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아이 씨 유(8)
병원에서 10분 거리의 야외 포차.
사람들이 원형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해 질 무렵의 고즈넉한 길거리 풍경이 내다보이는 곳이다.
"병원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네요."
"몰랐죠? 여기 닭발이 진짜 맛있어요!"
차유리 간호사와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5월의 선선한 밤공기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고단한 하루를 마친 직장인들이 저마다 회포를 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실 여기는 병원 사람들이 안 오는 곳이거든요. 신경 쓸 사람 없고 좋아요."
"그러면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라는 게……."
"당연히 먹는 거죠!"
차유리가 발랄하게 말한다.
대체 얼마나 맛집이길래?
기대감에 가득 찬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타악―
곧 우리 테이블에 닭발이 등장했다.
시뻘건 색깔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비주얼이다.
"꺄악, 맛있겠다~!"
차유리는 마치 놀이공원에 온 어린아이처럼 신나는 표정으로 손에 비닐장갑을 꼈다.
나도 장갑을 끼고 닭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입에 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윽."
"어때요?"
"맛있기는 한데……."
……매워!
엄청나게 자극적인 맛이다.
이걸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 주인아주머니가 우리를 암살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닐까?
그런데 차유리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듯이 닭발을 오독오독 입 안에서 굴리며 씹어 먹는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내가 그 앞에서 맛없게 먹기라도 하면 대역죄인이 될 것 같다.
"여기 단골이세요?"
"신규 간호사 때는 선임들한테 많이 혼나거든요. 그때부터 속상한 일 있으면 여기 와서 혼자 닭발에 소주 마시고 그랬어요."
크으~
그렇게 말하며 소주를 들이켠다.
하긴, 자극적인 맛이 소주 안주로는 제격이긴 하지.
나도 그녀를 따라 술 한 잔을 삼켰다.
크으.
소주가 유난히 달게 느껴지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국물이랑 같이 먹어. 속 배려."
"고맙습니다 이모!"
주인아주머니가 무심하게 서비스를 툭 던져 주고 지나간다.
차유리가 활짝 웃는다.
아마 단골이라 서로 얼굴도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하여간 붙임성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그러고 보니 차유리 선생님은 간호사생활 하신 지 몇 년이나 되셨어요? 저는 차유리 선생님 나이도 모르네요."
"제 나이요?"
차유리가 히죽 웃더니 갑자기 닭발을 들어 올린다.
그러더니 닭발의 발가락 세 개를 차례로 세워서 나에게 보여 준다.
"짜잔. 서른입니다."
웃어 버렸다.
참신한 방법인데?
자기 나이를 저렇게 알려 주는 사람은 처음 봤다.
"서른이요?"
"저 보기보다 나이 많아요! 몰랐죠?"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연국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한 지는 3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적당히 연차가 되어, 올해부터 프리셉터(preceptor,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고 한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죠? 그러고 보면 조상님들이 참 정확해.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 딱 3년 걸리거든요."
"중환자실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왜 안 힘들겠어요."
차유리는 픽 웃었다.
당연히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선호하는 부서와 기피하는 부서가 있다.
그중에서 <중환자실>은,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그만큼 힘든 곳이라는 뜻이다.
신규 간호사의 비율은 높은 반면, 숙련된 베테랑 간호사들의 비율이 낮아서 인력난도 심하다.
병원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중환자실의 애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는 선한 쌤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닐 것 같은데?"
"저요?"
"TV 인터뷰에서 다 봤어요. 서저리(surgery, 외과) 쪽 가고 싶다면서요? 인턴이면 아직 생각할 시간이 많으실 텐데, 굳이 그런 가시밭길을 가시려고요?"
……듣고 보니 그렇네.
생각해 보니 내가 가려고 하는 길도 만만치 않게 힘든 길이잖아?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고 해야 할까.
꼴깍―
차유리는 두 번째 술잔을 삼키더니 히죽 웃으며 말한다.
"뭐, 그래도 선한 쌤은 괜찮은 외과의사가 될 것 같긴 해요."
"빈말이라도 고맙습니다."
"빈말 아닌데? 수처하시는 거 보면 알겠던데요."
수처(suture, 봉합)?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수처라고는 딱 한 번 했다.
김혜정 할머니가 사망한 후에 간단히 해 드렸던 것밖에 없었는데…….
"간호사들은 옆에서 잠깐만 봐도 딱 안답니다. 손이 좋은 의사인지 아닌지."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다.
내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똑같은 이야기를 간호사들에게 연달아 듣는 걸 보니, 아마도 빈말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
"이미 사망한 환자분한테…… 그렇게 정성 들여 봉합하는 인턴 선생님은 처음 봤거든요."
차유리 간호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애틋해진다.
김혜정 할머니를 회상하는 것인지, 눈가가 촉촉해진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나야 할머니를 열흘 동안 보았지만, 그녀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을 함께 있었으니까.
짧지만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나도 잠시 코끝이 시큰해져, 말없이 그녀의 소주잔을 채워 주었다.
"생각해 보니 차유리 선생님도 힘드셨겠네요."
"당연하죠. 평소에는 억지로 밝은 척 웃는 거예요. 안 그럼 못 버텨요."
"……."
"몸이 힘든 건 견딜 만해요. 어딜 가나 간호 업무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환자들 죽는 거 옆에서 보는 건, 가끔 힘들 때가 있더라구요."
차유리 선생은 내가 채워 준 소주잔을 들고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왠지 슬슬 혀가 꼬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험한 꼴을 봐 가면서 일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게 우리 일인걸."
차유리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 말이 맞다.
이게 우리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환자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중 몇몇은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나는 익숙해져야 한다.
언젠가는 그들의 죽음에 초연해질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이고, 이 아가씨 또 죽었네."
"?"
나는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꾸벅꾸벅―
어느새 차유리 간호사는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뭐야, 겨우 세 잔밖에 안 마셨는데?
"하여간 술도 못하는 아가씨가 속상한 일만 있으면 여기 와서 이런대. 병원 일이 힘들기는 힘든가벼."
"평소에도 늘 이러던가요?"
"어휴, 말도 말어. 그래도 한 30분 있으면 깨더라고."
주인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곯아떨어진 차유리의 고개를 테이블 위에 눕히더니,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런데 총각은 애인인가? 이 아가씨가 남자하고 여기 오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디."
그렇게 물어보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음흉하다.
뭔가 대단한 오해를 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아닙니다. 직장 동료예요."
"그랴?"
"네."
나의 단호한 대답에, 주인아주머니는 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다셨다.
"쩝. 아가씨가 드디어 임자 찾았나 했더니만…… 하여간에 술 다 깨면 적당히 일으켜서 집에 보내 부러."
"그럴게요."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께 어디 이상한 곳 데려갈 생각 하덜 말고."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찌릿하고 쳐다보았다.
안 합니다, 안 해요.
나는 코트를 벗어 잠든 차유리의 등에 덮어 주었다.
그리고 닭발 하나를 더 뜯었다.
이거 먹다 보니 맛있네.
은근히 중독적이다.
입 안의 혀가 ‘저한테 왜 이러세요.’ 하고 울부짖는 느낌이지만, 확실히 매운 걸 먹으니 스트레스가 풀린다.
"어? 비 온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투둑, 투둑―
빗방울들이 땅을 때린다.
곧 포차 안은 빗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꽃길이 펼쳐진 천국으로 가셨을 김혜정 할머니를 생각하며 소주잔을 채웠다.
그렇게 ICU(중환자실)에서의 고단한 하루가 저물어 갔다.
닭발의 매운맛과 소주의 끝맛처럼, 얼얼하고 씁쓸한 감정으로 기억될 날들을 뒤로한 채.
#중환자실의 해병대(1)
그날 이후, 나는 두 번의 미래를 더 보았다.
<두 번째 환자>는 폐동맥색전증 환자였다.
50대 남자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으면서 ICU로 들어오는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꿈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너무 제한적이었다.
얼핏 보인 얼굴만으로는 이 큰 병원에서 꿈속의 남자를 찾아낼 수 없었다.
결국 환자는 에크모 삽입에도 불구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고 며칠 뒤 사망하였다.
<세 번째 환자>는 급성 바이러스 폐렴 환자였다.
7살의 너무나도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내가 당직을 서던 날, 곰 인형을 끌어안고 울면서 소아중환자실로 전실되었던 아이.
2일 뒤 다시 당직을 설 때는 이미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환아는 사망하였고, 그날 부모의 통곡에 중환자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 * *
그렇게 몇 명의 환자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뒤.
나는 축 늘어진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힘드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힘들다.
알고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니 무력감이 든다.
마치 주먹도 못 내밀어 보고 링 위에 뻗어 버린 권투 선수가 된 기분이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야 되나?
그럴 리가!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몸을 일으켰다.
오히려 오기가 생긴다.
‘두고 봐라. 어떻게든 다음 환자는 살릴 테니까!’
그렇게 나의 중환자실 인턴생활도 어느덧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외과 중환자실인데요. 오늘 수술하신 분인데 우징(woozing, 체액이 흘러나옴)되어서 드레싱 다시 해야 하는 분이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날은 나의 당직 날이었고, 늦은 식사를 하고 인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콜폰이 울렸다.
<70/M 어택중>
성함이 특이한 환자분이시네.
폐암 수술을 마친 70세 남자 노인이었다.
나는 환자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좌측에 수술하신 부위 소독 다시 해 드리려고 해요."
"위생병인가? 여기 상처 좀 봐주게."
"……네?"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가장 특이한 환자 중 한 명을 만나고 있다는 것을.
‘위생병이라니?’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게다가 위생병은 의무병의 옛날식 표현 아닌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음 일들이 쌓여 있었기에 어서 소독을 마치려고 하였다.
"환자분, 소독 시작할게요."
나는 기존에 덮여 있던 거즈를 떼어 내고 포비돈(povidone, 소독약)으로 체스트 튜브(chest tube, 흉관) 주위를 소독했다.
그런데…… 환자의 눈빛이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게슴츠레 뜬 눈꺼풀 아래, 영롱하게 빛나는 눈빛이 보인다.
그 눈빛은 짐승처럼 살기를 띠고 있다.
왜 이러시지?
"환자분, 괜찮으세요?"
"전방 주시 중, 이상 무!"
"……소독 끝났습니다. 저 가 볼게요."
"우측 참호를 우회해서 가도록 하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지?
전쟁터에 나온 군인 같기도 하고…….
나는 약간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바로 옆 환자를 케어하고 있던 차유리 간호사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아이고, 그분이 오시는 것 같네……."
"그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