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55화 (55/241)

#55 흉부외과는 처음이지?(3)

‘가만…… 내가 이 사람을 어디서 봤더라?’

아, 그래!

내가 이 사람을 잊을 리 없지.

흉부외과 송유주.

인턴 첫 달 PCI 사건 때 능숙한 솜씨로 ECMO(에크모)를 넣었던 선생님!

학생 시절은 물론, 인턴 시절에도 연국대 최고의 천재로 불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엘리트들만 모인 연국대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마동섭이 말하는 ‘보스’라고?

"안녕하세요!"

나는 일단 활기차게 인사했다.

그런데 송유주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동섭에게 말한다.

"마동, 네 옆에 그 뽀시래기는 누구야?"

뽀시래기라니…….

첫 만남부터 나에 대한 호칭이 파격적이다.

내가 잠시 할 말을 잃자, 마동섭이 내 어깨를 짚으며 말한다.

"인턴들 중에서 최고 유망주다."

"유망주?"

"뉴스 못 봤어? 강남역 한복판에서 심낭천자 했다고 유명했었잖아. 지금도 인터넷에서도 연국대병원 인턴이라고 치면 이 친구 얼굴부터 나올걸?"

마동섭이 나를 열띤 목소리로 소개한다.

마치 홈쇼핑 채널에서 신상품 소개라도 하는 듯 열정적인 기세다.

하지만 정작 송유주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한다.

"삐쩍 꼴아서 일이나 제대로 하겠냐?"

……저기요?

내가 마동섭만큼 우람하지는 않지만, 삐쩍 꼴은 정도는 아니잖아?

게다가 그렇게 말하는 본인이 이 방에서 제일 작고 말랐습니다만?

물론 이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마동섭이 나를 대변하며 말한다.

"이번엔 진짜라니까? 내가 본 인턴 중에서 제일 괜찮은 놈이야. 저번에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내삽관) 도와주는 거 보니까 꽤 야무지더라고!"

"인턴이 다 거기서 거기지. 오버하지 말고 자리에 앉혀. 후딱 끝내자."

송유주의 반응은 한결같다.

마치 차가운 물처럼 냉랭한 말투다.

나는 머쓱히 자리에 앉았다.

회의실에는 이미 인턴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류명인의 얼굴도 보인다.

내가 옆에 앉자, 녀석이 나지막이 속삭인다.

"좋겠네요. 첫날부터 유망주라고 인정받아서."

넌 첫날부터 견제하냐?

참 특이한 녀석이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인턴 동기 한 명이 굳은 자세로 정좌하고 있다.

첫날이라 그런지 잔뜩 각이 잡혀 있는 모습이다.

"하나, 둘, 셋…… 나머지 인턴 한 명 어디 갔어?"

송유주가 머릿수를 세며 말한다.

시간은 약속했던 6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다.

그때, 나머지 인턴 한 명이 서둘러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1분 지각."

"에구…… 죄송합니다."

인턴은 머쓱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무마하려 했다.

그러자 송유주가 그를 빤히 바라본다.

"웃어?"

"네?"

"웃냐고."

싸아―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듯하다.

비록 격양된 말투는 아니었지만, 송유주가 뿜어내는 포스는 장난이 아니다.

인턴은 당황하다가 거의 울먹이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OS(정형외과) 인턴 일 마무리하고 오느라……."

"시끄럽고, 구석에 앉아."

"예……."

인턴은 억울할 것이다.

지금은 타 과 소속의 인턴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흉부외과 인턴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송유주는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 주목!"

쾅!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송유주가 발로 문을 닫으며 말한다.

"이번 6월 달은 4년 차 선생님들이 소아심장과 성인심장 파트에 배정이 되어 있어서, 폐식도 파트의 치프(chief)는 내가 맡기로 했다. 내 이름은 송유주, 반갑다."

마동섭이 보디가드처럼 옆에 서 있고, 송유주가 포스 있는 목소리를 낸다.

여기는 무슨 영화 속 한 장면인가…….

조폭들 앞에 끌려온 것 같다.

우리 인턴들은 다들 얼어 있는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마동섭이다. 너무 겁먹지들 말고 한 달 동안 잘해 보자."

마동섭이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험악한 인상치고는 최선을 다하는 듯하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배드 캅 굿 캅(bad cop, good cop)이라는 패턴이 생각난다.

용의자를 심문할 때 착한 역할과 나쁜 역할의 경관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것을 뜻한다.

생긴 것만 봐서는 마동섭 쪽이 당연히 배드 캅일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외모로만 파악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오늘 모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파트를 나누기 위해서야. 앞으로 인턴들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서 한 달을 지내게 될 거다."

탁탁―

마동섭이 화이트보드 위에 사다리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A 파트, 김 교수님이랑 정 교수님 파트는 내가 맡게 된다. 그리고 B 파트, 황 교수님이랑 탈곡기…… 아니, 한 교수님 파트는 여기 송유주 선생님이 맡게 될 거야."

즉 쉽게 말해,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턴들이 2명 / 2명으로 나뉘게 된다는 뜻이다.

송유주 파트로 갈 것이냐, 마동섭 파트로 갈 것이냐…….

중요한 분기점이다.

어느 곳으로 가느냐에 따라 한 달 동안의 생활이 180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때 문득 연서가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송유주 선배님은 인턴들한테 꽤 엄격하다고 들었어요. 본인이 워낙 뛰어나니까 웬만한 인턴들은 성에 안 차서 그런지……. 그 대신 마동섭 선생님은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신대요.>

그렇다면 마동섭 파트로 가는 게 이득일까?

모르겠다.

사실 어디든 상관없다.

어차피 인턴은 경험치를 쌓는 기간이니, 양쪽 어디를 가든 배울 점이 있을 테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나는 옆자리를 슬쩍 바라보았다.

‘가급적 이놈이랑은 떨어져 있고 싶은데.’

류명인.

왠지 번거롭다.

괜히 얽히면 얽힐수록 귀찮아질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류명인이 슬쩍 속삭인다.

"저는 형이랑 같은 조 걸리면 좋겠네요."

좋겠냐?

나는 싫은데?

미안하지만 너랑 한 달 동안 붙어 지내고 싶진 않거든.

"자, 여기 토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타노스 중에 하나씩 골라 봐."

탁, 탁, 탁―

마동섭이 자석으로 된 캐릭터 얼굴을 화이트보드에 붙인다.

뭔가 안 어울리게 귀여운 소품들이네.

아니, 지금 귀엽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뭘 골라야 하지?

"형은 뭐 고를 거예요?"

류명인이 슬쩍 묻는다.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지만, 왠지 사사건건 나를 견제하는 것처럼 들린다.

자꾸 옆에서 속삭이는 게 귀찮아서 나는 적당히 대답하려 했다.

"나는……."

그때.

파앗―

갑자기 눈앞에 미래가 보였다.

* * *

째잭―

새소리가 들린다.

어스름한 새벽하늘이 눈앞에 보인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원 뒤편.

이곳은 병원 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흡연 공간이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만, 지금은 이른 새벽이라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헐렁한 의사 가운을 입은 여자 한 명이 고독하게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

"후우."

송유주는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뱉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감정 변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가라앉은 눈빛에는 착잡한 마음이 느껴졌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때, 옆에서 솥뚜껑만 한 손바닥 하나가 쑥 나타난다.

마동섭이다.

"이리 내놔."

"……."

"담배 끊었다며? 매일같이 폐암 환자들 폐 보고 있으면 담배 피울 생각이 쏙 들어간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막 불붙인 거야."

송유주가 작게 투덜거리며 담뱃갑과 라이터를 반납한다.

그녀의 눈가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단순히 육체적인 피곤함만이 아닌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인다.

마동섭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야기는 들었다. 너희 파트에서 일 났다며?"

"Hypoxic brain injury(뇌 손상)."

"어쩌다가?"

"하필이면 레지던트들이 전부 수술방에 들어가 있고 병동에 인턴들만 남았을 때 벌어진 일이라."

쯔읏.

송유주는 말하다 말고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나는 그 옆에서 투명인간이 된 채 이야기에 집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분위기로 미루어 볼 때, 환자가 잘못되는 일이 또 벌어지는 모양이다.

‘이놈의 병원은 정말 사건 사고가 끊이지를 않는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연국대병원에서는 하루에 수만 건의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특히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 폐 같은 장기의 병을 다루는 만큼 언제든지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송유주의 말은 이어진다.

"이래서 병동에 인턴만 있게 하면 안 되는 건데."

"너무 그러지 마. 걔도 나름대로 잘해 보려고 노력했을 거야."

마동섭이 위로하듯 말하자, 송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인턴의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어. 환자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다만?"

"의욕에 비해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지."

"그래. 아마 어떤 인턴을 갖다 놨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요약하자면…….

환자에게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

그런데 인턴의 미숙한 조치로 환자의 상태가 매우 나빠지게 된다.

‘우리 네 명 중에서 누가 어떤 조치를 했길래? 이번에도 범인 찾기를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동섭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어쩌면 유망주라고 주위에서 띄워 주니까 들떠서 실수했을 수도 있고."

"하긴."

뭐라고?

잠깐. 이거 혹시 내 얘기인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다.

‘맙소사. 인턴들 중에서 결정적인 범인이 나였어?’

유망주라는 단어로 미루어 볼 때 거의 확실하다.

내가 무언가 미숙한 조치를 하게 되는 모양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 사람들아? 제대로 얘기해 줘야 대비를 할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며 다급해하고 있을 때…….

휘익―

다음 순간, 나는 다른 공간으로 옮겨졌다.

여기는…….

술집 안이다.

중앙에 다트 기계가 보인다.

풍경이 익숙한 걸 보니, 아마도 예전에 페어웰 회식을 했던 곳인 모양이다.

시끌벅적한 주위를 둘러보니, 흉부외과 사람들의 얼굴이 몇몇 보인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지?

"후우……."

곧 나는 술집 입구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술이 잔뜩 취해서 얼굴이 빨개진 채 계단참에 걸터앉아 있다.

표정이 영 좋지 않다.

아마도, 환자를 뇌 손상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짓눌린 듯하다.

"이번 달은 결국 제가 이겼네요?"

류명인.

녀석이 으스대듯 다가와 말한다.

"저는 운 좋게 마동섭 선생님 파트에서 아무런 사고도 없었거든요. 아마 점수도 잘 받을 거 같아요."

꿈속의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어쩌면 취해서 듣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고.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차피 경쟁에도 운이 따르는 법이잖아요?"

류명인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게 첫날부터 캐릭터를 잘 골랐어야죠. 저처럼 스파이더맨을 고르든가요. 왜 하필 타노스를 골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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