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38화 (38/241)
  • #38 아이 씨 유(5)

    삐삐삐삐!

    무슨 일이지?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살펴보았다.

    슈우우우―

    환자의 목에 붙어 있던 인공호흡기 튜브가 분리되어 허공으로 산소가 분출되고 있었다.

    "영은아! 아휴 진짜!"

    환자를 잡고 있던 간호사들은 한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신입 간호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얼어 있다.

    환자의 바이탈 사인(vital sign)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린다.

    심전도에서 비정상 파형이 지나가고, 산소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잠시만요."

    나는 드레싱을 멈추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다시 인공호흡기 연결 튜브를 연결했다.

    그러자 곧 환자의 바이탈 사인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모니터의 알람이 멈추었다.

    쉬익―

    환자도 다시 이전처럼 호흡을 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며 움직일 때, 목에 연결되어 있는 인공호흡기의 연결 튜브가 빠져 버린 것 같았다.

    "죄송해요……."

    신입 간호사는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개미 목소리로 말한다.

    다른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더 사나워지기 전에 나는 서둘러 말했다.

    "괜찮습니다, 장갑 하나 새로 주세요."

    "예……."

    나는 장갑을 다시 바꿔 끼고 서둘러 드레싱을 완료했다.

    간호사들은 다시 환자를 본래의 자세로 돌려놓은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은이, 넌 이따 한번 보자."

    가장 나이가 많은 간호사가 조용히 말했다.

    옆에서 듣던 내가 다 오싹해질 정도다.

    신입 간호사에게 참교육을 시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아직 어설픈 신입 의사이기에,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아마 엄청 혼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의료진이 실수를 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으니까.

    <중환자실>.

    이곳은 환자의 생명을 지탱하기 위한 최종 방어선이다.

    사소한 실수, 사소한 판단 하나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걱정할 게 아니라, 당장 나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 *

    잠시 후.

    면회 시간이 시작되었다.

    중환자실은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만 모여 있다 보니, 보호자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면회가 허락된 시간은 30분씩 하루에 단 두 번.

    오전 10시 반 / 저녁 7시 반.

    그중 첫 번째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인턴 쌤,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간호사들에게 인사한 뒤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이 시간에는 인턴 잡도 멈추게 된다.

    환자가 보호자와 같이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 위함이다.

    어차피 할 일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시간.

    나는 스테이션에 앉아 차트를 열어 보았다.

    ‘대장암 2기라…….’

    김혜정 할머니는 수술을 받은 지 두 달이 넘은 환자였다.

    첫 수술 후에도 복막염 등의 합병증으로 여러 차례 추가 수술을 받은 기록이 있었고, 합병증 폐렴으로 인공호흡기까지 달게 됐다.

    수술에서 발견된 임파선 전이에 대해서 항암 치료까지 필요한 환자였지만, 컨디션이 나빠서 항암 치료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는 경과 기록이 보인다.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있는 상태가 안 되시는구나…….’

    나는 차트를 유심히 보았다.

    그때, 누군가 옆에서 고개를 슥 내민다.

    차유리 간호사였다.

    "차트 보고 계세요?"

    "예. 아까 잠깐 사이에도 바이탈 흔들리시길래…… 할머니 상태가 안 좋으신 모양이죠?"

    그러자 차유리 간호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환자실에 오래 일한 간호사는 나 같은 초짜 의사보다 훨씬 경험이 풍부하고 환자들의 코스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벌써 70일째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걸어서 퇴원하실 수 있을까 싶네요. 병동으로 올라갈 수 있게 회복만 되어도 진짜 좋을 텐데……."

    70일.

    두 달이 넘는 시간이다.

    중환자실 천장만 보고 두 달 넘게 누워 있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많이 축날 것 같다.

    나는 김혜정 환자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때, 차유리 선생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선한 선생님은 인턴 2회차쯤 되세요?"

    "예?"

    "아까 호흡기가 빠졌을 때 전혀 당황하지도 않으시던데요. 보통 인턴 선생님들은 그런 일 일어나면 엄청 당황하시던데."

    "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

    그동안 단련이 되어서 그런가?

    비록 2개월 남짓이지만, 나름대로 여러 가지 관문을 겪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나름 발전하고 있는 건가?’

    물론 아직 나는 초짜 의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 봤자 고작 레벨 7에서 8 정도가 된 정도겠지만.

    * * *

    일주일이 흘렀다.

    처음에 조금 헤매던 것도 잠시, 나는 ICU(중환자실)에서의 일과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몇 가지 요령도 생겨났다.

    "선한. 커피 한 잔 고?"

    오늘도 어김없이 변 선생이 눈을 찡긋하며 묻는다.

    나는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선배님, 저 콜이 아침부터 밀려서 오늘은 못 갈 것 같습니다."

    "야~ 선한아. 적당히 대충 일해도 내가 점수 잘 준다니까? 선배 좋다는 게 뭐야?"

    변 선생이 꼬시듯 말한다.

    하지만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인맥이나 학연으로 점수를 잘 받고 싶은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변 선생을 믿을 수 없다.

    괜히 믿었다가 뒤통수 맞으면 나만 골치 아프다.

    "카페는 점심때 가시죠. 제가 커피 사겠습니다."

    "에라이. 꽉 막힌 놈."

    변 선생은 재미없다는 듯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피식 웃고는 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병실에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간호사들과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차유리 간호사와는 나이가 비슷해서 그런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차유리 간호사는 오늘도 밝은 모습이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삭막한 중환자실에서 어떻게 저렇게 밝은 얼굴을 할 수 있을까?

    함께 있으면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드레싱 도구 몇 개가 없는 것 같아서요."

    "에고…… 스킨포어랑 실바딘 연고가 벌써 다 떨어졌네? 창고에서 채워다 드릴게요."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위치 정도는 익혀 놓으려고요."

    "그래요. 그럼 따라오세요!"

    차유리가 웃으며 앞장선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따라갔다.

    끌어 올려 묶은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매끈한 목에는 얇은 은색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창고로 향하던 도중.

    씩씩하게 걷던 차유리 선생이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근데 선생님, 실례지만 몇 살이세요?"

    "저 27입니다."

    "정말요? 더 어려 보이시는데."

    "제가요?"

    "사실 간호사들끼리 TV 보면서 궁금해했거든요. 저 인턴 선생님은 몇 살인데 피부가 저렇게 곱냐고. 부럽다고."

    아이고…….

    나는 얼굴을 붉혔다.

    며칠 전 뉴스 인터뷰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데, 실력에 비해서 과하게 병원 여기저기에 알려진 것 같다.

    "선한 쌤, 화면발 잘 받으시던데요?"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닌데. 진짜예요!"

    그렇게 차유리 간호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창고로 향했다.

    창고는 혈액검사기를 지나 중환자실 끝에 위치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간격으로 랙이 설치되어 있고, 다양한 물건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다.

    "가끔 물건이 빌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이렇게, 창고에서, 꺼내면, 됩니다, 영차!"

    팔짝, 팔짝!

    차유리 간호사가 발돋움을 하며 팔을 높이 뻗는다.

    그런데, 닿을 듯 안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키가 모자라 보인다.

    나는 팔을 쭉 뻗어 스킨포어를 집어다 건네주었다.

    "와, 선한 쌤 보기보다 키 크시네요?"

    "또 필요한 게 뭐였죠?"

    "뭐였더라…… 그니까…… 실바딘도 필요하고."

    "저거죠?"

    "네, 맞아요!"

    나는 차유리 간호사의 뒤쪽 랙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서로의 사이가 좀 가깝다.

    창고가 무척 비좁은 구조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얇은 의사복과 간호사복 한 벌씩만 입고 있으니, 서로 조금만 가까워져도 체온이 느껴질 정도다.

    "저는 이거 들고 나가 있겠습니다."

    "네, 나머지는 제가 챙겨서 나갈게요!"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머쓱하게 웃으며 멀어졌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같이 일할 사이인데, 괜한 오해 사면 안 되지.

    더군다나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조금만 가까워져도 주위에 소문이 퍼지기 마련이다.

    "그럼 오늘도 드레싱하러 가 볼까요?"

    "예!"

    나는 차유리 선생의 씩씩한 목소리에 따라 베드로 이동했다.

    어쨌거나 차유리 선생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은, 중환자실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할머니, 일어나셨어요?"

    나는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할머니가 방긋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일주일간 또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바로 김혜정 할머니와 친해진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이 익숙해지자 드레싱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하나, 둘, 셋!"

    간호사들이 몸을 뒤집자, 나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소독을 마쳤다.

    할머니는 제자리에 눕고 다시 안정을 찾아 손을 들어 고맙다는 입모양을 보였다.

    인공호흡기를 목에 꽂고 있어, 말은 안 나오지만 입 모양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할머니.

    손을 흔들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열심히 가리켰다.

    "할머니, 하시고 싶은 말 있으세요?"

    차유리 간호사가 옆에 준비돼 있던 A4 보드판과 끈으로 달려 있는 펜을 가져온다.

    그러자 할머니는 깡마른 손을 들어 종이 위에 열심히 무언가를 쓴다.

    < 고 마 와 >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꼬불꼬불하지만, 할머니의 미소와 입 모양으로 무슨 글씨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자 간호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번진다.

    "아이고, 우리 할머니. 젊은 총각 선생님이 치료해 주시니까 좋은가 보다!"

    "하여튼 우리 할머니 귀여우시다니깐."

    할머니는 소녀처럼 웃었다.

    내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나는 VRE 가운을 벗지 않은 채 환자의 주름진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힘내세요. 좋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할머니의 귀에 이야기했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김혜정 할머니의 귀여운 미소를 보는 것이,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 * *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처방 몇 개를 넣으려고 하던 찰나.

    옆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던 변규남 선생님이 나를 향해 말했다.

    "커피 고?"

    "네, 가시죠."

    이 사람은 커피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들린 걸까?

    아무튼 두 번이나 거절하기엔 뭣하기에, 나는 급한 처방만 몇 개 처리한 뒤 변 선생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우리는 카페에 앉았다.

    웬일인지 오늘은 변 선생이 사 주는 커피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양심상 내가 네 번을 사니까 한 번은 사 주는구나…….

    변 선생이 스마트폰 게임을 켜며 묻는다.

    "일은 할 만해?"

    "예. 환자분들이랑도 친해진 것 같고요."

    "환자 누구?"

    "김혜정 할머니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순간 변 선생의 표정이 묘해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온갖 감정이 뒤섞인 듯한 복잡한 표정이다.

    "너,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중환자실 환자들한테 너무 정 붙이지 마라."

    "예?"

    "나중에 후회한다."

    변 선생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평소와는 약간 다른 말투다.

    ……진지하게 얘기하는 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파앗―

    눈앞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미래의 한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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