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중환자실의 해병대(3)
시트 여기저기에 피가 튄 흔적이 선명했다.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때 누군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윤성아. 어떻게 된 거야?"
인턴 동기 윤성이가 코에 휴지를 꽂고 있다.
코피라도 흘린 걸까?
그뿐만 아니라, 눈이 퀭한 것이 뭔가에 시달린 듯한 표정이다.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야, 말도 마라. 새벽에 환자가 라인 뽑으려고 난리 치는 바람에……."
윤성이가 울먹이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밤중에 환자의 섬망이 심해진 모양이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몸에 연결된 관들을 뽑으려고 발버둥을 쳤다고 한다.
실제로 라인을 뽑으려는 행위는 섬망 도중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갑자기 무슨 총을 꺼내야 된다면서 체스트 튜브(chest tube)를 확 뽑잖아."
"흉관을 뽑았다고?"
"그래. 튜브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가슴에서도 피가 흐르고. 지금껏 인턴생활 중에 최악의 순간이었다."
"아, 그래서 핏자국이……."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트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구나!
가슴에 꽂힌 관을 스스로 뽑았으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게다가 윤성이의 말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무슨 산으로 쳐들어가야 된다면서 자기를 엄호해 달라고 하는 거야…… 한 손에는 체스트 튜브를 총처럼 들고 말야! 내가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라인이 다 뽑혀서 주사 넣을 곳도 없어서, 할로페리돌(haloporidol, 항정신성 약물) 근주사 들어가니까 좀 진정되더라. 그것도 내가 할아버지 꽉 잡고 있는 동안 옆에 간호사 선생님이 겨우 주사했다, 야."
윤성이는 진저리를 쳤다.
간밤에 환자의 증상이 훨씬 더 심해진 모양이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섬망이라는 것이 한 번 발생하면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네 코는 왜 그래?"
"맞았어."
"환자한테 얻어맞았다고?"
"그래, 환자가 못 움직이게 잡으려다가 주먹에 맞아서 이렇게 됐다니까. 노인네가 얼마나 힘이 세던지."
아이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섬망 환자는 간호사나 보호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나중에 들어 보면, ‘간호사들이 나를 죽이려는 줄 알았다’며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기도 한다.
그만큼 환각이나 망상증이 심해지는 것이다.
"너도 당직 설 때 조심해라. 참전 용사라 그런지 펀치가 아주 매서우시더라."
그렇게 말하며 동기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이트 근무를 섰던 간호사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베드로 다가가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쉬익― 쉬익―
할아버지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물론 폐암 수술을 받은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기에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간밤에 그렇게 광인처럼 난리를 쳤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정말 특이한 환자네.’
나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할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병원은 전쟁터로 보이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섬망 증세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오랜만에 의욕 생기네.’
나는 어느새 도전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어택중 할아버지는 새로운 자극이었다.
의사로서 이 환자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돕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 *
곧 면회 시간이 다가온다.
각 베드마다 보호자들이 환자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어택중 할아버지에게는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는다.
나는 스테이션에 앉아 있는 차유리 간호사에게 물었다.
"어택중 할아버지는 보호자 면회 없으세요?"
"그러게요. 아무도 없네요."
차유리 간호사의 대답에, 문득 익숙한 기분이 든다.
김혜정 할머니 생각이 나서 그런 것일까?
중환자실에서 홀로 누워 있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제는 전우회 분께서 다녀가셨어요."
"아, 그러고 보니 해병대 출신이라고 하셨죠?"
"네. 폐암도 아마 참전하셨을 때 후유증 때문이라는 것 같아요."
전쟁 후유증이라…….
나는 차트를 열어 보았다.
그곳에는 월남전 참전에 대한 이력이 간략하게 적혀 있다.
하지만 고작 한두 줄의 내용만으로는 환자를 제대로 알기 힘들다.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잠깐. 어쩌면 차트에 없는 내용들을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을지도?’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검색 사이트를 열어 몇 개의 키워드를 입력했다.
‘월남전, 해병대, 어택중.’
곧 나는 한 동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피해를 입게 된 사람들을 취재한 영상이었다.
무려 10년 이상이 된 영상이기에 화질은 무척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봐줄 만은 했다.
나는 이어폰을 꼈다.
동영상을 넘기며 빠르게 재생하자, 곧 원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월남전 소대장으로 투입되셨다구요?>
인터뷰어의 질문.
곧 화면 속의 어택중 할아버지가 대답한다.
지금보다 약간 살이 있고, 조금은 더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다.
<예, 맞습니다. 월남에 투입돼서 처음 맡았던 작전이 수색 작전이었어요.>
<부담스러우셨겠네요.>
<눈앞이 깜깜했지요. 저는 해병학교를 갓 졸업한 햇병아리 장교일 뿐이었는데…… 당장 내 손에 소대원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손이 벌벌 떨렸지요.>
곧 화면에 흑백 자료 화면이 재생된다.
철모를 쓴 병사들이 열을 맞추어 움직이고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라고 해야 할까?
그중 한 명이 지금 내 앞에 중환자로 입원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다행히 첫 달에는 별일이 없었어요.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할까. 소대원들도 내 말을 잘 따라 주었고, 작전도 물 흐르듯이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문득 말을 멈추고, 잠시 후 느릿하게 말을 잇기 시작한다.
<그런데 6개월쯤 됐을까. 우리 소대원 몇 명이 죽고 말았어요…… 김철우 일병이라고. 제가 무척 아끼던 친구가 있었는데 얼굴에 구멍이 나서 돌아왔어요. 수색 도중에 저격을 당한 거였죠. 엄마 손 편지를 품에 넣고 다니던 어린 친구였는데…….>
나는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경험자가 말해 주는 전쟁 이야기는, 책에서 읽는 것보다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충격이 크셨겠어요.>
<그래도 받아들여야 했죠. 전쟁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적군들도 아마 우리 때문에 그런 일을 많이 겪었을 겁니다.>
슥슥.
인터뷰를 계속하던 할아버지가 손등으로 눈을 문댄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모양이었다.
고목나무처럼 메마른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진 모습이다.
<하여간 남들은 전쟁을 훈장처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끔찍한 기억으로만 남았어요. 아직도 그날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돼요…….>
전쟁의 참혹함.
실제로 겪은 사람의 입장을 들어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나는 어느새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외과 중환자실 면회 마치겠습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곧 간호사들이 각 환자 보호자들에게 가서 면회 시간이 종료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인턴 쌤, 보호자들 나가고 나면 7번 베드 환자 엘튜브(L―tube, 비위관) 좀 넣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동영상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동안 영상 속에서 보았던 할아버지의 눈물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그날 밤.
우려했던 일이 다시 시작됐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또다시 환자의 섬망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우리 소대원들을 찾으러 가야 해!"
할아버지가 외친다.
하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다.
마치 지금 이곳이 아니라, 먼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듯하다.
"할아버지, 여기 전쟁터 아니고 병원이에요!"
"이거 놔, 가야 돼!"
홰액!
갑자기 할아버지가 옆에서 말리려는 간호사를 세게 밀치고, 베드에서 내려오려 한다.
간호사들이 기겁했다.
"아우― 빨리 주치의 선생님한테 누가 콜해 주세요. 선한 쌤! 여기 와서 좀 말려 봐요!!"
"네!"
와락!
나는 환자에게 달려들었다.
힘으로 눌러야 되나?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깡마른 몸을 거칠게 다루기가 조심스러운데…….
하지만 잠시 후, 나는 내 안일한 생각을 후회하게 되었다.
"놔라, 이놈들!"
퍼억!
할아버지의 주먹이 내 얼굴을 스친다.
으악, 아파!
이 나갈 뻔했네.
도대체 어디서 저런 힘이 샘솟는 것일까?
빼빼 마른 몸에도 불구하고, 마치 맹호처럼 사나운 모습이다.
이것이 참전 용사의 힘인가?
"선배님, 좀 도와주세요!"
나는 환자와 씨름하며, 마침 지나가던 변규남 선생에게 외쳤다.
그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힐끗 보며 말했다.
"흉부외과 콜했어?"
"네!"
"그럼 로라제팜(lorazepam)이랑 할돌(haloperidol) 미리 준비해 놓고 기다려. 자기네 환자니까 자기네들이 알아서 하겠지."
아오, 저 성의 없는 인간!
곧 간호사들이 수면 진정제를 준비한다.
그 와중에도 환자는 조금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할아버지, 잠시만 가만히 계세요!"
하지만 그럴수록 할아버지는 더욱 날뛴다.
계속 자신의 흉관을 잡아 뽑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우리와 힘 싸움을 벌인다.
보다 못한 간호사가 변 선생에게 외친다.
"보고만 계시지 말고, 변 선생님도 일단 손 좀 보태 주세요!"
"에이, 귀찮게시리……."
변 선생은 느릿느릿 다가와 반대편 팔을 누르려 했다.
그러다가, 발버둥 치는 환자의 발 차기에 다리 사이를 가격당한다.
퍼억!
"으억……."
변 선생이 숨을 삼킨다.
털썩.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동안에도 할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손에 닿는 모든 것에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큰일이다!
만약 오늘도 흉관이 뽑힌다면 환자의 수술 후 예후에도 분명히 악영향이 있을 것이다.
어쩌지?
환자를 잠시라도 진정시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때, 갑자기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혹시 어쩌면 이 방법이 효과가 있지 않을까?
나는 비장하게 외쳤다.
"소대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
순간 정적이 감돈다.
변 선생과 간호사들이 황당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차유리도 눈을 깜박거린다.
‘뭐 하세요?’ 하는 듯한 눈빛들이다.
나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내가 무슨 생각이었지? 병원에서 전쟁놀이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얼굴에 생기를 띠더니, 나를 반갑게 바라보며 말한다.
"자네는…… 김 일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