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숨(breath)(4)
‘갑자기 웬 존댓말?’
나는 곧 마동섭 선생의 의도를 깨달았다.
만약 평소처럼 나를 가르치듯이 말한다면?
옆에서 듣는 환자는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초짜 의사한테 내 몸을 맡기다니!> 하고 말이다.
그러니 환자 앞에서는 동등한 의사 대 의사로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흉관을 넣을 때 가장 좋은 위치는…….’
나는 등에서부터 환자의 갈비뼈를 손으로 세기 시작했다.
12번, 11번―
곧 내 손가락은 환자의 다섯 번째 갈비뼈를 짚었다.
"여기에 흉관을 넣겠습니다."
마동섭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갈비뼈는 양쪽에 12개다.
아담이 갈비뼈 하나를 떼어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화이고.
사람의 갈비뼈는 한쪽에 12개씩 있고, 그 사이사이 11개의 갈비뼈 사이 공간이 존재한다.
흉관이 들어가야 할 공간은 주로 4번째, 5번째 공간이다.
"그럼 시작할게요."
스윽―
나는 시술용 가운을 입었다.
그리고 표시해 둔 위치 주변을 동그랗게 포비돈으로 소독하기 시작했다.
"좀 차가울 거예요."
움찔―
환자가 몸을 떤다.
곧 하얀 피부가 갈색으로 물든다.
그렇게 큰 갈색 원을 그리며 소독을 마친 뒤, 소독된 부위 주위를 방포로 덮기 시작했다.
곧 환자는 소독된 부위만 노출된 채, 나머지는 초록색 천으로 모두 덮였다.
"리도케인(lidocaine) 주세요."
나는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리도케인>, 국소마취제.
환자에게 바늘이나 칼을 사용할 때 항상 사용되는 마취용 약제다.
나는 간호사가 들고 있는 리도케인병 입구도 소독한 뒤, 주사기를 당겨 약물을 담았다.
"자, 마취 주사 놓습니다. 잠깐만 참으면 그다음부터는 아픈 거 없어요."
나는 환자를 안심시키려 말했다.
그러자 송이 환자가 불안한 목소리로 묻는다.
"선생님, 마취 주사 많이 아파요? 얼마나 아파요?"
"조금 아픈데, 참을 만해요."
"히잉……."
환자가 투정 부리듯 콧소리를 낸다.
갑자기 웬 애교?
재밌는 환자네.
나는 주사기를 환자의 살갗 위로 움직여 조금씩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바늘 끝으로 갈비뼈를 느낀 뒤, 바로 그 주변에 리도케인을 충분히 주사했다.
푸욱―
주사기가 뼈 주위에 들어가자, 조금 전까지 애교를 부리던 환자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온다.
"악, 씨ㅂ……."
방금 욕한 거니?
이해한다.
나도 네 나이 때는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살았지.
그리고 사실 욕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뼈 주변은 신경이 발달되어 있어 통증을 크게 느끼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금방 끝나요. 조금만 참자."
"아흐으윽……."
환자가 이를 악물고 신음을 흘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할 수는 없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돼.’
리도케인은 국소마취제이기도 하지만, 혈관에 투여될 경우에는 항부정맥제로 사용된다.
만약 실수로 혈관에 들어간다면?
큰일 나는 거다.
최악의 경우, 약물이 혈관을 타고 머리까지 간다면 환자가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실제로 리도케인이 혈관에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의료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사기를 다루는 의료진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마취를 하면서 조금씩 깊이 들어가다 보면, 질긴 흉막을 만날 거야.>
나는 응급실로 들어오기 전 마동섭 선생에게 들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질긴 막을 뚫고 바늘이 흉강 안으로 들어갈 때, 주사기에 공기가 차오를 거야. 그 순간을 반드시 느껴야 해!>
나는 차근차근 마취제를 투여하면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피부를 뚫고.
지방층을 뚫고.
더 아래 근육층을 뚫고…….
그리고, 마침내 질긴 막과 맞닥뜨렸다.
‘여기가 흉막이구나!’
나는 살짝 힘을 주었다.
내 바늘 끝은 질긴 흉막을 뚫고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주사기에 공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슈욱―
마취 주사기에 저항이 사라지면서 공기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온 것이다.
그러자 마동섭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느꼈느냐?>
<느꼈습니다.>
<기특하구나. 잘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로 말없이 암묵적인 사인을 주고받았다.
나는 주사기를 뽑아 트레이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환자분, 마취 끝났어요."
"거짓말쟁이."
"응?"
"조금 아프다면서요, 참을 만하다면서요, 흐엉엉…… 엄청 아프잖아요."
"그렇게 아팠어요?"
"잘생겼으니까 봐준다, 씨……."
환자의 울먹임에 간호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이렇게 귀여운 환자들이 올 때마다 병원에 활력이 돋는다.
"원래 마취가 제일 아파요. 잘 참았어요."
"이제부터는 진짜 안 아픈 거죠, 선생님?"
"그럼요. 만약 중간에 아프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요. 더 마취해 줄게요."
그렇게 대답하며, 나는 트레이 위에서 메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메스>.
어원은 칼·해부도를 의미하는 네덜란드어 ‘mes’다.
수술용 메스는 칼날(blade)과 칼날 손잡이(blade holder)를 조립함으로써 완성된다.
나는 메스를 조립한 뒤 마동섭에게 말했다.
"인시젼(incision, 절개) 들어가겠습니다."
끄덕.
마동섭은 고갯짓으로 허락한다.
드디어 환자 앞에서 칼을 잡아 보는구나!
내 인생 첫 경험이다.
두근, 두근.
어릴 때부터 외과의사를 꿈꿔 왔던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4번과 5번 갈비뼈 사이. 흉관이 비스듬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1.5cm 크기로…….’
나는 손끝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메스를 쥐고 환자의 몸에 칼을 대려는 순간―
"……?!"
주위가 고요해진다.
시간이 0.1배속으로 느려지는 것 같다.
설마 또 예지몽인가?
……아니다.
이건 처음 겪는 현상이다. 적어도 다른 곳으로 갑자기 이동하지는 않으니까.
곧, 내 눈앞에 무언가 지나갔다.
‘뭐지, 이 화면은?’
나는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에 집중했다.
그런데…….
너무 빠르다!
집중력을 엄청나게 기울이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장면인지도 모를 정도다.
마치 동영상을 스킵하면서 보는 느낌이랄까. 슬라이드 화면을 빠르게 넘기는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마치…… 내가 해야 할 술기를 미리 한 번 보여 주는 것 같잖아?’
절개하고.
몸 안으로 길을 만들고.
흉관을 넣고.
꿰매고.
묶고.
이 모든 과정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와중에, 마지막 장면만큼은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진짜 마취 끝나고부터는 하나도 안 아팠어요. 선생님이 잘해 줘서 그런가?>
그렇게 말하며, 송이 환자가 웃는 얼굴이 눈앞에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파앗―
모든 풍경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나는 환자의 몸에 칼을 댄 자세 그대로 굳은 채,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눈에 뭐가 들어갔어?"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동섭의 속삭임에 나는 얼버무리며 생각했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혹시 이것도 미래예지의 일종일까?
모르겠다.
아직 단 한 번 일어난 일이기에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메스를 쥔 순간, 여태까지 겪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능력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닐지도 몰라!’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설마 미래예지 능력도 진화하는 건가?
뭐, 내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금방 알게 되겠지.
어쨌든 지금은 눈앞의 술기에 집중을 해야 할 때다!
미래를 보았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절개를 시작했다.
* * *
한편.
마동섭은 주의 깊게 신선한을 살피고 있었다.
보통 메스를 잡는 건 레지던트 1년 차부터다.
그마저도 처음에는 누구나 쩔쩔매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선한은 인턴 주제에 초심자처럼 보이지 않고 자신감이 넘친다.
마치…….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기한 놈이네. 말로는 긴장된다고 하면서, 손은 전혀 떨거나 버벅거리는 게 안 보여.’
마동섭은 씩 웃었다.
그는 평소에도 ‘써전(surgeon, 외과의)과 유난히 잘 어울리는 타입의 인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재능?
천성?
체질?
그런 단어로밖에는 표현이 잘 안된다.
그의 동기인 송유주 또한 그런 타입이었다.
‘곧 알게 되겠지. 녀석도 재능이 있는 녀석인지 아닌지.’
곧 선한의 칼날이 움직였다.
스윽―
날카로운 칼날이 환자의 마취된 살갗을 매끈하게 가른다.
1.5cm.
자신이 알려 준 위치와 길이대로 정확히 찢는 모습이다.
‘오……!’
마동섭은 감탄했다.
고작 칼질 한 번, 다 똑같지 않냐고?
아니, 다르다.
그동안 수많은 흉관삽관 경험을 가진 마동섭의 눈에만 보이는 디테일이 있었다.
‘제법인데? 저렇게 적절한 각도로 절개를 해야 흉관을 넣기가 수월해지지. 결국 신경과 혈관이 없는 갈비뼈 윗면을 타고 올라가야 하니까…….’
한마디로, 절개의 위치 선정이 탁월하다는 소리다.
고작 몇 밀리미터의 차이.
하지만, 고급 술기로 올라갈수록 이러한 디테일의 차이는 커진다.
‘초심자 주제에 저런 노하우를 어떻게 알았지?’
우연인가?
아니면 설마 의도해서 설계한 걸까?
물론 신선한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의도한 것이라면…….
꽤 괜찮은 센스다.
아직 김칫국을 마시기에는 이르지만, 어쩌면 송유주 같은 거물로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동섭의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네. 너는 멱살을 잡고서라도 흉부외과로 끌고 온다!’
마동섭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전의를 화르르 불태웠다.
* * *
‘뭐지, 이 오싹한 시선은?’
마동섭 선생이 아까부터 나를 끈적하고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절개를 계속했다.
주륵―
피가 흐른다.
피는 칼날 끝에서부터 칼날을 따라 살짝 올라오더니,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칼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
살아 있는 환자에게 첫 절개를 한 것이기에, 생각보다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많아서 놀랐다.
그러자, 마동섭이 입 모양으로 말하며 나를 도왔다.
<쫄지 마.>
마동섭은 거즈로 지혈을 하는 동시에,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게 모스키토를 쥐여 주었다.
모스키토(mosquito, 의료용 겸자).
손바닥만 한 의료용 은색 의료기구다.
작은 가위처럼 생겼지만 가윗날이 짧고, 날카롭지 않다.
조직을 세밀하게 쥐거나 벌릴 때 사용할 수 있다.
<잘하고 있어. 아까 가르쳐 준 대로 박리 시작해.>
마동섭은 그렇게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끄덕―
나는 다시 술기에 집중했다.
모스키토를 오른손에 쥐고, 칼날이 지나갔던 자리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그 끝을 벌려 지방과 근육조직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찌르고―
벌리고―
더 깊이 들어가서―
벌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지방층들이 벗겨진다.
그런데 이제는 조직을 밀쳐 나가기에 모스키토는 작게 느껴졌다.
이때 마동섭은 나에게 다른 도구를 건네었다.
켈리(kelly clamp, 의료용 겸자).
모스키토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더 크고, 주둥이가 더 길다.
더 크고 깊게 조직을 벌리라는 마동섭의 신호였다.
스윽―
나는 켈리를 쥐고 박리를 계속했다.
다시 들어가서― 벌리고― 하는 행위가 반복되었다.
반복할수록 지방층이 으깨지면서 피와 섞여 붉은 기름같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던 도중.
나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
손끝에서, 무언가 다시 한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