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1)
"갑자기 카데바 얘기는 왜 꺼내요? 무섭게시리."
근욱이가 질색을 했다.
카데바(Cadaver).
교육용으로 본인의 몸을 기증해 주신 분들의 시신을 뜻한다.
모든 의사들은 해부학을 공부하기 위해 학부 과정에서 해부 실습을 하게 된다.
"으으, 카데바 얘기 나오니까 갑자기 으슬으슬하네."
근욱이가 몸을 움츠리며 우람한 삼두박근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덩치가 큰 것에 비해 은근히 겁이 많은 성격이다.
그러자 중원이 형이 말하다 말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물었다.
"얌마. 넌 덩치도 산만 한 게 쫄보처럼 왜 그러냐?"
"저 트라우마 있거든요. 해부학 실습 기간 내내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근손실 왔어요."
"그 정도였어?"
"예."
어지간히 해부 실습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천하의 근욱몬이 밥을 못 먹어서 근손실이 왔다니…….
당장 내일 전쟁이 나도, 단백질 섭취량은 무조건 지킬 녀석인데.
"하긴, 나도 처음에는 좀 겁나긴 했어. 포르말린 냄새가 한동안 코에서 떠나질 않더라."
"저는 실습 끝나고 며칠 동안은 꿈에도 나오더라구요. 선한이 너는 어땠냐?"
근욱이가 내 쪽을 보며 묻는다.
나는 선선히 대답했다.
"좋았는데."
"헐?"
"책으로만 보던 걸 실제로 보니까 좋았어."
"무섭거나 하지는 않디?"
"전혀."
"와…… 하여튼 너는 우리 중에 제일 순하게 생겨서 은근히 무서운 놈이야. 가끔 보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니까."
그런가?
나는 뺨을 긁적였다.
사실 카데바 해부는 경건한 행위다.
자신의 몸을 연구 목적으로 기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감사하고 숙연해지느라, 무서움을 느낄 새도 없다.
물론 개인 성향에 따라서 근욱이처럼 본능적인 오싹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래서 카데바 실습 때 류명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요?"
"일단 들어 봐."
우리는 중원이 형의 말에 집중했다.
스산하고 야심한 밤에 어울리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는 바야흐로 4년 전. 해부학 실습 막바지에 일어났던 일이야."
중원이 형이 의대생 시절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해부학 실습>.
이 실습은 한 학기에 걸쳐서 진행이 되는데, 얼굴은 천으로 덮어놓은 채 팔, 다리, 가슴 등 모든 부위의 해부를 진행한다.
"우리는 해부한 사진을 찍어서 마킹을 한 뒤 교수님께 제출하기로 되어 있었지…… 그리고 그날은 안면근육이랑 신경을 해부하는 날이었어."
"으악, 안면 해부……."
근욱이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카데바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무섭지는 않다.
막상 보면, 화학약품에 건조되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포르말린에 절여진 시체는 일종의 잘 만들어진 ‘모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카데바가 유독 ‘인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안면 해부.
한 학기의 마지막 과제로 얼굴에 덮여 있는 천을 열고 얼굴을 해부할 때다.
스르륵―
그동안 천으로 덮여 있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 내가 해부하던 것이 진짜 사람이었구나.
그러고는 기증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묵념을 하게 된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안면근육이랑 신경이 얼마나 복잡하냐? 교수님이 찾으라고 한 신경 몇 가닥을 못 찾았어, 우리 조는."
"그래서요?"
"나야 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지. 너희들도 내 성격 알잖니?"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이 형은 점수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다.
적당히 B 학점만 받아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중원이 형과 같은 조에, 류명인도 있었다는 것이다.
"류명인 이 새끼는, 그거 못 찾은 거 때문에 자기 학점 깎일까 봐 부들부들 떨더라고."
"아하."
충분히 상상이 간다.
류명인의 성격상, 도저히 참을 수 없었겠지.
연국대 출신이 아닌 나와 근욱이는 중원이 형의 이야기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류명인은 매 학기 1등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A+ 학점 아니면 절대 못 참았겠네."
"맞아. 하지만 어쩌겠냐, 이미 실습 결과가 나와 버린 걸? 그때 류명인의 표정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데,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질 것 같다 해야 하나?"
아, 뭔지 알겠다.
내가 낮에 봤던 그 표정이다.
송유주 선생에게 까인 뒤, 입술을 깨물며 부들부들 떨던 그 표정.
예나 지금이나 성격이 똑같았던 모양이군.
"아무튼 그렇게 부들부들 떠는 류명인을 뒤로하고, 나는 기숙사로 돌아와서 몸에 절어 있는 포르말린 냄새를 씻어 내려 샤워실로 갔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날의 상황들이.
우리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샤워실로 갔는데, 왜인지 류명인이 안 보이는 거야! 이상한 일이었지. 깔끔한 걸 좋아하는 류명인이 바로 샤워실로 안 올 리가 없었거든."
중원이 형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얘가 피곤해서 방에서 뻗었나 생각했는데…… 룸메이트들한테 물어보니까 걔네들도 본 적이 없다네?"
"어딜 갔는데요?"
"그게 말이야. 나중에 알고 보니까, 혼자서 몰래 해부학 실습실에 다시 갔더라고."
"예?"
"거길 어떻게 들어가요?"
근욱이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몰라. 아직도 연국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미스터리야. 잠겨져 있는 건물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창문을 타고 넘어갔는지…… 아무튼 실습실에 그 못 찾았던 신경을 찾으러 간 거야. 밤 10시에 해부 실습실 문을 잠그는데도."
"이야…… 독한 놈이네요."
"그래. 그날 비로소 류명인이라는 녀석의 실체가 드러난 거야. 그날 밤에 일어났던 일을 내가 경비 아저씨한테 전해 들었지."
이야기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었다.
"경비 아저씨는 놀랄 수밖에 없었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야심한 밤, 해부 실습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으니까…… 아마 평생 그렇게 떨리는 순간은 처음이었을 거야. 하지만 이윽고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디뎠지. 뚜벅, 뚜벅, 뚜벅……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말했어."
<거…… 거기 누구 있소?>
콰르릉―
번개가 치며.
류명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녀석은 시체의 얼굴을 코앞에서 들여다보며 웃고 있었다.
왜냐하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해부 결과를 사진으로 제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각해 봐. 밤중에 혼자 칼을 들고 시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실실 웃고 있는 의사라니…… 얼마나 섬뜩했겠냐? 경비 아저씨 그때 기절할 뻔하고 난리가 났었지."
이야기가 끝났다.
우리는 잔뜩 집중하며 듣고 있다가 맥이 풀렸다.
근욱이가 묘하게 실망한 듯 말했다.
"끝이에요?"
"응?"
"에이, 괜히 기대했네. 난 또 무슨 좀비 영화 못지않은 스펙터클한 장면이 나올 줄……. 카데바가 벌떡 일어나는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야 인마, 이 정도면 충분히 소름 돋는 에피소드 아니냐?"
"글쎄요. 재밌긴 했지만 약간 아쉬웠다고나 할까요. 마치 조금 모자란 형의 머리숱처럼……."
"치킨 압수."
"아 안 돼. 내 단백질 공급원!"
두 사람이 티격태격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데, 장면을 상상해 보니 확실히 괴상망측하긴 하다.
혼자 밤중에 해부 실습실의 문을 따고 몰래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오로지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다.
아무래도 녀석의 ‘성적’과 ‘경쟁’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성적 잘 받은 거예요?"
"응. 교수님께 해부 결과를 다시 제출해서 우리 조는 결국 좋은 성적을 받았지."
"또라이라고 학교에 소문 쫙 났겠네요."
"누가 아니래? 그날 이후로 다들 류명인을 성적 귀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야. 원래 경쟁욕이 강한 놈인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거든."
특이한 녀석.
하지만, 이해가 간다.
나도 무언가에 몰입하다 보면 남들이 안 하는 짓을 할 때가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수 있죠."
"야 선한아, 너는 그 상황이 이해가 간다고?"
"조금은."
"헐."
"생각해 봐. 어찌 보면 밤중에 혼자 독서실 가서 공부하는 거랑 큰 차이 없을 수도 있어."
그러자 두 사람의 표정이 이번에는 나를 보며 괴상해졌다.
"와, 역시……."
"또라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같은 또라이밖에 없다는 게 사실이었구만."
으응?
내가 왜 또라이야.
근욱이의 말에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어쨌는데, 인마."
"야, 강남역 사건 잊었냐? 난 아직도 그날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요. 갑자기 뭐에 홀린 놈처럼 주삿바늘을 환자 가슴에 꽂아 넣는데 미친놈인 줄 알았다니까!"
아, 그거.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솔직히 할 말은 없다.
내가 생각해도 무모한 짓이긴 했으니까.
그렇다고 졸지에 류명인과 같은 카테고리로 엮여 버리는 건 뭔가 억울하다.
그러자 중원이 형이 나를 변호하듯 말한다.
"에이, 그래도 선한이랑 명인이는 좀 다른 종류의 또라이지~!"
"아니, 형도 그때 강남역에서 이 녀석 눈빛을 봤었어야 돼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진짜 귀신 씐 줄 알았다니까요?"
"아니야, 얘는 좀 또라이긴 해도 평소에는 사회성이 좋잖아? 가끔 눈이 회까닥 뒤집히면 급발진을 해서 그렇지."
그 와중에 또라이라는 단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 이미지가 어쩌다 이리됐지?
나의 인턴생활,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크크. 아무튼 류명인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뭔 짓을 할지 몰라. 선한이 너도 조심해라. 혹시 너한테 무슨 해코지할지 어떻게 아냐?"
"설마요."
나는 피식 웃었다.
대수롭지 않게 중원이 형의 말을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찜찜한 기분이 든다.
‘신경 쓰이긴 하네.’
물론 류명인의 해코지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녀석은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실력으로’ 나를 이기고 싶어 하니까.
그 말인즉…….
녀석이 내 음식에 독을 타거나, 밤중에 환자 처방을 뒤섞거나 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뜻이다.
‘문제가 있다면, 녀석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야.’
나는 이번 달에 환자가 뇌 손상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런데…….
류명인이라는 존재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다.
특히 녀석이 나를 향해 불태우는 경쟁욕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짐작이 안 된다.
‘뭐,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녀석이 어떻게 나오든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소파 팔걸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따르르르―
때마침 가운 재킷 주머니에 들어 있던 콜폰이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