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중환자실의 해병대(7)
마동섭.
그는 흉부외과 3년 차 레지던트다.
덩치 큰 야생 곰 같은 외모와는 달리, 보기보다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가 흉부외과 의사가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친구 따라 강남 온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
당시에 가장 친했던 두 명의 친구인 송유주와 여봉철.
그중 송유주를 따라 흉부외과에 지원했다.
물론 비인기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환자를 살리는 보람이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긋지긋한 인력난!
흉부외과는 언제나 손이 부족했다.
어쩌다가 신입 레지던트들이 들어오더라도 어리바리한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개중에 멀쩡한 놈들도 있긴 했지만, 잘 키워 보려 마음을 먹으면 1년이 채 되지 않아 도망을 갔다.
조선시대 노비 잡듯이 추노할 수도 없고…….
그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마동섭은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쓸 만한 녀석 좀 흉부외과로 보내 주십시오~ 끝까지 붙어 있을 놈으로!’
마음 같아서는 물 떠 놓고 고사라도 지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소원을 들어준 것일까?
평소에 눈여겨보던 인턴 신선한이 흉부외과 병동으로 찾아온 것이다.
마동섭은 희열을 느꼈다.
옳다구나!
이놈을 잘 꼬셔 보자!
그래서 의학적인 내용들을 매우 친절하게 알려 주기도 했고, 그 와중에 은근슬쩍 멋있는 척 어필도 했다.
"앰부는 이렇게……."
"예."
마동섭은 신선한에게 앰부를 넘겨주며 생각했다.
여기에서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도삽관)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한 번 더 어필해 보자.
흉부외과 의사의 멋진 모습을!
"친구야. 인투베이션 해 봤어?"
"아뇨, 아직."
"언젠가는 하게 될 테니까 잘 봐 둬."
"예."
그렇게 신선한이 보는 앞에서 마동섭은 인투베이션을 시작했다.
물론 아주 기초적인 술기이기 때문에 자랑할 만한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인투베이션을 신속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삽관을 하는 도중에도 환자의 산소 수치가 실시간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면, 모든 과정을 중단하고 다시 산소를 공급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튜브(E―tube)."
곧 마동섭의 손에 튜브가 쥐어지고, 그는 튜브를 환자의 기도에 삽입하려 하였다.
그런데…….
"쓰읍."
마동섭이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갸우뚱한다.
환자의 목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래가 생각보다 많이 끼어 있는 탓이다.
튜브를 삽입하기 전에 석션(suction, 액체 흡입)이 필요할 것 같았다.
"여기 석……."
마동섭이 간호사에게 말하려고 할 때, 그의 시야 한쪽 편에 석션이 쑥 하고 들어왔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온 어시스트였다.
마동섭은 석션을 움켜쥐며 말했다.
"역시 우리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이 눈치가 빠르시구만. 내 눈빛만 보고 석션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았……."
마동섭은 말을 하다 말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석션을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신선한이었기 때문이다.
어쭈?
마동섭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 센스 보소. 내가 이거 필요하다고 말할 건지 어떻게 알았지……?’
그냥 우연히 들고 있었던 건가?
마동섭은 곧 생각을 지우고 다시 환자의 입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쉬이익―
석션을 하고 난 뒤, 마동섭은 오른손에 다시 튜브를 들고 환자의 목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때, 다시 한번 신선한의 손이 마동섭의 시야에 다가왔다.
그러더니 신선한은 오른손으로 환자의 갑상연골(thyroid cartilage)을 눌러 준다.
"……!"
마동섭이 재차 놀랐다.
시야가 좋아지면서 튜브가 들어가야 할 성대 주름(vocal fold)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 것이다.
시야가 트이다 보니, 인투베이션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놈 뭐야?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보통 인턴이라면 레지던트가 시키는 일만 소화하기도 바쁘다.
하지만 신선한은 달랐다.
이제 막 3개월이 된 인턴이 이렇게 눈치가 빠르다니?
마치 숙련된 레지던트와 함께 일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렇게 마동섭은 신선한과 합을 이루어 기도삽관을 매끄럽게 마쳤다.
다행히도 환자의 산소 수치는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금 BURP 좋았다! 어디서 잘 배웠나 봐? 이전에 수술과를 돌았었나?"
마동섭이 감탄하며 말했다.
BURP란, 기도삽관 시에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환자의 갑상연골을 Backward(뒤로), Upward(위로), Rightward(오른쪽으로) 누르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시술자는 기도삽관을 훨씬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아뇨, 학생 때 배웠던 걸 혼자 시뮬레이션만 해 보고 환자한테 적용한 건 처음입니다."
"처음이라고?"
"예."
신선한은 고개를 끄덕인 뒤 대답했다.
"해부학적으로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더 편하실까 생각하면서 했는데…… 혹시 제가 누른 게 도움이 되셨을까 모르겠습니다."
마동석은 감탄하며 신선한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호감이 차오른다.
마치 대장금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한상궁의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드디어 흉부외과에서 원하던 쓸 만한 인재를 찾은 기분이었다.
‘이거이거…… 볼수록 탐나는 놈이잖아?’
물론 신선한이 대단한 재주를 보여 준 것은 아니다.
특히 인턴 때부터 천재였던 송유주에 비하면, 신선한은 어찌 보면 평범한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본적인 센스가 좋다.
순간적으로 자기의 할 일을 적절히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은 이미 평균적인 인턴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게다가 타고난 성실성까지 갖추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이놈은 다른 과 못 준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동섭은 선한을 위아래로 쳐다보고 씩 웃었다.
왠지 모를 탐욕스러운(?) 시선에 오싹함을 느끼는 선한이었다.
그때 뒤늦게 흉부외과 인턴들이 후다닥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벌써 다 끝났다. 자식들아."
마동섭이 인턴들을 찌릿 째려보며 말한다.
그러자 인턴들은 흠칫하고 겁을 먹었다.
특유의 험악한 외모 때문에, 그냥 평범하게 말을 해도 조폭처럼 보이는 마동섭이었다.
반면, 마동섭은 신선한에게 180도 달라진 다정한 표정을 짓는다.
"그나저나 친구야. 우리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또 외과 중환자실로 가야 될 것 같네. 친구가 이송하는 것 좀 도와줄까?"
"네, 어차피 내려가면 제가 봐야 하는 환자가 되니까요."
"그래. 수고 좀 해 줘~"
마동섭이 신선한의 어깨를 감싸며 살갑게 말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인턴들은 떨떠름하게 서로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갑자기 부드럽게 변한 마동섭의 말투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다.
* * *
잠시 후.
나는 마동섭 선생과 함께 환자를 데리고 외과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환자 또 데리고 왔어??"
변규남이 좌절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간호사들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머쓱히 말했다.
"저쪽 중환자실에 베드가 없다고 해서요."
"너, 이 씨…… 솔직히 말해. 너 흉부외과에서 보낸 스파이냐? 우리한테 왜 이러는 거야?"
변 선생이 내 옷깃을 잡고 원망하듯 말한다.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는 눈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어택중 환자가 있을 때 섬망 때문에 그 고생들을 했는데 어떻게 반가워할 수 있을까?
겨우 내보냈던 시한폭탄이 다시 굴러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아,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저 환자를 여기로 또 데리고 오시면 어떡해요!"
"흉부외과 중환자실 베드가 가득 차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양해 좀 부탁드릴게요."
오늘도 변 선생과 마동섭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 슥 끼어들며 물었다.
"저, 선생님들. 궁금한 게 있는데…… 만에 하나 말입니다."
나는 운을 띄운 뒤 조심스레 물었다.
"환자가 만약 스스로 인공호흡기를 뽑는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뭐?"
"야.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두 선생이 동시에 질겁을 한다.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한 표정들이다.
마동섭이 턱을 쓸더니 말했다.
"인공호흡기를 뽑는다는 건 폐와 몸 전체에 엄청난 손상을 주지. 흉관 뽑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참사가 일어날 거야."
"역시 그렇겠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지."
돌겠네.
나는 초조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대로라면, 어택중 환자는 스스로 산소호흡기를 뽑고 중태에 빠질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 상황만 막으면 환자가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언제 뽑을지 모른다는 거야.’
환자의 섬망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당장 오늘 밤일 수도, 내일 밤일 수도…….
혹은 몇 주가 지난 뒤일 수도 있다.
‘방법을 생각해 보자.’
만약 차유리 선생에게 감시를 부탁한다면?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중환자실이라도 환자에게 24시간 내내 눈을 박고 있을 수는 없다.
간호사들은 기본적으로 데이(D), 이브닝(E), 나잇(N) 3교대로 스케줄을 짜서 움직인다.
즉 간호사 한 명이 최대한 커버할 수 있는 시간은 8시간이라는 뜻이다.
"혹시 24시간 내내 억제대를 채우는 방법도 있나요?"
"뭐, 환자가 움직임이 심하면 억제대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긴 하지."
마동섭이 말했다.
하지만 변 선생이 덧붙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뽑을 환자는 뽑더라고. 심지어 팔다리 다 묶어 놨는데 온몸을 비틀어서 빼는 환자도 봤거든."
"그런가요?"
"야, 생각해 봐라. 옷차림이 조금 불편하기만 해도 못 참는 게 사람인데, 목구멍에 관이 통째로 들어와 있는 거잖아. 너라면 안 빼고 싶겠냐?"
변 선생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마동섭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정신인 환자라면 빼지 않겠지만, 섬망 도중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결국 섬망을 완화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위험 요소가 제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질환이 해결되지 않으면 섬망이 나아지지 않고…….
섬망 때문에 질환이 더 악화되고…….
계속해서 악순환이다.
이 연결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야, 뭘 그렇게 고민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변 선생이 나를 툭 치며 말한다.
"넌 인턴이 뭐 그렇게 생각이 많냐? 어차피 섬망은 해결 방법이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빨리 대응하는 것 정도야."
섬망은 애초에 뇌과학자들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증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약물로 재우거나, 침대에 묶어 두고 재우면서 증상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때 차유리 간호사가 슬쩍 와서 말한다.
"그런데…… 아주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해결 방법?
변 선생과 마동섭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차유리가 말하는 방법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 세 명의 의사들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