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흉부외과는 처음이지?(7)
송유주 선생.
역시 평범한 성격은 아니다.
출근하자마자 스테이션에 앉아, 별다른 인사말도 없이 본론부터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인계장에 적혀 있던 내용이 생각났다.
<송유주 선생님 : 완벽주의자. 시간 낭비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심. 일 잘하는 것에 대한 스탠다드가 엄청 높음. 까칠함 별 다섯 개>
‘범상치 않은 사람이야.’
어떤 의미에선 내과의 김뱀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깍, 딸깍―
송유주는 스테이션에서 컴퓨터로 EMR(전자의무기록)을 체크했다.
교수님의 회진이 이루어지기 전, 레지던트 선에서 환자들을 살피는 것이다.
우리는 양옆에 앉은 채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손제혁 환자 간밤에 별일 없었어? 바이탈 문제없었고?"
송유주 선생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묻는다.
내 환자는 아니다.
아마도 류명인이 맡은 환자인 모양이다.
"밤 동안 세츄레이션(oxygen saturation, 산소포화도) 92까지 떨어지긴 했는데, 크게 염려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류명인이 대답한다.
꽤 자신 있는 말투다.
그러자 송유주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묻는다.
"책임질 수 있어?"
"……네?"
"크게 염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잖아. 방금 한 말에 책임질 수 있냐고."
류명인의 말문이 막혔다.
당연한 일이다.
주치의라고는 해도 인턴이다.
자신의 판단에 백 프로 책임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아닙니다만……."
"책임질 수 없으면 팩트만 말해. 머리에 든 거라곤 쥐꼬리만 한 지식밖에 없는 주제에 제멋대로 판단하지 말고."
송유주가 조곤조곤 말했다.
왠지 상쾌하군.
말로 밟는다는 게 저런 걸까?
목소리는 차분한데,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뼈가 있다.
류명인은 당황한 듯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전날 밤에는 95였는데, 어젯밤에 주무실 때는 92로 체크되었습니다."
"그래."
딸깍, 딸깍―
송유주는 마우스로 환자 목록을 넘겼다.
신속하면서도 빈틈이 없는 모습이다.
보통 레지던트들은 아직 미완성된 의사라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송유주에게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벌써부터 교수님 포스가 물씬 풍긴다.
"지선우 환자는?"
이번엔 내 환자다.
나는 기록지를 보며 대답했다.
"지선우 환자는 에이핍(A. fib, 심방세동) 이틀째 지속되고 있어서 허벤(diltiazem) 7mg/hr 들어가고 있습니다."
무난한 대답이었다.
송유주 선생이 요구한 대로 팩트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 경우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틀째라. 계속 에이핍(A. fib, 심방세동)이 지속되면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할까?"
어엇?
기습적인 질문이다.
갑자기 질환에 대한 질문이 날아올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막 대답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류명인이 끼어든다.
"쓰롬보엠볼리즘(thromboembolism, 혈전색전증)을 주의해서 안티코아귤레이션(anticoagulation, 항응고요법)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자식이?
지금 내 할 말을 가로챈 거야?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제가 이겼죠! 하는 표정으로.
그때, 송유주 선생이 류명인을 힐긋 보며 말한다.
"누가 너한테 물었어?"
"네?"
"왜 남한테 물어본 질문에 네가 대답하지. 자의식과잉인가? 애들이 너 싫어하지 않니?"
"……."
와, 시원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다니.
류명인은 입을 다문다.
송유주 선생의 말에 연속으로 두들겨 맞고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다.
곧, 그녀의 화살이 내 쪽을 향한다.
"너는 왜 바로 대답 못 해?"
"앞으로는 더 빨리 대답하겠습니다."
"됐고."
딸깍, 딸깍―
송유주는 다음 환자로 넘어간다.
인턴들이 송유주 선생에게 난이도 별 다섯 개를 적어 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 오늘 1번 방 두 번째 수술환자, 이태오 씨. 이 환자 담배 끊고 왔다고 하니?"
"아, 외래 차트에 <금연 강조>라고 돼 있고, 간호정보 조사할 때도 끊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빨랐다.
송유주 선생님이 잠깐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직접 가 보자."
* * *
뚜벅, 뚜벅―
나와 류명인은 송유주 선생님을 따라갔다.
<회진>.
교수님 회진은 보통 오전 9시 이후에 진행된다.
그에 앞서 요주의 환자들을 담당 레지던트가 살피는 회진을 프리(pre, 사전) 회진이라고 한다.
물론 주치의인 우리 인턴들도 프리회진에 참여한다.
곧 우리는 1인실에 도착했다.
"환자분. 좀 어떠세요?"
송유주가 말했다.
그러자, 잠을 자고 있던 환자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잇, 씨…… 왜 깨우고 난리야?"
50대 장년 남자.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인상이다.
송유주는 재차 물었다.
"환자분, 좀 어떠세요."
"어떻긴 뭐가 어때?"
"오늘 수술 날인데, 컨디션 괜찮으신지 여쭤보는 거예요."
그러자 환자가 버럭 화를 냈다.
"아, 몰라! 연국대병원이라 그래서 뭐 별다른 거 있나 했더니만 수술 전날이라고 이상한 강의만 자꾸 들으라고 하고, 잠이나 깨우고!"
수술 당일 아침부터 의사한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먹으라는 약은 동네 병원이랑 차이도 없더만…… 야, 너네들 믿고 내 몸을 맡겨도 되는 거 맞아?!"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대뜸 반말이다.
게다가 시비 거는 듯한 말투까지 장착하고 있다.
‘딱 봐도 막말하는 환자시네.’
사실 고령의 환자들 중에서는 이런 환자들도 많다.
그런데, 눈앞의 환자는 50대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히 무례한 듯했다.
우리를 향해 계속 불만을 토해 낸다.
"내가 뉴스에서 봤는데, 너희들 입원비만 뜯어먹으려고 이런 특실, 1인실 많이 만들어 놓은 거 아니야? 빨리 6인실로 옮겨 줘야 할 것 아니야!"
그러자 옆에 있던 보호자가 그를 만류한다.
"당신, 가만히 좀 있어유. 의사 선생님들한테 그러지 마시구……."
"아, 내가 열불 나고 답답해서 그러는 거 아냐!"
아내가 만류하는데도, 중년 남자는 계속 소리를 지른다.
송유주 선생이 몸집이 작은 여자 의사다 보니, 더욱 막 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송유주는 익숙한 듯한 표정이다.
환자의 투덜거림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말한다.
"별다른 이상 없으시면, 오늘 10시 반 경에 수술장으로 들어가실 예정……."
멈칫―
송유주는 뭔가를 캐치한 듯 말을 멈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연다.
"환자분. 담배 피우셨어요?"
뜨끔―
환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 담배라니. 내가 담배를 왜 피워?"
"정말 안 피우셨어요?"
"아, 이 여자가 생사람 잡네. 지금 환자 의심하는 거야? 내가 무슨 사기라도 칠 사람으로 보여?"
환자는 화를 버럭 냈다.
그러자 송유주는 우리에게 눈짓을 했다.
"인턴들."
"예?"
"환자 손등 냄새 맡아 봐."
우리는 환자의 손을 잡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
분명히 난다.
담배 냄새가.
우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지자, 환자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손을 홱 뒤로 뺀다.
"어험험. 아 글쎄, 안 피웠다니까 그러네……."
환자는 요지부동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송유주 선생이 낮게 한숨을 쉰 뒤 말했다.
"환자분. 그렇게 빨리 죽고 싶으세요?"
싸아―
순간 병실이 얼어붙는 듯하다.
나는 놀란 눈으로 송유주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류명인도 눈이 동그래졌다.
말투에 공격성은 없었지만, 표현자체가 직설적이었다.
"뭐…… 뭣이여? 방금 뭐라고 그런 것이여. 죽고 싶냐고?"
한 박자 늦게, 환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한다.
하지만 송유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곤조곤 팩트를 나열한다.
"폐암 수술 1개월 전까지 담배를 끊지 못한 환자는, 수술 후 급성 호흡 부전증에 빠질 확률이 무려 3배 높습니다."
"아니……."
"그리고 이 급성호흡부전증에 빠지는 환자의 절반이 입원 기간 중 사망합니다."
송유주의 말투는 차분하다.
그냥 일상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다.
다만 내용이 살벌할 뿐.
환자는 더듬거리다가 겨우 말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고 싶냐니. 이게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할 소리냐고, 엉?"
"그런 소리 들을 만한 행동을 하셨잖아요."
"아니 그런데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여자가!"
"여자가 아니라, 의사고요."
스윽―
송유주는 피곤한 듯 앞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말했다.
"이 흡연 사실 교수님께 즉시 이야기하겠습니다. 교수님은 아마 퇴원 조치 하실 거예요. 짐 쌀 준비 하시죠."
와…….
차갑다.
어찌나 차가운지 병동에 고드름이 맺힐 지경이다.
조금 전까지 큰소리를 치던 환자는 곧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송유주의 기에 완전히 눌려 버린 모양이다.
"다들 뭐 해? 다음 환자 보러 가야지."
송유주는 우리를 돌아보며 말한 뒤 병실을 나섰다.
저 사람은 어쩌면 감정 변화가 없는 로봇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막 그녀를 뒤따라가려고 하는데.
류명인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머, 멋있다……."
뭐라고?
잘못 들은 건가?
나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류명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송유주의 뒷모습을 쫓는 눈에 하트가 가득하다.
설마 반해 버린 거냐?
"제 이상형……."
가지가지 한다, 정말.
* * *
그 뒤로 우리는 몇 명의 환자들을 더 보았다.
수술을 앞두거나,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올라와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환자들.
아무래도 본인의 몸이 아프다 보니 고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앓는 소리를 하는 환자도 있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송유주는 전혀 환자에게 휘말리지 않았다.
체크할 것만 체크하고, 할 말만 한다.
동작 하나하나가 신속하고 낭비가 전혀 없다.
"아침 컨퍼런스 회의는 7시 반이니까 준비하고."
"예."
뚜벅, 뚜벅―
송유주 선생은 우리를 두고 복도를 걸어 사라졌다.
그러자 류명인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진짜 매력 터지네요."
"네 취향이냐?"
"아뇨. 제 취향은 원래 연서 누나처럼 친절한 여자예요."
뜬금없네.
갑자기 연서를 들먹인다.
하긴, 동기 중에 연서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송유주 선생은 이연서와 180도 다른데?
"아무래도 아까 욕먹으면서 새로운 취향에 눈뜬 것 같아요. 매도하는 눈빛으로 저를 쓰레기처럼 쳐다보는데, 저를 저렇게 무시하는 여자는 처음 봤달까……."
그만해, 미친놈아!
"아무튼 송유주 선생님을 보니 더욱 의욕이 샘솟네요."
"무슨 의욕?"
"반드시 형을 이길 거예요. 그리고 송유주 선생님한테 인정받고 말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류명인은 씩 웃고 걸어갔다.
‘정신줄 놨네, 저거.’
처음에는 그냥 좀 특이한 녀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정성 들여 맛이 간 놈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뜨려 하는데.
누군가 내 옷깃을 붙잡는 것이 느껴진다.
"저…… 선생님."
"?"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