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31화 (31/241)
  • #31 강남역(10)

    "이야, 인턴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병원 밖에서 심낭천자 해 보신 분들 있어요?"

    허준임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주위 교수들을 둘러본다.

    신승우 교수가 헛기침을 한다.

    "흠흠. 자세한 얘기는 본인한테 들어 보는 것으로 하고 어서 자리에 앉지요. 회의 시작해야 하니까."

    "아이고, 그럴까요?"

    허준임 교수가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아무래도 남들 신경을 잘 쓰지 않는 특이한 성격인 듯했다.

    ‘교수님들 중에서도 다양한 타입이 많구나.’

    곧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여든다.

    못마땅해하는 시선들.

    흥미로워하는 시선들.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징계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첫 질문은 신승우 교수였다.

    "어제 음주를 한 채로 심낭천자를 했다는 게 사실인가?"

    "예!"

    이런 제길.

    너무 긴장한 나머지 씩씩하게 대답해 버렸다.

    신승우 교수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뭘 잘했다고 당당하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강남역 골목길 한가운데에서…… 일어날 수 있는 합병증에 대한 설명도 없이…… aseptic(무균) 하게 시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도 안 지켰던 것 같은데?"

    톡, 톡.

    교수가 펜으로 테이블을 두드린다.

    그럴 때마다, 마치 내 몸이 쿡 쿡 찔리는 듯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손의 감각만으로 시술을 했다고?"

    "예. 병원이 아니라서 장비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119 구급차에도 휴대용 초음파 기구가 있는데, 그걸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고?"

    "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구급차에 초음파 장비가 있었다고?

    만약 그걸 이용했다면 더 안전하게 시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몰랐던 모양이지?"

    "네, 몰랐습니다."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지식은 아직 의대생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장의 경험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의학적인 전문 지식은 여기 있는 교수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곧 교수들끼리의 대화가 이어진다.

    "서 교수님. 환자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일단 시술로 인한 합병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큰 문제 없이 회복 중입니다."

    "다행이긴 한데…… 혹시 법률상의 문제는 없겠습니까?"

    교수 중 한 명이 말하자 법률팀 직원이 태블릿 PC를 살펴보며 말한다.

    "일단 의료법상 응급 상황에서는 동의서를 안 받아도 됩니다."

    "일단 법적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거네요?"

    "예."

    그러자 신승우 교수가 눈살을 찌푸린다.

    "이게 법률적으로만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인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도 않은 시술을 바깥에서 하고 돌아다닌다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그 말에, 다른 교수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내 편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섣불리 반발했다가는 역효과가 생길 것 같고.

    나는 코너에 몰린 기분으로 긴장한 채 앉아 있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허준임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이야,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예."

    바짝 긴장이 된다.

    상대는 매일같이 심장을 만지는 흉부외과 교수다.

    과연 내게 어떤 질문을 던지려는 것일까?

    "환자가 심낭압전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지? 그거 판단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치?"

    순수한 학구파의 눈빛.

    허준임 교수의 인상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나를 질책하려는 의도보다는 호기심이 더 큰 듯했다.

    ……어쩌면,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고.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학생 때 배웠던 벡스 트라이어드(Beck’s triad)를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인다.

    "현장에서 환자의 경정맥 확대와 저혈압을 확인하였고, 의식이 점점 떨어져서……."

    "잠깐."

    그때, 다시 한번 신승우 교수가 내 말을 끊는다.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에서도 똑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 않나?"

    그의 말은 내 허점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심낭압전> = ‘심장 주위에 피가 차서’.

    <긴장성 기흉> = ‘흉강에 공기가 가득 차서’.

    원인은 다르지만 증상이 똑같을 수 있다.

    "두 질환의 치료법은 완전히 다른데, 확신도 없이 심장부터 찌를 생각을 해?"

    압박 면접을 하는 듯한 교수의 말에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 하나?

    확 그냥 사실대로 말해 버릴 수도 없고.

    ―사실은 제가 미래를 봤습니다!

    ―오오, 그렇군!

    ―크윽, 미안하네. 나는 자네가 미래를 볼 수 있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얘기했다간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만!

    나는 머릿속 망상을 지우고 차분히 대답했다.

    "환자의 가슴에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멍?"

    "예. 떨어지는 난간에 맞아, 심장 근처의 전흉부에 심각한 타박상이 있었습니다."

    "흐음……."

    "물론 처음에는 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를 받게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카디오제닉 쇼크(cardiogenic shock, 심인성 쇼크)가 빠르게 진행되어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조치했습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교수들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중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일리는 있네요."

    "기흉을 만들 만한 다른 흉부 외상은 없었으니 심낭압전을 먼저 의심했다라……."

    "생각 없이 한 행동은 아닌 것 같습니다."

    휴, 다행이다.

    내 말이 어느 정도 먹혀든 것일까?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곧 그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주로 의견이 갈리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

    허준임 교수 vs 신승우 교수.

    "저는 칭찬하고 싶은데요? 인턴의 판단력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똑똑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환자를 살려 냈으니까요."

    허준임 교수의 입장이다.

    반면 신승우 교수의 의견은 다르다.

    "이번에야 운 좋게 성공했다고 하지만, 만약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후속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 징계는 꼭 필요하다 생각합니다만."

    양쪽 의견이 팽팽하다.

    자존심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

    두 교수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는다.

    나는 그 사이에서 초조한 기색을 감춘 채 결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똑똑―

    회의실 문이 두드려지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 들어온다.

    ‘누구지?’

    한 명은 50대 중후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의사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복장으로 봤을 때 의료진은 아닌 것 같은데…….

    "부원장님?"

    "홍보협력팀 팀장님까지 웬일이십니까?"

    교수들이 놀라 자리에서 살짝 일어난다.

    나도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아, 회의 중에 미안해요."

    부원장이 손을 들며 양해를 구한다.

    넉살 좋게 웃고 있지만 고집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키는 작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체형이다.

    "지금 급히 대응해야 할 이슈가 있어서. 자세한 건 홍보전략팀에서 설명해 줄 겁니다."

    그러자 홍보팀장이 손에 들고 있던 디지털카메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 미디어에 뿌릴 보도 자료 만들어야 되는데, 저 친구 얼굴이 좀 필요해서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가리킨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갑자기 내 얼굴은 왜?

    교수들도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혹시 언론 기사에 얼굴을 내시려는 겁니까?"

    "예."

    "가급적이면 개인 정보는 보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병원 인턴이 비난받고 있는 상황인 만큼……."

    "비난이요?"

    홍보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 반대인데요."

    "예?"

    "오히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실시간 검색 1위 보셔야 될 것 같은데요."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다.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곧 다들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 보고 있었다.?

    ‘뭐지……?!’

    미치도록 폰을 열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열린 징계위원회이기에 차마 폰을 꺼내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 부원장이 나에게 말했다.

    "거기 인턴도 한번 확인해 봐."

    "……예."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을 슬쩍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했다.

    ↑ 강남역 인턴

    ↑ 강남역 낙상 사건

    ↑ 강남역 의사들

    ↑ 연국대병원 인턴

    맙소사.

    실시간 검색어 차트가 간밤에 있었던 일로 빼곡하다.

    설마…….

    나는 포털 사이트 뉴스 채널에 들어가 보았다.

    보도 사진 속에서, 나와 근욱이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피에 젖은 옷차림이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선명하다.

    [사회] 몸 던져 환자 구한 병원 인턴들…… 현장에서 중환자 살려 낸 ‘기적’댓글(2,554)

    ―진짜 멋있다

    ―역시 저런 분들이 있어서 의료강국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하…… 오늘부터 장래 희망 의사다!

    ―어디 병원인가요? 정말 대단한 청년들이네요.

    ―연국대병원?

    ―연국대병원 맞는 듯.

    ―저게 바로 진정한 의사들의 모습이죠.

    ―아까 욕하던 사람들 다 어디 갔음? ㅋㅋㅋ

    아침에 보았던 기사와 180도 다른 반응들이다.

    뭔가 일이 커지고 있다.

    모두 놀란 표정을 짓자, 홍보팀장이 설명을 덧붙인다.

    "아침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동향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찍은 동영상이 언론에 제보되면서 여론이 바뀌었어요."

    "아하, 그래서……?"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대응보도자료를 만들어야죠. 혹시라도 부정 여론이 다시 올라오기 전에."

    그렇게 된 거였구나!

    ……문득 어제 강남역 사고 현장이 생각난다.

    긴박한 와중에 한가하게 동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덕분에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욕해서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속으로 오만 감정이 샘솟는다.

    "지금 분위기로는 우리 인턴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될 것 같은데…… 막상 병원 내부에서 징계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부원장이 그렇게 말하며 교수들을 둘러본다.

    여전히 둥글둥글하고 넉살 좋은 표정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연륜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의견을 확고히 피력하려는 의지는 명확히 전달하고 있다.

    "괜찮겠습니까?"

    "어휴, 뭐 부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신승우 교수가 표정을 바꾸며 굽신거린다.

    부원장님이라 불리는 교수님의 말 한마디에 저렇게 태세 전환이 빠른 걸 보니…….

    잘은 모르지만, 부원장이라는 위치는 굉장히 파워가 센 듯했다.

    "그럼 서두르지. 미디어에 한시라도 빨리 전달해야 하니까."

    "예."

    나는 부원장의 시선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회의실을 나서기 전.

    다른 교수들에게 깍듯이 인사하며 말했다.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으음."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 몇몇은 떨떠름한 표정이긴 했지만.

    나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허준임 교수는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그렇게 막 홍보팀장과 함께 문을 나서는데, 부원장의 입이 열린다.

    "평소에 자네 얘기 많이 들었어."

    "예?"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뛰어난 인턴이라고 하던데."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부원장님이라면 까마득한 하늘 위 존재 아닌가.

    그런 분이, 일개 인턴에 불과한 내 얘기를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다는 거지?

    말도 안 된다.

    아마도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겠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

    그제서야 부원장의 하얀 재킷에 수놓인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왜 진작 눈치 못 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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