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8화 (28/241)
  • #28 강남역(7)

    "진우야!"

    "정신이 들어?!"

    학생들이 애타게 부르자, 환자는 친구들을 향해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의식이 돌아왔다!

    나는 얼른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이제 구급차로 옮겨서 빨리 병원으로 가 주세요!"

    "예!"

    당장 심낭천자로 급한 불은 껐지만 안심할 수 없다.

    다른 장기에 손상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고, 다양한 시술 혹은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드르륵!

    환자를 차에 태운 뒤, 구급대원이 내게 묻는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은 연국대병원이다.

    내가 개입한 이상, 이 환자만큼은 끝까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구급차에 오르며 근욱이에게 말했다.

    "근욱아, 나 먼저 가 볼게. 다른 환자들 상태 좀 봐줘."

    "그래 인마…… 너 괜찮겠냐?"

    "걱정 마."

    나는 근욱이의 어깨를 툭 쳤다.

    그때, 안절부절못하던 학생들이 달려와 말한다.

    "선생님!"

    "우리 진우 좀 살려 주세요!"

    학생들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매달린다. 그중 몇 명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다.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그래. 이 학생 이름이 진우야?"

    "네!"

    "혹시 이 중에 진우 부모님 연락처 아는 사람 있어?"

    "저, 저요."

    "부모님한테 너무 놀라지 않게 잘 말씀드려. 진우 괜찮을 거야. 알았지?"

    여학생 한 명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저기요, 이거……!"

    남학생 중 누군가 달려와 나에게 포장된 물티슈를 건넨다.

    이걸 갑자기 왜 나한테?

    나는 그 이유를 잠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타악―

    구급차가 출발한 뒤 문득 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얼굴과 온몸에 피가 묻어 있다.

    아까 정신없이 치료에 몰두하느라 피가 어디로 튀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물티슈 한 장에, 학생들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뭐라도 돕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그 와중에 피 닦으라고 이거라도 구해 준 것이다.

    ……착하네.

    어린 친구들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슥슥.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뺨에 묻어 있는 피를 닦았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구급대원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 연국대병원 의사라고 하셨습니까?"

    "예. 인턴입니다."

    "인턴……."

    구급대원은 뒷말을 아꼈다.

    고작 인턴이면서 이렇게 과감한 행동을 해도 되냐는 뜻이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제발 살아 줘라.’

    나는 진우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비록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럴 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기도하고 싶어진다.

    왜애앵―

    덜컹, 덜컹!

    구급차가 도로를 질주한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도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그 뒤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환자와 함께 연국대병원에 도착했다.

    "엇, 신선한 쌤?"

    응급실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인턴 동기들도 덩달아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선생님, 인턴 신선한입니다. 이 환자 현장에서 심낭압전 의심돼서 심낭천자로 60cc 정도 배액했어요."

    나는 당직 치프 레지던트에게 현장에서 있던 일을 설명했다.

    "뭐?! 심낭천자? 현장에서?"

    치프가 당황한 듯 되묻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환자 혈압 90/70이에요!"

    간호사의 외침에 치프 레지던트는 급히 소생실로 들어갔다.

    "넌 나중에 보자! 일단 밖에서 기다려!"

    타악!

    문이 닫힌다.

    나는 소생실 바깥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중간중간 의료진이 들락날락하면서 보이는 소생실 안은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는지 인투베이션(intubaton, 기도삽관)을 하고, 검체들이 소생실 밖으로 나와 이동되고 있다.

    "레벨 원(Level 1) 인퓨전 펌프도 준비해 놔요!"

    "GS(외과)랑 TS(흉부외과)에 빨리 전화해!"

    수혈이 필요한지 혈액도 소생실 안으로 들어가고, 여러 과로 연락이 진행되는 듯하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내가 실수로 심장을 찌른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현장에서는 뒤도 생각하지 않고 행동이 앞섰지만, 뒤늦게 여러 걱정들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 손과 옷을 보니,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다.

    "……완전 거지꼴이네."

    세수라도 할 겸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울을 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헉!’

    파격적인 몰골이다.

    헝클어진 머리, 여기저기 피가 튀겨 있는 옷과 바지…….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술기운과 흥분이 겹친 내 얼굴빛이다.

    누가 봐도 술 취한 난봉꾼이 길거리에서 싸움이라도 한 모습인 것이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도 하네."

    촤악―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내일부터 나에 대해 무슨 말이 돌게 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 * *

    같은 시각, 소생실 안.

    치프 레지던트는 환자를 면밀히 평가하고 있다.

    복강과 흉부에도 소량의 피가 발견되었지만, 환자의 혈압을 떨어뜨린 주원인은 심낭 안에 고인 피로 보인다.

    즉, 심낭압전이 맞았다.

    ‘뭐야…… 정말 아까 그 인턴이 제대로 맞힌 거였잖아?’

    대체 어떻게 알았지?

    현장에서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닐 텐데…….

    치프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윽고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범수 네가 당직이냐?"

    오늘의 순환기 내과 당직은 김범수, a.k.a 김뱀이었다.

    "소생실에 탐폰(tamponade, 심낭압전) 환자가 있어. 지금 바이탈(vital sign, 활력징후) 불안한데 빨리 와 줄래?"

    치프가 전화를 끊었다.

    김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생실로 달려왔다.

    "상황이 어떻습니까?"

    "가슴이랑 복부 쪽에 blunt trauma(둔상) 환자인데, 현장에서 심낭천자를 했다고 하네."

    "현장에서요?"

    김뱀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동안 많은 심낭압전 환자를 봐 왔지만, 이처럼 현장에서 조치가 취해진 적은 처음이었다.

    "복부랑 폐 쪽도 다친 것 같은데 일단 탐폰부터 해결해야 될 것 같아. 지금도 심낭 안에 피가 조금 고여 있는 것 같거든."

    "예."

    김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심낭에 고여 있는 혈액 배액을 위해 PCC pigtail catheter(심낭배액도관)을 삽입하는 시술을 진행했다.

    그의 손놀림은 거침없었다.

    김뱀이 마스크를 쓴 입으로 말했다.

    "그런데 119 출동할 때 의사도 같이 타고 갔어요? 아무리 그래도 현장에서 심낭천자를 했다는 게…… 배짱이 대단한데요."

    "아니. 우리 과 인턴이 마침 현장에 있다가 했다고 하던데."

    "인턴이요?"

    "아주 당당하게 눈 똑바로 뜨고 얘기하더라. 자기가 현장에서 환자 가슴 뚫었다고."

    김뱀의 눈이 커졌다.

    인턴 주제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인간이 있다고?

    게다가 지금 응급의학과를 돌고 있는 녀석이라면…….

    ‘혹시 그놈인가?’

    김뱀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나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다시 소생실 앞을 서성였다.

    그때, 시술을 마치고 나오는 의사와 마주쳤다.

    익숙한 얼굴이다.

    김범수 선생, 통칭 김뱀.

    "선생님!"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어떻게 됐습니까, 안에 상황이 어떤가요?"

    찌릿!

    김뱀은 대답 대신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설마 너냐? 길바닥에서 심낭천자를 했다는 미친놈이?"

    "……예."

    "내가 말했지. 저번 일은 초심자의 운에 불과하니까 깝치지 말라고."

    김뱀이 눈썹을 곤두세운다.

    "인턴 2개월 하면서 칭찬 좀 받으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왜 자꾸 선을 넘지?"

    "죄송합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심낭천자? 아주 기고만장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저, 그보다 환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하."

    김뱀이 피식 웃었다.

    "그 와중에 환자가 걱정돼? 네 걱정이나 하지 그래?"

    "그게 무슨……?"

    "보아하니 밖에서 술 처먹다가 저지른 것 같은데. 길거리에서 환자 가슴에 구멍 뚫어 놓고, 아무 탈 없기를 바랐어?"

    순간 가슴이 철렁인다.

    혹시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만약 실수로 내가 심장을 찌르기라도 했다면…….

    "잘 끝났어."

    "……!"

    "심장 자체에는 손상 없어. 심낭에 남아 있던 피도 마저 빼냈고."

    김뱀은 다른 일이 있는지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나는 황급히 김뱀을 따라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지랄."

    "그럼 환자는 무사한 거겠죠?"

    "다른 장기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몰라. 아직 검사 중이니까 섣부른 판단은 일러, 햇병아리 새끼야."

    김뱀은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말한다.

    "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잘 들어라."

    툭툭.

    그가 흐트러진 내 옷깃을 정리하며 말한다.

    "넌 네가 잘난 줄 알지?"

    "……?"

    "조직에서 일 못하는 사람만 싫어하는 줄 알아? 천만에."

    김뱀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남들 안 하는 짓 하면, 그게 바로 말리그(malignancy, 암세포)인 거야."

    "……."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칼처럼 깊게 박힌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얻어맞는 곳…….

    그것이 바로 조직이다.

    이번 일로 나는 병원에서 눈 밖에 나게 된 걸까?

    "너는 앞으로 병원생활 힘들어질 거다. 두고 봐라, 내 말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김뱀은 나를 두고 사라졌다.

    그의 냉정한 말을 듣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된다.

    내가 인턴으로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후우……."

    나는 벽에 몸을 기대었다.

    텅 빈 병원 복도가,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고 외롭게 느껴진다.

    * * *

    밤이 깊어 간다.

    어느덧 12시가 훌쩍 넘어갔다.

    내가 데려온 환자는 여러 가지 검사를 마쳤다.

    간도 다쳤고, 복강에 약간의 피가 고여 있다고 한다.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 안에 피가 조금 있어, 흉부외과에서 흉관삽관도 시행했다.

    잠시 후, 치프 레지던트가 소생실에서 나왔다.

    "너, 우리 응급실 짝숫날 인턴이라고 했던가?"

    "예."

    "환자는 여기저기 손상 장기가 많아서 좀 지켜봐야 할 거야. 내일 근무해야 될 테니 일단 가서 좀 자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치프는 냉랭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지금 대기실에 보호자들 와 있을 텐데, 혹시라도 마주칠 생각 하지 마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내 몰골이 엉망이다.

    옷도 더러운 데다, 얼굴에는 술기운이 남아 있다.

    이 상태로 보호자들을 만나서 ‘내가 당신 아들의 가슴에 구멍을 뚫었다’고 말하면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른다.

    ‘숙소로 가자.’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환자가 걱정되는 마음에 좀처럼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투욱―

    이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