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숨(breath)(5)
흉막이다!
이걸 뚫어야 환자의 몸에 흉관을 넣을 수 있다.
꾸욱―
나는 조금씩조금씩 힘의 강도를 높였다.
힘 조절이 핵심이다.
자칫 너무 강하게 찌를 경우, 실수로 다른 조직을 건드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흉막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만 적절하게 힘을 가해야 해.’
하지만 쉽지 않았다.
흉막이 생각보다 질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끝에 힘을 주며 집중하는 순간.
뚝―
마침내 무언가가 뚫리는, 찢기는 느낌이 났다.
"……!"
순간적으로 저항이 사라져서 약간 놀랐다.
하지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깊이 찌르기 전에 곧바로 멈출 수 있었다.
‘성공인가?’
나는 내가 절개한 부분을 켈리(kelly clamp, 의료용 겸자) 끝으로 벌렸다.
그러자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쉬익―
바람 빠지는 소리였다.
환자의 흉강 안에 가득 차 있던 공기가 드디어 바깥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됐다!’
나는 손에서 힘을 뺐다.
옆에서 마동섭 선생님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눈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나는 조금 전 내가 느꼈던 감각을 기억했다.
그리고, 켈리를 더 벌리면서 흉관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다시 한번 만들었다.
<뚫었느냐?>
<뚫었습니다.>
<이제 손가락 넣어서 확인해 봐.>
까닥까닥.
마동섭 선생님은 손가락을 들더니, 넣어 보라는 식으로 눈짓했다.
내가 만들어 낸 길이 진짜 흉강 안으로 뚫린 길인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냐고? 물론이지. 초보자들은 근육이나 지방 안으로 뚫린 길로 흉관을 넣는 경우가 있거든!>
과연 길이 잘 뚫렸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환자의 몸 안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스윽―
1.5cm밖에 안 되는 구멍이었기 때문에, 새끼손가락도 겨우 들어갔다.
남들보다 가느다란 내 손가락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었다.
‘……감촉이 느껴진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흉막 안쪽의 흉강은 빈 공간이었고, 내막은 미끌미끌하면서도 부드럽지만 딱딱했다. 매끈한 입천장을 만지는 느낌이랄까?
"이제 흉관 넣겠습니다."
내 말에 마동섭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가 흉관의 길이를 재기 시작한다.
환자의 몸에 대고, 내가 찌른 부위에서 빗장뼈가 있는 부위까지.
<이런 식으로 길이를 재서 적당한 깊이로 집어넣는 거야. 오케이?>
오케이.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흉관삽입을 시작했다.
스윽―
흉관이 환자의 몸속으로 밀려들어 간다.
"아으……."
"좀 뻐근할 수 있어요."
나는 신음을 흘리는 환자를 달래며 흉관을 섬세하게 밀어 넣었다.
곧 흉관 안에 공기가 차오르며 김이 서렸다.
곧 마동섭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우리는 흉관 끝을 잘라 내었고, 환자에게 기침을 시켜 보았다.
"환자분, 기침 한번 해 볼래요?"
"콜록― 콜록―"
슈욱― 슈욱―
흉관 끝에서 공기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공기뿐만 아니라, 흉강 안에 있던 노랗고 분홍빛을 띠는 흉수도 조금씩 튀어나왔다.
‘좋아. 잘 들어갔어!’ 이제 마지막 절차만 남았다.
마동섭 선생님이 나에게 니들홀더(needle holder)를 건네며 말했다.
"수처랑 타이."
"예."
수처(suture, 봉합).
타이(tie, 묶는 행위).
환자의 몸에 삽입한 흉관을 고정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다.
이 단계를 꼼꼼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만약 이 과정이 느슨하게 시행된다면?
흉관 옆으로 공기가 샐 수도 있다.
혹은, 환자가 병동을 돌아다니다가 흉관이 빠질 수도 있다.
아무리 흉관을 잘 넣어 봤자,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수처는 자신 있지.’
바느질?
어릴 때 지겹도록 했다.
손으로 하는 건 무엇이든 잘했으니까.
물론 의료 현장에서의 수처는 일반적인 바느질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쿠욱―
나는 갈고리처럼 휘어 있는 니들(needle, 바늘)을 환자의 피부에 통과시켜 가며 봉합했다.
그런데 그때.
"야."
갑자기 마동섭이 나를 노려본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동섭이 감탄하며 속삭인다.
"……잘하네."
깜짝이야.
‘야’가 감탄사였구나?
인상이 조폭 같아서 그런지, 아직도 움찔움찔 놀랄 때가 있다.
잠시 놀랐던 나는 다시 손의 작업에 집중했다.
실로 흉관 주위를 몇 바퀴 둘러, 이번에는 타이를 시행했다.
타이에는 두 종류가 존재한다.
니들홀더를 사용하는 <기구 타이(instrument tie)>.
손가락을 이용하는 <핸드 타이(hand tie)>.
이 중 내가 해야 하는 것은 핸드 타이다.
‘처음이니까 빠르게보다는 정확하게 하자.’
핵심은 ‘중지’와 ‘약지’다.
먼저 왼손의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을 이용해서 실을 단단히 잡는다.
그리고 실을 교차시키면서, 오른손의 중지와 약지를 집어넣으며 노트(knot, 매듭)를 만든다.
정방향, 혹은 역방향으로 이 과정을 반복하면 단단한 매듭이 만들어진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타이 끝났습니다."
내 말에, 마동섭은 손을 뻗어 흉관을 살짝 당겨 보았다.
혹시라도 너무 느슨하게 묶이지는 않았을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탄탄하게 잘 고정되어 있다.
마동섭은 기특해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제법인데?>
<괜찮죠?>
<훌륭하도다. 과연 내가 인정한 유망주다.>
<감사합니다.>
눈빛 대화도 은근히 재미있네.
이제 흉관을 체스트 바틀(chest bottle)로 연결하면 모든 술기가 마무리된다.
보글보글―
체스트 바틀에 연결하자, 금방 물속으로 공기가 올라왔다.
"양송이 환자, 시술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그렇게 환자에게 덮여 있던 방포를 걷고, 주위에 묻어 있는 피와 포비돈 소독액을 닦아 주었다.
"끝난 거예요?"
환자는 환자복을 주섬주섬 내려 입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흉관 넣었으니까, 몸 안에서 바람이 빠지면서 폐가 다시 펴질 거예요."
"네, 고맙습니다……."
"아프진 않았어요?"
"솔직히 아까 마취할 땐 진짜 장난 아니게 아팠는데……."
송이는 약간 파리해진 얼굴로 웃으면서 말한다.
"진짜로 마취 다음부터는 하나도 안 아팠어요. 선생님이 잘해 줘서 그런가 봐요. 헤헤."
어라?
이 장면, 익숙하다.
몇 분 전에 보았던 장면과 똑같은 표정과 대사였다.
역시, 그 또한 미래 예지였던 것이다.
‘신기하네.’
새로운 현상.
이번에는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인 이미지만 보였다.
발동 조건이 뭐지?
혹시 내가 메스를 잡은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더 깊게 생각할 사이도 없이, 환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근데 선생님, 이 관은 언제까지 달고 있어야 돼요?"
"계속 달고 있어야죠."
"네? 앞으로 이거 달고 살아야 된다구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안 돼요, 선생님! 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런 거 달고 살면 어떡해요!"
송이 환자의 겁먹은 얼굴에 우리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학생의 표정이 진지해서 더 웃긴다.
"그런 뜻이 아니라, 병원에 있는 동안 계속 달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아아, 난 또."
송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곧 수술도구들이 정리되고, 간호사가 송이에게 묻는다.
"걸어서 나올 수 있으시죠?"
"네……."
송이는 몸을 일으켰다.
움직일 때 불편감이 느껴지는 듯 환자가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시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그 모습을 보고, 마동섭은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내세운다.
<잘했어!>
하는 표정이다.
그렇게 환자가 처치실에서 응급실 베드로 다시 향할 무렵.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웬 젊은 아주머니의 흥분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양송이!!"
송이는 화들짝 놀랐다.
우리의 시선 또한 입구 쪽으로 향했다.
엄마인가?
딱 봐도 얼굴이 닮은 걸 보니 엄마인 모양이다.
송이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숨이 거칠다.
마동섭이 보호자에게 다가가 묻는다.
"보호자분 되십니까?"
"네. 제가 엄마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마동섭은 보호자에게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온 것, 그리고 기흉으로 입원이 필요하다는 것 등등.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동섭은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며 보호자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보호자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별일 아니라 이거죠?"
"예? 그건 아니고……."
성큼성큼.
보호자는 우리의 말을 무시한 채 침대로 걸어와서 말했다.
"양송이. 너 솔직히 말해. 오늘 어디 있었어?"
으응?
우리는 놀랐다.
보호자의 목소리에 가시가 잔뜩 돋쳐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지만, 딸에게 잔뜩 화가 나 있는 듯하다.
걱정돼서 달려온 게 아니라 혼내러 달려온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학원에 있었지……."
송이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한다.
그러자 보호자의 언성이 더 높아진다.
"학원에 있었다고? 진짜로?"
"진짜라니까."
"그래? 내가 들은 게 있는데? 한 번 확인해 볼까?"
보호자 어머니는 응급실 베드 발치에 놓여 있던 책가방을 열었다.
그러자 송이가 기겁하며 책가방을 붙잡았다.
"엄마 잠깐만."
"너 이거 안 놔?!"
부욱!
우르르―
책가방 지퍼가 열리자, 무언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돌 응원도구들.
게다가 콘서트 티켓까지 있다.
학생의 얼굴은 파래지고, 가방의 내용물을 뒤지던 보호자의 얼굴은 대번에 사나워졌다.
"너 이게 공부하는 애 책가방이야?"
"……."
"콘서트? 콘 서 트?! 너 지금 수능 며칠 남은지 알아?! 지금 제정신이야?"
빠각―
화가 난 어머니는 응원봉을 응급실 바닥에 집어 던져 버린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하자면…….
학생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한 뒤, 학원을 째고 아이돌 콘서트에 다녀온 모양이다.
그리고 급하게 구급차에 실려 오느라 증거 인멸(?)을 할 정신은 없었던 모양이고.
송이가 대답이 없자, 어머니의 언성이 더욱 높아진다.
"너 중간고사 등급 2학년 때보다 떨어진 거 알아, 몰라? 너 이딴 식으로 해서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을 것 같아?"
"알았으니까 그만하고 목소리 좀 줄여……."
"지금 내가 그만하게 생겼어?!"
"……."
"얘가 지금 무슨 정신으로 이래!"
뚝뚝.
송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서러움, 창피함, 서운함 등등…….
온갖 감정들이 송이 학생의 얼굴에 지나간다.
"울어? 뭘 잘했다고 울어!"
보호자의 언성이 계속 높아진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서 구급차에 실려 온 뒤 갈비뼈 옆에 관을 달고 있는 아이를 저렇게 다그치다니…….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쉽게 끼어들지 못하고 서로 눈치를 볼 뿐이었다.
"어머님!"
나는 듣다못해 끼어들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나를 홱 하고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