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72화 (72/241)

#72 숨(breath)(3)

"오늘이 며칠이지?"

"6월 19일입니다."

"꼭 기억해 둬라. 오늘은 신선한의 첫 흉관삽관 날이다. 나 마동섭이 옆에서 봐줬다는 것 잊지 말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인턴 술기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던 나에게, 체스트튜브 인서션(chest tube insertion, 흉관삽관)은 기존의 술기를 훨씬 뛰어넘는 난이도의 술기였다.

그런데 내가 오늘 바로 그 흉관삽관을 한다고?

"제가요?"

"어차피 1년 차 되면 지겹도록 할 일인데, 몇 개월 빨리 시작한다고 생각해라, 흐흐. 나 아무한테나 이렇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미 이 사람 머릿속에 나는 흉부외과 예비 1년 차인 모양이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갑자기 이렇게 실전 투입이라니.

절벽에서 밀쳐지는 새끼 사자가 된 기분이다.

"왜.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돼?"

"조금요."

"참 나. 강남역 한복판에서 심낭도 뚫어 봤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마동섭은 픽 웃었다.

그때부터 마동섭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많은 경험이 응축된 그의 즉석 강의가 속사포로 진행되었다.

스마트폰으로 흉관삽관에 대한 동영상을 찾아 나에게 보여 주는데, 3초마다 한 번 멈추어서 입에 침을 튀겨 가면서 설명한다.

나는 정신없이 그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다.

"자, 여기까지 완벽히 알겠어?"

"예. 이해했습니다."

따르르!

그때, 마동섭의 콜폰이 울린다.

<선생님, 저희 준비 끝나고 환자 기다리고 있는데 혹시 언제 오실까요?>

"네, 지금 응급실 바로 앞이에요."

마동섭은 응급실 문을 열려 하다 잠시 다시 멈추고 나를 향해 말했다.

"내가 방금 말했던 거, 다시 한번 네 입으로 말해 봐."

내가 마동섭 선생님의 설명을 반복해서 말한 후에서야 우리는 응급실 문을 열 수 있었다.

2달 만에 다시 찾아온 응급실.

때아닌 감상에 젖었다.

그 감상에 딱 맞게, 여봉철 선생님이 우리를 반겼다.

"와, 이게 누고. 신선한이 아이가."

"안녕하세요, 여봉철 선생님."

"지금 TS(흉부외과) 돌고 있나 보네?"

여봉철이 반가운 듯 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짓궂은 말투로 속삭인다.

"TS 별거 없제? EM(응급의학과) 그립지 않나? 하루 일하면 하루 쉴 수 있는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제?"

"야야. 우리 인턴 데리고 뭐 하는 짓인데."

"저 봐라. 동섭이 눈 퀭해진 거 안 보이나? 흉부외과 가면 니도 맨날 저래 살아야 된다."

여봉철이 이간질을 하듯 말한다.

그러자 마동섭이 피식 웃으며 반격한다.

"너야말로 볼 때마다 산 도적이 따로 없는데 무슨 소리야. 봉철이 너는 면도 안 하냐?"

"에헤이, 12시간 만에 이래 자란 기다. 출근 전에 깎고 왔다고."

"흐흐. 어쨌든 환자는 어디 있어?"

"저쪽 2번 처치실에 누워 있고, 대충 설명은 해 놨어. 간호사가 동의서도 뽑아 났을 기다."

우리는 그렇게 여봉철과 간단하게 인사하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양송이.

17세의 여자 환자다.

똘망똘망하니 공부 잘하게 생겼다.

그 나이대 특유의 호기심이 눈망울에 가득하다.

코에는 산소를 달고 있고, 옷은 이미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흉부외과 마동섭이라고 합니다. 지금 환자분은 오른쪽에 기흉이 생겼어요."

"기흉…… 이 근데 정확히 뭐죠? 많이 들어 보긴 했는데."

학생이 겁먹은 듯 되묻는다.

마동섭은 조폭 같은 얼굴로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했다.

"우리 폐는 작은 폐포들, 그러니까 아주 작은 풍선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숨을 쉴 수 있게 해 줍니다."

마동섭의 설명이 이어진다.

가끔 폐포 중에서 큰 애들이 있다.

몸이 자라면서 작은 폐포로 자라나야 되는데, 성장 속도가 빠르다 보니 큰 풍선으로 멈춰 버리는 거다.

"큰 폐포들은, 큰 풍선이 터지기 쉽듯이 터져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알아듣기 쉬운 마동섭의 설명에,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제 폐의 일부분이 터진 건가요?"

"네. 우리 살이 칼에 베이면 상처가 나듯이, 폐 일부분이 터지면서 상처가 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쉬운 원리다.

폐에 상처가 나면?

공기가 샌다.

공기가 새면, 폐 주위로 공기가 가득 찬다.

결국 압력 때문에 폐 자체가 짜부라지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공기를 빼내기 위해서 지금 환자분 가슴 안에 관을 하나 집어넣을 거예요."

"관이요? 제 가슴에다가요?"

"예, 여기."

마동섭은 팔을 들고 자신의 몸에서 갈비뼈 사이를 가리켰다.

"손톱만 한 작은 구멍을 하나 뚫을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얇은 관을 하나 넣을 겁니다."

"아플 거 같은데…… 마취하고 하는 거죠?"

양송이는 두려움에 떨며 물어본다.

"그럼요. 국소마취는 당연히 할 거고. 여기 있는 잘생긴 선생님과 같이 진행할 거예요. 이쪽에 계신 여자 간호사 선생님도 같이 옆에서 도와줄 거예요."

마동섭은 한 발짝 물러나 있던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나를 환자를 향해 밀었다.

"선생님……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환자는 겁먹은 듯하다.

그런 환자를 앞에 두고, 내가 오늘 흉관을 처음 넣는다고 말을 하지는 못하겠다.

"네, 안 아프게 해 드릴게요."

그렇게 내 입은 이야기하고 있지만, 해 본 적도 없는데 아플지 안 아플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지금 불안해하고 있는 환자에게…….

<저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안 아프길 같이 기도해 봐요. 화이팅!>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동섭한테 배운 대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모든 의학적 시술이 그렇듯이 합병증이 생길 수 있어요. 어떤 것들이 있냐면……."

마동섭의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양송이는 마동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그런데 선생님 혹시……?"

응? 뭐야.

나를 아는 건가?

그렇게 계속 나를 쳐다보던 학생의 눈이 커진다.

"맞죠? 강남역?"

* * *

송이는 기억을 떠올렸다.

몇 달 전.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맞죠? 강남역에서 그…… ‘다들 비켜 주세요 의사입니다!’ 하던 그 선생님 맞죠?"

"응. 맞아요."

"우와…… 실물로 보니까 더 잘생겼다. 의사가 이렇게 잘생겨도 돼요?"

순간 송이의 본심이 튀어나왔다.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러자, 눈앞의 의사가 멋쩍게 웃음을 터트렸다.

티 없이 맑은 미소였다.

‘와, 개존잘…….’

두근두근.

양송이의 심박수가 빨라졌다.

순간, 마음속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한 시간 전 영접했던 반진호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의사 선생님 사이에서 갈등하는 양송이였다.

‘아 안 돼, 내 마음속에는 반진호밖에 없는데……!’

천생 ‘얼빠’인 양송이.

게다가 사춘기.

그런 그녀에게, 눈앞의 의사는 충격이었다.

게다가 일종의 외모 몰아주기 효과라고 해야 할까?

양쪽에 서 있는 의사들의 인상이 지나치게 강렬하다.

왼쪽에는 야생 곰, 오른쪽에는 산 도적.

그 사이에 있다 보니, 가운데 있는 의사의 외모가 유독 돋보인다.

‘와…… 어떻게 병원에서 이런 비주얼이 있을 수 있지? 대박. 기흉이 아니라 심장 떨려서 죽는 거 아냐?’

그런 양송이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신선한은 환자에게 이야기한다.

"안 아프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말아요. 여기 마동섭 선생님 말씀 잘 들으시고."

"네 오빠."

"응?"

"아니아니, 선생님."

양송이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의 입을 찰싹 때렸다.

미쳤어,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한테 웬 오빠?

닥쳐, 잘생기면 다 오빠야!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는 마음의 소리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양송이였다.

"아무튼 시술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마동섭은 시술 후 나타날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출혈, 그로 인한 수술 가능성. 흉관을 다시 넣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며, 상처가 감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추후 기흉 재발로 수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까지 이어 갔다.

‘이렇게 위험한 걸 나한테 하겠다고?’

양송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다가 이내 생각했다.

‘잘생긴 의사 선생님한테 이런 거 받을 수 있는 게 다행이지. 그런데 이 조폭 같은 아저씨가 설명하니까 너무 무섭다…… 사인 안 하면 때릴 것 같아.’

순순히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 양송이.

흉관삽관이 진짜로 시작되려 하자 긴장하는 신선한.

신선한이 흉관까지 넣으면 흉부외과로 오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마동섭.

그렇게 흉관삽관이 시작되었다.

* * *

잠시 후 처치실.

우리는 환자를 시술용 간이침대에 눕히고 말했다.

"환자분. 자 이제 오른손을 이렇게 머리 위로 올려 보실게요."

"네에……."

환자는 조금 겁먹은 표정으로 손을 위로 올린다.

그다음은, 환자복을 걷고 가슴을 노출시켜야 한다.

마동섭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보였다.

"이쪽 옆면이 노출되면 되겠죠?"

"네. 항상 하던 대로 해 주세요."

마동섭의 말에, 여자 간호사는 능숙하게 환자의 시술 부위를 노출시켰다.

환자복의 위쪽 단추 2개까지만 남기고, 아래쪽을 풀어헤친다.

그리고 접어 올린 옷이 고정될 수 있도록 플라스터(의료용 테이프)로 살갗과 옷을 붙여 버렸다.

그러자 환자의 오른쪽 가슴 옆쪽이 내 쪽으로 활짝 드러났다.

‘확실히 능숙한 선생님들이 포지션을 잡아 주시니 훨씬 편하네.’

나는 감탄했다.

‘포지션(position, 자세)의 중요성.’

마동섭 선생이 그토록 강조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응급실 문 앞에서 마동섭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환자의 포지션을 잡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모든 술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지.>

포지션 잡기…….

별표 다섯 개.

나는 머릿속에 메모를 했다.

언제나 기초가 중요한 법.

술기의 목적에 맞게 적절한 자세를 잡아야 안전하고 수월하게 술기를 시행할 수 있다.

"선생님, 좀 무서운데요."

문득, 불안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환자는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시술 부위를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 받는 시술에 긴장했는지 몸이 바짝 굳었다.

"너무 긴장 안 해도 돼요."

나는 환자를 안심시켰다.

그러는 동안, 마동섭은 환자의 살갗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 형태를 그리며 나에게 눈짓을 했다.

‘여기를 잘 봐.’

.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흉관을 넣을 때 가장 안전한 삼각지대를 지칭하는 용어다.

가슴근육이 끝나는 옆선과, 겨드랑이 중앙에서 내리는 가상의 선, 그리고 유두에서 옆으로 그리는 가상의 가로선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이렇게 트라이앵글이 있으면, 4번째 인터코스탈 스페이스(intercostal space, 늑간 공간)는 어디일까요, 신선한 선생님?"

응?

마동섭 선생이 갑자기 나에게 존댓말을 한다.

왜 갑자기 말투가 변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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