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7)
우리는 당황했다.
기도삽관을 제대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환자의 산소수치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이대로라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
제기랄.
욕을 내뱉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라, 신선한.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죽을지도 모른다!
* * *
한편, 수술방.
3년 차 레지던트 송유주는 탈곡기 교수와 길고 길었던 전쟁을 끝마치는 중이었다.
"다들 수고했어."
"고생하셨습니다."
송유주의 몸에 힘이 풀렸다.
장시간 수술.
제아무리 건강한 외과의사라도, 체력이 탈탈 털린다.
극도의 집중력을 몇 시간 동안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수술 중에 어지러움을 느껴 쓰러지는 의료진들도 부지기수다.
"오랜만에 만만치 않은 환자였네."
교수도 진이 빠졌다.
하지만, 조금의 여유를 되찾은 상태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짜증을 내더니, 지금은 기분이 풀린 듯하다.
어려웠던 수술이 그나마 성공적으로 끝난 탓이다.
"마무리할 수 있지?"
"예."
지잉―
교수가 수술방을 나섰다.
송유주는 자리를 바꾸어 교수가 있던 자리에 섰다.
수처(suture, 봉합)를 비롯한 마무리는 레지던트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송유주는 수술을 마무리하며 순회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까는 바깥에 무슨 일이었대요?"
"네?"
순회 간호사는 이미 다른 간호사로 교대되어 있었다.
"아니에요. 아까 인턴한테서 전화가 울려서요. 밖에 무슨 일 있나 걱정돼서요."
"아! 아까 출근할 때 흉부외과 사람들 찾는 CPR 방송 울리던데요? 암병원으로 불러 모으는 방송 같던데……."
방송이라고?
송유주는 석연찮은 기분을 느꼈다.
수술방 안에는 병동이나 ICU 등 바깥에서 일어나는 CPR 방송이 울리지 않는다.
방송을 할 정도였다면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제 콜폰으로 류명인 선생님한테 전화해 주실래요?"
뚜르르르―
콜폰의 스피커로 신호음이 울린다.
하지만, 류명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인턴이 콜을 안 받아?’
송유주가 눈썹을 찡그렸다.
벌써 긴장이 풀어진 건가?
그럴 리 없을 텐데.
아니면, 그만큼 병동이 급박하고 정신없는 상황이거나.
송유주는 다시 간호사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CPR 방송, 무슨 일이었는지 알아요?"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바로 옷 갈아입고 수술방으로 들어와서요."
"……빨리 나가 봐야겠네."
송유주는 나지막하게 읊조린 뒤, 봉합을 하는 손길을 서둘렀다.
슥슥―
가느다란 손가락에 쥐어진 니들홀더(needle holder)가 바삐 움직인다.
신속한 속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로 잰 듯한 정교함을 잃지 않는다.
찌르고.
당기고.
묶고.
섬세한 손길에 따라, 수술 부위가 점점 봉합되어 간다.
맞은편에서 세컨드 어시스턴트를 서고 있던 간호사의 눈이 커졌다.
‘와…… 사람이야, 기계야?’
송유주의 수처 솜씨는 거의 곡예에 가까웠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빠르다.
그 와중에도 평정심을 지키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정―정―역―정.
마지막으로 봉합을 완벽하게 마무리한 뒤, 송유주는 필드에서 물러났다.
챙그랑!
수술도구를 트레이 위에 내려놓자마자, 수술복을 벗으며 외친다.
"수고하셨습니다. 환자 카아웃(car―out, 수술이 끝난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는 것) 좀 부탁할게요."
송유주는 수술방을 나선다.
타닥―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비록 3시간이 넘는 수술로 지친 상태였지만, 잠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
‘인턴들. 나 없는 동안 사고 치지 마라!’
그렇게 송유주가 나간 뒤.
수술방에서 마취과 레지던트가 투덜대며 말했다.
"뭐야…… 저 선생님, 수처 너무 대충대충 한 거 아녜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렇지."
그러자 수술방 간호사가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선생님. 송유주 선생님이랑 수술 처음 해 보시죠? 궁금하시면 이리 오셔서 한번 보세요. 이게 대충 한 수처인지."
뭐야?
괜히 유난 떨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취과 레지던트는 고개를 내밀어 슬쩍 수술 부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 저렇게 빨리했는데 어떻게……."
"교수님들이 괜히 송유주, 송유주 하겠어요?"
수술을 위해 절개한 흔적은 완벽하게 봉합되어, 거의 선 하나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와……."
마취과 레지던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소문으로만 듣던 송유주의 명성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 *
삑삑삑―
처치실에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환자의 산소수치가 빠르게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젠장! 이번엔 뭐가 문제야?’
나는 이를 악물었다.
류명인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환자는 뇌 손상에 이를 수 있다.
내가 봤던 미래의 상황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
"류명인. 인투베이션은 잘됐는데, 뭐가 문제일까?"
"모……르겠어요. 혹시 이미 폐가 다 망가진 건가……?"
뭐 인마?
어마무시한 소리를 한다.
녀석은 지금 냉정한 판단이 안 되는 상태인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 오늘 아침에 찍은 엑스레이에서 오른쪽은 멀쩡했어. 엄연히 한쪽 폐가 멀쩡한데 이렇게 산소수치가 떨어진다는 건……."
그렇게 말하며 류명인을 쳐다보는데, 안색이 하얗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다.
상태가 왜 저래?
녀석은 멘탈이 나간 듯 중얼거린다.
"설마 나 때문에 환자가…… 말도 안 돼…… 이럴 리 없는데……."
이 자식이.
지금 네가 패닉에 빠지면 어떡해!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게 아니란 말이야!
"류명인! 정신 차려!"
짜악―
나는 녀석의 뺨을 두들겼다.
물론 턱이 돌아갈 정도로 때린 건 아니다. 그냥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만.
그러자 녀석은 당황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류명인. 너 이 환자 주치의잖아."
"……."
"다른 선생님들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이 환자 책임져야 돼.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 보자. 네가 나보다 공부는 훨씬 잘했을 거 아냐."
내 침착한 말에, 류명인은 겨우 냉정을 되찾는다.
"때릴 것까진 없잖아요."
"닥치고, 빨리 생각해 봐."
"혹시 e―튜브(endotracheal tube, 기도삽관용 튜브)가 너무 깊이 들어갔을지도 몰라요…… 왼쪽으로 깊이 들어가서 한쪽 폐로만 벤틸레이션(ventilation, 환기) 있을 수도 있잖아요."
가능성 있다.
류명인이 실수로 튜브를 너무 깊게 넣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청진에서 오른쪽도 벤틸레이션 잘되고 있었잖아. 잘 들어가 있을 확률이 높……."
잠깐.
뭔가 마음에 걸린다.
뭐지?
마치 손이 닿지 않는 등이 간질간질한 것처럼 답답하다.
분명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제발 좀 팽팽 돌아가라! 내 머리!’
그때, 번뜩하고.
무언가가 생각났다.
마치, 우연히 길가에서 스친 사람의 얼굴이 뒤늦게 기억나는 것처럼…….
조금 전, 청진을 할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뒤늦게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 청진을 할 때, 소리가 좀 지저분하기도 했었어. 아침 엑스레이에서 깨끗했던 폐인데 말이야."
내 말에 힌트를 얻은 듯, 류명인은 눈을 크게 떴다.
"반대쪽으로 넘어간 거예요!"
"뭐?"
"아까 피 토할 때, 핏덩어리들이 왼쪽 폐에서 오른쪽 폐로 넘어간 거 아닐까요?"
아!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너 이 자식 똑똑하다!
류명인이 제시한 가능성에, 우리의 대화는 급물살을 탔다.
"그럼 이걸 어떻게 막지? 갈수록 심해질 거 아냐."
"왼쪽에서 나오는 길을 막고, 오른쪽 폐를 보호해야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거의 동시에 외쳤다.
"……더블 루멘(double lumen)!"
더블 루멘 인투베이션.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 몸의 기도는 역Y 자로 되어있어, 각각 양쪽 폐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망가진 왼쪽 폐에서 나오는 피가 정상이었던 오른쪽 폐까지 망가뜨리고 있다.
그래서, 망가진 폐로 이어지는 통로를 일단 막아 둘 필요가 있다.
더블 루멘은 한쪽 폐로만 숨을 쉴 수 있게 하여, 이런 술기가 가능하게 해 주는 다소 특수한 장비다.
"더블 루멘 e―튜브 준비해 주세요!"
타닥―
다시 처치실이 바빠진다.
지금 우리 병동에는 더블 루멘 e―튜브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다른 부서에 콜을 했고, 곧 헐레벌떡 이송원이 뛰어오면서 기구를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간호사들이 기관지 내시경도 준비한다.
더블 루멘 인투베이션을 위해서는 기관지 내시경으로 직접 기도를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류명인, 기관지 내시경 해 봤어?"
"아뇨. 형은요?"
"나도 안 해 봤지."
"하, 어떡하죠?"
아이 씨…….
울고 싶다.
맨땅에 헤딩하듯 들이받아야 하나?
물론 이론적으로는 대략 알고 있지만, 그마저도 가물가물하다.
거의 운전면허를 책으로만 배운 뒤 고속도로 주행을 시작해야 하는 기분이다.
"마취과 쪽 응급 당직 선생님이라도 연락해 볼까요? 더블 루멘은 마취과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지켜보던 경험 많은 간호사가 불안에 떨며 말했다.
누군가가 제발 와 주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제기랄!
너무나도 무력하다.
머리는 방법은 알고 있는데, 정작 경험이 따라 주지 않는다.
스스로가 햇병아리 인턴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서럽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야, 비켜."
그때, 처치실 문 앞에 누군가 갑자기 나타났고, 우리의 시선은 그쪽으로 쏠렸다.
천군만마보다 든든한 존재.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
송유주.
숨을 헐떡이며, 그녀가 처치실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외쳤다.
"선생님!"
"이 상황 뭐야? 인투베이션? 기관지 내시경은 왜 준비했어?"
송유주는 빠르게 환자의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면서 우리에게 쏘아붙이듯 묻는다.
수술복 차림 그대로인데, 어찌나 뛰어왔는지 목에 땀이 송골송골한 모습이다.
"현재 상황은―"
우리는 빠르게 브리핑했다.
수술을 앞둔 국균종 환자가 심한 객혈을 했으며,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것.
인투베이션 했으며, 반대쪽 폐로 피가 넘어가는 것 같아 더블 루멘을 준비했다는 것까지.
송유주는 우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측 폐를 청진해 본다.
"한 명은 중환자실 전화해서 자리 준비하고, 한 명은 마취과 응급당직 연락해. 간호사 선생님은 지금부터 저랑 기관지 내시경으로 석션부터 합니다."
"예!"
역시 송유주.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상황 판단이 끝난 듯, 능숙하게 현장을 지휘하기 시작한다.
1등 조타수가 키를 잡자, 풍랑에 휘청이던 배가 다시 방향을 잡는다.
"여기 끝에 젤리 묻혀 주시고, 바로 들어갈게요."
송유주는 바로 검정색의 기다란 뱀처럼 생긴 기관지 내시경을 쥐어 잡는다.
꿈틀, 꿈틀.
용이 기어가듯이 환자의 기관지 구석구석을 파헤치며 핏덩어리들을 치워 낸다.
그녀의 손놀림이 진행될수록 산소수치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더블 루멘은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했지?"
송유주가 환자의 기도가 보이는 화면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묻는다.
어떻게냐고?
일일이 말하자면 너무 길다.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