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5)
"여기요! 도와주세요!"
평소 쥐 죽은 목소리만 내던 간호사의 강렬한 외침이 병동 전체에 울려 퍼진다.
‘무슨 일이지?’
타닥―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류명인과 함께 달렸다.
스테이션에서 대기 중이던 간호사들도 놀란 눈으로 908호실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쿨럭 쿨럭―"
김하중 환자는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분명 아까 보았을 때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훨씬 심한 객혈이다.
우유팩 한 팩가량의 피를 토하고 있었다.
‘massive hemoptysis(대량 객혈)!’ 200cc 정도는 되어 보인다.
이미 환자의 시트와 이불에는 입에서 뿜어내는 선홍색 피의 흔적이 선명하다.
예상보다 환자의 폐가 훨씬 빨리 망가지고 있는 듯하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방금 막 기침을 심하게 하기 시작하시더니……!"
간호사가 안색이 파래진 채로 말한다.
초응급 상황이다.
나와 류명인은 생각할 틈도 없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환자 빨리 처치실로 빼요!"
순식간에 주위가 바빠진다.
드르륵―
병동 간호사들이 환자가 누워 있는 베드를 처치실로 옮긴다.
탁탁탁―
나는 류명인과 함께 달렸다.
우리는 언제 티격태격했냐는 듯한 몸처럼 움직였다.
"산소 풀(full)로 틀어 주세요!"
"세츄레이션(saturaion, 산소포화도) 얼마예요?"
"78 체크 됩니다!"
"일단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내삽관) 준비해 주세요!"
나는 간호사들에게 기도 확보를 위한 준비를 주문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지금은 환자의 뿜어져 나오는 객혈에도 기도를 유지하여 산소공급을 해 주는 것이 급선무니까.
그러자 류명인이 나를 힐긋 쳐다본다.
"인투베이션, 제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야? 얼른 송유주 선생님한테 전화 걸어!"
"안 그래도 하고 있어요!"
따르르―
류명인은 콜폰을 들어 송유주에게 전화를 건다.
그 와중에도 환자의 산소포화도는 떨어지고 있다.
공포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 * *
그 시각, 2번 수술방.
송유주는 한상기 교수와 말없이 환자와 씨름 중이다.
벌써 수술은 3시간째 이루어지고 있다.
"유주야, 이거 좀 잘 당겨 봐라, 잘 안 보인다."
교수의 목소리에서는 짜증이 느껴진다.
원래 6시에 끝날 것 같았던 수술.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심한 유착으로 한참 지연되고 있다.
이런 경우, 집도 중인 의사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 환자 캘시피케이션(calcification, 석회화)이 왜 이렇게 심하냐…… 돌덩이 같구만."
"예."
교수의 말에 송유주는 단마디로 대답하며, 수술 보조에 여념이 없다.
환자의 임파선 석회화가 심하여 수술이 쉽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그때, 수술방의 고요함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송유주의 콜폰이다.
띠리리리―
수술방의 서큐레이팅 너스(circulating nurse, 순회 간호사)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물어본다.
"유주 쌤, 류명인 인턴 선생님이네요. 스피커폰 연결해 드릴까요?"
인턴?
송유주의 눈빛이 의아한 기색을 띤다.
인턴이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를 걸었지?
아까 마동섭이 얘기했던 환자 때문일까?
……잠깐, 아니지.
그 환자는 지금쯤이면 수술방에 들어갔을 텐데.
그게 아니면, 병동에 새로 문제가 생긴 환자가 생겼거나…….
"야!!"
버럭!
갑자기 교수가 소리를 지른다.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가 수술방에 퍼진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송유주의 왼손이 교수의 시야를 방해한 것이다.
물론 수술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교수는 그만큼 예민한 상태였다.
"송유주. 수술에 집중 안 해?"
"죄송합니다."
송유주는 바로 사과했다.
물론 바깥 상황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송유주는 다시 수술 필드에 집중하며 간호사에게 말했다.
"지금 수술 중이라고 전해 줘요. 밖에 안경식 선생님 있을 테니까 거기로 전화하라고 해 주세요."
"예에……."
교수의 버럭 하는 소리에 놀랐던 간호사는 전화기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로 대답한다.
"송유주 선생님 2번 방 수술 중이십니다. 밖에 안경식 선생님 있다고 거기로 전화해 보라고 하시네요."
뚝―
전화가 끊긴다.
곧 수술이 재개된다.
물론 그들은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재, 흉부외과 병동에 있는 의사들은 오직 인턴뿐이라는 것을.
* * *
"연락됐어?"
"송유주 선생님 수술 중이시래요!"
"이런……!"
"일단 다른 선생님한테도 연락해 볼게요."
류명인은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그사이, 간호사들은 여전히 바삐 움직인다.
곧 인투베이션에 필요한 도구들이 갖추어진다.
"선생님들, 준비 끝났습니다!"
도구가 펼쳐진다.
이제 프로씨져(procedure, 술기)만 하면 된다.
나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잠시 기다렸다.
그런데…….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환자의 산소수치는 계속 떨어질 텐데.
1초가 마치 1분처럼 길게 느껴진다.
"선생님들 오시려면 멀었나요?"
나는 초조하게 물었다.
그때,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간호사가 외친다.
"지금 선생님들 모두 수술방에 있는 것 같아요!"
"예?"
그럴 리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동섭을 병동에서 스쳐 지나가며 봤었는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수술방으로 들어갔다고?
"마동섭 선생님도요?"
"예. 마동섭 선생님도 12번 방에서 수술 중이시래요. 응급 수술 벌써 시작했나 봐요!"
머리카락이 쭈뼛 솟았다.
문득, 꿈에서 들었던 마동섭의 대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필이면 나도 응급 수술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라…….>
지금이 바로 그때다.
무의촌 상황.
흉부외과의 모든 레지던트들이 병동을 비우는 순간.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이야!
물론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고 나니 머리가 하얘진다.
"쿨럭―"
환자는 계속 피를 토하고 있다.
입을 덮고 있는 투명한 산소마스크에도 피가 튀어 붉은색으로 얼룩져 있다.
간호사들은 어쩔 줄 모른다.
그중 몇몇은 다른 펠로우 선생님들과 통화 시도를 하고 있었다.
"다들 수술방이시네요! 아무도 연락 안 돼요!"
전화를 돌리던 간호사들은 겁에 질린 표정과 절망적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때, 류명인이 다가오며 말한다.
"형. 안경식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수술방이라서 전화 연결조차 안 돼요. 어떡할래요?"
류명인은 무언의 표정으로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
나는 잠시 고민했다.
첫 번째 꿈에서는 ― 내가 환자를 위험에 빠트렸다.
두 번째 꿈에서는 ― 류명인이 환자를 위험에 빠트렸다.
결론은, 우리 둘 다 폭탄이다.
누가 술기를 하더라도 인투베이션 도중 사고가 날 확률이 있다.
만약 인투베이션을 안 하거나, 잘못하게 되면?
환자는 산소공급 장애로 저산소성 뇌 손상(hypoxic brain injury) 에 빠질 것이다.
‘후우.’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이런 선택의 순간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때로는 정면돌파를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7번 장갑 주세요."
내 말에, 류명인의 눈이 커진다.
"우리끼리 하자구요?"
"어쩔 수 없잖아."
"그러면 제가 할게요."
"아니, 내가 할게."
"싫어요. 제가 주치의잖아요."
류명인과 나는 잠시 설전을 벌였다.
서로 손을 맡겠다고 나선다.
이건 뭐 초등학생들 싸움도 아니고…….
그때, 녀석이 반박할 수 없는 말을 던졌다.
"형 인투베이션 해 봤어요? 저 인투베이션 지난달에 마취과에서 세 번이나 해 봤어요."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 같은 인턴들은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데, 류명인은 세 번이나 해 봤다고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해 본 사람이 하는 게 낫잖아요? 옆에서 봐주실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없으니까."
그 말이 백번 맞다.
녀석도 의사다.
그것도, 나보다 기도삽관 경험이 더 있는 의사.
평소에는 중2병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녀석의 눈빛도 오늘만큼은 진지하다.
괜한 호승심에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아니리라.
‘그래.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돼.’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신중하게 해. 내가 옆에서 실수 안 하도록 도와줄게."
"걱정 마세요."
류명인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소독 장갑을 낀다.
"서…… 선생님들이 하겠다구요?"
옆에 있던 간호사가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한다.
그야 당연하다.
우리는 인턴이니까.
‘병원에서 인턴 아래에는 타일 바닥밖에 없다’는 바로 그 인턴.
만약 병원을 배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갑판을 닦고 노를 젓는 말단 선원일 것이다.
하지만 풍랑이 몰아닥칠 때 조타석이 비어 있다면, 누군가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키를 잡아야 한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지금 세츄레이션 67이에요. 오투(O2, 산소) mask full로 주고 있는데도요, 미다졸람 5mg 주세요! 앰부라도 짜야 돼요, 조금만 지나면 CPR 납니다!"
간호사들도 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산소수치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미다졸람이랑 씨사 준비할게요!"
병동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최대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모르니 흉부외과 CPR 방송도 내 주세요. 심장외과 쪽에서 와 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간호사에게 말했고, 이내 병원 내에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흉부외과 선생님, 흉부외과 선생님. 암병원 9층 처치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흉부외과 선생님, 흉부외과 선생님. 암병원 9층 처치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방송이 두 번 울린다.
지금 이 소리는 온 병원에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달려와 줄까?
모르겠다.
어쨌거나 곱게 기다릴 상황은 결코 아니다.
스윽―
류명인은 장갑을 끼고 라링고스코프(laryngoscope)를 손에 들고 불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있다.
"잘할 수 있겠어?"
"저 연국대 수석이에요. 지금 우주의 기운은 저의 인투베이션 시행을 도우려 모아지고 있습니다."
류명인이 짧게 농담을 한다.
이 와중에 쌉소리를 할 여유가 있구나…….
프라이드가 강한 녀석답게, 자신감도 하늘을 찌른다.
부디 녀석의 자신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옆에 있으니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 침착하게 대응하자.’
나는 내 판단을 믿었다.
어차피 누가 해도 문제라면, 경험이 있는 류명인이 한다.
대신, 내가 옆에서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혹시 뭔가 잘못하더라도, 내가 인투베이션을 다시 한다.
물론, 예전에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에는.>
그 말이 갑자기 왜 생각나는 걸까?
몇 분 후.
환자는 투여한 약 때문에 잠이 들었다.
이제, 환자는 자력으로 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오직 우리가 넣어 주는 산소에만 의지할 뿐이다.
"그럼 시작합니다."
나의 보조와 함께, 류명인의 술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