하려는 저를 뜯어말렸어요. 아직도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네 성적에 의대가 말이 되냐고, 네 대굴빡으로는 쉽지 않을 거라고……."
"푸하하."
마동섭은 웃음을 터트렸다.
웃기지요?
웃기지만 실화입니다. 저희 가족이 그런 스타일이에요.
물론 유일하게 큰누나는 나를 응원해 주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족들의 서포트를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너 스스로의 뜻으로만 고집부리면서 공부해서 의대에 간 거야?"
"네, 맞아요."
"이야. 너 같은 사람이 진짜로 있기는 있구나. 혼자 의지로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 대단해."
나는 말없이 웃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던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나의 학창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남들은 잔소리가 지겹다는데…… 나는 부럽더라고.
그때 마동섭이 물었다.
"아버지는 그러신다 치고, 어머니는? 보통 엄마들은 아빠들보다 교육열이 더 강한 편이잖아."
"안 계세요."
"아……."
순간, 마동섭은 할 말을 잃고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아녜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개의치 않는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나는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첫 인시젼(incision, 절개)인데 이렇게 넘어가기는 좀 아쉬운데요?"
"한턱 쏘려고?"
"지금 이 시각에는 편의점밖에 없지만요."
"크크. 편의점 우습게 보냐? 내가 편의점에서 얼마나 뜯어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마."
마동섭은 사채업자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평소보다 더 친근한 기색이다.
나도 오늘은 기분이 좋다.
메스를 쓰는 고급 술기를 성공시킨 첫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경험치를 쌓아 간다.
내가 목표했던 곳에 서기 위해, 조금씩조금씩.
* * *
다음 날 아침.
구내식당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한꺼번에 만났다.
연서, 소담이가 나를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어 슈퍼스타 신선한이다!"
"선한아, 여기 앉아. 우리도 앉은 지 얼마 안 됐어."
소담이가 젓가락으로 옆자리를 가리킨다.
나는 식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다들."
"TS(흉부외과) 할 만해? 지금 담당 환자 몇 명이야?"
"23명. 오늘 두 명 퇴원해."
"고생하네. 주치의 하는 거 쉽지 않지?"
그렇게 소담이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연서가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
가만 보니, 연서는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설치하고 있다.
"연서는 밥 안 먹고 뭐 해?"
"카메라 세팅이요."
"카메라?"
뭔가 했더니, 작은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다.
본격적으로 장비를 장만한 모양이다.
"뭘 찍으려고?"
"잠깐 가만히 있어 봐요."
연서는 나를 조용히 시키더니, 본격적으로 각을 잡고 촬영을 시작했다.
갑자기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바뀐다.
"오늘의 브이로그는 구내식당! 저는 지금 연국대병원 구내식당에 와 있습니다. 오늘 메뉴는……."
브이로그?
그건 또 뭐냐.
나는 옆에 있던 소담이에게 속삭여 물었다.
"브이로그가 뭐야?"
"일상 비디오 같은 거."
"그걸 왜 찍는 건데?"
"의사들 브이로그가 요새 유행이거든. 연서가 동영상 몇 개 올렸는데 벌써부터 팬들이 많아."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생각해 보니 연서 정도의 외모에 연국대병원 의사라면 인기가 많을 만도 하지.
그러고 보니 메이크업도 은근히 한 듯 안 한 듯, 평소보다 신경 쓴 모습이다. 머리도 그렇고.
그때 연서가 찌릿 하고 우리를 쳐다본다.
"아, 오디오 섞이잖아요."
"미안. 암말 안 할게."
나는 픽 웃고 밥숟가락을 떴다.
소담이도 오물오물 식사에 집중한다.
그렇게 연서가 한동안 동영상 촬영을 마친 뒤, 내가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걸 찍어?"
"왜요. 불만이에요? 나도 선한 오빠처럼 슈퍼스타 돼 보려고 그래요."
연서가 농담조로 말한다.
얘는 강남역 사건 이후로 자꾸 나보고 스타래.
나는 피식 웃고 대꾸했다.
"그만 좀 해라. 벌써 2개월이나 지난 일 가지고…… 이제 슬슬 잊히고 있을 텐데."
그러자 동기들이 괴상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왜 그렇게 보지?
내가 뭘 잘못 말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소담이가 묻는다.
"선한이 너, 요새 인터넷 안 하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