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6)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도삽관)을 시작하며, 류명인이 말했다.
"형, 앰부 좀 짜 주세요."
"알았어."
류명인이 마스크를 움켜쥐고 피팅을 하는 동안, 옆에서 나는 앰부(ambu, 공기주머니)를 쥐어짰다.
슈욱― 슈욱―
환자의 입 안에서 피가 섞인 가래가, 앰부를 쥐어짜는 리듬에 맞춰서 부글부글 지저분한 소리를 낸다.
이렇게 열심히 산소를 집어넣고 있는데도, 환자의 산소수치는 90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할 뿐이다.
만족할 수 없는 수치이다.
"라링고 주세요."
류명인이 말했다.
녀석의 목소리에도 이제 긴장감이 흐른다.
류명인은 마스크를 환자의 얼굴에서 떼고, 환자의 입을 젖혀 튜브를 넣으려 한다.
나는 석션(suction, 흡입) 기구를 건네주는 것과 동시에, 성대 주위를 눌러 류명인을 도왔다.
‘잠깐. 그런데…….’
문득 나는 환자의 몸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아래턱이 무척 짧다.
갑상연골에서 턱 끝까지의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는 될까?
류명인이 환자의 턱을 최대한 뒤로 젖혀 놓았는데도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래서 꿈속에서 마동섭이 <어려운 케이스>라고 했구나!’
씨름선수 같은 체형.
두껍고 짧은 목.
학생 시절 때 배운 ‘difficult airway(어려운 기도)’를 가진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즉, 난도가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객혈로 가득 찬 입 안과 목구멍 안쪽도 시야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
‘젠장, 처음부터 이런 고난도 미션을 주면 어떡해?’
하지만, 류명인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쑤욱―
녀석은 망설임 없이 e―튜브 (endotracheal tube, 기도삽관용 튜브)를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옆에서 물었다.
"에피글로티스(epiglottis, 후두개)랑 보컬코드(vocal cord, 성대) 잘 보였어?"
인투베이션의 이정표 같은 구조물들이 잘 보였는지 물어봤고, 류명인의 대답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럼요."
"확실해?"
"형. 환자 살리는 건데 왜 이렇게 옆에서 불안하게 해요. 동료를 그렇게 못 믿어 가지고 말이에요."
그래. 너를 믿어야겠지.
평범한 인턴도 아니고, 연국대 수석이니까.
하지만, 나는 미래를 봤단 말이다!
네가 망하고 쭈구리가 되어 울부짖는 미래를.
일단 그런 미래가 재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수밖에.
"자, 됐습니다!"
곧 인투베이션이 끝났다.
역시 손이 빠른 류명인.
그동안 나는 술기를 보조하며 모든 과정을 살폈다.
옆에서 볼 때도 별다른 실수는 없어 보였다.
슈욱― 슈욱―
환자의 입에 들어간 튜브를 통해 산소가 공급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산소를 계속 공급하고 있는데도, 환자의 세츄레이션(saturation, 산소수치)이 오르질 않는다.
76―
74―
72―
"어떻게 된 거야. 산소수치가 오히려 떨어지잖아."
"잠깐만요."
류명인은 눈을 찡그렸다.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파앗―
세츄레이션 체크 기계의 파형이 보이지 않으면서, 산소수치를 보여 주던 숫자가 갑자기 사라진다.
"……!!"
모두 기겁했다.
"선생님, 웨이브가 사라졌어요!"
지켜보던 간호사가 다급히 외쳤다.
웨이브가 없으면 세츄레이션은 기록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기계가 부착되어 있는 손가락을 바꾸어 보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다시 세츄레이션이 나타나 준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환자의 몸 안에 산소가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라면?
"이상한데요! 왜 세츄레이션이 안 뜨지?"
간호사는 급하게 움직이며 세츄레이션 체크 밴드를 다른 손가락에 부착시켜 보고 있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나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청진기를 꺼냈다.
청진기.
의사의 대표적인 상징물.
물론 인턴생활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거의 장식용처럼 주머니에 쑤셔 박혀 있으며, 아예 가지고 다지니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투베이션 시행 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청진을 통해 e―튜브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잠깐만요."
나는 주변을 조용히 시킨 뒤 청진을 시작했다.
곧 류명인도 자신의 청진기를 꺼내어 환자의 양측 폐와 복부에 가져다 댄다.
"……."
우리는 감각을 집중했다.
삑, 삑―
슈욱, 슈욱―
처치실 안에 울리는 여러 알람 소리, 앰부를 누를 때마다 들리는 잡음 때문에 청진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와중에, 분명 환자의 몸 안쪽으로부터 공기 소리가 들린다.
배에서 공기 들어오는 소리가 앰부 짜는 속도에 맞춰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류명인에게 말했다.
"이거 이상한데? 배에서도 소리가 잘 들려. 오히려 양측 폐에서는 애매하고."
"무슨 소리예요…… 제가 식투베이션을 했다는 거예요? 그럴 리가 없는데."
식투베이션.
기도(氣道)가 아닌 식도(食道)에 인투베이션을 하는 경우를 칭하는 의사들끼리의 은어이다.
즉 원래대로라면 산소가 폐로 들어가야 하는데, 식도를 통해서 위(胃)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투베이션에서 가장 망해 버린 결과물로 생각할 수 있다.
빨리 교정하지 않으면, 환자는 모든 장기가 산소저하로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환자 산소수치도 안 오르고…… 이상하잖아. 인투베이션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세츄레이션은 아직 웨이브 안 나오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요. 그…… CPR 방송도 했잖아요. 앰부 짜면서 레지던트 선생님들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 거예요."
류명인이 말한다.
자신이 실수할 리 없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하지만, 목소리가 흔들린다.
과연 지금, 녀석의 판단을 믿어도 될까?
……아니다.
저건 불안함을 감추기 위한 확신이다.
류명인은 자신의 실수를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이 부족할 리 없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전형적인 <확증편향>의 함정에 빠져 있다.
자기도 모르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확신이 없어. 내가 청진을 제대로 한 걸까? 어쩌면 괜히 잘돼 있는 인투베이션을 도로 빼는 결과가 나올 수도…….’
그때.
마동섭이 인투베이션을 할 때 알려 주었던 문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지금 망설이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류명인, 지금 들어간 것 빼고 다시 한번 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환자의 세츄레이션은 계속해서 측정되지 않았다.
2분마다 자동 측정되고 있던 혈압기계에서는 81/50이라는 숫자가 떴다.
혈압이 낮다.
환자의 입술 역시 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산소공급이 안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고집을 피우다가는 환자는 CPR 상황에 빠질 것이 자명했다.
"얼른!"
"알았어요."
류명인은 분을 삭이며 대답했다.
나는 환자의 e―튜브를 고정하고 있는 플라스터(의료용 테이프)를 떼어 냈다.
그리고 e―튜브를 뽑아내고 oral airway(기도기)를 입 안에 넣고 다시 앰부를 짜기 시작했다.
슈욱, 슈욱―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가 눈을 크게 뜨며 외친다.
"세츄레이션 다시 잡혀요!"
휴우.
일단 한숨 돌리긴 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환자의 산소수치는 충분하지 않다.
목에 있는 객혈 때문에, 이렇게 앰부만 짜서는 산소 공급을 충분히 해 줄 수 없다.
제대로 된 인투베이션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류명인. 인투베이션 다시 해야 돼. 할 수 있겠어?"
"……."
류명인의 낯이 하얗다.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내 말대로 하지 않았더라면, 자칫 환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안 되면 내가 한다."
"아니, 할 수 있어요!"
녀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인투베이션을 시작하며 중얼거렸다.
"한 번 실수했으니 다시는 똑같은 실수 안 해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시행착오는 언제나 따라온다.
그리고 류명인은 그 시행착오를 방금 한 번 겪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정답을 맞힐 것이다.
그 정도 재주는 있는 녀석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인투베이션을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여전히 류명인이다.
"석션."
류명인의 목소리가 침착해진다.
나는 다시 한번 보조를 시작했다.
녀석은 라링고로 환자의 입 안을 들었다.
"형, 카릴리지 눌러 주고 턱 좀 잡아 주세요."
처음보다 두 번째라서 우리의 호흡이 더 잘 맞아 들어갔다.
류명인은 보다 신중한 눈길로 환자의 기도를 살폈다.
그러다 눈을 크게 떴다.
무언가를 확실히 본 표정이다.
곧 녀석은 망설임 없이 튜브를 집어넣었다.
"형, 넣었어요."
"확실해?"
"이번에는 확실해요. 확실히 보고 보컬코드 안으로 넣었어요."
우리는 청진을 시작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주위의 간호사들도 잠시 모든 말과 행동을 멈춘 채 우리에게 집중한다.
새액― 새액―
이번에는 양측 폐에서 소리가 명확했다!
배에서 들리는 소리도 전혀 달랐다.
아까는 긴가민가 불확실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환자의 폐에 공기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산소수치도 상승하고 있었다.
"휴우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류명인도 청진을 확인하고 표정이 비로소 밝아졌다.
"형 판단이 맞았네요. 제가 식도에 삽관을 했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 딱 봐도 기도 확보가 어려운 환자였잖아. 다른 누가 와도 힘들었을걸."
나는 녀석을 위로했다.
빈말이 아니다.
자기객관화는 쉽지 않다.
특히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내가 관찰자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덕분에 류명인의 실수를 늦지 않게 캐치할 수 있었다.
나의 위로에 자책하던 녀석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형."
"왜?"
"하이파이브."
녀석이 손을 내민다.
나는 픽 웃으며 녀석이 내민 손뼉을 가볍게 쳤다.
짜악―
거의 슬램덩크 산왕전 마지막 씬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 녀석이랑 하이파이브를 하게 될 줄이야.
평소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래도 역시 제가 잘 해결했죠? 이렇게 어려운 인투베이션은 아무 인턴이나 못 할 듯."
"그래, 잘했어."
"뭐, 형 어시스트도 나름 좋았어요."
류명인의 으스대는 말투도 평소대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꼴 보기 싫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우습기만 하다.
그만큼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직 방심하지 말고 석션부터 하자. 환자분 목에 객혈이 많이 차서 호흡이 힘들 거야."
"당연하죠."
류명인은 내 말에 다시 환자에게 집중하며 석션을 시작했다.
그렇게 1분 정도 산소수치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하고 있던 찰나.
e―튜브를 통해 석션을 하던 류명인의 눈이 커졌다.
"잠깐. 선한이 형. 이거……."
울컥―
갑자기 많은 양의 피가 튜브를 통해 올라왔다.
그러고는 곧 산소수치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츄레이션 다시 73이요!"
젠장!
이게 뭐지?
문제는 분명히 잘 해결했다.
이번에는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거친 풍랑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배 밑바닥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
역시, 말단 선원 두 명으로는 쉽지 않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