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62화 (62/241)

#62 흉부외과는 처음이지?(10)

나는 류명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을 바라보았다.

저건…….

바나나 우유잖아?

학생 시절부터 호감을 표현하는 고전적이고 소박한 아이템이다.

"선배님 아침에 식사도 잘 안 하시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며 스윗한 미소를 짓는다.

우욱.

옆에서 보기 괴롭다.

물론 녀석은 제법 얼굴이 반반한 편이다.

아주 정석적인 연하남의 표본이라고 해야 하나?

실제로 녀석을 귀여워하는 누나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송유주는 표정에 단 1밀리미터의 미동도 없이 대답한다.

"나 우유 안 먹는데."

"예?"

"유당불내증."

"……."

"헛짓거리하지 말고 환자나 잘 봐."

드르륵―

송유주는 의자를 빼고 스테이션에 앉는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요새 저 광경 보는 게 은근히 꿀잼이다.

류명인은 잘 보이려고 온갖 수를 써서 어필하는데, 그럴 때마다 철벽에 가로막히는 것이다.

"윤선미 환자, 어제 체스트 튜브(chest tube, 흉관) 드레인(drain)량 얼마야?"

송유주 선생님은 류명인 담당 환자부터 체크하기 시작했다.

흉부외과 수술이 끝난 환자들은 ‘흉관’을 몸에 넣은 채 수술을 끝내고 나온다.

수술 후 출혈이나 흉수액을 받아 내기 위해서다.

또한 폐에서 공기가 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흉관을 통해 나오는 배액량이 일정량 이하가 되고, 관을 통해 새어 나오는 공기가 없을 때 관을 뽑게 된다.

"140cc 드레인 됐습니다."

"에어릭(air―leak, 공기 샘)은?"

"없습니다."

류명인의 대답은 빨랐다.

그러자, 모니터를 쳐다보던 송유주가 고개를 돌려 류명인을 빤히 쳐다본다.

"없다?"

"예."

"차트만 보고 얘기하는 거야, 아니면 실제로 가서 확인한 거야? 여기 차트에 간호사들이 기록해 둔 게 100% 진실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

송유주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하지만 류명인은 자신이 있는 듯했다.

"아까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숨 쉴 때 계속 기포가 확인됐었는데, 오늘은 없었습니다."

류명인은 꽤 성실하다.

머리가 좋을 뿐 아니라, 맡은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칭찬해 줄 송유주 선생이 아니다.

"인턴 말을 믿을 것 같냐? 난 내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

"제가 봤습니다."

"확실해?"

송유주는 류명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언제나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이다.

그런데 류명인이 이상하다.

갑자기 볼이 빨개진다.

……설마 눈을 마주쳐서 설레는 거냐?

가지가지 한다, 정말.

"왜 얼굴이 빨개져? 거짓말이었어?"

"그게 아니라……."

"이따 가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네!"

류명인은 빨개진 얼굴로 겨우 대답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유주는 어느새 모니터로 시선을 옮겨 다음 환자를 체크하고 있었다.

"다음, 정시원 환자는……."

그렇게 컴퓨터 앞에서 환자들을 한 명씩 체크한 뒤, 본격적인 라운딩이 시작된다.

나와 류명인은 송유주 선생의 뒤를 따라다니며 환자들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문제의 환자 앞에 다다랐다.

류명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던 바로 그 환자 말이다.

"환자분, 잘 주무셨어요?"

"예에……."

"기침 한 번 해 보실까요?"

송유주가 말한다.

그러자 환자가 류명인을 가리키며 불평한다.

"아까 저 선생님이 시켜서 했는데 또 해야 돼요? 아파 가지고 기침 한 번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제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한번만 해 보실게요."

"콜록―"

환자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하는 둥 마는 둥 작게 기침을 했다.

우리의 시선은 일제히 아래를 향했다.

환자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 체스트 바틀(chest bottle, 흉관이 연결된 플라스틱병).

만약 에어릭이 있다면, 분명 그곳을 통해 공기가 새어 나올 것이다.

"……."

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

류명인은 보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송유주 선생의 체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환자분. 그렇게 잔기침 말고, 좀 불편하더라도 크게 기침해 보세요."

"아니, 왜 자꾸 기침을 하라고 그러세요. 안 그래도 숨만 쉬어도 아파 죽겠구만……."

"퇴원하기 싫으세요?"

송유주가 묻는다.

거의 강요에 가깝다.

결국 환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기침을 한다.

쿨럭!

환자의 인상이 고통으로 잔뜩 찌푸려진다.

그리고 그때.

보글―

나올 듯 말 듯 하던 공기 방울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에어릭이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분명 방금까지 공기 배출이 없었는데…….

류명인도 놀란다.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다.

송유주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는다.

"에어릭이 없다고?"

"분명 아까는 기침을 해도 없었……."

류명인은 변명을 하려다 입을 다문다.

물론 억울할지도 모른다.

분명 녀석은 나름 매뉴얼대로 잘 체크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역시 경험이 많은 송유주 선생의 눈은 우리와 달랐다.

이것이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 지식의 차이라는 것일까?

송유주 선생의 담담한 질책이 이어진다.

"만약 이렇게 에어릭 상태로 흉관을 뽑으면 어떻게 되겠어?"

"……뉴모(Pneumothorax, 기흉) 발생 위험이 있습니다."

류명인이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에어릭.

즉, 폐에서 공기가 새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대로 흉관을 뽑고 봉합을 했다면?

몸 안쪽에서는 공기가 계속 새는 상태이니, 흉강 안에 공기가 고이게 된다.

즉, 기흉이다!

공기를 빼내기 위해, 다시 몸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흉관을 제거하기 전에 에어릭을 확인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절차다.

"선생님, 이 관은 대체 언제 뽑을 수 있는 건가요? 불편해 죽겠어요. 아프기도 하고……."

환자가 칭얼댔다.

하지만 송유주는 긴말하지 않고 간단히 대답했다.

"오늘은 못 뽑아요."

"예에?"

"조금 이따 교수님이 오셔서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실 거예요."

"히잉……."

환자가 울상을 짓는다.

물론 그렇다고 환자를 달래 줄 송유주 선생이 아니다.

할 말이 끝나자마자 냉철하게 자리를 뜬다.

그렇게 병실에서 나오자 류명인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흡했습니다."

"TS(흉부외과) 일주일 돌았으면 에어릭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예."

언제나처럼 담담한 말투지만, 타격감이 찰지다.

송유주의 말에 뼈를 얻어맞은 류명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지켜보고 있으면 좀 재밌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의 얼굴을 보는데…….

‘뭐야. 이 자식 낯빛이 왜 이리 심각해?"

나는 조금 놀랐다.

녀석의 얼굴은 창백했다.

평정심을 가장하고 있지만, 입술이 하얘질 정도로 꽉 깨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그럴 만도 하다.

대학생 시절 늘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녀석 아니었던가.

아마 여태까지 인턴 점수도 계속 잘 받아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달의 상대는 송유주 선생.

예상치 못하게 계속해서 평가절하를 당하자, 감정 조절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

‘이 녀석, 좀 위험한 거 아닌가?’

녀석의 새하얀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슨 사고를 쳐도 칠 것 같다는 생각이.

* * *

밤 11시.

나는 내 담당 환자들의 오더(order, 처방)를 모두 내놓고 숙소로 내려갔다.

다음 날 몇 시간마다 바이탈 체크를 할지, 어떤 약을 몇 시간 간격으로 투약할지…….

그 전날 미리 정해 놓고 처방을 마무리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담당 간호사가 무리 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덜컥―

문을 열자, 익숙한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어? 선한이다!"

"선한이 오랜만!"

이 냄새는?

치킨 냄새다.

인턴 숙소 휴게실에서 두 사람이 치킨을 시켜서 먹고 있다.

숭숭 비어 있는 정수리를 보아하니 저쪽 구석은 중원이 형인 것 같다.

그 앞에는 딱 벌어진 등판만 봐도 근욱이다.

"요새 얼굴 보기 힘드네. 오늘은 웬일로 12시 전에 숙소로 내려왔대?"

근욱이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제 오더 내는 것도 슬슬 익숙해져서."

물론 큰 자랑거리는 아니다.

애초에 밤 12시 이전에 오더를 마무리하는 게 ‘정상’이니까.

하지만 처음 주치의가 된 인턴들은 보통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처방을 겨우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나에게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처음으로 12시 전에 끝냈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안 그래도 저녁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파 죽겠어요."

"치맥 좀 할텨?"

중원이 형이 맥주 캔을 들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나는 피식 웃었다.

당직 중에 치맥?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저 두 사람은 오프 중이라서 먹는다 쳐도, 나는 절대 안 된다.

곧 옆에 있던 근욱이가 핀잔을 준다.

"아이고, 형님. 선한이가 근무 중에 몰래 맥주를 마실 인간입니까? 차라리 스님한테 바비큐 통구이를 권하십쇼."

"하긴 그래. 나도 그냥 농담으로 해 본 소리야. 크크."

"맥주는 됐고, 치킨 좀 주세요. 배고파 죽겠습니다."

나는 옆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중원이 형이 건네주는 치킨을 뜯었다.

크으―

이게 사는 맛이다.

밤 근무 중에 먹는 야식!

이런 맛이라도 없으면 얼마나 삶이 퍽퍽할까?

물론 맥주까지 마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콜라를 입에 들이부었다.

꿀꺽, 꿀꺽.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선한. TS는 어때? 할 만해?"

"아직까진 재밌어."

"진짜?"

"응."

"흉부외과 재밌다는 사람은 처음 보네."

근욱이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낮에 보았던 연서와 똑같은 반응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원이 형이 묻는다.

"송유주 선생님 빡세지는 않디? 인턴들한테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배님인데."

"여러 가지로 배울 게 많은 분 같아요. 사실 그보다는 동기가 제일 큰 적이죠, 뭐."

"동기?"

중원이 형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다, 곧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픽 웃는다.

"아하…… 류명인 말이구나! 하긴 그 자식이 좀 유별나긴 하지. 대학교 때부터 좀 사이코 같긴 했어."

"사이코요?"

"응."

"얼마나 사이코인데요?"

근욱이가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타 대학 출신이라, 연국대 출신 인턴들의 에피소드를 잘 모른다.

"그러고 보니 류명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 본 적 있으려나?"

중원이 형이 자세를 잡고 입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역시 투머치토커.

인간 대자보.

발 달린 확성기.

그것이 바로 오중원이다.

연국대병원에서 일어난 일은 모조리 중원이 형의 귀에 들어가고, 또 퍼져 나가기 마련이다.

곧 그의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진다.

"가만있자…… 그게 아마 본과 1학년 때 일이었지? 카데바 해부 실습 때 일이야."

해부?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중원이 형은 스산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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