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66화 (66/241)

#66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4)

"쿨룩, 쿨룩."

환자가 기침을 계속한다.

깊은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체격을 보니 젊은 시절에는 꽤 건장하셨을 것 같은데, 병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수술받으시면 금방 다시 건강해지실 거예요."

"쿨룩…… 예, 고맙습니다."

김하중 환자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소담이와 함께 환자를 데리고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이것저것 체크할 거예요. 잠깐만 쉬고 계세요."

"예……."

잠시 후.

나는 병동에서 환자가 베드를 옮겨 눕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일단 저 환자에게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생각해 두자.’

물론 확신은 없다.

환자는 수십 명.

그중, 유독 심각한 환자라고 볼 수는 없었다.

바이탈 사인(vital sign, 활력 징후)도 문제없다.

하지만, 당분간은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선한아."

"아냐, 뭘."

나는 복도에서 헤어지기 전, 소담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내과는 어때?"

"살 만해. 김뱀 선생님도 잘해 주시고."

"뭐?"

나는 놀랐다.

김뱀이 누구인가?

3대 빌런 중 하나라던 독사 아니던가.

누군가에게 말 한 마디라도 곱게 하는 꼴을 못 본 것 같은데…….

"김뱀이 잘 챙겨 준다고?"

"응. 저번에는 밥도 사 줬어."

와……

김뱀 이러기야?

물론 여자라고 잘해 주는 건 아닐 거다. 연서에게도 혹독한 독설을 아끼지 않던 인간이니까.

어쩌면 귀여운 타입에 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 맞다! 아까 김하중 환자분 원래 김뱀 선생님 환자였는데, 너한테 이 말 전해 달래."

"김뱀이?"

"응. 평소에도 너 얘기 은근히 자주 하시거든."

내 얘기를?

대체 나에 대해 평소에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걸까.

왠지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너 이번 달에 흉부외과 돌고 있다고 했더니, 만나면 이렇게 전해 달래."

소담이는 김뱀의 성난 눈썹을 따라하며 성대모사를 한다.

"내가 맡던 환자, 대충 보면 죽여 버린다."

"풋."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햄스터가 뱀 흉내를 내는 것이 어색해 보인다.

소담이의 귀여운 말투와 매치가 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알았어. 내가 더 신경 쓸게."

"그래. 화이팅!"

소담이는 나를 향해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사라졌다.

귀엽긴 귀엽다.

뱀도 잘해 줄 정도로.

* * *

잠시 후.

나는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환자의 엑스레이를 열어 보았다.

<국균종>.

쉽게 말해, 폐에 곰팡이균이 생긴 것을 뜻한다.

곰팡이는 음식물에만 생기는 것 아니냐고?

물론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불행하게도 환자의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 몸 안에 생길 수도 있다.

"아까 전동 온 환자 엑스레이 보고 있는 거야?"

누군가 스테이션으로 다가오며 내 어깨를 툭 친다.

마동섭 선생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스퍼질로마(aspergilloma, 국균종) 환자를 보는 건 처음이라서요. 아까 보니까 가래를 뱉으실 때 객혈을 심하게 하시더라구요."

"그래. 국균종은 결국 잘라 내서 없애 버리는 게 최선일 때가 많아."

결국 외과 수술은 수술 목적에 따라서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제거 수술 (resection surgery).

재건 수술 (reconstruction surgery).

이 중 폐 수술은 대부분 ‘제거 수술’에 속한다.

그리고 한번 잘라 내면 다시는 재생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 몸에는 잘라 낸 후에도 어느 정도 재생될 수 있는 조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간이 그러하다.

하지만, 폐는 다르다.

망가진 폐를 잘라 내고 나면, 환자는 남은 폐로만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과하지 않게 적절한 부위를 잘 잘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수술방 들어가 보고 싶다…….’

그러자, 마동섭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한다.

"왜. 빨리 칼 들고 싶어?"

"예?"

"네 표정이 딱 그렇잖아. 인턴 일 지겹다. 빨리 폐 잘라 보고 싶다! 내 손에 칼만 쥐여 주면 아주 날아다닐 텐데!"

슉슉.

마동섭은 허공에 칼질 모션을 취하며 말한다.

아무리 봐도 저럴 때는 영락없이 조폭 같다.

"크크, 걱정 마라. 나중에 레지던트가 되면 지겹게 수술실에 있게 될 테니까. 물론 네가 흉부외과에 오게 된다면 말이지."

그 말 그대로였다.

부족한 인력에 비해, 흉부외과에는 수술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잡혀 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잡혀 있는 수술이 한가득이니까.

* * *

흉부외과의 저녁이 깊어 간다.

금요일 8시.

다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오늘만은 제발 일찍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레지던트, 펠로우 그 누구도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동.

수술방.

하나같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오늘은 응급 수술이 많은 날이라, 거의 모든 수술방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그리고, 그 시각.

흉부외과 폐식도외과 병동.

무릎을 꿇고 한 환자의 체스트 보틀(chest bottle)을 바라보고 있는 마동섭의 표정이 심각하다.

"마지막 30분 동안 얼마 나온 거죠?"

"180cc drain 됐습니다."

"흠……."

똑― 똑―

보틀에는 선홍색 피가 한 방울씩 쌓이고 있다.

환자의 안색 역시 좋지 않고, 심박수는 110회를 가리키고 있다.

‘수술 끝나고 나온 지 2시간 조금 넘었는데…… 이 정도면 수술방에 다시 들어가서 살펴봐야겠어.’

마동섭의 판단은 빨랐다.

하지만 최종 결정을 내릴 교수님은 수술 중이다.

이럴 때는?

직접 가야 한다.

마동섭은 서둘러 수술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잉―

마동섭은 수술방의 문을 발로 밟아 열었다.

곧 차가운 수술방의 풍경이 펼쳐진다.

탈곡기 교수는 송유주와 함께 한참 수술에 몰두하고 있었다.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교수님."

"동섭이냐? 왜?"

교수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한다.

마동섭은 재빨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오늘 4번 방 두 번째 수술환자 블리딩(bleeding, 출혈)이 시간당 200cc 이상입니다. 블리딩 컨트롤 오피 (bleeding control op., 지혈 수술)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야?! 이 환자 완전 어드히젼(adhesion, 유착) 심해서 한참 걸릴 텐데."

교수의 짜증스러운 대답이 들려온다.

수술이 마음처럼 잘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마동섭은 눈치껏 말했다.

"그럼 제가 다른 레지던트 데리고 일단 수술방 열겠습니다."

"그래."

교수의 승인이 떨어졌다.

타닥―

마동섭은 9층 흉부외과 병동으로 뛰어가면서, 안경식에게도 전화한다.

"안경! 블리딩 컨트롤 (bleeding control, 지혈) 응급 op. 들어가야 되는데 손이 모자라서, 네가 어시 들어와야겠다."

"예? 저요?"

"지금 수술방 바깥에 있는 레지던트가 너 말고 누구 있냐."

마동식이 조폭처럼 윽박질렀다.

안경식은 울상을 지었다.

그럴 만도 하다.

안 그래도 자기 일이 엄연히 있는데, 수술방까지 커버하라고 하니 울상을 지을 만하다.

손이 부족한 흉부외과에는 언제나 이런 상황이 많다.

<인력 돌려 막기>.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일의 연속이다.

안경식은 두꺼운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한다.

"그런데 선배님…… 저까지 들어가면 밖에 사람 아무도 없는데요? ICU랑 병동에 인턴들밖에 안 남아요."

끄응.

마동섭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대략 두들겨 보았다.

"어디 보자…… 다른 수술방 곧 끝날 테니까, 한 시간만 버티면 될 거야. 지금 ICU에 당장 손 필요한 환자 없잖아."

"알겠어요, 수술 어레인지 하고 준비할게요."

"그래, 일단 병동에서 내가 동의서 받고, 환자 보고 있을게. 마취과랑 이야기해 보고 제일 빠른 시간으로 수술방 열어 달라 그래."

타악.

마동섭은 전화를 끊고 서둘러 움직였다.

병동으로 다시 향하는 마동섭은 약간의 긴장감을 느낀다.

‘느낌이 안 좋은데, 흠…….’

<무의촌>.

원래는 의사들이 없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병원 안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만약 병동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올 레지던트가 아무도 없는 상황!

잠깐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이 1년에 2-3 차례 정도는 있었다.

그런데, 왠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느낌이 싸하다.

‘에이. 별일 없겠지. 고작 한 시간인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겠어?’

하지만 마동섭은 간과하고 있었다.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슨 일이 발생하는 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 * *

저녁 8시 40분, 고요한 병동.

나는 인턴 잡을 끝내고 병동 끝에 있는 비상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슥 나타나 옆에 걸터앉는다.

"형, 여자 친구 있어요?"

깜짝이야.

누군가 했더니 류명인이다.

뜬금없기가 거의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급이다.

갑자기 남의 연애사는 왜 물어봐?

"없어."

"그럼 연애한 적은요?"

"없겠냐?"

황당하네.

이 녀석이 나를 뭘로 보고.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의 연애사는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그중에는 평범하지 않은 에피소드도 많다.

물론 우리가 그런 사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기에,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

"제가 요새 고민이 있거든요."

"고민은 무슨…… 설마 송유주 선생님?"

"쉿. 조용히."

녀석의 표정이 비장해진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그렇게 온 세상에 티를 내고 있는데 비밀로 한다고 모르겠냐?

이놈한테도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었네.

"왜, 뭐가 고민인데?"

"열심히 어필해 봐도 눈길도 안 주는 것 같아서요."

"네가 알아서 잘해 봐. 너도 연애는 해 봤을 거 아냐?"

그러자 류명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저도 연애는 여러 번 해 봤는데, 아무래도 일반인들과는 영 사고 수준이 맞지 않더라구요."

"……."

"그래서 저처럼 우월한 사람을 만나려는 거거든요. 송유주 선생님이라면 저랑 클래스가 좀 맞지 않겠어요?"

귀엽다는 말 취소.

역시 재수 없다.

나는 한심한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저 성격으로 오래 연애를 하기는 힘들었겠지.

멀쩡하게 잘생긴 얼굴 보고 왔다가, 성격 보고 다들 도망갔을 게 뻔하다.

"너, 한 달 이상 연애해 본 적 없지?"

"어떻게 알았어요?"

어쩌다가 이놈이랑 연애 얘기를 시작하게 됐을까?

애초에 받아 주지 말걸.

"너는 연애 이전에 기본적인 성격이 문제야."

"그게 뭔데요?"

"몰라서 묻냐?"

"당연하죠. 완벽한 저에게 결함이 있을 리가?"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아, 선한이 형. 알려 줘요."

류명인은 나를 졸졸 쫓아왔다.

미운 정이랄까.

이 녀석과 붙어 지내다 보니, 나름 적응이 된다.

근본적으로 나쁜 녀석은 아니다.

그냥 좀 개념이 없을 뿐.

그때, 갑자기 비상계단 바로 옆의 908호실 간호사가 소리를 치며 병실에서 나온다.

"여기요! 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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