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3)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된 거지?
사고를 치는 게 내가 아니라 류명인이라니…….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미래가 달라진 거야!’
<나비효과>.
원래대로라면 류명인과 나는 다른 조였다.
하지만 사다리 타기를 하면서 같은 조가 되었고…….
그 결과, 미래가 꼬여 버린 것이다.
"그래서 환자는 어떤 상태야?"
"일단 중환자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의식이 안 돌아와. 신경과에서도 가망 없다고 하던데."
"어휴. 큰일이네."
마동섭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류명인이 인턴치고는 퍼포먼스가 좋아서 잘 대처할 줄 알았는데…… 옆에 있던 선한이도 별 도움이 안 됐었나 보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차분히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면―
류명인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환자가 저산소성 뇌 손상에 빠진다.
모든 상황이 똑같다. 주어가 <신선한>에서 <류명인>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결국, 이 사건은 필연적이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인턴들 탓할 일은 아니지. 환자도 너무 힘든 케이스였고……."
"어려운 환자건 쉬운 환자건. 결국 우리가 못 살린 거야."
송유주의 말은 냉정했다.
마동섭은 씁쓸한 눈빛으로,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들은 언제나 완벽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파앗―
다음 순간, 갑자기 꿈속 장면이 바뀐다.
술집이다.
월말 회식이 이루어지는 곳.
시끌벅적하지만, 묘하게 테이블의 분위기가 초상집 같다.
흉부외과 사람들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또한 예전에 보았던 장면이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내가 계단에 취한 채로 널브러져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확히 반대 구도의 장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류명인이 취한 채 계단에 걸터앉아 있고, 나는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다.
"너무 상심하지 마. 너는 인턴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야."
내 말에 류명인은 피식 웃는다.
"지금 저 동정하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
"형은 좋겠네요. 계속 눈에 거슬리던 놈 나가떨어지는 거 보게 돼서…… 딸꾹."
"인턴생활 끝난 것처럼 얘기하네."
"저 트라우마 생겨서 환자 보는 의사 못 할 거 같아요. 거기다가 수석은 물 건너갔으니, 더 이상의 인턴생활은 저한테 의미 없는 시간이에요."
류명인의 목소리가 우울하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녀석에게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꿈속의 내가 자리를 떠나기 전, 류명인이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연국대 병원의 왕이 될 내가…… 말도 안 돼…… 히끅."
너는 이 와중에도 중2병이냐?
* * *
파앗―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흉부외과 스테이션의 모니터가 보인다.
내가 뭘 하던 중이었지?
……아 참, 엑스레이 보고 있었지.
가까스로 현실에 적응하며 정신을 다잡는다.
‘방금 본 꿈은 무슨 의미였을까?’
나는 관자놀이를 쥐었다.
……조금 전까지, 잠시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류명인은 능력치가 뛰어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환자를 다루는 것이 류명인으로 바뀌어도 환자를 구해 낼 수 없었다.
‘재밌네.’
나는 피식 웃었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문제를 내는 듯하다.
<너 이번에도 이 문제 해결할 수 있겠어?>
어차피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또 승부욕 생기게 하네."
우드득.
나는 손가락을 꺾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번에도 누가 이기나 해 보자."
"뭘 이겨?"
"예?"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송유주 선생이 어느새 다가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에 집중하느라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황급히 둘러댔다.
"조금 전에 읽던 웹툰 대사입니다. 하하하."
급하게 댈 수 있는 게 이런 구차한 변명뿐이라니.
나는 자괴감을 느꼈다.
송유주 선생은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는 수술동의서용 태블릿을 집어 들고는 나를 힐끗 보며 사라졌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중2병이 둘씩이나……."
아니야!
난 아니라고!
억울하다!
* * *
얼마 후.
나는 다른 층에 입원한 흉부외과 환자를 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러 걸어가고 있었다.
띵―
때마침 중환자용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대형병원의 엘리베이터는 두 종류로 나뉜다.
1―일반 환자 및 면회객이 이용하는 일반 엘리베이터.
2―환자 베드가 그대로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중환자용 엘리베이터.
원래 중환자용 엘리베이터는 수술 환자 혹은 응급 환자를 위해 비워 두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런 대낮에 일반 엘리베이터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바쁜 인턴들은 계단을 이용하거나, 가끔은 중환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거 타고 올라가야겠다.’
드르륵―
그때, 중환자용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베드 하나가 고개를 내밀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오는 모양새가 영 불안정하다.
돌돌돌―
쿵― 쿵―
저것은 환자 베드인가, 범퍼카인가…….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빠져나오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투덜댄다.
"어이쿠."
"아이고, 선생님. 운전을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앗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조그마한 체구의 의사가 무거운 환자 베드를 밀면서 내리고 있었다.
검은색 단발.
햄스터 같은 모습.
어리숙한 행동이 딱 봐도 인턴인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소담이다.
‘소담이가 여기에는 웬일이지? 분명 이번 달에 내과를 돌고 있을 텐데…….’
환자 베드는 생각보다 크고 묵직해서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턴들끼리 누가 더 베스트 드라이버인지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몸 쓰는 데 취약한 소담이는 낑낑대며 베드를 옮기고 있었다.
왠지 처량하군…….
그래도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눈물겹다.
나는 소담이를 도와주기 위해 다가가 인사를 건네었다.
"소담, 오랜만."
"옴마 깜짝이야."
화들짝!
소담이가 놀란다.
겁먹은 초식동물 같은 반응이다.
그러더니 나를 올려다보고는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에고, 누군가 했네. 선한이 너였구나."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낑낑대고 다시 베드를 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심을 못 잡고 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소담이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결국 나를 바라보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 좀 도와줄래?"
"그래. 알았어."
나는 웃으며 소담이와 함께 베드를 밀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다.
같이 사이좋게 응급실 돌 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는 웬일이야?"
"으응, 환자 TS(흉부외과)로 전동 가는데 동반해 달라고 주치의 선생님이 그래서."
"전동?"
전동(transfer)이란 환자의 소속 과가 바뀌어 병동을 이동시킨다는 뜻이다.
즉 지금 같은 경우에는…….
호흡기내과 → 흉부외과.
아마 호흡기내과에서 ‘폐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환자인 모양이다.
‘어떤 환자길래?’
나는 베드 위를 슬쩍 살폈다.
중장년 남자.
짧은 머리에 흰머리가 성성한 남자 환자가 누워 있다.
한눈에 보아도 풍채가 좋아 보인다.
두껍고 짧은 목과 얼굴에서 강호동의 느낌도 풍겼다.
환자의 네임 카드에는 호흡기내과 65/M(65세 남자) 김하중이라고 적혀 있다.
‘겉보기에는 무척 정정해 보이는데…… 운동선수 체형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환자가 갑작스럽게 기침을 시작한다.
"쿨룩― 쿨룩―"
보통 기침이 아니다.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고서 뭔가를 뱉어 낸다.
……피다!
조금 나오는 정도가 아니다.
앙다문 입술 사이에서 피와 침이 뒤섞여 한 움큼 왈칵 쏟아진다.
"어우 씨 깜짝이야……."
"엄마, 저기 봐. 피야!"
"이리 와, 가까이 가지 마."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가던 환자와 보호자들이 깜짝 놀란다.
그야 놀랄 만도 하다.
갑자기 피 섞인 기침을 하는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놀라게 될 테니까.
"쿨럭, 쿨럭―"
환자는 몸을 돌려 침대 머리맡에 휴지를 찾아 피를 뱉어 내려 한다.
나는 반쯤 세워져 있던 환자의 상반신을 일으켰다.
"환자분, 잠시 몸 일으켜 보실게요."
나는 환자의 머리맡에 있던 휴지를 들어 그의 입가에 받쳤다.
휴지는 금방 침과 피에 젖어서 빨갛게 물들었다.
나는 휴지를 몇 겹 더 꺼내어서 환자의 입에 묻어 있는 피와 침을 닦아 주었다.
‘헤몹티시스가 심하신 것 같은데……?’
헤몹티시스(hemoptysis, 객혈).
기관지나 폐에서 기원하는 혈액이 기침과 함께 배출되는 것을 말한다.
나는 환자를 다독이며 소담이에게 물었다.
"소담아. 세츄레이션(saturation, 산소포화도) 얼마야?"
"97."
소담이가 바로 대답했다.
환자의 손끝에 감겨 있는 모니터링 기구를 통해 산소포화도 수치는 97을 기록하고 있었다.
95 이상이면 충분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즉, 정상이다.
"바이탈(vital sign, 활력징후)이 흔들리는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네."
"응, 그래도 객혈을 계속하시는 아스퍼질로마(aspergilloma, 국균종) 환자여서 주말에 응급 수술 할 거라고 하더라구."
아스퍼질로마?
미리 들은 얘기가 없는데, 우리 파트가 아닌가?
어쩌면 류명인 쪽 환자일 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기침을 끝내고 정신을 차린 환자가 나에게 물어본다.
"앞으로 저를 봐주실 선생님이신가 보죠……? 콜록― 콜록―"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환자는 다시 기침을 시작한다.
또 한 번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온다.
나는 환자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이야기했다.
"제가 담당이 아닐 수도 있지만, 같은 층에 있으니까 종종 찾아뵐게요. 저희 흉부외과 선생님들이 수술 잘해 주실 거예요."
불안해하고 있을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이고, 선생님."
"예?"
"이거 미안해서 어떡합니까. 제가 피를 토하는 바람에 흰 옷을 버려 버려서……."
피?
나는 내 옷소매를 내려다보았다.
흰 가운 소매에 붉은 핏방울이 조금 물들어 있다.
아까 환자가 객혈을 할 때, 잠시 받아 주느라 묻은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소매를 걷고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 옷이야 얼룩덜룩해지는 거 일상인데요."
"아이고. 그래도……."
쿨룩, 쿨룩.
환자는 말하다 말고 또다시 기침을 한다.
이번에는 소담이가 휴지로 이를 받아 내 주었다.
"어제오늘 괜찮으셨는데, 갑자기 이러시네…… 흠……."
소담이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환자를 쳐다본다.
다행히 산소수치는 정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싸하다.
‘이 불안한 느낌은 뭐지?’
내 담당 환자도 아니다.
그런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보통 이럴 때 나의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