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중환자실의 해병대(8)
"해결 방법이요?"
"그게 뭡니까?"
우리의 질문에, 차유리 간호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섬망 환자가 갑자기 극적으로 좋아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특히 가족들이랑 함께 있으면."
"가족이요?"
생각지 못한 포인트였다!
의외로 중요한 부분을 차유리가 제시한 듯하다.
그러자 변 선생이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에이, 난 또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만…… 그건 의학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잖아요."
변 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듣는다.
차유리의 말을 무시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마동섭 선생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섬망 치료에는 가족이 함께 있어 주는 것이 효과적이죠. 왜냐하면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하니까."
"그렇죠?"
"실제로 교과서에서도 섬망 치료법 중 하나로, 지지적 치료(supportive care)에 가족들을 포함시키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요."
"맞아요. 실제로 가족들이 옆에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더라구요!"
차유리가 당당히 말했다.
중환자실에서 3년간 수많은 섬망 환자를 돌봐 온 경험에서 나오는 주장이었다.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옆에서 태클을 걸던 변 선생은, 막상 교과서 이야기까지 나오자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환자분께 가족이 있던가요?"
"보호자가 있기는 한데 면회를 안 오더라구요. 사이가 안 좋은 건지……."
차유리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문득 환자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가족이라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얼굴 못 본 지 10년이 넘었어요.>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온 탓이지요…….>
"아들분이랑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자는 아들을 무척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구요."
"흐음……."
내 말에 두 사람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이것이 환자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일지도.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변 선생이 황당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아니, 설마 환자 가족관계에 끼어들 생각은 아니죠?"
"……."
"분위기가 왜 이래? 나만 이상한 거야? 지금 이 자리에서 나만 이상한 거냐고?"
변 선생이 이마를 짚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유리에게 물었다.
"혹시 보호자에게 연락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해 볼게요. 그래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만약 연락되면 저한테도 공유 좀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말은 마동섭 선생의 것이었다.
우리 셋은 고개를 끄덕인 뒤 흩어졌다.
"아니, 다들 왜 그래?"
혼자 소외된 채 남은 변 선생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 * *
잠시 후.
나는 스테이션에서 차유리를 기다리며, 어택중 할아버지 인터뷰 영상의 뒷부분을 보았다.
‘고엽제’.
나무를 고사시키는 제초제로, 말 그대로 독극물이다.
미군들은 베트남전 당시 게릴라들의 근거지를 제거하기 위해서 정글에 많은 고엽제를 살포했다.
이때 주로 사용했던 고엽제는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쳤다.
<고엽제 피해로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나요?>
인터뷰어가 묻는다.
그러자 어택중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전쟁에서 돌아온 뒤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죠…….>
할아버지는 잠시 추억에 잠긴다.
잠시나마 즐겁고 행복했던 한때를 회상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 평온한 표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제 몸에 점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더라구요. 이유 없이 살이 빠지더니…… 몸 곳곳이 이상해지고…… 급기야는 사지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죠.> ‘다이옥신’.
고엽제에 포함된 화학적 불순물의 이름이다.
이 고약한 물질은 청산가리의 10000배, 비소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가지고 있다.
체내에서 분해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각종 암과 신경계 장애를 일으킨다.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으니 일자리도 잃었죠. 전쟁터에서 제 몸에 그런 독을 가지고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졸지에 제 아내가 고생길에 올랐어요.>
할아버지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았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제 자식에게까지 장애를 물려주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 모든 걸 국가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걸렸어요.>
‘아들에게 물려줘선 안 될 것을 물려줬다고 표현했던 게 이거였구나…….’
신체장애.
다이옥신이 유발하는 장애는 2세에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쟁에 참전한 대가로 아들에게 장애를 물려주게 된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선한 쌤."
그때 차유리 간호사가 통화를 마치고 내게 다가왔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방금 보호자와 연락이 되긴 했는데…… 아버지 볼 생각 없다고 단호하게 전화를 끊더라구요."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꿈속에서 아들은 분명 ‘아버지를 평생 원망했다’고 했다.
그러니 병원에 찾아오지 않는 것이리라.
물론 그 마음을 내가 함부로 헤아릴 수는 없다.
모든 가정에는 남모를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어쨌든, 지금 환자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은 단 한 명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환자분 상태가 어떤지도 이야기하신 거죠?"
"예. 이야기는 해 봤는데 요지부동이에요. 더 이상 전화 붙잡고 있을 생각 없으니까 더 얘기하고 싶으면 직접 찾아와서 얘기하라고 화를 내던데요?"
아이고.
아무래도 성격이 보통이 아니신 모양이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차유리 간호사에게 말했다.
"제가 한 번만 더 연락해 보겠습니다."
"선생님이요?"
"여차하면 직접 찾아가 보려구요."
"예? 그렇게까지?"
차유리는 당황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오버이긴 하다.
보호자를 데려오기 위해 직접 찾아가는 의사가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도 고집을 꺾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니까.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고 환자가 죽는 것을 또 볼 생각은 없다.
"전화 한 번만 더 연결해 주세요."
"……어휴, 알겠어요. 선한 쌤도 정말 한 고집 하시네."
차유리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옆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변 선생은 나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야,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어차피 가 봤자 헛수고일 게 뻔하다."
"그래도 시도는 해 보고 싶습니다."
"너, 나랑 내기할래?"
변 선생은 의자를 내 쪽으로 돌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너 아무리 그래 봤자 아무것도 안 바뀐다. 둘 중에 누구 말이 맞는지 볼까? 지는 놈이 머리 빡빡 깎기?"
빡빡 깎기?
초딩도 아니고…….
웬일로 진지한가 했더니만.
나는 선선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죠."
"응?"
"삭발도 한 번쯤 해 보고 싶었어요. 곧 여름인데 시원하고 좋겠네요."
그러자 옆에서 차유리가 픽 웃었다.
변 선생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으휴, 미친놈. 나는 이제 모르겠다, 네 맘대로 해라."
* * *
"그래. 내가 미쳤지, 미쳤어."
해가 지는 저녁 시간.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허름한 골목의 계단을 올랐다.
마치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가파른 골목이다.
황금 같은 오프 시간에 이게 뭔 짓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휴우."
아직 여름이 되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날이 더워지고 있다.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차오른다.
나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고 언덕을 올랐다.
문득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미줄처럼 얽힌 전깃줄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여기는 아니고…… 여기도 아니고……."
나는 허름한 골목 사이사이로 간판들을 찾아 헤맸다.
분명 이 근처일 것 같은데…….
곧 나는 음식점 간판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요새 찾아보기 힘든 옛날식 통닭집이었다.
"어서 오세요."
짤랑―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한 40대 남자가 나를 맞았다.
처음 만나는 사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낯이 익었다.
분명 꿈속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기분 이상하네. 꿈에서 보았던 사람을 현실에서 이렇게 보게 되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전화로 연락드렸던 의사 신선한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살짝 놀란다.
그러고는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의사들이 생각보다 한가하신가 봐요?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시고……."
‘오랬다고 진짜 오냐?’ 딱 그런 말투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긴 하다.
신씨 가문 특유의 고집인지 뭔지…… 나도 가끔은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
내 명함을 받아 본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식사는 자셨습니까?"
"아뇨. 병원 일 끝나고 바로 오는 길이라서요."
"그럼 오신 김에 밥이나 먹고 가세요."
스윽―
남자는 몸을 일으키며 비닐장갑을 꼈다.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
다리도 약간 불편해하는 것 같다.
분명 고엽제 후유증이 2세에 남긴 장애일 것이다.
나는 내색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나는 그가 내준 음식을 보며 미소 짓고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요새 닭 이렇게 튀겨 주는 곳 많지 않은데."
"장사 잘 안돼요."
"왜요? 너무 맛있어 보이는데."
"글쎄요. 장애인이 하는 집이라 꺼림칙한가 봐요."
남자가 픽 웃으며 말했다.
어둡고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나는 뭐라 대답할지 잠시 고민했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제가 이런 말 하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둥, 긍정적으로 살라는 둥 위로들을 하더라구요. 웃기죠? 자기들이 장애인으로 살아 본 것도 아니면서."
"……."
"드시고 계세요. 입에 맞으시려나 모르겠네."
남자는 퉁명스레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가 밥을 먹는 동안 가게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후우―
연기가 길게 하늘로 올라간다.
마치 남자의 심란한 기분을 표현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잠시 후, 남자는 가게에 들어와 나에게 물었다.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말투다.
나는 먹던 것을 정리한 뒤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말했다.
"어택중 할아버지께서 몸이 많이 좋지 않으십니다."
"알고 있습니다. 폐암이시잖아요."
남자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를 뭐 하러 또 하냐는 듯한 말투다.
"그래서…… 뭐요? 자식 된 도리로 어떻게 코빼기도 안 비칠 수 있냐고 비난이라도 하러 오신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환자와 보호자의 가족관계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의사로서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알려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예?"
"환자분, 곧 돌아가십니다."
흠칫―
내 말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아마 병원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의료진이 보호자에게 환자의 미래를 확정 짓듯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이미 미래를 보았으니까.
내 말을 듣고 난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