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60화 (60/241)
  • #60 흉부외과는 처음이지?(8)

    내 옷깃을 붙잡은 건 보호자 아주머니였다.

    아까 이태오 환자가 언성을 높일 때, 옆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분이다.

    "아이구 선생님."

    "?"

    "죄송해서 어떡해유…… 우리 양반이 철딱서니 없이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정말 면목이 없네유. 죄송해유."

    아주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고개를 꾸벅꾸벅 숙인다.

    좀 딱한 마음이 든다.

    정작 규정을 어기고 담배를 피운 것은 환자인데, 보호자가 사과를 해야 한다니.

    나는 굽신거리는 아주머니를 일으켰다.

    "괜찮아요, 보호자분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니까요."

    "저기…… 선생님, 우리 양반 정말 강제 퇴원당하는 건 아니겠쥬?"

    보호자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에게 냉정히 대하기는 참 어렵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대답했다.

    "사실 아까 들으셨던 대로, 담배를 피우면 수술 후 합병증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그럼 정말 수술을 안 해 준다는 소리예유?"

    "자세한 건 교수님이 결정하실 거예요."

    "아이구, 이를 우째."

    아주머니는 세상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양반이 한 달 동안 열심히 금연했는데…… 딱 하루를 못 참아서 그랬나 봐유."

    "정말이요?"

    "아이구, 하늘에 맹세코 참말이라니까유. 딱 하루만 못 참은 거예유."

    아주머니가 사정을 설명한다.

    모든 환자들은 수술 전에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이 교육이 환자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할 때가 있다.

    자신이 어떤 수술을 받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알게 되니까.

    막연했던 공포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수술 중에 죽을 수도 있다니께…… 겁도 나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나 봐유. 저세상 갈 수도 있는 마당에 담배 한 대는 꼭 피워야겠다구. 아이구, 미련한 양반."

    그렇게 말하는 보호자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선생님들, 한 번만 눈감아 주시면 안 될까유? 지금 수술 날짜도 겨우 잡았던 건데, 더 늦춰지면 안 되잖아유……."

    아주머니의 말대로다.

    이왕 할 거면, 암 수술은 빨리하는 것이 좋다.

    암 환자에게 <시간>은 곧 <독>이다.

    수술이 늦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암이 더 퍼질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만약 환자가 이대로 퇴원 조치 당한다면?

    수술 일정을 다시 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그동안 암이 어떻게 악화될지 모른다.

    "일단 제가 선생님한테 잘 이야기해 볼게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보호자는 연신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스테이션으로 향하자, 막 차트에 무언가를 기입하고 자리를 뜨려는 송유주 선생이 보였다.

    "저, 선생님."

    송유주가 나를 돌아본다.

    야생 고양이 같은 인상.

    선뜻 말을 걸기 쉽지 않은 느낌이다.

    뭔가 보이지 않는 철벽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야?"

    "방금 환자분 관련해서 말인데요. 보호자가 방금 저한테 이야기했는데……."

    "수술 미루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디?"

    엇?

    어떻게 알았지.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송유주가 선수를 빼앗는다.

    "보나 마나 뻔하지. 그동안 금연했는데 오늘만 한 대 피운 거라고 변명했겠지."

    "……맞습니다."

    점쟁이인가?

    너무 정확히 맞히니까 당황스럽다.

    그동안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 이름이 뭐였지. 진지한이라고 했던가?"

    "신선한입니다."

    "그래, 아무튼 너."

    송유주는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겠다는 듯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환자랑 보호자한테 휘말리지 마. 보호자가 울면서 부탁한다고 치료 방침이 바뀌면, 그게 과연 제대로 된 걸까? 의학적 의사결정은 감정이 아닌 팩트를 기반으로 하는 거야."

    물론 그녀의 말이 백번 맞다.

    하지만, 쉽게 물러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옷깃을 붙잡고 간절히 부탁하던 보호자의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수술을 미루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정 그렇다면 회의 때 네가 교수님한테 직접 이야기해 봐."

    뭐?

    아침 회의 때?

    흉부외과뿐만 아니라 영상의학과, 호흡기내과 교수님들까지 싹 다 모이는 그 자리에서?

    그건 말하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잖아!

    아침 회의 때 인턴 나부랭이가 감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라니…….

    "왜. 그건 못 하겠어?"

    송유주는 얼음처럼 냉랭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지?

    * * *

    아침 7시 반.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컨퍼런스 회의가 이루어질 시간이다.

    곧 회의실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교수

    ―펠로우

    ―레지던트

    ―인턴

    ―PA(진료보조) 간호사

    등등…….

    여럿이 모인 회의실의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좀 적응이 됐다.

    비록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긴장되지는 않는다.

    "자, 그럼 시작할까?"

    탈곡기 교수님의 리드 아래, 여러 환자들의 브리핑이 이루어진다.

    가장 처음부터 이태오 환자의 자료가 스크린 위에 뜬다.

    "이 환자는 오늘 10시 반에 VATS Left Lower Lobectomy(흉강경하 좌하엽 절제술) 수술하기로 돼 있었지? 별다른 이슈는 없고?"

    교수가 묻는다.

    그러자 송유주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Pre―op evaluaton(수술 전 평가)에서 특이 사항 없었습니다만, 환자가 오늘까지 담배를 피웠습니다."

    "담배를?"

    "예. 오늘 프리 회진 때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에헤이."

    교수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쯧쯧 찼다.

    "아무리 담배가 좋아도 그렇지, 큰 수술을 앞두고 그거 하나를 못 참나…… 죽냐 사냐가 걸려 있는데. 쯧쯧."

    교수는 신경질적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가만있자…… 담배를 꽤 오래 피웠던 환자였지?"

    "예. 45 pack―year(하루 1.5갑씩 30년 피운 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좀 부담이 있겠네. 류 간호사, 우리 다음 달 수술 스케줄 좀 확인해 줄래요? 빈자리가 있던가?"

    교수님과 송유주 선생의 대화를 들어 보니, 아무래도 환자를 이대로 퇴원시키려는 듯하다.

    "저……."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모두가 나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똑같은 감정들이 떠올라 있다.

    뭐지?

    갑자기 인턴이 회의 시간에 손을 들다니.

    미쳤나?

    아니면 쥐약이라도 먹은 건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한 표정들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할, 공기처럼 있어야 할 인턴들의 자리 쪽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인턴 선생님, 무슨 하고 싶은 이야기 있나?"

    교수가 묻는다.

    ……긴장된다.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한 발자국이라도 선을 넘으면, 시건방진 인턴으로 찍힐 것이다.

    안 그래도 방송을 탔던 나는 한 달 내내 관심병 인턴으로 찍힐 수도 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

    "혹시 미량의 흡연도 수술 후 합병증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가령 오늘 새벽에 딱 한 대만 피운 경우라든가……."

    "흐음."

    교수는 웃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보호자가 그렇게 말하던가?"

    "예. 한 달 동안 금연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 말을 믿나?"

    교수는 웃었다.

    웃는 분위기라고 해서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자칫하면 교수의 결정에 대한 ‘반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 인턴 선생님은 환자의 수술을 미루는 게 걱정되는 모양이지? 어디 한번 이유를 말해 볼까?"

    교수의 질문에, 나는 최대한 겸손한 말투로 말했다.

    "학생 때 공부하기로는, 암 수술이 한 달 정도 미뤄지면 환자의 사망률이 많게는 1.6배까지 높아진다고 보았어서……."

    그러자 교수의 표정이 묘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펠로우 몇 명도 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왜 그러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교수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재차 질문을 던진다.

    "어디서 본 내용이야? 수업 시간에 그런 내용을 따로 강의하지는 않았을 텐데."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하하."

    교수는 턱을 쓸며 웃었다.

    "열정적인 자세가 좋네. 그런데 논문 저자 이름은 유심하게 보지 않았던 모양이지?"

    "예?"

    "그 논문, 내가 몇 년 전에 쓴 건데."

    "!"

    "그 연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급병원 폐암 환자에서는 1달 내 수술과 그 이후 수술에서 차이는 없어."

    으악.

    나는 혀를 깨물었다.

    논문 저자 앞에서 논문을 왈가왈부하다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이 돼 버렸다.

    "하하,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 없어. 인턴이 논문도 열정적으로 찾아보고 훌륭하네. 역시 티비 뉴스에 나온 인턴이라 남다른 건가?"

    교수가 웃는다.

    저건 순수한 의미의 칭찬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반가웠던 듯 기분 좋게 말을 이었다.

    "뭐, 아무튼 환자를 퇴원시킬지 수술시킬지는 회진에서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만약 수술을 받게 되면 열정적인 인턴 덕분이겠네."

    다행히도 잘 넘어갔다.

    내가 했던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교수는 수술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같다.

    ‘휴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올려보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총 셋이다.

    마동섭 선생.

    내 돌발적인 질문에 조금 놀란 듯하지만, 기본적으로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제법인데? 하는 표정이다.

    송유주 선생.

    별다른 감정 없이, 내 쪽을 힐끗 본다.

    내 언행을 못마땅해할 법도 한데, 전혀 감정 변화가 없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담장 위 야생 고양이 같다고 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 류명인.

    내 옆자리에서, 눈빛을 활활 태우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나도 투명하게 잘 보인다.

    아마 내가 교수의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겠지.

    "다음 환자는……."

    계속해서 회의가 진행된다.

    회의가 끝나고 교수님의 회진이 시작되었고, 나의 정신없는 흉부외과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그날 저녁 강남의 한 오피스텔.

    붉은색 미니가 지하 주차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도시 전체가 잠든 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삑, 삑―

    어둠 속에서 건조한 도어록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송유주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뜯지도 않은 택배 박스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회백색 벽지로 둘러싸인 방 안에는 별다른 가구들도 보이지 않는다.

    햇볕이 잘 들어온다고 계약한 방이지만, 흉부외과를 시작하고서 이 방에서 햇빛을 본 날은 거의 없었다.

    "푸우."

    풀썩―

    유주는 침대에 파묻혔다.

    집―병원―집―병원을 무한 반복하는 인생이다.

    그래도 병원―병원―병원이었던 1년 차, 2년 차 시절보단 낫다고 해야 할까?

    레지던트 3년 차.

    업무의 과중함이 조금씩은 덜어지고 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어차피 집에 일찍 와 봤자 할 일도 없는데 뭘.’

    송유주는 누운 자세 그대로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딱히 지금의 생활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인생에 무언가 빠져 있는 듯하다.

    마치 태엽장치가 빠진 채 관성으로만 앞으로 걸어가는 목각 인형이 된 기분이다.

    그때, 문득 몇 년 전 일이 생각났다.

    백의신과의 대화.

    그 대화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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