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8)
"반대쪽 정상적인 폐라도 살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송유주는 우리를 힐긋 보더니 다시 기관지내시경에 열중하며 말했다.
"맞는 판단이었어. 이참에 잘 봐 둬."
"예!"
우리는 송유주 선생의 손에 집중했다.
환자를 다루는 모든 손놀림에 조금의 어설픔도 보이지 않는다.
기관지내시경을 통한 객혈 석션.
기존 튜브 제거.
그리고 더블 루멘 튜브삽입까지.
그냥 인투베이션이 <덧셈, 뺄셈>이라면. 더블 루멘 인투베이션은 <이차방정식>이다.
한 단계 이상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송유주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쉬운 술기를 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대단해.’
그녀의 주도 아래, 환자의 산소수치는 정상 수치까지 회복되었다.
잠시 후.
마취과 응급 당직의가 도착해 환자를 살펴보고는 말한다.
"더블 루멘 완벽하게 들어가 있네요. 하긴 송유주 선생님인데 제가 와서 볼 필요도 없었겠는데요?"
역시 송유주!
아직 레지던트인데도, 다른 과에까지 소문이 자자한 모양이다.
우리를 포함한 처치실의 모든 인원들은 송유주에게 경외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수술 끝난 사람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이거 상황 지금 뭐야?"
"뭐?"
"인턴끼리 인투베이션을 했다고?"
뒤늦게 도착한 레지던트, 펠로우가 웅성웅성 환자 주위에서 놀라고 있었다.
송유주는 이런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안경식에게 말한다.
"야, 안경. 중환자실 옮기고 교수님 노티해라. 수술 더 빨리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네, 선배님!"
그렇게 환자는 바이탈을 유지하면서 중환자실로 전동되었다.
송유주는 환자를 안경식에게 맡긴 뒤 옆에 서 있던 우리를 보고 말했다.
"둘, 따라와."
* * *
잠시 후 우리는 회의실에서 송유주를 보게 되었다.
옆에는 마침 수술이 끝난 뒤 같이 따라온 마동섭도 있었다.
"신선인, 류명한."
응?
이름이 서로 뒤섞였다.
송유주 선생님은 언제쯤 우리 이름을 제대로 부르게 될까.
"신선한, 류명인입니다."
"그래. 아무튼 너네.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송유주는 우리에게 모든 과정을 설명하길 요구했다.
첫 단계, 식투베이션.
둘째 단계, 성공적인 인투베이션.
그리고 마지막 단계. 더블 루멘 인투베이션의 판단까지.
모든 과정을 듣게 된 송유주 선생은 눈꼬리를 세우며 말한다.
"아주 난리가 났구만. 환자 턱 빠지겠네. 애초에 한 번에 성공했어야지."
역시 송유주 선생.
애초에 칭찬을 바라진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동섭이 우리를 변호하듯 말한다.
"야, 그래도 얘들이 환자 살렸잖아. 저산소증까지 갈 수 있었는데 엄청 오래 버텼다고. 기특하지 않아?"
"기특하긴. 자기 할 일 겨우겨우 한 거지."
"에이, 오늘은 애들 칭찬 좀 해 주라. 쉽지 않은 상황에서 판단력이 훌륭했어."
마동섭이 우리를 치켜세워준다.
물론 송유주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표정으로 말한다.
"뭐, 아무튼 이제부터 너희한테 시킬 게 있다."
응?
뭘 시키려고?
우리는 불안하게 송유주 선생의 입을 쳐다보았다.
"이번 주 환자보고 시간에 이 환자에 대해서 자세히 리뷰할 거야. 상황을 처음부터 계속 보고 있던 것들은 너희들이니까, PPT 만들어서 내 이메일로 보내. 내일 자정까지."
송유주는 차가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명령했다.
"혹시 발표도 저희가 하나요?"
"왜? 꼬와?"
"……."
앞이 캄캄했다.
방금 상황을 교수님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라고?
반면, 관심병 환자인 류명인은 신이 났다.
"넵! 그럼 발표도 제가……."
"발표는 내가 할 거니까, 제시간에 보내기나 해."
송유주가 딱 자르듯 말했다.
시무룩해진 류명인.
그러자 옆에서 마동섭이 웃으면서 칭찬을 덧붙였다.
"어쨌든 너희 정말 잘했다! 그 환자, 기도 확보가 쉽지 않았을 것 같던데? 내가 병동을 비워 버린 탓에 너희들이 고생했다."
"아닙니다."
"유주야, 너도 고생했어. 저녁도 못 먹고 수술하고 나서 뛰어올라 간 거잖아?"
"아, 개 빡세."
송유주는 땀에 젖은 수술복의 가슴께를 펄럭거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류명인의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또 설레는 거냐?
하여튼 사람이 짝사랑에 빠지면 답도 없다더니, 지금 류명인이 딱 그런 모습이다.
"야, 사탕 있냐?"
"예?"
갑자기 송유주가 류명인을 보며 말한다.
저 말투는…….
순간 담배 뜯는 일진인 줄 알았다.
왠지 고등학교 때 많이 들어 본 것 같기도.
류명인이 토끼 눈을 하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막대 사탕을 꺼내어 조심스레 내민다.
"저번에 안 드신다고 하셔서 주머니에 넣어 뒀는데……."
"내놔. 당 떨어진다."
타악.
송유주는 막대 사탕 껍질을 까서 입에 문다.
그리고 마동섭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회의실을 나선다.
저걸 어깨동무라고 해야 할지, 대롱대롱 매달렸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야, 마동. 밥 사 줘."
"뭐 먹을래?"
"이 시간에 편의점밖에 더 있냐?"
"고고."
두 사람은 회의실을 나선다.
나는 슬쩍 류명인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표정은…….
차마 꼴사나워서 못 보겠다.
녀석이 환희에 찬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송유주 선생님이 내 사탕을 받아 주셨어……!"
그렇게 좋냐?
* * *
결론적으로, 환자는 무사했다.
우리가 인투베이션을 서둘렀던 탓에, 다행히 산소공급이 늦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미래에서 보았던 뇌 손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에 어려운 상황도 있었지만, 어쨌든 또 한 번 미래를 바꾼 것이다.
환자는 다음 날, 수술로 폐의 망가진 부분을 절제할 수 있었고 수술 후에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회의 시간, 이 모든 과정을 송유주 선생은 교수에게 보고했다.
"……그래서 인턴들이 더블 루멘을 준비했고, 늦지 않게 환자를 회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조용―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회의실을 가득 채운 레지던트, 펠로우들은 멍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교수님들의 표정을 살폈다.
[교수님들 예상 반응]
―헉!
―아니 그게 정말인가?!
―크어억…… 어떻게 인턴들이 그런 대처를?!
―과연 대단하군. 자네들이 연국대병원의 미래일세!
……이랬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당연히 그 정도 반응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를 아주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탐스러운 과일이라도 보듯.
"인턴들이 흉부외과 신고식을 아주 요란하게 치렀네."
"그러게요."
"저 정도 대처했으면 베스트죠. 환자도 수술 후에 시퀄레(sequelae, 후유증) 없이 잘 회복했고."
흉부외과 폐식도 교수들끼리 고개를 끄덕인다.
"레지던트 되어서도 아주 잘하지 않을까요?"
"에이, 인턴 때 잘하던 애들도 수술방에 들어와 봐야 잘하는지 알지. 아직 모르죠."
뭐지……?
마치 우리가 흉부외과에 들어올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중 탈곡기 교수가 말한다.
"이번 달 인턴들이 꽤 스페셜한 것 같으니까. 레지던트들이 특별히 신경 써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도록 해. 인투베이션이든, 흉관삽입이든."
왠지 부담스럽다.
교수님들의 흉부외과 영입 작전인가 싶기도 하고.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입장에서는 뭐든 빨리 배울수록 좋으니까.
"예. 좀 더 확실하게 가르쳐 놓겠습니다."
송유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본격적으로 스파르타교육을 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우후후후……."
물론 류명인은 내 옆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변태처럼 볼이 발그레해져 있다.
좋냐?
하긴 좋겠지.
짝사랑하는 레지던트 선생님에게서 특별교육까지 받게 되었으니.
‘나도 기대되네.’
나는 속으로 슬며시 웃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얻은 것이 많다.
무엇보다, 환자를 살렸고.
흉부외과에서도 어느정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인턴과정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아직 숱한 인턴 중 한 명에 불과하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경험이 쌓이며 재능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햇병아리가 아닌, 한 사람의 의사로서.
#숨(breath)(1)
콘서트홀.
아이돌 그룹 <탄산소년>의 라이브 공연이 한창이다.
데뷔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단독 콘서트라 열기가 대단했다.
그중 리더인 카리스마 래퍼 반진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의 불꽃 카리스마 랩이 마이크를 타고 작렬했다.
"우리는 오랑캐!"
"꺄아아악!"
팬들은 콘서트홀이 가득 찰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
데뷔곡 <오랑캐>.
너의 마음을 약탈하는 오랑캐가 되겠다는 야심 찬 타이틀곡이다.
처음 나왔을 땐 이게 무슨 근본 없는 가사냐며 모두들 비웃기 바빴지만, 곧 전 국민을 중독시킨 히트곡이었다.
"팬 여러분 즐거우시져?"
"네!"
"저도 여러분들 만나서 즐거워여~!"
"꺄아악!"
막내가 혀 짧은 목소리로 아양을 떨자 팬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다섯 명의 멤버들은 차례대로 공연장을 찾아와 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한다.
곧 마지막으로 반진호가 마이크를 들었다.
"어……."
"꺄아아아악!"
단지 입만 열었을 뿐인데 소녀들의 비명이 터진다.
그만큼 반진호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세 아이돌이었다.
"오늘 와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꺄아악!"
"제가 우리 스트로우 여러분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거 아시죠?"
"네에!"
스트로우는 탄산소년 그룹의 공식 팬클럽 이름이었다.
팬클럽 이름이 빨대가 뭐냐,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익숙해져 버린 팬들이었다.
반진호는 아련하게 객석을 쳐다보다가 말한다.
"올해…… 사실 힘든 일이 많았어요. 요 몇 달 동안 저에 대해 이상한 루머들이 돌아서…… 흑……."
반진호가 말하다 울컥한다.
팬들 역시 울컥해서 소리를 지른다.
울지 마! 울지 마!
반진호는 올해 초악성 루머에 시달렸다.
의료사고로 인해 성불구자가 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지금도 검색어창에 ‘반진호’를 치면 ‘반진호 고자’가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다.
반진호는 억울했다.
물론 요도협착 때문에 연국대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낯 뜨거운 상황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성불구자가 된 건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너무 건강해서 문제였다고!
"이걸 확 까서 보여 드릴 수도 없고…… 팬 여러분들은 믿으시죠? 제가 그런 거 아니라는 걸?"
아니야! 아니야!
우리 오빠 건강해!
눈물 섞인 팬들의 환호가 이어진다.
반진호는 눈가를 닦고 활기를 되찾으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다음 곡은 제 자작곡입니다. 제목은 <소중한 나의 것>."
"꺄아아악!!"
* * *
"아, 우리 오빠 진짜 최고…… 오늘도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한 소녀가 꿈을 꾸듯 중얼거렸다.
콘서트가 끝난 지 1시간 후.
소녀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행복감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양송이>.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진, 동글동글한 머리스타일을 한 고3 소녀였다.
덜컹, 덜컹―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
송이는 팬클럽 후드티와 응원도구들을 소중히 정리해서 가방에 넣었다.
물론 이대로 집에 가져갔다가는 부모님에게 들킬 게 뻔하니, 친구에게 잠시 맡길 예정이다.
‘하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겠네. 어떻게 그렇게 멋있을 수 있지?’
원래 콘서트를 즐기는 것은, 공연이 끝나고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마치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오래오래 여운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하는 것이다.
이 감정을 지금 당장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
송이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켜서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한창 들여다보던 중.
욱신―
송이는 갑작스러운 불편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