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7화 (27/241)
  • #27 강남역(6)

    무슨 일이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도움을 요청한 것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었다.

    나를 붙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친구가 왜? 어디 다쳤어?"

    내가 묻자, 학생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제 친구가 아까 어딜 다친 것 같은데…… 완전 얼굴색도 이상하고…… 자기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아닌 것 같아요. 저희 그냥 노래방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뭐가 막 무너지더니……."

    여학생이 횡설수설하면서 울먹인다.

    아무래도 패닉에 빠진 듯하다.

    나는 학생을 겨우 진정시킨 뒤 물었다.

    "진정하고 말해 봐. 그 친구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저쪽에 앉아 있어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여학생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내 옷자락을 끌었다.

    탁탁―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얼른 달려가 살펴보니, 몇 명의 학생들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한가운데에는 곰처럼 생긴 남학생 한 명이 주저앉아 있다.

    순하고 착하게 생긴 소년이다.

    그런데 지금은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얘들아, 의사 선생님 모셔 왔어!"

    "선생님, 저희 친구 좀 봐주세요!"

    "제발요!"

    친구들이 울먹거리며 말한다.

    그러자 주저앉은 채 헐떡이던 남학생이 겨우 숨을 짜내어 말한다.

    "얘들아, 나 괜찮은데…… 저기 피 흘리는 사람들이 더 급해 보이는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까 떨어지는 난간에 정통으로 맞았잖아!"

    "어디를 맞았는데?"

    내 물음에, 학생들이 한목소리처럼 일제히 대답한다.

    "가슴이요!"

    "가슴?"

    순간 느낌이 싸하다.

    이런 큰 사고에서 가슴을 다쳤다면 중상일 확률이 높다.

    나는 남학생의 앞에 앉아 상태를 살폈다.

    "학생, 나 좀 봐 봐."

    "여기가 좀 아프긴 해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는 남학생의 안색이 좋지 않다.

    "옷 좀 들어 볼까?"

    스윽-

    나는 남학생의 상의를 들추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가슴에서 배 윗부분까지 완전히 빨간 멍으로 뒤덮여 있다.

    겉으로 보이는 출혈은 없지만, 몸 안쪽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헉, 어떡해!"

    "선생님, 진우 많이 다친 거예요?"

    학생들이 놀라며 묻는다.

    침착하자.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환자의 몸을 살피며 벡스 트라이어드(Beck’s triad)를 하나씩 대응해 보았다.

    첫 번째 항목, 저혈압.

    ―경동맥과 팔목에서 느껴지는 펄스(pulse)의 힘이 약하다.

    두 번째 항목, 경정맥.

    ―목 언저리의 경정맥을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부풀어 있다.

    세 번째 항목, 심음.

    ―안타깝게도, 이건 청진기도 없이 이 시끄러운 길바닥에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이 학생이 내가 찾던 <그 환자>라는 것을!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 이제, 심낭압전 환자는 알아냈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곧,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심낭천자 시술(pericardiocentesis).

    환자의 가슴에 바늘을 찔러, 심낭에 정체된 혈액을 빼내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레지던트 고년차쯤 되어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시술.

    게다가 초음파 장비가 있어야 안전하게 시술이 가능하다.

    ‘내 손으로 직접 해 본 적은 없는데…….’

    물론 나도 이론 정도는 알고 있다.

    며칠 전 순환기내과 선생님이 시술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니까.

    물론 그 선생님은 능숙한 솜씨로 초음파를 보면서 했었고, 내가 하는 일은 단순히 보조였다.

    옆에서 달라고 하는 의료기구들을 건네주고, 잡고 있으라는 것을 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아니, 한 가지 더 있다면 끝나고 드레싱하며 마무리 작업을 했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여기서 나 혼자 해야 된다고?

    주위를 둘러본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장에 마땅한 도구는 없다.

    ‘……잠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옮기는 게 최선이야. 무모한 짓은 하지 말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타다닥―

    그때, 119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도착한다.

    "의사분이십니까?"

    구급대원이 나에게 달려와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국대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입니다."

    "신고자에게 대략적인 상황은 전해 들었습니다. 출혈이 심한 환자가 있다고요?"

    "예. 다리에 다량의 출혈이 있는 환자가 있습니다."

    나는 근욱이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구급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 환자랑 여기 머리에서 피 흘리시는 외상 환자를 우선……."

    "아뇨, 이 친구가 제일 급합니다."

    "예?!"

    구급대원의 눈이 의아하게 커진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 이 남학생의 상태는 단순 타박상으로 보이니까.

    하지만 아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가장 생명이 위급한 환자는 바로 이 남학생이다!

    지금 이곳에서, 오직 나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서 심낭천자를 받게 해야……."

    나는 구급대원에게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전달하려 했다.

    그때.

    풀썩―

    "어엇! 진우야!"

    "진우야! 정신 차려!"

    남학생이 길 위에 주저앉는다.

    얼굴이 점차 노랗게 변하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황급히 친구들이 불러 깨워 보지만 "으…… 으……."와 같은 신음 소리만 반복할 뿐이다.

    젠장!

    시간이 없다.

    이대로라면 미래에서 본 상황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나는 크게 외쳤다.

    "벗겨!"

    "예…… 예?"

    "친구 조끼랑 셔츠 벗겨, 빨리!"

    내 말에 학생들이 허둥지둥 남학생의 상의를 벗긴다.

    의식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심장 주위의 혈액이 심장 뛰는 것을 방해하여 혈압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경동맥을 만져 보니 분당 120에 가깝게 매우 빠르게 뛰고 있다.

    나는 구급대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사기 있습니까?!"

    "주사기요?"

    "빨리요! 심낭압전입니다. 병원 데려가면 늦습니다! 여기서 조치해야 돼요!"

    나는 손을 내밀었다.

    구급대원은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지만, 곧 내 손에 주사기를 쥐여 주었다.

    터억!

    그때, 누군가 내 팔을 잡는다.

    근욱이다.

    "너…… 지금 뭐 하려는 거야?"

    "페리카디오센테시스."

    "뭐? 심낭천자?"

    근욱이의 눈이 커진다.

    아마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하긴,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긴 하다.

    "대체 무슨 근거로?"

    "가슴 타박상에 저혈압과 경정맥 확대. 지금 환자 식은땀 흘리는 거 봐 봐, 시간이 없어!"

    "그래서 지금 여기서 전문장비도 없이 심낭천자를 하겠다고?"

    "해야 돼."

    "야 이 미친놈아."

    근욱이가 얼굴이 하얗게 돼서 나에게 속삭인다.

    "너 책임 어떻게 지려고 그래? 우리 인턴인 거 잊었어, 이 미친놈아!"

    "……."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근욱이의 말이 맞다.

    나는 인턴이다.

    그것도 턱걸이로 합격해서 연국대병원에 겨우 붙어 있는 인턴.

    내년이면 같은 병원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입장이다.

    "네가 송유주 선생님한테 감명받았던 건 알겠는데. 너도 손가락에 쏘노(sono, 초음파) 달린 거 아니잖아. 허튼짓 말고 빨리 구급차로 환자 옮기자……."

    근욱이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 순간, 여봉철 선생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앞으론 절대 스스로 책임 못 질 행동은 하지 마라. 인턴 주제에 겁대가리 없이 혼자 판단하지 말라는 거다. 알았나?

    그 말이 맞다.

    분명 내가 하려는 것은 인턴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 남학생은 분명 미래에서 보았던 대로 사망할 것이다.

    "선생님……."

    "진우 좀 도와주세요……."

    어린 학생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근욱이와 학생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후우."

    나는 마음을 잡고 환자의 가슴을 노려보았다.

    "Xiphoid process(흉골의 아래쪽 모서리) 아래에서 왼쪽 방향으로……."

    "야, 너 진짜!"

    근욱이의 목소리는 내게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주사기를 들고 환자의 피부를 향해 손을 움직이자, 근욱이와 구급대원들 그리고 모든 주변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푸욱―

    나는 환자의 가슴을 찔렀다.

    주삿바늘이 피부를 찢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집중하자.’

    나는 짧은 인턴 기간 동안 수행했던 술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ABGA(동맥혈 채혈)도 그랬고, 흉수천자도 그랬고, 골수천자도 그랬다.

    피부를 뚫는 느낌, 피하지방층을 뚫는 느낌, 혈관을 뚫는 느낌은 모두 미묘하게 달랐다.

    물론 아주 미세한 차이긴 하지만…….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내 손에는 확실히 느껴졌다.

    ‘내 손을 믿는 거야.’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특이했다.

    수산 시장에서 자라며, 저울 없이도 생선의 무게를 맞혔다.

    학생 시절, 동전 던지기를 하면 앞면과 뒷면을 손에 쥔 감각으로만 맞혔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왜 못 느끼지?

    늘 내가 느끼는 감각은 남들과 달랐다.

    내가 타고난 손은, 그런 손이다.

    그러니, 심낭(pericardium)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오직 믿을 것은 내 손의 감각뿐이었다.

    ‘할 수 있어! 심장은 건드리지 않고 심장을 감싸고 있는 심낭만 뚫고 들어가면 되는 거야.’

    나는 손끝의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주사기 바늘을 환자의 심장 쪽으로 밀어 넣는다.

    1mm 단위로.

    조금씩조금씩.

    피부층을 뚫고…….

    그 아래에 있는 근육과 지방층을 뚫고…….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인 심낭을 향해 아주 천천히…….

    나는 바늘 끝 촉각에 집중한 채, 실린지 끝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오른쪽 팔에서 혈압을 측정하고 있던 구급대원이 외친다.

    "혈압 75에 50 측정됩니다!"

    젠장!

    지금 이 순간에도 초 단위로 혈압이 계속 떨어진다.

    심장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서둘러서는 안 된다.

    만약 실수를 해서 심장을 뚫게 되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테니까.

    ‘침착하자.’

    나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구급대원은 내가 의사라는 것을 믿고 옆에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 면허증을 딴 지 고작 2개월 된 나를 믿고…….

    그때.

    쁘윽―

    뭔가 질긴 막 같은 것을 뚫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ABGA(동맥혈검사)를 할 때처럼 검붉은 피가 살짝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 느낌이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심낭을 막 뚫었다는 것을!

    나는 왼손으로 바늘을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주사기 실린지를 당기기 시작했다.

    쭈욱―

    곧 심장의 박동에 맞추어 붉은 피가 조금씩 주사기에 올라온다.

    피는 선홍색이라기에는 애매한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20cc가량의 피를 뽑아내고 주사기를 뽑아 피를 바닥에 버렸다.

    촤악!

    하지만 아직 환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힘들어하고 있다.

    ‘한 번 더!’

    나는 앞의 과정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이전의 감각이 남아 있기에 두 번째 천자는 첫 번째보다 수월했다.

    검붉은 피를 20cc씩 세 번 빼낸 뒤 다시 측정한 혈압은 105/80이었다.

    남학생의 의식도 이전보다 점차 명료해지는 것이 보였고, 맥박수가 100 언저리로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으으……."

    그때, 환자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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