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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40화 (40/241)

#40 아이 씨 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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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Resuscitation.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불필요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동의를 받는 것을 말한다.

"보호자들이랑 유선상으로 이미 얘기 다 된 거야."

삑―

변 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모니터의 알람을 껐다.

그러자 요란히 울리던 알람 소리가 일제히 멎고, 거짓말처럼 고요한 정적만이 중환자실에 감돌았다.

"……."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그제서야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중환자실에서, 나 외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간호사들도 내 시선을 외면하고 있다.

‘그럼…… 이대로 환자가 죽어 가는 걸 지켜봐야 한다고?’

김혜정 할머니는 서서히 잿빛으로 변해 간다.

심장 박동수는 서서히 느려지고, 20대의 박동으로 한참의 시간이 지난다.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할머니의 영혼은 아직 이 근처에 있을까…….

심장은 이제 기능을 한다기보다는 꿈틀대고 있을 뿐이다.

"선한아. 사람은 누구나 죽어. 누구도 그건 거역할 수 없어. 지금 암이 퍼져 있는 김혜정 할머니에게 CPR(심폐소생술)은 가슴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줄 뿐이야."

변 선생의 말이 맞다.

DNR은 단순히 치료를 포기하겠다는 뜻만이 아니다.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 주며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편하게 보내 드린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래도 무언가, 무언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나는 눈앞에서 죽어 가는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선한 선생님…… 이제 김혜정 할머니 보내 드려야 돼요."

차유리 간호사가 다가와 말한다.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베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잠시 후, 보호자인 아들과 딸 2명이 차례로 도착했다.

이미 오는 길에 눈물을 한참 흘린 듯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다들 생계가 있으니 오랫동안 면회를 오지 못했던 모양이다.

커튼을 치고 안으로 들어가, 보호자들은 할머니를 잡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이제 아프지 마!"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중환자실에 울려 퍼진다.

부모님의 죽음 앞에 어느 누가 저렇게 울지 않을까…….

바깥에서 듣던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천장을 쳐다본다.

곧 할머니의 심장은 움직임을 멈추고, 모니터의 ECG(심전도)는 아무 파형이 나오지 않는 일직선이 된다.

"김혜정 환자, 오전 3시 20분 사망 선언하겠습니다."

변규남 선생은 사망 선언을 했다.

보호자들은 한 번 더 크게 오열한다.

간호사들도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70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함께 지낸 사이니만큼, 가족처럼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

나는 그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분할 뿐이다.

환자의 죽음을 미리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니…….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은 처음 느껴 본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유리 간호사가 보호자들에게 다가간다.

"보호자분들…… 저희가 환자분한테 연결되어 있는 여러 의료용 기구들 제거하고 다시 뵐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잠시만 나가 계시다가 들어오실 수 있을까요?"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건네는 차유리 간호사의 말에 능숙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보호자들이 잠시 퇴장하자 나에게 말했다.

"선한 선생님, 여기 라인 리무벌(removal, 제거)하고, 수처(suture, 봉합)해 주시겠어요?"

"예."

"선한아. 괜찮냐?"

"괜찮습니다."

변 선생의 물음에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김혜정 환자는 사망했다.

이제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

"꿰매져 있는 거 잘라 내고, 환자한테 들어가 있는 C―line, CRRT line 제거하면 돼. 뽑고 난 구멍에서 피가 많이 흐르면 한 땀 꿰매 주고……."

변규남 선생님이 설명하다가, 문득 나를 달래려는 듯 애써 밝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선한아. 너무 완벽하게 안 해도 돼~ 이미 익스파이어(expire, 사망)한 환자니까, 대충……."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변 선생은 머쓱하게 말을 멈추었다.

나는 수처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했다.

수처.

꿰맴, 봉합이라는 뜻으로, 가장 기본적인 술기다.

외과의사를 지망하는 의학도라면 누구나 수처를 연습하게 된다.

‘첫 수처를 이렇게 하게 될 줄이야…….’

나는 어릴 때부터 바느질을 하면서 외과의사의 꿈을 키웠다.

언젠가는 이 기술로 환자를 치료하고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봉합을 사망자에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그게 김혜정 할머니라니…….

‘중환자실 와서 제일 정들었던 환자였는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자.

나는 의사다.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 냉정하게 의사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상아색 봉합사와 조그마한 니들 홀더(needle holder)를 준비해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환자를 바라보았다.

"……."

짧은 시간 동안, 김혜정 환자의 얼굴은 변해 가고 있었다.

피가 돌지 않는 사람의 몸은 너무나도 빨리 흙빛으로 변해 갔다.

내가 오늘 아침까지 대화를 나누던 그 김혜정 할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정도다.

사람은 이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라인부터 정리하자.’

환자는 목과 허벅지에 각각 굵은 라인이 연결되어 있었다.

고정되어 있는 실을 끊고, 연결 줄을 뽑자 피부에 큰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검은 피가 체액과 섞여 흘러나왔다.

주르륵―

피가 솟구친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그냥 흘러나왔다.

나는 그 구멍을 준비해 간 실로 꿰매 주었다.

중환자실에서의 오랜 투병생활 때문인지, 김혜정 할머니의 피부는 두껍지 않았다.

푸욱―

니들(needle, 바늘)은 쉽게 피부를 뚫고, 피부 아래의 지방층을 통과했다.

곧 피부를 뚫고 수직으로 올라온 바늘 끝이 반짝였다.

나는 그 끝을 니들 홀더로 잡고 천천히 쭈욱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타이(tie, 매듭을 지어 묶는 행위)를 시작했다.

정―정―역―정.

혹시라도 실이 풀리지 않도록, 반대 방향으로 한 번 묶은 뒤 봉합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목과 허벅지를 봉합하고, 남은 혈관 주사 뽑은 자리는 거즈로 눌러 지혈해 주었다.

난 내 방식대로, 김혜정 할머니가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렸다.

"수고하셨어요."

잠시 후 차유리 간호사가 커튼 안으로 들어왔다.

환자에게 묻은 피를 닦고 마무리 작업을 해 준다.

나는 흰 천으로 덮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차유리 선생님."

"예?"

"제가 최선을 다한 걸까요?"

"……."

"할머니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 외롭고 무서우셨을 텐데, 말이라도 더 자주 걸어 드릴 걸 그랬나 봐요."

그러자 차유리 선생은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선한 쌤 충분히 잘하셨어요. 할머니도 아마 고마워하셨을 거예요."

"그랬으면 다행이구요."

나는 씁쓸히 말했다.

문득 눈앞에, 김혜정 할머니의 미소가 어른거린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매일 아침 중환자실을 환히 밝혀 주던 귀여운 미소였는데…….

나는 먹먹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차유리 간호사와 함께 베드를 정리했다.

그때, 무언가 베드 옆에서 툭 떨어졌다.

"……!"

종이가 끼워진 보드 판이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흩어진 종이들을 줍다가 멈칫했다.

할머니가 펜으로 적었던 꼬불꼬불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 고 마 와 >

< 갠 찬 아 >

울컥―

갑자기 눈물이 치솟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병원에서 눈물을 흘렸다.

김혜정 할머니는 그렇게 ICU를 퇴실하였다.

* * *

1년에 30만 명.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들의 수다.

그리고 그중 4만 명 이상이 병원 내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13.8%>

사망률을 숫자로 표현하면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이 죽음 하나하나를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김혜정 할머니의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후.

나의 일상은 약간 달라졌다.

"선한 쌤, NS 처방이랑 RI 처방 좀 내줄래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간호사의 부탁에 EMR에 로그인을 하고 갱지에 적혀 있는 처방을 입력했다.

여전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환자와 조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두렵다.

내가 맡은 환자가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곳이 ICU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너무 정을 붙이지 말라고 했던 변 선생의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 같았다.

"퇴근하세요?"

저녁 7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차유리 간호사와 마주쳤다.

5월 중순이 되자 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옷도 점점 얇아지고, 화사해진다.

차유리 선생도 평소와는 다른 사복 차림이다.

간호 업무를 볼 때와는 달리, 머리도 풀어 헤친 모습이 색다른 분위기다.

나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퇴근하고 운동하러 갑니다!"

"오, 역시 선한 쌤 성실하시네!"

"차유리 선생님은요?"

"저는 밀린 드라마 정주행하러 가요! 선한 쌤이 알려 주신 그거 엄청 재밌던데요?"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 더 친해졌다.

함께 김혜정 할머니를 보내 드리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 때문일까?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궂은일들을 함께하다 보니,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단둘뿐인데도 이제는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 드라마 재밌죠?"

"대박. 어제 3화까지 봤는데 뒤 내용 궁금해서 미쳐 버릴 거 같아요."

"10화에서 반전이 대박인데……."

"안 돼! 스포하지 마요!"

차유리는 오늘도 밝은 모습이다.

환자의 죽음을 몇 번 겪고 나면 침울해질 만도 한데, 어떻게 시종일관 밝을 수 있지?

그냥 타고난 성격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차유리가 묻는다.

"선한 쌤은 그런데 요새 좀 눈이 슬퍼 보이시네."

"제가요?"

"입은 웃고 있어도, 눈썹이 하루 종일 이런 모양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자기 눈썹을 축 처지게 만들어 보인다.

내가 그랬나?

나도 모르게 표정이 울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처음이셨죠? 환자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아…… 네."

"요새 표정이 좀 어두우시길래 며칠 전 김혜정 할머니 일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차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문득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항상 밝으세요? 중환자실에서 이런 우울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차유리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나보다 훨씬 오래 일했다.

분명 이런 감정들을 몇 번이고 겪었을 테니,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많을 텐데…….

그런데, 의외의 말이 돌아온다.

"가만있자…… 운동을 지금 당장 꼭 하셔야 되는 건 아니죠?"

무슨 말이지?

내가 잠시 감을 못 잡고 있자, 차유리가 웃으며 말한다.

"저랑 같이 잠깐 밖에 바람이나 쐬고 오실래요? 스트레스 푸는 법 알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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